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허버트 단편 걸작선 1962-1985 - 생명의 씨앗 프랭크 허버트 단편 걸작선
프랭크 허버트 지음, 유혜인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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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의 작가 프랭크 허버트(Frank Herbert)의 단편소설들을 읽어본다. 현재 국내에 소개된 단편집은 1951-1961까지의 작품과 1962-1985 까지의 작품을 모아 두 권으로 소개되어 있다. 6년간의 자료조사와 집필 끝에, 1965년에 『듄』 이 완성되었으니 1951-1961 의 작품 들은 듄의 세계관이 어떤 모습으로 완성되어갔는지를 유추해볼 수 있을 테고, 1962-1985 의 작품은 『듄』 이후의 작가의 또 다른 세계관 확장을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란 개인적인 기대를 가지고 책을 펼쳤다. 리뷰는 『프랭크 허버트 단편 걸작선 1962-1985』 으로 남겨본다.




『프랭크 허버트 단편 걸작선 1962-1985』 에는 1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각 단편들은 <아날로그>, <갤럭시>, <월즈 오프 이프>, <더 매거진 오브 판타지 앤드 사이언스 픽션> 등의 잡지에 발표된 작품들이다. 각 단편의 속 표지에는 제목과 함께 발표된 해와 관련된 내용들이 짧게 설명되어 있다.


1969년작 <존재의 기계 > 는 팔로스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도시에 존재하는 어떤 기계가 갑자기 탑을 짓기 시작하며 시작한다. '팔로스 문화의 궁전' 이라는 탑이다. 광장 건너편의 건물에서 창문 너머로 휘트라는 남자가 탑이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이 도시에서 '존재의 기계' 라고 불리는 기계는 어떤 존재인가 궁금해질 수 밖에 없다. 탑이 올라가는 걸 보면서 휘트의 아내는 "이번에는 또 뭘 빼앗아 가려나" 라고 중얼거린다.

휘트와 휘트의 아내의 대화 속에서 팔로스의 인간들은 키는 2미터 정도이며 햇빛에 그을린 올리브색의 피부색, 머리카락과 눈동자는 검은색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존재의 기계가 인간들을 통제하고 있는 세상이라는 것도 곧 알게 된다. 존재의 기계는 인간들을 통제하기 위해 인간들에게서 여러가지를 차근차근 빼앗아왔다.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는 장면들이기도 하다. 『듄의 세계』 에 소개된 바에 따르면 프랭크 허버트는 "SF의 가장 큰 매력은 인간됨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점이다" 라고 했다고 한다.

독자들은 존재의 기계의 생각도 들을 수 있다. 기계는 팔로스 인간들의 꿈을 분석하고 생각을 듣고 그에 따라 계획을 수정하는 존재다.


"기계는 꿈을 분석할 때 성욕, 초자연적 에너지, 죽음에 대한 인간의 경험 같은 개념들을 활용했다. 기계가 비교한 바에 따르면 죽음은 성적 에너지의 소멸을 의미했다. 과학적인 발상은 아니었다. 추론된 에너지의 파괴를 상정하고 .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확실한 법칙들을 무시하기 때문이었다. 다른 비교를 하려면 영혼과 신(들)에 대한 믿음이 필요했다. 일시적인 성욕에 대한 가설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여기에 옳지 않은 사고 시스템이 있다. 존재의 기계는 기록했다.

-p386 "


오래된 고전을 읽다보면 그동안의 여러 창작물들에서 비슷한 부분들을 발견하게 된다. 후대의 창작물들은 분명 이전의 고전들에게서 영향을 받았을테니 말이다. 나는 존재의 기계를 보며 영화 <매트릭스>의 중앙 컴퓨터를 제일 먼저 떠올렸다. 가상세계에서 살고 있지 않을 뿐 팔로스의 인간들은 기계의 지배를 받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은 낯설지 않은 설정이지만 60년대에는 발상 자체부터 더욱 재미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휘트는 존재의 기계와 대화를 시도한다. 존재의 기계는 휘트가 다가오는 것을 기록하고 입구를 만들어 준다. 수천 세기 만에 처음으로 기계의 보호 구역안에 들어온 인간이었다. 기계와 휘트가 나누는 대화를 읽다가 문득 나는 내가 chatGPT 와 나누었던 실없던 대화를 떠올리기도 했다. 순간 살짝 소름이 돋았다. 요즘 AI 의 발전 속도가 무서울 정도다. 기계 밖으로 나온 휘트는 무엇인가 변해있는 존재가 되어 있다. "저게 뭔지 알아냈어. 낡은 관계를 깨뜨리는 장치야. 감각을 봉투처럼 감싸는 기계. 우리의 감각을 공격하고 우리를 재구성하기 위해 만들어졌지. <중략> 우리 인생을 편집하는 거야" 라고 휘트는 말한다. 독자들은 휘트의 말 속에서 인간이 왜 기계의 지배를 받게 되었는지에 대한 단서를 얻게 된다.


