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안녕하세요. 이섬입니다.

2015년 1월~6월 알라딘 신간평가단 15기로 활동합니다.

담당분야는 인문/사회/과학/예술

알라딘의 비문학 고전, 인문, 역사, 사회과학, 과학, 예술/대중문화, 만화>교양만화 카테고리에 업데이트 되는 신간들을 반년 동안 매의 눈으로 모니터합니다.

 

그래서 제 서재에서는

매월 초(웬만하면 산뜻하게 1일 목표!!) 제가 고른 지난 달 신간 베스트 5를 페이퍼로

그 중에서 그룹원끼리 토의 끝에 고른 궁극의 신간 1권을 리뷰로

만나보실 수 있겠습니다. 반년 동안 잘 부탁드려요!! 북플 친구 대 환영!!

 

그럼 이섬이 고르고 고른

2014년 12월 인문/사회/과학/예술 신간 BEST 5 출발!!

매월 인문,사회,과학,예술에서 각각 한권씩 고르고

다섯번째 책은 비문학 고전, 역사, 만화>교양만화에서 한권을 고릅니다.

 

 

 [인문] 책은 책이 아니다 /한주리外/꿈꿀권리/2014.12.31

 

새해 첫달 책쟁이들이 혹할 만한 신간이 어제 나왔습니다. '21세기 출판 키워드 연구'라는 부제가 붙은 다저자 공저의 <책은 책이 아니다>는 출판의 정의와 현황, 관심 이슈, 통계 등 현재 우리의 출판 생태계를 이해하고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하는 데 큰 가르침을 줍니다. 문외한부터 전문가까지, 단순 독서나 특정 책에 대한 관심 뿐 아니라 출판산업 자체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사회] 제 3의 길/앤서니 기든스/책과함께/2014.12.28

 

너무도 유명해 읽었다고 자꾸 자꾸 착각하는 명저 <제 3의 길>이 재출간되었습니다. 2014년도 피케티 열풍 등 자본주의의 미래를 걱정하고, 좌우 이념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온지 15년 이상 된 책이고, 반박서도 있는 책이지만 여전히 그의 시선과 주장은 주목할만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유효하니 열심히 톺아봐도 괜찮은 책.

 

 

 

 

 

 [과학] 악의 어두운 창고에서

  /마이크 베네케, 리디아 베네케/알마/2014.12.15

 

과학 수사의 대가 마이크 베네케, 이번엔 2배 더 강해져 돌아왔다?! 법의곤충학자 마이크 베네케의 저서가 2010년 이후 우리나라에 꾸준히 번역되고 있습니다. 이번 신간은 그의 아내이자 범죄심리전문가인 리디아 베네케가 함께 한 책이란 점에서 더욱 관심이 갈 만 한데요. 마이크 베네케의 '범죄 3부작'이 이론적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면 <악의 어두운 창고에서>는 사례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책입니다. 잘 압니다. 추리스릴러 책 매니아만큼 법의학이나 범죄학 매니아도 상당하다는 것을요. 어서 모이시죠들. 

 

 

 

 [예술] 인간을 위한 도시 만들기

  /얀 겔, 비르깃 스바/비즈앤비즈/2014.12.10

 

현재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한 동안 도시인의 탈도시적 삶의 고민이 유행이었는데요. 지금은 도시 자체를 더욱 인간적이거나 생태적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관심에 더 쏠리고 있습니다. 멜버른, 코펜하겐, 뉴욕 등 여러 도시를 연구하며 공공도시, 공공공간, 공공생활의 향상을 모색하는 <인간을 위한 도시 만들기>. 보다 질 높은 도시 생활을 꿈꾸는 도시인들이라면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비문학 고전] 종의 기원/찰스 다윈/한길사/2014.12.22 

 

수많은 비문학 매니아들이 믿고 읽는 한길그레이트북스가 133권차로 찰스 다윈의 역작 <종의 기원>을 냈습니다. 명성에 비해 <종의 기원>은 완역판은 거의 없고, 주로 해설서나 축약본이 나와 있는데요. 한길그레이트북스 <종의 기원>은 초판본을 완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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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폭격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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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폭격] 잠시 정신 놓았다 생각하면 마음 편해요

 

 

 

장르를 불문하고 매필로 채우는 주머니가 두툼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쓰지 않고선 살 수 없는 수많은 글쟁이들의 몸부림으로 문화가 발전하고 풍요로워졌다. 특히 문학은 시대를 특정한 형태로 박제해 현재에 묻고 미래에 남긴다는 점 때문에 저널리즘보다 더 저널리즘 같을 때가 있다. 확실한 인재였고 제대로 처벌하고 매듭짓지도 못한 채 반년 이상 온 나라의 분위기를 침체시켰던 세월호 사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숨 막히는 응어리가 박혔고 문화 창작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눈먼 자들의 국가> 같은 책이 나오기는 했지만, 쓰는 이도 읽는 이도 많이들 비틀거렸고 무기력해졌다. 그래서 올해 한국 소설은 1만부 이상 판매한 신작이 손꼽을 정도였던 최악의 해로 기록되었다.

