-
-
부모와 다른 아이들 1
앤드류 솔로몬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평점 :
* 원제: Far From the Tree: A Dozen Kinds of Love(2012;미국)
Far From the Tree: Parents, Children and the Search for Identity
본문은 동일하나 재밌게도 하드커버에서 페이퍼백으로 오며 부제가 달라졌습니다.
* 2012 전미비평가협회상, '뉴욕타임즈' 올해의 책, '타임' 올해의 책, '이코노미스트' 올해의 책, '보스턴 글로브' 올해의 책, '클리브랜드 플레인 딜러' 올해의 책,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올해의 책, '애드버킷 올해의 책'
2013 데이턴 평화 문학상, 제이 앤터니 루카스 도서상, 베터 라이프 도서상, 아니스필드-울프 도서상, 정신질환 진미연합 뉴욕지부 선정 희망의 씨앗 도서상
2014 WELLCOME BOOK PRIZE Winner
[부모와 다른 아이들 1] 부모와 아이, 그리고 수평적 정체성
누구나 살면서 잊히지 않고 늘 어제 일처럼 생생한 ‘결정적 만남’을 경험한다. 내게는 6년 전에 들었던 김진혁 전 EBS PD의 특강이 그랬다. 지금은 숱한 인터뷰 기사로 많이 알려진 얘기기도 하지만, 살아 있는 육성과 표정으로 접해서인지 사라지지 않는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는 EBS의 장수 효자 프로그램인 5분 다큐 <지식채널e>의 초대PD이다. 지금이 방계프로그램도 더 나오고, 책도 훨씬 많지만 개성이 가장 강하고 반응도 가장 뜨거웠던 때는 역시 그 초기 시절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김진혁 PD의 지식채널e 영감의 원천을 궁금해 하던 때 그는 뜻밖의 얘기를 꺼냈다. 자신의 인생을 바꾼 것은 가난과 장애 등 ‘소외’의 목격이었노라고, 그것은 우리가 동정조차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는 누군가의 현실이자 삶 자체라고 하였다. 소외를 알면 세상이 다르게 보이지만, 스스로 소외자가 되지 않으면 영원히 완벽하게는 알 수 없는 것이 소외라고 하였다. 그 이야기는 내게도 일종의 ‘해방’이었다. 내가 가진 정체성들과 앞으로 겪게 될 상황을 견딜 든든한 버팀목이 생겼고, 세상을 읽는 한 가지 프레임이 하나 더 늘었다.
<부모와 다른 아이들>은 두 종류의 정체성을 제안한다. 하나는 동일한 가계 안에서 대물림되는 수직적 정체성이다. 여기에는 민족성과 국적을 비롯해 일반적으로 언어와 종교도 포함된다. 또 다른 하나는 수평적 정체성이다. ‘수평적’이라고 지칭하는 이유는 해당 정체성이 가족이 아닌 동류 집단을 통해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평적 정체성은 청각 장애나 왜소증, 다운증후군, 자폐증, 정신분열증, 중도 중복 장애 등 일반적으로 부모와 무관하게 나타나는 자녀의 장애를 전제로 한다. 여기에 더해서 이 책은 신동이나 강간에 의해 태어난 아이, 범죄자, 트랜스젠더 등 보다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듯한 예외적인 특징들도 탐구한다. - p.14
이 책을 쓰면서 나는 내 안의 아픔을 고민했고 대부분 치료되었다. 조금은 놀라운 일이다. 수평성을 이해하는 최선의 방법은 일관성을 찾는 것이고, 이 책에 소개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나는 내 이야기를 고쳐 쓰게 되었다. 내게는 게이로서의 수평적 경험과, 나를 낳아준 가족과 공유하는 수직적 경험이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경험이 더 이상 완전하게 통합되지 않는다고 해서 어느 한쪽이 악화되는 것 같지 않다. 부모님에게 분노하고 싶은 욕구는 이제 그 흔적만을 남겨 둔 채 모두 증발했다. 낯선 사람들의 관용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부모님에게 나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하기만 했지, 당신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마침내 부모님을 받아들인 다음에는 부모님과 어디에서나 함께할 수 있어서 기뻤다. - p.93
모든 분야에서 완전히 주류인 사람은 거의 없다. 정상인과 장애인, 남자와 여자,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부자와 빈자, 기혼자와 미혼자 등 다양한 기준에서 주류도 비주류도 되면서 폭력을 교환한다. <부모와 다른 아이들 1,2>의 표지는 저자와 수려한 외모와 남다른 학벌 및 이력, 책의 화려한 수상 타이틀로 가득하다. 그러나 표지를 벗기고 하드커버 본 책만으로 책을 대하면 느낌이 사뭇 다르다. 표지 없는 <부모와 다른 아이들 1,2>는 게이에 난독장애를 앓고 있는 저자가 무려 1600쪽이 넘도록 힘겹게 글을 써내려 간 일종의 ‘개인의 고통스러운 투쟁의 기록’이었다. 총 12장으로 이루어진 <부모와 다른 아이들 1,2>의 첫 장이 ‘아들’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와 삶을 스스로에게 설득하는 책이었고, 그래서 자신이 궁금하고 고민하는 바에 대하여 ‘쓰고 싶은 만큼’ 써내려간 책이었다. 똑똑한 고학력자가 당연히 쓸 수 있는 해박하고 방대한 교양서로 보였는데, 알고 봤더니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치열한 노력의 인간승리 결과물이었다.