"저 기계를 만든 자들은 우리 인간의 삶이 완벽해지기를 바랐어. 하지만 기계에 결함이 있었지. 기계는 이걸 깨닫고 스스로 바로잡으려는 중이고. <중략>

기계를 만들면서 상상력으로 가는 입구를 빼먹은 거야. 기계는 그 길을 지켜야 했지만 말이야. 제작자들은 기호밖에 주지 않았어. 기계는 우리 같은 의식을 가져 본 적이 없었어..<중략>

제작자들은 기계만의 내적인 삶을 주려고 했어. 하지만 실제로는 고정된 패턴을 줘 버린 거야. 논리도, 물론.

- p400, p402"


이 팔로스란 행성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 ( 책 속에서 확인해보시길 ) 영어 제목으로 'The Mind Bomb' 이 표시되어 있지만 워낙 존재의 기계의 존재감이 크다보니 'The Being Machine' 으로 더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프랭크 허버트 단편 걸작선 1962-1985』 의 표제로 선택되어 있는 작품 <생명의 씨앗> 은 1970년 04월 <아날로그> 지에 수록된 작품으로 지구에서 새로운 식민지 행성으로 이주한 이들의 이야기다. 선별된 인간, 가축, 꼭 필요한 기본 물품을 가득 채운 우주선은 머나먼 곳에 인간을 '심기 위해' 지구를 떠났다. 착륙하고 난 후 어째서인지 기본 물품들은 동이 났고, 착륙하고 3년이 지난 지금 멸종 위기 속에 던져졌다. 우주선은 연료가 없어 동작하지 않았으며, 생존은 보장되지 않았고, 화학 작용, 중력, 하루 주기의 미묘한 차이에서 비롯된 행성의 질병으로 조금씩 앓고 있는 사람들.

지구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은 지구의 기준으로 적응하려 애쓰지만, 행성에 뿌리를 내린 씨앗은 이곳의 영향을 가장 심하게 받아 거의 죽어가던 씨앗이었다. 과학자들은 인정하지 않을 문제였다. 그들은 이곳을 또 다른 지구로 만들려는 중이었기에. "하지만 이 행성은 지구가 아니었고, 지구가 될 수도 없었다."(p429)

이 곳에 이주한 지구인들은 오래 살지 못하고,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지구의 기준으로 병이 들 것이고, 이주를 계획한 사람들의 희망과 반대되는 모습을 변화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과학자들의 실패를 이야기했다.'(p430) 문득 이 문장에서 『파운데이션』 의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가 "SF 소설에서 과학을 제거하려는 경향이 점점 커지고 있다." 라면서 프랭크 허버트를 꼭 집어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를 떠올리게 했다는 일화도 떠오른다. 『듄의 세계』 에 따르면 1974년 에세이 『SF 소설과 위기의 세계』 를 통해 허버트는 『파운데이션』 처럼 엄격하게 통제된 우주의 "권력자들은 <중략> 사회, 종, 개인에 관한 단일한 모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라고 비판했다고 한다.


마지막에 실린 1985년작 <듄으로 가는 길 The Road to Dune> 은 또 다른 단편소설집인 『아이(Eye)』 에 수록되었던 작품이다. 『아이(Eye)』 는 13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었고, 대부분의 단편은 책이나 잡지 형태로 발표된 작품이었고 <듄으로 가는 길 The Road to Dune> 만 새롭게 발표된 작품이었다.

소설 『Dune』 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는 이 짧은 단편은 패디샤(Padishah) 황제 샤담 4세(Shaddam IV)의 몰락 이후 아라키스 행성으로 여행하는 순례자들을 위한 가이드북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폴의 개인용 오니솝터(ornithopter) 나, 이룰란 공주, 던컨 아이다호 등의 초상화가 Jim Burns 의 삽화로 그려져 있으며, 이 캐릭터들에 대한 설명이 뒤따른다. 『Dune』 팬들을 위한 깜짝선물인 셈.