 

 

역시 함께 심란하고 아파하다 한국 소설을 찾은 것은 해가 다 갈 무렵에서였다. 다분히 일부러였다. 한국 소설에 소홀하지 않았나 싶은 반성과 미안함, 한국 소설에 보내는 수줍지만 진심인 애정이 반반 섞여 말이다. 1,2년 치 우리 장편소설 목록을 빠르게 훑었다. 이름은 들었지만 지나쳐왔던 배명훈 작가가 눈에 들어온 것도 그 때였다. 그는 장르문학의 정신으로 순문학을 유영하는 작가이다. 2000년대 중후반 이후 문단에서 독특한 소재와 발상으로 주목 받고 있는 젊은 작가들이 주로 단편에서만 탁월한 역량을 보인 채 쉽게 장편을 내지 못하거나 내도 크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그에 반해 그는 장편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고, 비슷한 수준의 작품성을 유지하며 매년 한두 작품씩 꾸준히 책을 내고 있다.

   

 

배명훈 작가는 올해 중편 소설과 장편 소설을 서로 다른 출판사에서 각각 하나씩 냈다. 전자는 조립 과정의 실수로 마음을 갖게 된 전투로봇의 성장담 <가마틀 스타일>이고 후자는 어이없는 이유로 일어난 전쟁 <맛집 폭격>이다. 둘 다 배명훈 작가 특유의 상상력과 개성이 돋보이는 소설로 오락성이 강하다. 현재도 체류 중인 뉴욕에서 집필해 일찌감치 탈고하였지만 4월의 참사를 의식해서인지 몇 달 묵힌 끝에 나왔다. 재밌는 것은 비슷한 시기에 완성된 두 소설에 대한 출판사의 태도 차인데 <가마틀 스타일>을 낸 은행나무와 달리 <맛집 폭격>을 낸 북하우스(문학동네 임프린트)는 세월호 소설과 연결해 독자들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는 이 책이 세월호 사건을 마치 예견이라도 한 듯한, 부조리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에스컬레이션 위원회는 그 일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중요한 것은 피해 상황을 조사하는 일 자체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피해의 경험이 다루어지는 방식이 더 중요했다. 결국 폭력의 경험이 다루어지는 방식이 더 중요했다. 결국 폭력의 경험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 원동력이 되고 말겠지만,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가 하는 문제는 무시해도 좋을 만큼 사소한 게 아니었다. -p.17

 

파괴된 건물들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지하층도 없는 단층짜리 건물 몇 채가 다였다. 다시 말해 적국 입장에서는 폭격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에 비해 감수해야 할 위험부담이 너무 큰 곳이었다. 아무리 무차별 공격을 하고 있는 것 같아도 학교나 병원이 있는 구역은 절대 공격하지 않는다는 게 양측의 암묵적인 합의였다. 그래서 병원이 있는 동네는 집값이 비쌌다. 낮 시간에는 학교도 그 기능을 했다. 미군 시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두 나라 다 미국과는 동맹 관계였으니까. -p.73

 

 

정확한 시간 제시는 없지만 지금과 가까운 현대의 어느 날, 같은 미국 동맹국인 지구 반대편의 어느 나라가 한국에 무차별 미사일 폭격을 가한다. 발사된 미사일 수가 600개가 넘어 간, 분명한 전시 상황인데도 겁에 질리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로 일상은 똑같이 돌아가고 있다. 국방부가 아니라 국제 대외 관계 속의 에스컬레이션 문제를 담당하는 에스컬레이션 위원회가 이 전쟁에 대응하고 있다. 무기체계 코디네이터인 민아리의 추천으로 전혀 경력은 없지만 업무 습득력이 빠른 민소가 에스컬레이션 위원회에 채용되고, 현장을 누비는 핵심 업무자로 파견된다. 그는 폭격지를 분석하며 전쟁의 원인을 알아내려 애쓰는데 네 건의 맛집 폭격이 무척 마음에 걸린다. 그의 추억이 서린 장소라, 우연이라 보기엔 너무 찝찝했기 때문이다.

 

 

리스트를 뽑기가 애매한 식당들을 누가 어떻게 알고 공격한단 말인가. (...) 생각보다 적긴 했지만 피해를 입은 식당은 수십 군데나 됐다. 보통 동네 식당이 대부분이라 맛집이라고 할 만한 곳은 전체 숫자에 비하면 턱없이 적었지만 어차피 그런 건 주관적인 판단이었다. - p.72

 

육백 개가 넘는 미사일이 쏟아진 지금, 사라진 장소나 사람을 살아 있는 사람이나 아직 파손되지 않은 공간보다 더 의미 있는 것으로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은 날이 갈수록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기념해야 할 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p.82

 

사망자가 스무 명에 가까운 현장이었다. 대피하지 않는 사람들, 정지되지 않는 일상이 낳은 피해자들이었다. 일상이 전쟁과 겹쳐 있는 삶은 살기가 어려웠다. 전쟁 전의 삶과 그다지 다를 게 없는 삶이기도 했다. 자기 몸이 아파도 병원 같은 데는 갈 수 없는 사람들은 전쟁 전에도 충분히 많았다. 정시에 출근을 하고 꾸역꾸역 자리를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병가라는 게 있기는 했지만 쓰러지기라도 하지 않으면 좀처럼 인정받지 못하는 휴가였다. 쉴 시간은커녕 투표를 할 시간조차 못 내는 사람도 많았다. 전쟁이 나고 공습경보가 울리면 뭔가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공습경보가 울려도 대피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눈치가 보여서였다. 미사일이 하필 거기에 떨어질 가능성은 아직 그렇게 높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그것은 퇴근 시간이 되어도 퇴근하지 못하는 이유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전쟁은 그렀게 일상과 겹쳐졌다. -p.86

 

