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처럼 사라진 남자 마르틴 베크 시리즈 2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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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의 주말 식사시간 중 무심코 보고 있던 경찰 드라마에서 등장인물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한다. 단서를 잡기 위한 수사과정에서의 지루함을 못 견디는 후배경찰이 "어우~ 수사가 완전 단순노동이네" 라는 불평에 선배경찰이 던지는 조언이었다. "수사는 머리로 하는게 아니라 몸으로 하는 거야." ( 정확한 대사는 아닌 듯 한데.. 이런 맥락이었다. )

각종 디지털 장비가 발달하고, 정보검색이 쉬워진 지금의 시대에도 이렇게 부지런히 '몸으로' 뛰어야 하는데, 과거의 경찰들은 얼마나 더 움직여야 했을까. 문득 지금 읽고 있는 소설 『연기처럼 사라진 남자』속 주인공 마르틴 베크가 떠올랐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두 번째 권인 『연기처럼 사라진 남자』 를 펼치면 마르틴 베크가 한 '우발적 폭행 사건' 의 마무리에 팀원들에게 맡기고 한 달동안의 휴가를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스톡홀름군도 한가운데의 작은 섬에 있는 별장에서 보내는 오랫만의 휴가다. 그리고 하루 만에 복귀요청 전화를 받는다. "나머지 휴가라고요? 겨우 하루를 썼을 뿐입니다."

이번 사건은 헝가리에서 실종된 알프 맛손이라는 기자를 찾아야 하는 일이다. 소설 속 시대적 배경은 '철의 장막'이 건재하던 냉전 시대였기에 소련의 위성국가로 그 영향력 아래에 있던 국가였다. 주인공의 국가인 스웨덴은 소련을 필두로 한 바르샤바조약기구(WTO)나 미국을 주축으로 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채 중립을 취하고 있었던 시기다. 실종된 기자는 헝가리가 포함된 동유럽 문제를 주로 다루던 기자였던터라 정치적 문제의 개입을 우려한 외무부가 마르틴 베크에게 비밀 임무를 맡기게 된다. 비밀 임무인터라 드러나는 공식적인 지원은 없는 임무다.

'이 사건에는 뭔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점이 있었다. 분명히 뭔가 정상적이지 않은 점이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그도 알 수 없었다' (p100). 헝가리에서 고군분투하며 알프 맛손의 행적을 쫓아보지만, 기자의 자취를 따라갈수록 수사는 더욱 오리무중에 빠질 뿐이다.


어떤 이유에선지 알프 맛손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주어진 자료가 터무니없이 부실했지만 그것을 기반으로 수사를 진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여권 검사관 한 명, 택시 운전사 두 명, 호텔 접수원 두 명.

만약에 뭔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맛손에게 벌어졌다면, 가령 그가 습격을 당했거나, 납치를 당했거나, 사고로 죽었거나, 정신이 나갔다면, 그들의 증언은 쓸모없다. 반면에 맛손이 자의로 행방을 감춘 것이라면, 그 사람들은 맛손의 겉모습이나 행동에서 수사의 단서가 될 만한 중요한 무언가를,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목격했을 가능성이 있다.

- p237

소설은 기본적으로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서술되지만, 취조 과정에서는 희곡처럼 취조대상자와의 대화만을 기록해놓기도 하고, 긴 보고서나 메모를 그대로 기록해두어 독자들이 함께 추리를 하게 이끈다. 마르틴 베커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베커가 관찰하는 주변 사물에 대한 서술에서 힌트를 찾아가며 추리를 해보게 되는 것이다. 사건이 해결된 뒤, 나는 앞 페이지들을 다시 펼쳐 이야기 속에 숨겨있던 각종 암시들을 다시 찾아 맞춰보았다. 이 책 『연기처럼 사라진 남자』의 온라인 책 소개에서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스타일과 비교해놓기도 한다.


번외로, 경찰, 형사가 등장하는 각종 창작물들 속에서 등장하는 전형적인 장면 중의 한 가지도 언급해본다. 그들의 가정생활은 괜찮을 지에 대한 부분이랄까. 하루만에 휴가지에서 일을 하러 떠난 마르틴 베커에게 그의 아내는 "당신 말고 다른 경찰들이 있을 거 아냐 어째서 만날 당신이 모든 임무를 맡아야 해?" 라고 묻는다. 후반부에 함께 수사하게 된 콜베리는 육 개월된 신혼인데, "대체 렌나르트는 어디있죠?"(p309) 라고 그를 찾는 전화가 온다. 콜베리는 아내의 전화를 받고는 "아이를 가져야겠어. 불쌍한 것. 혼자 집에 앉아서 계속 나만 기다리고 있으니." 라고 말한다. 헝가리의 경찰들에게서도 비슷한 장면을 떠올리는 마르틴 베커.


마르틴 베크는 지극히 경찰다운 그들의 대화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뭔가 그들의 하루를 망친 일이 있었을 것이다. 틀림없이 아내들이 전화를 걸어서, 그들을 위해 차린 음식이 썩어갈 지경이며 그들 외에 다른 경찰은 없느냐고 따졌을 것이다. 

-p258

각 권마다 벌어지는 사건에 대한 추리 외에도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변화를 지켜보는 또한 시리즈물의 재미다. 또한 시리즈의 10권을 모으면 책등의 MARTIN BECK 철자가 완성된다. 이 책으로 이제 'MA'까지 완성했다. 이런 것들이 시리즈 책을 읽는 또 다른 소소한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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