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으려나 서점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고향옥 옮김 / 온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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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책을 갖고 있습니다!
   사라졌던 작은 서점들이 동네마다 하나 둘씩 생겨나고 있어서 '책방투어' 다니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비슷해 보이는 대형 서점들과 달리 저마다의 특색을 가지고 있는 작은 서점들은 아기자기한 멋까지 있어서 사진 찍기에도 좋습니다. 저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 구석구석 구경한 다음에는 책 한 권, 혹은 그 서점만의 특색있는 굿즈를 사서 서점 문을 나섭니다. 그것이 작은 서점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있으려나 서점』은 대형 서점 진열장에서도 여러번 봤지만, 꼭 동네책방에서 사야할 것 같아서 주저했던 책입니다. 우연히 들른 '캣왕성 유랑책방'이라는 이동 책방에서 이 책을 발견하자마자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바로 지갑을 열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지나칠 수 없는 제목의 책이니까요.

 

   이 서점은 어느 마을의 한 귀퉁이에 있는 작은 서점입니다. 이 서점을 찾는 손님들은 정말 있으려나 싶은, 이상하고 신기한 책들을 찾습니다. 여느 서점들처럼 손님이 이 책 저 책들을 직접 살펴보며 고르는 게 아니라 이 서점에 들어온 손님들은 일단 주인 아저씨에게 어떤 것에 대한 책이 있는지 물어봅니다. 그러면 주인 아저씨는 물론 있다며, 어떤 것에 대해 쓰여져 있는 책들을 한 권씩 한 권씩 소개해주고 손님들은 그 중에서 책을 고릅니다.


   둘이서 읽는 책,
   달빛 아래에서만 볼 수 있는 책,
   책축제,
   서점 결혼식,
   상상력 릴레이,
   세계 일주 독서 여행,
   책이 내리는 마을,
   표지 리커버 기계,
   독서 이력 수사관,
   책 제목과 적절한 진열법,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책과 같은 존재,
   베스트셀러가 되길 바랐던 책... 등.

   차례 속 책장에 꾲혀 있는 책들이 모두 이 서점에서 손님들이 찾았던 책들인데 온갖 기발하고 이상한 책들이 많습니다. 실제로 있었으면 하는 책들도 있고 한번쯤 해보고 싶은 것들도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건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비법을 담은 책은 이 서점에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책과 같은 존재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스토리가 있지만 언뜻 봐서는 그 속내를 알 수 없습니다.
   늘 누군가가 발견해 주기를 기다리고, 늘 누군가가 안을 들여다봐 주기를 바랍니다.
   인기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지만 좋은 만남이 있으면 누군가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줍니다.
   좋은 만남이 있으면 누군가와 빛나는 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습니다.
   부피가 늘어가고 무거워집니다. 불에 약하고 물에도 약합니다. 금세 빛바래고 구깃구깃해집니다.
   물체로서의 한계 수명은 있지만 그 정신은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은 보이지 않는, 앞으로 나올 새로운 책이 세계를 두텁게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좋아하는 겁니다. 78~79

   이 서점 책장에 꽂혀 있는 책만큼, 세상에는 다양하고 이상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책을 펼쳐보기 전에는 그 책이 어떤 책인지 알 수 없듯이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이야기로 책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책과 같은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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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8-16 13: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특색 있는 동네 책방의 부활
정말 환영할 만한 소식이네요.

문제는 말로만 이러고 동네책방
출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 멀고 딱히 살 것도 -
신간들은 죄다 도서관이나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해서 읽고 있으니.

현실과 이상 사이의 변하지 않는
괴리네요.

목나무 2018-08-16 1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카페에서 읽다가 혼자 엄청 키득키득했어^^
책 이야기로 그렇게나 기분이 좋아지다니~~^^
 
칼자국 소설의 첫 만남 10
김애란 지음, 정수지 그림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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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허기를 감당한다는 것에 대하여!
   어머니는 이십여 년간 국수를 팔아 '나'를 포함한 가족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가게 이름은 '맛나당'이었는데, 누군가 제과저믈 하다 망한 것을 인수해 간판 조차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칼국수 가게는 시골서 여자가 소자본으로 쉽게 차릴 수 있는 일이었고, 어머니의 칼국수 맛은 훌륭해서 장사가 잘되는 편이었습니다. 그런 어머니 덕분에 '나'는 서울에 있는 사립대학교에 붙어 혼자 세를 얻어 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처음으로 혼자 살게 된 딸의 살림을 직접 챙겨주고 골라줍니다.
   반면, 아버지는 무능력하고 무기력합니다. 술을 마시고, 화투를 치고, 다른 여자를 만나고, 심지어 어머니가 사용하는 부엌칼을 들고 나와 죽겠다며 한밤중에 자살 소동까지 벌입니다.