그냥 맛집 하나가 사라졌다고 하기에는 그 식당에 얽혀 있는 기억들이 너무 많았다. -p.201

 

 

나태주의 시 <풀꽃>(자세히 보아야/예쁘다/오래 보아야/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같은 소설이었다. 처음 다 읽고 났을 땐 시큰둥하였다. 전형적인 아이디어는 좋은데 평이한 킬링타임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못된 년이 등장하는 치정극, 전혀 놀라울 것이 없었다. 그런데 서평을 쓰기 위해 기계적으로 여러 번 훑어 읽는 과정에서 별 반개를 더해 볼만한 흥미로운 구석들을 여럿 발견하였다. 계기는 이 책에 언급되는 일곱 개의 주소였다. 처음 읽을 때 소설 속에 언급되는 맛집들을 보면서 떠오르는 곳이 있기에, 몇 개 나오지 않는 주소를 한번 다 찾아봤는데 전부 실재하는 곳이었다. 그렇게 식어버렸던 관심과 기대가 조금 살아나니, 눈을 잡는 문장들도 몇 생겼다. 가볍다는 생각은 변함 없으나 정크는 아니었고 깨알 같은 깜찍한 면이 많은 소설이었다. 그러나 처음 읽을 때도 다시 읽을 때도 이상하게 본문보다 작가의 말에 더 눈이 갔다.

 

 

[폭격]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321-2 야무나(인도 음식점)

[폭격] 서울특별시 용산구 녹사평대로 224-1 미 마드레(스페인 음식점)

[폭격]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 190 케르반(터키 음식점)

[폭격]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대로 202 명화원(중국 음식점)

 

[꿈]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장백로 8 부숑(프랑스 음식점)

 

[서울에서 가장 출판사 많은 곳?]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로 12길 - 서교동

[도심의 상징적 건물?] 서울특별시 중구 한강대로 416 - 서울스퀘어

 

 

술술 읽히는 본문과 달리 두 번이나 작성한 작가의 말은 너무 난해하다. 대놓고 독자들이 다의로 해석하길 유도하고 본뜻을 빙빙 돌려놓았다. 출판사의 단정이 저자의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중요하고 주목할 점은 이 작품이 ‘사라지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래서 제목과 본문의 요리 묘사 비중에 비해 군침이 돌 새가 없다. 소설 자체가 어떤 대목에 집중하려 하면 폭탄처럼 뻥 터지고 바로 빈틈이 메워지는 ‘사라지는 것’이기도 하다. 영원하거나 소중할 것 같은 것들이 한순간에 없어지고 당연하다고 느끼는 사소한 것들이 불멸이다. 그렇다면 사라진 것과 남은 것 중 무엇이 더 서글픈 일일까. 또 <맛집 폭격>은 시종 실제 혹은 있을법한 일과 음모론이 뒤섞여 있고, 대놓고 PPL인 세세한 설정과 심한 비약과 여백이 공존한다. 꿈결 같고 정신 없으며 허무맹랑하지만 날카롭고 현실적인 구석이 있다. 그렇다고 진지하게 읽을 필요는 없는 책, 읽는 동안 잠시 정신 놓았다고 생각하면 마음 편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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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거인 철학하는 아이 3
마이클 포먼 글.그림, 민유리 옮김, 이상희 해설 / 이마주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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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거인] 친구와의 싸움으로 설명하는 반전 메시지

 

 

 

새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신간과 오프라인 서점을 살리기 위해 악성재고와 소비자 민심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어떤 특단의 강경 조치 없이는 출판 생태계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출판인들의 목소리 때문에 등장한 정책이긴 하지만 이번에도 맹점이 하나 있다. 출간 18개월이 지나 구간으로 전환된 도서는 재정가가 가능하다는 것. 이번 정책 시행으로 갈 곳을 잃은 악성재고가 모 온라인서점이 운영하는 중고서점으로 몰릴 것이고 자사 책을 쓰레기로 여기는 출판사나 재정가 매기기를 할 것이란 예상을 보기 좋게 뒤엎고 정책이 시행한 지 며칠도 안 되어 주요 온라인 서점에 바로 재정가 도서전이 등장하였다. 반값 이상 내린 재정가로 10% 할인 시 도서정가제 시행 전과 비슷한 수준의 폭탄 세일을 하는 출판사도 적지 않았다. 특히 아동 전집이 그렇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상위 50대 출판사 대부분은 아동서 및 학습서 전문 출판사이다. 그만큼 매년 엄청난 양의 아동서적이 쏟아지고 소비된다.

 

 

그러다보니 일반적인 독서로는 한 출판사의 전집 시리즈를 처음부터 꼬박꼬박 챙겨 읽기가 쉽지 않은데, 올해 조선일보 출판총괄계열사인 조선에듀케이션과 인연이 닿아 시리즈 하나를 처음부터 꼬박꼬박 읽어가고 있다.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 기꺼이 즐기고 있다. 어린이문학 브랜드 이마주에서 펴낸 철학하는 아이시리즈, 6<아버지의 마을 오라니>, 9<세상을 다시 그린다면>에 이어 12월에 나온 세 번째 책은 영국 작가 마이클 포먼이 쓰고 그린 그림책 <두 거인>이다. 이쯤 되니 슬슬 시리즈가 대충 틀이 잡힌 것 같다. ‘명사와 함께 있는 철학동화라고 해설자를 강조한다. 의문점은 판형인데, 왜 갑자기 <두 거인>에서 판형이 다소 작아졌는지 모르겠다. 첫 편인 <아버지의 마을 오라니>는 볼로냐 멘션작이지만 <세상을 다시 그린다면><두 거인>은 아무 타이틀이 없어서 어떻게 알고 판권 계약을 했을까 궁금했는데 이미 여러 번역본이 우리나라에 나온 작가들이었다.

