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나의 신부
이명세 지음 / 청조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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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나의 신부] 별 것 아닌데 별 것인 소설

 

 

훌륭하진 않지만 이명세를 이해하는 열쇠

이명세 감독의 유일한 소설, 영화와 함께 보길 권함

 

 

<인정사정 볼 것 없다>로 처음 그를 알았다. 어떤 영화감독과도 겹치지 않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미장센이었다. 그 후 <형사>와 <M>이 나왔는데 단 한 번도 그가 각본을 잘 쓴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감독의 관심도 영상미학과 이미지텔링의 강화에 있지 스토리텔링이 결코 아닐 것 같았다. 그 정점이 <M>이었다. 그 후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작품이 없고 최근에야 새 작품의 캐스팅이 진행 중이다. 그런 중에 그가 1990년에 만들었던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개봉하였다. 이 영화는 1991년 소설화도 하였는데, 이명세의 유일한 소설이다. 파도에서 나온 이 책은 현재 공공도서관에서도 구할 수 없거나 구하더라도 책의 상태가 열악해 대출이나 열람이 힘들다. 알아서 헌책방에서 구해야 하는 책이었는데 리메이크 영화 개봉 덕에 작년 청조사에서 소설이 복간되었다.

 

소설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이명세의 스토리텔링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하였다. 데뷔작인 <개그맨>부터 <지독한 사랑>까지의 그의 초기 영화를 읽는 키워드를 꼽자면 배창호, 코미디, 스토리텔링이 아닐까 한다. 그만큼 처음 이명세는 각본에 대단히 노력과 관심을 많이 기울이는 감독이었다. 그 정점이 지금도 수많은 평론가들이 이명세 감독의 최고작으로 꼽고 영화제에서 각본상도 받은 <첫사랑>이다. 사실 우리 세대에게 그 시대의 이명세 영화는 평론으로만 접한 낯선 대상이었다. 우리 세대는 <쉬리>로 상징되는 한국영화의 르네상스기에 한국영화에 본격 입문하였다. 그 때가 초등학생이거나 갓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였다. 이명세의 모든 영화들이 어른들에게도 어려운 편인데 유치원 다니고 초등학교 다니는 꼬물이들에게 그 이름을 알려주는 이가 얼마나 있었을까.  

 

 

나는 어릴 적부터 오래된 의문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그 의문은 “사람들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이별을 하고, 폭력을 휘두르고,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그것을 모두 사랑이라고 할 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것이었다.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나 사랑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사랑을 한 것이 아니라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사랑이란 단어의 홍수 속에서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싶은 내 어린 날의 소망의 씨앗이다. - 작가의 말 中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가 주인공으로 나와 그럭저럭 흥행한 로맨틱 코미디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작품이다. 너무 아무 것도 아니라 제작하려는 회사가 없었던 영화고, 실제로도 극찬할 만큼 빼어난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이명세 감독이 데뷔부터 지금까지 한 가지 얘기만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려면 반드시 봐야하는 작품이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개봉할 무렵 그는 30대 중반의 유부남이었다. 이 즈음에서 결혼의 실상과 사랑의 본질을 꼭 논해보고 싶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때도 충분히 젊은 나이여서 그런지, 소설도 영화도 보다가 ‘아! 오빠! 쫌!’하고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서다 넘어지게 만드는(손발이 안 펴져!) 구석이 많다. 그게 매력인 작품이다. 그 나이 때 누구나 하는 귀여운 생각과 행동, 고민들이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출판사 말단 직원으로 도스토옙스키 같은 작가를 꿈꾸며 소설쓰기에 매달리는 영민과 결혼 때문에 회사를 그만 두고 전업주부로 살며 영민을 내조하는 미영, 스물일곱 동갑내기 부부의 사랑 이야기다. 주요 설정과 사건, 큰 줄거리는 소설과 영화가 같으나 다른 구석도 있다. 소설의 경우 영민과 미영이 초등학교 때부터 안 사이로, 대학 시절 강의실에서 우연히 만나 영민의 열렬한 구애 끝에 결혼에 성공한다는 얘기가 추가된다. 그래서 영민의 “사랑해, 미영”이 얼마나 긴 시간 동안 내뱉은 끝에 입에 붙은 말과 감정인지 둘의 인연이 얼마나 각별한 지를 강조한 것이 소설 <나의 사랑과 나의 신부>다. 그런데 묘사에 있어서는 소설이 우월하다. 하지만 소설 속의 대사와 독백들이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재밌게 표현되고 중간 중간 광고처럼 찍은 독특한 컷들이라든가 전체적으로 한편의 연극처럼 만들어 놓은 실험성은 소설에서 구현할 수 없는 영화만의 강점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이미 그곳에서 그렇게 만나도록 운명 지어진 사랑