부모에게 책임을 돌리는 행태는 일반적으로 무지와 관련이 있으며 한편으로는 우리가 자신의 운명을 통제한다고 믿고 싶어 하는 간절한 믿음을 보여 주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그런 식의 책임 전가는 어떤 아이도 구원해 주지 않는다. - p53
육체적인 장애는 배타적인 담론으로 이루어진 법적, 의학적, 정치적, 문화적 화술에 의해 만들어진다. - 로즈마리 갈란드 톰슨(p.223)
부모들은 하나같이 그들의 자녀가 부모보다 높은 수준의, 아니면 적어도 비슷한 수준의 사회 문화적인 성취를 이루길 기대한다. - 앨런 로스(p.647)
부모와 아이, 번식으로 발생하는 특수한 인간관계. 두 사람이 서로의 DNA를 결합해 몸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든다. 자신들과 조상들을 쏙 빼닮은 이 어리고 약한 인간은 한 동안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지해야만 살 수 있고, 커서도 상당한 시간을 함께 살며 독립해서도 가족이란 이름으로 끈끈히 묶여 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가 자신들보다 모든 면에서 낫거나 최소한 비슷하길 바라고, 그래서 온갖 욕심을 품는다. 아이는 자라면서 그런 부모의 기대가 부담스럽지만, 자신도 부모가 되면 같은 전철을 밟는다. 그러나 어떤 부모든 처음 아이가 태어났을 땐 그저 사지 멀쩡하고 건강한 ‘남들과 다르지 않은 아이’기만 해도 안심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다른 아이’들은 그들을 생산한 부모조차 거부감과 당혹감에 휩싸이게 하고, 남들이 겪지 않은 것들을 마주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다른 부모가 아이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긍정할 때 그들은 아이에게 불가능해서 포기할 것들을 가르쳐야 한다. <부모가 다른 아이들 1,2>는 평범하지 않은 아이와 그의 부모를 대변하고 대중들의 편견과 왜곡, 무지를 지우는 책이다. 그리고 그런 평범하지 않은 특징들을 저자는 ‘수평적 정체성’이란 개념으로 통칭한다.
<부모가 다른 아이들 1>은 저자의 자기 반영적 접근이 많은 첫 장 아들(게이)을 제외하고 우리가 가장 쉽게 생각하는 ‘다른 아이’의 유형인 장애를 다루고 있다. 불행히도 이 ‘다른 아이’들은 대부분 예방할 수 없는 ‘확률’적인 문제이다. 발생의 변수가 너무나 많다. 양수 검사 등 현재의 태아 장애 진단법은 아이가 정상이라는 확답을 얻기 위해 아이의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위험한 방법이다. 또 비용이 높아 저소득층일수록 장애아 가정 비율이 높고, 장애아라고 낙태하거나 일단 낳고 장애아면 버리는 등 다른 사회적, 윤리적 문제를 촉발한다. 장애아를 둔 부모는 잘못이 없어도 평생 스스로도 사회의 강요로도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리고 일반적인 부모-자녀 관계와 달리 아이의 평생을 책임지려 하는 집착적이고 의무감에 불타는 양육태도를 보인다.
내가 부모님께 감사하게 생각하는 일 중 하나가 나를 시에서 유일한 특수반이 설치되어 있는 공립초등학교에 보낸 것이다. 유치원 다닐 때도 절친 중에 소아마비였던 아이가 있었고 헬렌 켈러 등의 장애를 가진 위인들의 전기들을 숱하게 읽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본 적 없었던 아이들을 보고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였다. 특수반은 정상아와 장애아(문제아 포함)를 구분하기 위해 설치된 것이 아니라 장애아가 정규교육과정에 적응하도록 도와주기 위한 반이었고, 일반 학급과 특수반을 오가며 학교생활을 하였다. 숱한 학부모들이 우리 학교를 장애인학교에 보내지 않고 일반학교 일반학급에서 아이를 교육시키기 위해 선택하였다. 내가 아무렇게 생각하지 않는 일이 누군가에겐 어려울 수 있고, 정상인과 장애인은 분명히 다르지만 특별한 것은 아니란 것을 알았다.(착하지도 약하지도 불쌍하지도 않다) 평생 장애가 있는 사람을 대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졌다.