 

 

<두 거인>의 주제는 반전이다. 그런데 재밌게도 책 내내 전쟁을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는다. 무척 사이좋은 단짝 둘이 조가비 하나에 서로 욕심을 내다가 의 상하고 싸우는데, 거인들이다보니 온 세상이 요동을 친다. 스스로 깨닫고 화해하자 세상은 다시 아름다워진다. , 어떤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지 않고 친구와의 싸움을 전쟁에 빗대 반전 메시지를 전하는 그림책이다. 아이디어에 수긍이 갔던 게 친구와의 싸움이 대부분의 인간이 타인에게 가하는 최초의 폭력행위이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들이 싸우는 걸 가만히 보고 있으면 대부분 흠씬 분노를 표출하다가 제 감정을 못 이기고 주저앉아 운다. 힘이 세고 약함이나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상관없이 모두 말이다. 우리 모두 그랬다. 경험이 쌓여 익숙해져 잊어버린 것이다. 폭력은 본능적으로 아프고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참아야 한다.

 

 

마이클 포먼은 1938년생으로 돌도 안 되어 세계 제2차 대전을 접했다. 너무 어릴 적 일이라도 전쟁이라 그런지 전쟁과 평화가 평생의 작품 주제가 되었다. 다른 주제의 그림책도 그리긴 했지만 반전에 대한 그림책들을 무척 많이 만들었다. <두 거인>은  마이클 포먼이 올 5월에 내놓은 따끈따끈한 신작. 두 거인이 양말을 바꿔 신을 만큼 몸집도 생김새도 비슷하다거나 그 바꿔 신은 양말 때문에 화해하고 그 후엔 일부러 양말을 서로 한 짝씩 나눠 늘 짝짝이 양말만 신는다는 설정이 참 좋았다. 그럼 그냥 우정 동화가 아니냐고 반전 메시지는 너무 약한 것은 아니냐고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 것 같았다. 마이클 포먼은 이 그림책을 통해 전쟁이 본능적으로 나쁜 것이라고 아이들을 일깨우는 데 초점을 맞춘 것 같다. <두 거인>은 시인 겸 그림책 작가인 이상희가 해설을 맡았다. 시리즈 제목처럼 철학하는 아이책들은 40쪽에서 50쪽 분량의 짧은 책들이지만 학습 목표도 명확히 정해져 있고 수업(공독)하기 좋은 책이라 참 마음에 든다. 앞으로는 또 무슨 책들이 나올지, 언젠가 우리 그림책도 볼 수 있을지 다음 라인업이 벌써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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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 한국 200만 부 돌파, 37개국에서 출간된 세계적 베스트셀러
마이클 샌델 지음, 김명철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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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피리 부는 공공철학 전도사

 


 

 

연말 한 신간 아닌 신간의 출간을 놓고 온 출판계가 떠들썩하였다. 아니, 갑작스러운 행보를 몇 건이나 해낸 한 출판사가 벌인 일 중 하나라고 하는 게 더 바른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사건에 대한 해석을 두고 갑론을박이 팽팽하였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것은 저자의 결정이었는데 책 제목 때문에 더 저자는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을 향해 열심히 자기변호 해야하였다. 문제의 책은 <정의란 무엇인가>이다. 지난 20여 년간 14000명 이상의 하버드대 학생들이 수강한 명강의 정의Justice’2009년 녹화영상과 책으로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하버드대는 PBS와 공동 기획해 12강 분량의 강의를 녹화해 아카데믹 어스 사이트와 유투브 하버드채널에서 전부 무료 공개하였다. FSG에서 출간해 유료로 판매한 책 역시 곧 전 세계적 반향을 일으켰고 37개국에 수출되었다.

 

 

발 빠르게 마이클 샌델과 교섭한 김영사는 20092만 달러에 판권을 사 2010년 말 번역본을 냈고 그 해 판매 1, 다음 해 판매 2위라는 기록적인 매출을 올렸다. 또 일본에서 12강 강의를 정리한 책도 번역하며 마이클 샌델과 정의 신드롬에 더욱 불을 붙였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우리나라의 판매고는 123만부 이상, 지급 인세만 147600만원에 달하며 현지보다 더 열광적인 반응에 저자를 비롯한 모두를 놀라게 하였다. 심지어 모 외제차 한국지사는 마이클 샌델의 방한 때마다 차량협찬을 하기도 하였다. 그 동안 방한했던 어떤 해외 석학도 받지 못한 대우였다. 문제는 판권 계약 기간이 불과 5년이었다는 것이다. 재계약 판권비가 무려 10배 이상 올랐는데 개정판도 아닌 일반 재계약본이 출판사가 바뀌는 이례적인 일이 발생하였다. 출간 초엔 재계약에 실패한 김영사로 언론의 편이 실렸다. 200만부 돌파라 거짓 표기, 번역 표절 의혹, 번역이 어렵다는 등의 수용할 수 없는 지적, 상도덕에 어긋난 판권 뺏기 등이 비난의 주 골자였다.