그러나 세월이 흘러 잇닿을 듯 끊어질 듯하다 다시 만날 것을 예감하는 그대

철천지의 사랑, 나의 사랑 - p.13

 

(아, 저 귀엽고 사랑스럽고, 예쁘고, 깨물어주고 싶고, 얄밉소, 깜찍한 얼굴. 아……, 난 미영이를 사랑해.)

(틀림없어. 헤어지자는 얘기야. 그럴 만도 하지. 그렇게 졸라대도 지금껏 키스 한 번 못하게 했으니. 아까도 내가 너무 고집을 부렸어. 내가 시간을 잘못 들은 거 같은데……. 할 수 없지. 헤어지자면 헤어지는 거지 뭐. 그런데 어떡하지. 난 영민씰 좋아하는데…….) - p.29

 

“콘돔 하나 주세요.”

딴에는 제법 용기를 내어 한 말인데 약사는 마치 소화제나 감기약 내주듯 아무렇지 않게 콘돔을 건네주었다. 괜히 주눅이 들었나 싶어 영민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 p.39

 

연애할 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사소한 일들이 결혼한 지금에 와선 이렇게 기분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다는 걸 미영은 처음 알았다. 혹시라도 내가 작가의 아내가 되기엔 소양이 부족한 게 아닐까하는 자격지심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랑이란 이름으로 모든 게 극복되리라 믿었다. - p.78

 

문득 혼자 앉아 있는 남자를 발견하곤 그 앞에 도로 앉았다. 영민은 남자의 술잔에 맥주를 한잔 따라 주욱 들이켰다. "이봐요, 형씨. 둘이 사랑해서 결혼했으면 행복하게 잘살아야 하는데 왜 자꾸 싸우게 되는 겁니까, 응?" 영민은 답답한 마음을 하소연하듯 진지하게 물었다. 남자는 게슴츠레한 눈을 반쯤 내려뜨며 말했다. “나도 그걸 알고 싶어서 여기 앉아 있소.” - p.130

 

 

또 23년의 세월을 거쳐 복간되면서 소설 자체의 설정이 달라진 것도 있다. 예를 들어 미영이 집들이 준비를 하며 10만원 넘게 쓰는 게 지금 독자들에게 너무 이상하게 느껴질 것 같은지 20만원으로 고친다거나, 승희가 읊는 자작시를 2010년에 발표한 문정희 시인의 <비망록>으로 바꿔 놓았다. 2014년판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아쉬웠던 점이, 리메이크한 감독은 ‘조금’이라고 말하지만 원작을 아는 관객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설정을 많이 바꾼 것이었다. 원작을 접하기 전에는 그 감독과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영민은 1990년의 이명세 분신이다. 아버지보다 나이 많은 감독의 젊은 시절 사랑 이야기니까 정서도 시대도 너무 다를 것이라는 편견. 그런데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다. ‘이명세 영상 아포리즘’이라는 콘셉트로 기획한 아주 얇은 소설이다. 그래서 소설 자체는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금세 읽는다. 그러나 기왕이면 꼭 영화를 보고 책을 읽기를 추천한다. 과거엔 한국영상자료원이나 가야 볼 수 있었으나, 작년 새로 DVD가 제작되었고 전국 공공도서관에도 속속 배포되는 중이다. 영화도 소설도 단순하고 가벼운데 같이 볼 때 서로의 빈틈을 채우고 시너지 효과와 여운까지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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