어떤 면에서 나는 제이컵이 청각 장애인으로 살아가면서 그에 따른 의미를 찾아내도록 선택받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이컵의 숙명이죠. 제이컵이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란 적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서 제이컵이 청각 장애인이 아니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그랬다면 제이컵이 더 행복했을지 나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더 행복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어쨌거나 제이컵은 그냥 내 아들일 뿐입니다. - p.150
오래 전 로즈(왜소증)의 치료를 위해 존스 홉킨스 병원에 간 적이 있었어요. 로즈를 데리고 승강기에 타고 있었죠. 그때 한 어머니가 그녀의 아이와 함께 승강기로 들어왔어요. 그 아이는 침을 흘리고 있었고 척 보기에도 중증 다운증후군이 분명했죠. 나는 마치 "아, 우리 아이는 그럭저럭 감당이라도 되지만 당신의 아이는 어떻게 감당할 수가 없겠군요"라고 말하듯이 무척 측은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어요. 그런데 그녀가 정확히 똑같은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더군요. - p.230
자신이 준 사랑만큼 티가 나지 않는 자녀를 사랑하려면 다른 사랑보다 더 지독한 희생이 필요하다. 하지만 자폐증의 악명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자폐 아동은 적어도 궁극적으로는 불완전하게나마 다른 사람에게 애착을 느낀다. - p.403
정신분열증 환자의 자기 권리 주장은 존재론적인 측면에서 곤란한 문제를 제기한다. 환자 자신의 현재 경험보다 더 진정한 자아가, 정신분열증 증상을 보이는 자아를 제외하고 또 다른 참된 자아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 p.597
살면서 장애인과 교제한 경험이 별로 없고, 그래서 막연히 동정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일깨우는 책이 <부모와 다른 아이들 1>이다. 대표적인 부분이 정상인들이 오히려 장애인들에게 상처를 받는 그들 특유의 배타성에 대한 부분이다. 저자는 그것을 ‘문화’라고 표현하는데 게이 문화처럼 시각 장애인, 청각 장애인 등 장애의 유형에 따라 그들 고유의 ‘문화’를 형성하고 유대를 형성한다. 그들은 장애는 불편하고 그래서 현대 의술로 그들을 정상인과 최대한 비슷하게 되면 좋겠다는 정상인들의 전형적인 착각을 보기 좋게 깨뜨린다. 농문화를 예를 들면 같은 청각장애인이면서 부모님까지 청각장애인이 아니란 이유로 그와 그의 부모를 청각장애인의 커뮤니티에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는다거나, 선호하는 특정한 삶의 방식(학교나 직업)이 있다. 그리고 정상인들의 착각과 달리 그들이 고집하는 ‘문화’ 안에서 꽤 잘 산다.
<부모와 다른 아이들 1>은 아들(게이), 청각 장애, 소인증, 다운증후군, 자폐증, 정신분열증, 장애(중도중복장애) 일곱 가지 주제를 다룬다. 엄청난 자료 수집과 인터뷰를 통해 방대한 서술을 해놓은 만큼 책이 주제들과 관련하여 미처 몰랐던 사실도 많이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인공와우수술은 잔존 청력을 완전히 제거한다거나 수화도 언어만큼이나 굉장히 다양하다는 것, 다운증후군을 성형을 통해 외모적으로는 개선이 가능하다는 것과 다운증후군은 남자만 생식능력이 없지 여자는 정상적으로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있다. 또 자폐증 환자의 3분의 1 이상이 1개 이상의 다른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장은 정신분열증 부분이었는데, 우리가 현재 정신분열증의 범위를 너무 광범위하게 보고 있어 정의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느꼈다. 정신분열증은 10대 후반에서 20대에 발현하여 몇 년에서 수십 년까지 잠복했다가 발병하면 치매처럼 뇌의 퇴행이 진행된다. 즉, 완치가 불가능한 병, 따라서 정신분열증 선고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더 이상 못 하게 하는 무서운 ‘낙인’인데 약 먹고 치료하면 괜찮아지는 병으로 쉽게 생각한다.
원래 <부모와 다른 아이들 1,2>은 1000쪽이 조금 되지 않는 한 권짜리 책이다. 그게 자간 등 편집의 차이도 있고 원주를 옮기고 옮긴이의 추가적인 주석을 달다보니 우리말 번역본은 1600쪽이 넘어간다. 그래서 서평을 쓸 때 원서의 구성을 고려하여 서평을 하나로 쓸까 했지만 내용상 전반부와 후반부의 방향이 조금 다르기 때문에 각권 서평을 따로 쓰기로 하였다, 두 권으로 분권되었다는 점 외에 우리말 번역본만의 특징으로 한국어판 서문의 존재와 원문을 옮기는 데 있어 독특한 어휘의 사용을 들 수 있다. 건청인(비청각장애인), 이부(동복)형제, 퍼시(보지), 소인(난쟁이), 농인(귀머거리) 등 보통의 번역본에서 잘 안 쓰는 표현. 최대한 아이들의 이례적인 특징을 지칭하는 용어들에 가급적 선입견을 주지 않겠다는 의도라고 한다. 그래서 이러한 이질적인 표현 때문에도 책이 다루는 주제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책이다. 우리말 번역본상 2권인 원서의 후반부 주제는 신동, 강간, 범죄, 트랜스젠더, 아버지 다섯 가지. 그 부분에 대한 언급과 이 글에서 미처 못 한 이야기는 다음 서평에서 마저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