   

 

그러나 마이클 샌델이 직접 이번 사건에 대해 해명하고 김영사 역시 다른 출판사의 시리즈 신작 판권을 채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면이 전환되었고, 판단의 몫은 독자에게 일임되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두 출판사가 제시한 판권비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으며 김영사와 더 이상 거래를 하지 않기로 한 것은 자신의 뜻과 관계없이 무단으로 <어린이를 위한 정의란 무엇인가>를 출간한 것에 크게 실망을 해서란다. 그리고 보란 듯이 11월 말 이번 <정의란 무엇인가>를 낸 미래엔(구 대한교과서)에서 <10대들을 위한 정의란 무엇인가>를 냈다.(와이즈베리는 미래엔의 인문경제경영도서 브랜드, 아이세움은 미래엔의 아동도서 브랜드이다.) 실제로 <어린이를 위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마이클 샌델이 아닌 국내 작가의 이름으로 출시되었고, 마이클 센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의 폭발적 인기 속에서도 김영사나 미래엔 같은 거대 출판사 뿐 아니라 영세한 신생출판사를 비롯한 다양한 출판사와 다른 저서의 판권 계약을 했었다.

   

뒤늦게 <정의란 무엇인가>의 독자로 합류하여 와이즈베리의 새 번역본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점을 의식하며 읽지 않을 수 없었고, 서평에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완독한 독자의 입장에서 필자는 와이즈베리 쪽에 더 손을 들어주고 싶다. 일단 표지가 원서와 더 가깝다. 이전 번역이 어렵고 이번 번역이 쉬워 완독률을 높일 것이라는 와이즈베리의 주장은 마케팅적 과장인 감이 크지만, 굉장히 많은 부분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달라져서 번역의 정확도가 더욱 높아졌다. 제목부터 김영사 아이디어의 표절이란 것은 동의하기 힘들다. 원제의 제목은 ‘Justice정의지만 곧바로 제목 옆에 ‘What's the Right Thing to Do?’란 부제가 붙여 있다. 따라서 김영사 만의 오리지널 아이디어라기보다 어떤 출판사라도 원서의 제목과 부제를 고려했을 때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제목이 정의란 무엇인가이다. 본문 번역 표절에 있어서는 표절까지도 아니더라도 기존 번역본을 상당히 참조해서 표현을 바꾼 감은 있다. 실제로도 와이즈베리는 일찌감치 이창신 번역자에게 번역의 재사용에 대해 문의를 했었고, 새 번에 대해 이창신 번역자는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다만 책의 표지에도 새기고 주 마케팅 문구기도 한 한국 200만부 돌파는 확실한 잘못이긴 하다. 김영사 덕분에 판매부수를 한 자리대까지 다 알게 되었지만, 판매부수는 비공개라 200쇄 이상 나온 것을 보고 200만부로 추정했다는 와이즈베리의 입장도 사실이라면 경솔한 시도긴 하나 수긍의 여지도 조금 있다. 아무튼 수많은 식당들이 곧 맛집이라는 간판을 내거는 것처럼 새 <정의란 무엇인가> 역시 200만부를 목표로 열심히 달려야 할진데 상당한 인고의 세월이 걸릴 것이다. 스테디셀러화되는 대부분의 베스트셀러가 그렇지만 <정의란 무엇인가> 역시 100만부 판매는 11개월 안에 끝난 것, 그 후 판매가 얼마나 더디게 갔는지 짐작할 수 있다. 타 출판사가 이룬 과거의 영광을 홀랑 가져가긴 하였지만 상당한 리스크를 감수하고 가는 셈. 한편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는 내내 우리나라 국민은 평균 독서량이 별로 많지 않은데도 이렇게 교양 수준이 높은 걸까 싶었다. 판매량에 비해 완독률이 형편없는 책이라는 와이즈베리의 주장이 맞는 걸까. 이 책을 읽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것들을 묻고 싶다.

 

 

대충이라도 서양 철학사의 주요 흐름과 학자, 개념을 알고 있는가

정의론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많은가

사유를 통해 사회에 참여하고 변화시킬 의지가 강한가



마이클 샌델은 정의론 분야의 세계적 학자이자, 공동체주의 4대 이론가이다. 그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상아탑 밖으로 나와 철학에 대한 대중 참여를 적극 유도하는 피리 부는 사나이를 자처하였다. 그의 궁극적인 사상은 아직 이름이 없다. 이 책을 감수한 김선욱 교수는 자유적 공동체주의라고, 이 책의 해설을 단 서평가 로쟈는 공공철학이라고 편의상 명명한다. 요는 기존의 정의론들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정의론의 모색, 기존의 어떤 철학자보다 정의에 있어 대중의 기여를 기대한다. 그런데 이 책의 정체성에 있어 무시할 수 없는 점이 처음부터 대중을 대상으로 한 강의가 아니라 하버드대에서 하버드대 학생을 위해 이루어진 강의였다는 것이다. 지식수준이 상당하고 졸업 후 사회를 이끌어 갈 엘리트들을 놓고 논하는 정의론과 철저한 정책 수용자인 대중을 위한 정의론은 소재는 비슷할지언정 강의 수준과 방향이 전혀 다르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하버드 강의내용을 일반교양서로 풀긴 하였지만 완전한 대중 맞춤이라기보다는 우리(하버드)가 평소 공부하는 바를 여러분에게 보여주겠으니 알아들을 수 있으면 이해해봐라에 더 가까운 책이다. 그래서 어려운 게 당연하고 어느 수준 이상 인기 있는 것은 의아하다.