『프랭크 허버트 단편 걸작선 1962-1985』 에 수록된 프랭크 허버트의 단편소설들을 읽으며 『Dune』 의 흔적을 발견해보는 것도 즐겁고, 그의 작품세계를 만나보는 것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가 후대에 준 영향을 유추해보는 것 또한 이번 독서의 재미. SF소설 팬들이라면 이 고전작품들을 놓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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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의 역사가 - 주경철의 역사 산책
주경철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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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겉으로만 달라 보일 뿐이지 역사와 문학은 본래 같은 부류다' 라며 책의 이야기를 연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흔적들을 천착하여 인간과 사회의 큰 흐름을 짚어보는 동시에 그 내밀한 속사정을 읽으려 하는 점에서 서로 상통한다는 것. '히스토리 역시 스토리의 일종이라는 주장'에 고개를 끄덕여본다. 덕분에 『일요일의 역사가』 는 이론 중심의 역사가 아닌 이야기 중심의 역사 이야기로 독자들을 만난다.




1년여 간 월간 「현대문학」에 절찬 연재했던 글들을 엮어낸 『일요일의 역사가』 는 총 15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세번째 이야기인 <이븐 바투타의 주유천하>편을 보자 낯익은 이름이 반가웠다. 이슬람 문명을 잘 모름에도 나는 어찌 '이븐 바투타'를 알고 있는가. 실제 역사적 인물과 사건들이 마구 섞여있는 게임 <대항해시대> 때문이었다.



그는 모로코 왕국의 이슬람 율법학자 가문에서 1304년에 태어난 학자이자 판관이자 여행자이다. 그는 집안의 전통에 따라 독실한 이슬람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이슬람법을 공부했다. 공부를 마친 그는 모든 무슬림이 일생에 한 번은 의무적으로 꼭 해야 하는 메카 순례 여행을 떠났다. 원래 고향을 떠날 때에는 메카만 방문하고 올 예정이었지만 30년 동안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3대륙에 걸쳐 10만 킬로미터를 돌아다녔다. 그는 그 경험을 모아 『이븐 바투타 여행기』 를 썼다. 찾아보니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오도릭의 『동방기행』과 함께 세계 4대 여행기의 하나로 손꼽힌다고 한다. ( 여태 몰랐다.. )

그의 여행이 가능했던 이유로 저자는 '이슬람의 집'이라 불리는 초문명권을 설명한다. 아라비아,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북아프리카 등 여러 문명이 공존하는 세계다. 이슬람은 개종을 적극 권하되 공존 혹은 종합의 정책을 폄으로써, 여러 종교 및 언어 공동체들을 수용하여 하나의 세계-문명으로 통합하는 성향을 띠었다. (p75) 결과적으로 이슬람권의 확대는 최초의 지구적 문명(Global civilization)으로 발전했다는 것.


"7-17세기의 1,000년 동안 이슬람권을 중심으로 구세계의 모든 문명들(유럽, 이란, 산스크리트, 말레이-자바, 중국)이 서로 접촉하게 되었다. 이슬람권 주변의 상이한 문명 요소들이 들어와서 아랍 문명과 섞였다. 특히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 문명의 특징적인 요소들이 섞여 풍요로운 발전을 이루었다. "


마녀사냥의 근간이 되었던 악의 고전 『말레우스 말레피카룸』 에 대한 이야기나, '고양이 대학살 사건' 의 부르주아에 대한 반감이란 분석에서 확장되어 서술되는 여성 서사와 '마녀를 몰아낼 게 아니라 스스로 마녀가 되는 것' 에 관한 여성학자의 해석도 흥미롭게 읽었다. 프랑스의 68 혁명에 대한 부분도 새롭게 알아갔다. 노동운동, 환경운동, 여성해방운동, 성해방 등 여러 요소들이 뒤섞인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68운동은 단순한 '학생 시위'라는 식으로만 규정할 수 없다는 것과 진정성 있는 혁명 프로그램이 없는 대신 말의 성찬이 펼쳐졌던 이 운동은 과거와 같은 사회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깨달음을 준 사건이었다고 한다. '당장 대안이 없었기에 무력했지만, 어쩌면 뚜렷한 대안 없이 모호하면서도 강렬한 꿈이었기에 역설적으로 미래에 더 풍성한 결실을 맺었는지 모른다.'(p378)