 

상이군인 훈장 논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에 담긴 도덕 논리를 보여 준다. 군인 훈장의 경우, 어떤 미덕을 가려야 하는가를 묻지 않고는 수여 대상자를 결정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성격과 희생이라는 경쟁적인 개념들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어쩌면 군인 훈장 논란은 명예와 미덕이라는 고대의 윤리관을 되짚어 보아야 하는 특수한 사례일지도 모른다. 오늘날 정의와 관련된 대부분의 논란은 번영의 열매나 고난의 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그리고 시민의 기본권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제에서는 복지와 자유를 앞세우는 사고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경제적 배분의 옳고 그름에 관한 주장은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도덕적 자격을 갖추었는지 따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문으로 흔히 다시 돌아가게 된다. -p.31

     

누구나 쾌락을 좋아하고 고통을 싫어한다. 공리주의 철학은 이를 깨닫고 이러한 사실을 도덕적·정치적 삶의 근간으로 삼는다. 공리의 극대화 원칙은 개인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입법적 차원에서도 적용된다. 어떤 법이나 정책을 집행할 것인지 결정할 때 정부는 공동체 전체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일은 무엇이든 해야 한다. 그렇다면 공동체란 무엇인가? 벤담에 따르면, 공동체란 개인들의 총합으로 이루어진 허구의 집단이다. 그러므로 시민과 입법자들은 이렇게 물어야 한다. “우리가 이 정책에서 얻는 이익을 모두 더하고 모든 비용을 빼면, 다른 정책을 펼 때보다 더 많은 행복을 얻게 되는가?” -p.63

 

자유지상주의자들 생각에는 안락사를 금지한 법이 부당하게 여겨질 것이다. 내 생명이 내 것이라면, 내게는 그것을 포기할 자유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누군가 내 죽음을 돕도록 내가 허락한다면, 국가는 이에 간섭할 권리가 없다. -p.117

 

정의에 관해 뜨겁게 논쟁할 때면 시장의 역할이 자주 거론되곤 한다. 자유시장은 공정할까? 돈으로 살 수 없는, 혹은 사면 안 되는 재화도 있을까? 있다면 어떤 재화이며 그것을 사고파는 것은 왜 문제가 될까? 자유 시장에 우호적인 시각은 보통 두 가지 주장에 근거한다. 하나는 자유를 중시하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복지를 중시하는 주장이다. -p.123

 

롤스는 사실들을 다룰 때, “서로의 운명을 공유하며, “공동의 이익에 도움이 되도록 각자에게 우연히 주어진 선천적·사회적 여건을 (우리를 위해) 이용하자고 제한한다. 롤스의 정의론이 궁극적으로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이론은 미국 정치 철학이 지금까지 내놓은, 좀 더 평등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임이 분명하다. - p.248

 

학생의 학업 성취 가능성을 예측하기 위해 표준화된 시험을 이용하려면 학생의 가정, 사회, 문화, 교육 배경을 고려해 점수를 해석해야 한다. SAT에서 똑같이 700점을 받았더라도, 사우스브롱크스에 있는 열악한 공립 학교를 다닌 학생이 맨해튼의 부유한 지역인 어퍼이스트사이드의 일류 사립 학교를 졸업한 학생보다 더 낫다고 볼 수 있다. - p.254

      

 

와이즈베리의 새 번역본이 대중들의 관심을 끈 이유 중 하나는 기존 번역본에서도 감수를 맡았던 김선욱 교수의 해제 외에 특별 부록으로 로쟈와 정수환(대입 논술 강사)의 해설까지 덧붙인 것이다. 정수환이 제시한 이 책을 읽기 위한 최소한의 수준은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교과서 정도의 내용을 숙지하고 있는 것. <정의한 무엇인가>는 전형적인 철학서이다. 큰 질문을 던진 후 여러 가지 예시를 준 다음 그것에 대해 자유롭게 사유가 오가도록 둔다. 행복하게 뒷짐 지고 있던 철학자는 적절할 때마다 등장해 논의를 갈무리한 후 자신의 주장을 말한다. 그래서 앞서 말한 수준의 지식은커녕 이 책이 철학서인 것도 모르고 집은 독자라 하더라도 아주 암담한 것은 아니다. 사례는 입시 정책과, 훈장, 안락사와 대리모 등 아주 친근한 시사 문제이고, 철학사적 순서와 상관없이 철학자들을 등판시키긴 하나 그들의 사상에 대해 기본적인 설명은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누군가 아무리 읽어도 결국 저자의 정의론이 무엇인지를 모르겠다는 독자가 있다면, 본문 마지막 장의 이 대목을 언급하고 싶다.

   

 

도덕적 이견에 좀 더 적극적으로 공적 참여를 한다면 상호 존중의 기반을 약화시키기는커녕 더욱 굳건하게 할 수 있다. 동료 시민이 공적 생활에서 드러내는 도덕적·종교적 신념을 피하기보다는 때로는 그것에 도전하고 경쟁하면서, 때로는 그것을 경청하고 배우면서, 더욱 직접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어려운 도덕 문제에 대해 공적으로 숙고한다고 해서 어느 상황에서든 합의를 끌어낼 수 있다거나, 심지어 타인의 도덕적·종교적 견해의 진가를 인정할 수 있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어떤 도덕적·종교적 교리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것을 덜 좋아하게 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해보기 전에는 어찌 될지 알 수 없다. 도덕적인 참여 정치는 회피하는 정치보다 시민에게 더 많은 이상을 불어넣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더 유망한 기반을 제공한다. -p.390

 

 

결국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총 10장에 걸쳐 근 400쪽이나 되는 긴 서술을 하며 저자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이것이다. 특히 마이클 샌델이 철학자로 연구에 매진하면서 넘고 싶었던 것은 롤스의 정의론이었다. 그래서 벤담과 칸트, 로크에 거쳐 서양 철학의 본격적 기원인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가 아이디어를 찾는다. 로쟈의 지적처럼 마이클 샌델이 가장 긍정하는 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라고 볼 수 있지만, 그에게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마이클 샌델은 결국 정의와 공동선을 뗄 수 없으며 철학의 정치성을 높이고 대중의 정치 참여를 높인 도덕적인 참여 정치가 사회를 좀 더 이상적이고 정의롭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책의 결론부만 읽어서는 안 된다. 철학은 답의 학문이 아니라 과정의 학문이며, 그래서 어떤 책보다 논리의 전 과정을 톺으면서 치열하게 읽어야 하는 것이 철학서이기 때문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마이클 샌델 정의론의 결론이라기보다는 중간 점검이자 앞으로의 발전을 위한 기폭제이다. 그의 바람대로 이 책으로 수많은 반박서와 지지서가 촉발되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더 깊게 이해하고 싶다면 미주에 언급된 문헌들을 검토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막상 특별부록과 해제는 아주 큰 도움은 되지 않는 편, 고생스럽더라도 정복하는 맛으로 한 장 두 장 곱씹으며 직접 저자의 정의론을 이해하도록 애쓰는 것을 더 추천한다. 시간은 더 걸리더라도 읽는 즐거움은 몇 배 더할 것이다. 새 번역본은 원래의 원서 서문이 빠지고 한국판 특별 서문으로 대체된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기존 번역본의 업그레이드이다. 점점 심해지는 번역서 판권비(선인세) 전쟁이 빚은 촌극이 책 자체보다 더 주목받고 있는 게 아쉽다. 요약하면 와이즈베리의 번역서가 약간의 도덕적 쟁점이 있긴 하나 독자들의 입장에선 기존 번역본보다 훨씬 만족스러울 것이다. 비상식과 비정의가 횡횡한 사회에서 스스로도 정의스럽지 못한 일상을 사는 요즘, 책으로 정의를 찾았던 이번 독서가 썩 마음이 편치 않았다. 샌델의 의사는 존중해야 하나, 정의를 논하는 책의 저자의 정의에 대해 여전히 석연치 않다. 그 어느 때 읽은 독자보다 더 정의를 고민하며 읽게 되었으니 행운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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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주식회사
사이먼 리치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천국 주식회사] 대책 없는 하느님과 의외의 최종병기

 

 

 

미친 듯이 일하고 미친 듯이 노는 12, 그래서 더 속이 헛헛하고 욕구불만을 풀 도피처가 절실한 것 같다. 어서 읽어 달라 아우성대는 책 사이에서 방금 배송 받, 출간된 지 일주일도 안 된 <천국 주식회사>부터 읽은 것도 잠시라도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싶다는 간절함 때문이었다. 미국 소설인데 올해 출간되었던 책도, 12월에 출간된 책도 아니었다. 다만 우리말 번역본이 올 연말에 열린책들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은근히 연말에 잘 어울리는 소설이었다. 이 책의 작가 사이먼 리치는 국내 독자들에게 아직 생소한 편이다. 2011년 살림에서 번역본을 내놓으며 처음 그를 소개하긴 하였지만 아직 수상 타이틀은 없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부터 꾸준히 글을 썼지만 장르가 제각각, 굳이 공통분모를 찾자면 유머가 주특기인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최연소 SNL 작가로 방송과 영화계에서 열심히 경력을 쌓으면서 꾸준히 소설도 내고 있어 주목할 만한 젊은 영미권 작가이긴 하다.

 

 

하느님은 기적 코딩을 직접 하지 않으세요. 그 작업은 철저하게 기술적이거든요. 그분은 오히려 아이디어맨에 더 가깝죠. 아시잖아요? 처음부터 그분은 구체적인 실무를 대신 해결해 줄 사람들을 고용했어요. 그분께서 회사 일상 업무에 참여하신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것 같네요. -p.27

 

어느 계약직 천사도 기도 수취부에서 기적부로 껑충 건너 올라간 적이 없었다. -p.34

 

크레이그는 천사가 아니어도 괜찮았다. 천국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수습이나 비서로 일하는 것에 만족하면서 퇴직할 때까지 대충대충 복무 기간을 채웠다. 하느님은 40년의 복무 기간을 요구하셨으나 어떤 직종을 선택하든 상관하지 않으셨다. 천국 주식회사의 근로자들이 사무실에서 보내는 시간은 대개 하루 5시간도 안 됐다. 테니스 코트, 보치 공놀이 경기장, 잉어 연못 등 캠퍼스에는 없는 게 없었다. 실내에 처박혀만 있는 건 미친 짓이었다. -p.46

 

인간들은 자신들이 이성적 존재로서, 자신들의 가치관과 신념 체계를 따라 산다고 믿고 있었다. 아침에 뭘 먹었는지, 잠을 잘 잤는지 못 잤는지, 그리고 최후의 만족스러운 오르가슴이 얼마나 오래전 일인지가 그것이었다. - p.242

 

 