각 편의 주제들이 일관된 주제로 흐르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이 책이 인류 역사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하기 보다는 '인간과 사회의 다양한 스펙트럼의 일부를 보이는 짧은 단면들 같은 느낌' 이라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며 지어내는 경험 세계를 여러 각도에서 본다는 의미로 이야기들을 엮었다고 했다. 저자가 공들어 엮은 이야기들 속에서 나 또한 머나먼 과거로부터 이어진 어떤 존재의 사슬을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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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 있는 집 비룡소의 그림동화 328
마틴 워델 지음, 안젤라 배럿 그림, 이상희 옮김 / 비룡소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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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명작동화라고도 불리는 세계의 옛 이야기를 담아낸 책들의 일러스트 작가 중에서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탁월하게 그려내는 작가들이 있다. 단행본 뿐만 아니라 전집에 흩어져있는 그림책까지 수집하게 하는 작가들이라고 할까. 이 그림책 『숨어있는 집』 의 그림책 작가 안젤라 배럿(Angela Barrett) 또한 그런 작가 중의 한 명이다.


절판되었던 고전 그림책 『숨어있는 집』 이 비룡소에서 새롭게 개정되어 나왔다. 어찌나 반가운지!




오솔길 아래 작은 집에 브루노라는 할아버지가 살고 있다. 그는 '너무 쓸쓸해' 친구 삼을 나무 인형을 만든다. 뜨개질하는 인형 메이지, 삽을 든 인형 랠프, 가방을 멘 인형 위너커, 이렇게 셋을 만든다. 가라앉은 녹색과 회색, 갈색톤의 일러스트는 할아버지의 표정과 함께 쓸쓸함을 더욱 강조해주는 듯 하다. 오래된 사진 같은 장면.




세 인형은 창턱에 앉아 할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길쭉한 머리, 둥그스름한 어깨의 인형들은 내게 모딜리아니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기형적으로 긴 목과 길게 과장된 코, 둥글게 처진 어깨, 눈동자 없이 텅 빈 아몬드 형 눈. 살짝 기울어진 머리를 특징으로 하는 모딜리아니의 그림들 말이다. 모딜리아니의 그림들에서 가슴을 저리게 하는 먹먹한 아름다움을 느끼곤 했는데, 인형들의 뒷 모습 또한 그렇게 느껴진다. 그러나 작가는 이 장면에 '세 인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행복했을 거예요.' 라고 텍스트로 적어두었다.

어느 날, 브루노 할아버지가 떠나고 모든 것이 변해갔다. 작은 집 창문으로는 아이비 덩굴이 뻗어나가고, 부엌에는 생기없는 나무 한 그루가 자라난다. 세 인형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본다. 여전히 창문에 앉아있는 채로 말이다. 집은 그 자리에 있었지만 아무도 볼 수 없는 집이 되어갔다. 그래서 '숨어 있는 집'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한 남자가 이 집을 발견하고 아내와 딸을 데려온다. 가족들은 집을 치우고 걷어내고 쓸고 닦는다. 마침내 모든 것이 근사해졌다. 가족의 어린 딸은 세 인형을 발견하고 새롭게 색을 칠한다. 낡은 인형옷의 풀어진 옷, 헤어진 가방, 나무인형의 얼룩들에서 시간의 흐름, 잊혀졌던 세월 동안의 외로움을 읽어본다. 안젤라 배럿의 그림에는 다양한 디테일들이 살아있고, 숨어있는 상징들이 많아서 그림을 더욱 오래 살펴보게 된다.

"함께하는 우리 모두가 가족이란다."


이제 인형들의 얼굴은 웃는 얼굴이 되어 있다. 독자들은 인형의 뒷 모습이나 옆 모습이 아닌 환한 얼굴의 정면을 마주한다. 또한 초반의 톤 다운된, 다소 침울한 톤의 색은 어느새 밝은 톤으로 바뀌어 있다. "이제 함께 살아갈 완벽한 가족이 생겼으니, 아마도 셋은 다시 행복해졌을 거예요." 라는 마지막 문장에 그림책을 읽는 이들 또한 함께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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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처럼 사라진 남자 마르틴 베크 시리즈 2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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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의 주말 식사시간 중 무심코 보고 있던 경찰 드라마에서 등장인물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한다. 단서를 잡기 위한 수사과정에서의 지루함을 못 견디는 후배경찰이 "어우~ 수사가 완전 단순노동이네" 라는 불평에 선배경찰이 던지는 조언이었다. "수사는 머리로 하는게 아니라 몸으로 하는 거야." ( 정확한 대사는 아닌 듯 한데.. 이런 맥락이었다. )

각종 디지털 장비가 발달하고, 정보검색이 쉬워진 지금의 시대에도 이렇게 부지런히 '몸으로' 뛰어야 하는데, 과거의 경찰들은 얼마나 더 움직여야 했을까. 문득 지금 읽고 있는 소설 『연기처럼 사라진 남자』속 주인공 마르틴 베크가 떠올랐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두 번째 권인 『연기처럼 사라진 남자』 를 펼치면 마르틴 베크가 한 '우발적 폭행 사건' 의 마무리에 팀원들에게 맡기고 한 달동안의 휴가를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스톡홀름군도 한가운데의 작은 섬에 있는 별장에서 보내는 오랫만의 휴가다. 그리고 하루 만에 복귀요청 전화를 받는다. "나머지 휴가라고요? 겨우 하루를 썼을 뿐입니다."

이번 사건은 헝가리에서 실종된 알프 맛손이라는 기자를 찾아야 하는 일이다. 소설 속 시대적 배경은 '철의 장막'이 건재하던 냉전 시대였기에 소련의 위성국가로 그 영향력 아래에 있던 국가였다. 주인공의 국가인 스웨덴은 소련을 필두로 한 바르샤바조약기구(WTO)나 미국을 주축으로 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채 중립을 취하고 있었던 시기다. 실종된 기자는 헝가리가 포함된 동유럽 문제를 주로 다루던 기자였던터라 정치적 문제의 개입을 우려한 외무부가 마르틴 베크에게 비밀 임무를 맡기게 된다. 비밀 임무인터라 드러나는 공식적인 지원은 없는 임무다.

'이 사건에는 뭔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점이 있었다. 분명히 뭔가 정상적이지 않은 점이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그도 알 수 없었다' (p100). 헝가리에서 고군분투하며 알프 맛손의 행적을 쫓아보지만, 기자의 자취를 따라갈수록 수사는 더욱 오리무중에 빠질 뿐이다.


어떤 이유에선지 알프 맛손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주어진 자료가 터무니없이 부실했지만 그것을 기반으로 수사를 진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여권 검사관 한 명, 택시 운전사 두 명, 호텔 접수원 두 명.

만약에 뭔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맛손에게 벌어졌다면, 가령 그가 습격을 당했거나, 납치를 당했거나, 사고로 죽었거나, 정신이 나갔다면, 그들의 증언은 쓸모없다. 반면에 맛손이 자의로 행방을 감춘 것이라면, 그 사람들은 맛손의 겉모습이나 행동에서 수사의 단서가 될 만한 중요한 무언가를,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목격했을 가능성이 있다.

- p237

소설은 기본적으로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서술되지만, 취조 과정에서는 희곡처럼 취조대상자와의 대화만을 기록해놓기도 하고, 긴 보고서나 메모를 그대로 기록해두어 독자들이 함께 추리를 하게 이끈다. 마르틴 베커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베커가 관찰하는 주변 사물에 대한 서술에서 힌트를 찾아가며 추리를 해보게 되는 것이다. 사건이 해결된 뒤, 나는 앞 페이지들을 다시 펼쳐 이야기 속에 숨겨있던 각종 암시들을 다시 찾아 맞춰보았다. 이 책 『연기처럼 사라진 남자』의 온라인 책 소개에서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스타일과 비교해놓기도 한다.


번외로, 경찰, 형사가 등장하는 각종 창작물들 속에서 등장하는 전형적인 장면 중의 한 가지도 언급해본다. 그들의 가정생활은 괜찮을 지에 대한 부분이랄까. 하루만에 휴가지에서 일을 하러 떠난 마르틴 베커에게 그의 아내는 "당신 말고 다른 경찰들이 있을 거 아냐 어째서 만날 당신이 모든 임무를 맡아야 해?" 라고 묻는다. 후반부에 함께 수사하게 된 콜베리는 육 개월된 신혼인데, "대체 렌나르트는 어디있죠?"(p309) 라고 그를 찾는 전화가 온다. 콜베리는 아내의 전화를 받고는 "아이를 가져야겠어. 불쌍한 것. 혼자 집에 앉아서 계속 나만 기다리고 있으니." 라고 말한다. 헝가리의 경찰들에게서도 비슷한 장면을 떠올리는 마르틴 베커.


마르틴 베크는 지극히 경찰다운 그들의 대화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뭔가 그들의 하루를 망친 일이 있었을 것이다. 틀림없이 아내들이 전화를 걸어서, 그들을 위해 차린 음식이 썩어갈 지경이며 그들 외에 다른 경찰은 없느냐고 따졌을 것이다. 