그 흔한 역자후기나 주석 하나 없이 깔끔하게 본문만 있어 일단 읽어봐야 진가를 알 수 있다.  <천국 주식회사>의 원제는 ‘What in God's Name’, 우리말로 굳이 번역하면 도대체정도의 감탄구인데, 원제가 참 딱인 소설이다. 당황스러울 만큼 밑도 끝도 없는 발상의 발칙한 소설이다. 사이먼 리치의 상상에 따르면 하느님이 지구를 만든 이유는 오직 크세논을 채취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설계한 세상을 효율적으로 경영하기 위해 82개 층의 거대 기업조직을 세웠는데 그 중 74개 층이 크세논 사업에 몰두할 만큼 크세논에 대한 하느님의 꽂힘은 대단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흥미를 잃은 하느님은 대단히 무능하나 여러모로 자신과 닮은 구석이 많은 인간을 만들었는데 그들을 구경하는 일이 너무 재밌어서 하루 대부분을 인간에 할애하기 시작하였다. 점점 관련 업무는 증가하였고, 기존 인력으론 도저히 소화할 수 없어 죽은 인간들을 40년 계약 천사로 채용하였다. 그런데 천국의 인사도 고과는 물론 비정규직과 정규직, 명예퇴직과 정년퇴직이 나뉜다니 젠장.

 

 

하느님은 세상과 천국 기업조직을 만들었을 뿐 거의 모든 업무는 천사들의 몫. 쉴 새 없이 돌려보는 지구본과 서버(원하는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조회 가능)를 통해 기적을 행하거나 재해를 막기도 하고, 밀려드는 기도들을 중요도에 따라 분류해 하느님에게 결제를 올린다. 그런데 천사들도 몰랐다. 하느님은 단 한 번도 인간의 기도를 들어준 적 없으며, 편애도 심하고, 주기적으로 악플 검색 등을 하며 놀고 또 논다는 사실은. 어쩌면 이렇게 가만히 계시는 게 천사들과 인간들에게 더 좋았던 것일 수도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인간 사업에 싫증을 느낀 하느님은 천국에서 아시아 퓨전 식당을 운영하고 싶다며, 아예 지구 자체를 종말 시키고 천국 기업조직도 대폭 축소하자는데. 이런 일은 또 무척 빠르셔서 한 달 후에 실행하시겠단다.

 

 

인간이 죽어 천사가 되면 인간 시절의 기억을 모두 잃는다. 그저 업무 대상으로서 인간을 대하는 것이고, 천국 기업에서 일하지 못하더라도 천국에 지내는 데는 별 문제 없다. 그런데 모든 소설이 그러하듯 어떤 위기적 사건이 등장하면, 그를 해결하고자 나서는 오지랖 넓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천국 주식회사>도 두 유능한 천사 크레이그와 일라이자, 두 찐따 인간 샘과 로라가 대책 없는 하느님을 막아 지구를 구하고자 한다. 재밌는 것은 그 중 반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 채 이 긴박한 미션에 휘말린다는 것. 3부로 구성된 <천국 주식회사>, 제목은 <천국 주식회사>지만 천국의 시스템을 다루는 부분은 채 절반이 되지 않는다. 원제 그대로 갔으면 책을 읽기 전까진 무슨 내용인지 전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출판사가 어쩔 수 없이 번역하면서 제목을 바꾼 것 같긴 하지만, 그야 말로 ‘What in God's Name!’의 연속이다.

 

 

<천국 주식회사>는 독자의 독서량과 독서철학에 따라 평가가 엇갈릴 수 있는 소설이다. 뭐니 뭐니 해도 소설은 재밌어야 한다는 입장에선 합격점이다. 그러나 미학적으로 감탄할 부분이나 내용적인 여운은 기대할 수 없는 작가의 이력이나 집필 지향점을 떠올리면 이상한 게 아닌데 어쨌든 너무 가볍다. 평소에 책을 거의 안 읽는데 모처럼 뭐 재밌는 소설 없나 하고 찾는 독자라면 적극 추천하고 싶다. 그러나 연평균 100권 이상 꾸준히 책을 읽는 독자라면 이 소설을 읽으며 아주 뛰어나다고 느끼기 쉽지 않다. 코미디인지 로맨틱코미디인지 장르적 정체성을 확실히 했어야 한다는 아쉬움도 있다. 원제와 비중을 고려했을 땐 작가는 후자에 더 초점을 맞추지 않았을까 추측하는데. 그게 의도가 맞다면 전반부의 분량이 너무 많고, 번역판 제목은 천국조직에 초점을 맞춰서 그 의도를 잘 살리지 못한다.

 

 

오히려 이 책은 문학적인 가치보다 영상화할 만한 매력적인 소재로서 더 가치 있다. 기본 설정과 인물들의 특징이 기발하고 개성적이어서, 잊을만하면 사고치는 CEO(하느님)과 그를 뒤치다꺼리하느라 바쁜 직원(천사)들이 나오는 특이 오피스물 드라마로 몇 시즌이고 내놓을 수 있다. 조직의 특수성 때문에 그들의 실책과 성과에 따라 요동치는 인간 세계도 중간 중간 보여주고 얼마나 재밌겠는가. 그래서 <천국 주식회사>의 후반부가 어떻게 되는지는, 그게 책의 하이라이트니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조금 조언을 준다면 이 책은 지금부터 내년 한 해 동안이 가장 읽을 맛이 훌륭한 최적 독서기간이다. 빨리 읽으면 읽을수록 더 좋다. 특히 요즘을 추천했던 것은 종교와 상관없이 모두들 예수의 축복(휴일)을 누릴 때기도 하고 연말 스트레스 풀 오락거리로 딱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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