-p258

각 권마다 벌어지는 사건에 대한 추리 외에도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변화를 지켜보는 또한 시리즈물의 재미다. 또한 시리즈의 10권을 모으면 책등의 MARTIN BECK 철자가 완성된다. 이 책으로 이제 'MA'까지 완성했다. 이런 것들이 시리즈 책을 읽는 또 다른 소소한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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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푸, 단순한 행복 - 당신을 미소 짓게 할 일상의 순간들 곰돌이 푸 시리즈
캐서린 햅카 지음, 마이크 월 그림, 우혜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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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곰을 생각해보면 나는 '곰돌이 푸(Winnie the Pooh)'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의심할 줄 모르는 순진무구함과 그래서 더 엉뚱한 일들을 벌이는 유쾌함, 친구의 좋은 점만을 바라보는 다정한 모습등을 떠올린다. 우리에게 익숙한 곰돌이 푸의 캐릭터는 원작의 일러스트 보다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속 모습이다.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배경, 컨셉 아트를 맡고, 디즈니의 소속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했던 마이클 월의 일러스트로 만나보는 『곰돌이 푸, 단순한 행복』 속 주인공은 친숙하면서도 개성있는 모습으로 우리를 이야기속으로 초대한다.



『곰돌이 푸, 단순한 행복』은 곰돌이 푸와 동물 친구들이 100에이커의 숲에서 행운의 돌멩이를 찾으러 떠나는 여정을 담고 있다. 꿀을 좋아하는 명랑한 곰돌이 푸가 사려깊은 인간 친구 크리스토퍼 로빈에게 꿀을 얻으러 갔다가 크리스토퍼 로빈의 행운의 돌멩이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되어 찾아주려고 한 것이다. 소심하지만 착한 마음씨를 가진 돼지 피글렛에게 도움을 청하고, 낙천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호랑이 티거가 함께 하며, 상식적이고 현실적인 토끼 래빗을 찾아간다.


글 작가 캐서린 햅카는 검정 글씨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갈색 글씨로 해당 장면에서 뽑아낸 삶에 관한 성찰을 기록해두었다. 천진난만한 등장인물들의 대화는 사랑스럽고, 삶에 관한 문장은 저절로 미소를 자아낸다.


밝고 명랑한 이 친구들이 행운의 돌멩이를 찾으며 보물찾기라도 하는 냥 노는 동안 비를 만나고, 수다스럽고 아는 것이 많은(척 하는) 올빼미 아울이 비가 그칠 동안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고, 비가 그친 후 다시 찾으러 나선 길에 자상한 캥거루 엄마 캥거와 모험심이 강한 아들 루를 만난다. 그리고 의기소침한 모습이지만 도움의 손길을 주저하지 않는 당나귀(봉제인형) 이요르에게도 함께 하자고 권유한다.


하루동안의 엄청난 모험을 끝낸 후 다음 날 아침 모두 다 크리스토퍼 로빈의 집을 찾는다. "정말 엄청난 모험이다! 내 행운의 돌멩이를 찾기 위해 밤낮으로 도와주다니, 너희 같은 친구를 둔 나야말로 진정한 행운아인걸!" 이라고 감동하는 크리스토퍼 로빈.


솔직히 우리가 하고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조차 없었고 힘든 일도 있었어.

하지만 중요한

우리가 모험을 함께 했다는 거야!


『곰돌이 푸, 단순한 행복』 는 친구의 좋은 점만을 바라보는 다정한 시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용기,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천진함, 함께 하는 즐거움 등을 담고, 읽는 이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하는 따스함이 가득하다. 무엇인가 엉성하고 단순한 듯한 하루의 모험이 반짝반짝 빛나는 이유는 서로서로 위하는 다정한 친구들이 함께 했기 때문일터다. 또한 일상의 소소한 행복들을 놓치지 않고, 순간순간을 만끽하는 숲속 작은 친구들의 모습은 현실의 무거운 짐들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게 이끈다.


원더걸스의 멤버, 그리고 방송인이자 통번역가로 활동 중인 우혜림의 번역은 100에이커 숲을 모험하는 곰돌이 푸와 친구들의 하루를 더욱 사랑스럽게 표현한다. '수정같이 맑은 곰돌이 푸와 친구들의 마음이 가장 빛날 수 있도록 세공자가 되어 단어 하나하나 세심하게 다듬어 봤다' 는 역자의 노력은, 읽는 동안 입가에 자연스레 떠오르는 독자들의 미소로 화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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