   어머니의 칼끝에는 평생 누군가를 거둬 먹인 사람의 무심함이 서려 있다. 어머니는 내게 우는 여자도, 화장하는 여자도, 순종하는 여자도 아닌 칼을 쥔 여자였다. 건강하고 아름답지만 정장을 입고도 어묵을 우적우적 먹는, 그러면서도 자신이 음식을 우적우적 씹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촌부. 어머니는 칼 하나를 이십오 년 넘게 써 왔다. 얼추 내 나이와 비슷한 세월이다. 7~8쪽

   그렇게 강했던 어머니인데, 어느날 부엌에서 국수를 삶다 뇌졸증으로 쓰러집니다. '나'는 갑작스럽게 들려온 어머니의 부음 소식을 듣고 어머니의 삶을 되돌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나'의 구석구석에 어머니의 손길이 깃들지 않은 부분이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누군가의 순수한 허기, 순수한 식욕을 다른 누군가가 수십 년간 감당해 왔다는 사실이 이상하고 놀라웠던 까닭이다. 51쪽

   김애란 작가의 소설에는 아버지가 부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늘 강인한 어머니가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작가의 어머니 영향이 큰듯 합니다. 작가의 어머니도 국수 가게를 하며 작가를 키워냈습니다. 또한, 저마다 형식은 다르겠지만 우리의 어머니들도 이런 모습일 겁니다. 평생 가족의 허기와 식욕을 책임지고 달래주려고 분주하게 움직였던 어머니의 모습이 말입니다.

   어린 시절 저는 제 어머니가 오랫동안 꾸린 국수 가게에서 먹고, 자고, 자랐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 둘걸. 그땐 왜 제 주위의 많은 것들이 어느 날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걸 생각지 못했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곳을 이렇게 소설로나마 남겨 놓아 이따금 제가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거예요. 책이라는 통로를 만나, 나 말고 이제 다른 사람도 그 안에 초대할 수 있다는 게 기쁘고 놀랍습니다. 언제나 그리고 여전히요. 83쪽, 「작가의 말」 

   책과 멀어진 친구들이 다시 책과 친해져 조금 더 폭넓은 책의 세계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된 <소설의 첫 만남> 시리즈. 우선 제가 좋아하는 김애란 작가의 단편소설이 예쁜 그림 옷을 걸쳐 입고 나와서 반가웠고, 책 혹은 소설과 소원한 친구들이 읽기에 딱 좋은 소설이 선택되어 또 반가웠습니다.
   비록 어린 나이에 등단해 꽤 오랫동안 "최연소"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지만, 그녀의 문장들은 요즘 젊은 작가들이 쓰는 문장들과는 결이 다릅니다. 초심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고, 한국소설의 멋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정갈하게 다듬어진 문장. 이 작품을 읽고나면 분명 침이 고이는 그녀의 또다른 작품들을 읽고 싶어질 것입니다.
   참고로, 이 단편소설은 2007년에 그녀가 발표한 소설집 『침이 고인다』에 실려있는 작품들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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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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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왕자』, 『파리의 우울』 등 선생이 번역한 여러 권의 책들을 읽으면서 선생이 쓴 산문집도 조만간 읽어봐야겠다고 다짐만 한 것이 벌써 몇 해째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다가 선생의 부고 소식을 듣고는 더이상 미뤄둬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선생의 산문집을 집어 들었습니다.

   『밤이 선생이다』는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인 황현산 선생이 처음으로 엮어낸 산문집입니다. 1980년대부터 2013년까지 무려 삼십여 년에 걸쳐 쓴 글이지만, 그의 어조와 문체는 한결같이 단정하고 균형 잡힌 시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국어학자 이수열 선생은 꽤 오랫동안 저명인사들이 신문 지면에 발표한 글을 읽고 우리말의 어법에 어긋난다고 생각되는 구절이 있으면 빨간 펜으로 수정해 글을 쓴 사람에게 우편으로 보내주곤 했었습니다. 황현산 선생 또한 몇 장의 편지를 받았지만, 선생은 이수열 선생이 지향하는 '순결주의'에 전적으로 찬동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나로서는 뿌리가 없고 본디의 결에 거슬리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관용으로 굳어졌으면 그것을 새로운 뿌리로 삼아야 한다고 믿는 편이다. 어떤 표현법이 일어나 영어에서 연유한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언중에게 그 표현이 큰 무리 없이 이해된다면 이미 우리말 속에 그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들어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선생이 지향하는 순결주의가 말의 표현력을 적지않게 억압하고 있다는 생각도 접어두기 어렵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대명사 '그'를 여기서만이라도 써보지 않겠다고 작정하고 있지만 사실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선생의 충고를 일일이 따를 수가 없다.
   (……) 말에 관한 한 나는 현실주의자이지만, 선생의 순결주의 같은 든든한 의지처가 있어야 현실주의도 용을 쓴다. 선생의 깊은 지식과 열정은 우리말의 소금이다. 이 소금이 너무 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고쳐 생각한다. 소금이 짜지 않으면 그것을 어찌 소금이라 하겠는가. 247~248쪽

   선생은 이수열 선생의 '순결주의'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이수열 선생의 충고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저 또한 이 글에서만이라도 영어식 대명사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의 소설들을 읽다보면, 그들의 단어 선택이 거슬릴 때가 많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들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표현이겠지만, 굳이 신조어나 외국어까지 끌어다가 쓸 필요가 있었을지 의문일 때가 많습니다. 가끔은 어려운 한자어가 아닌 이런 단어들 때문에 사전을 들춰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글로 쓰여졌지만 불편하고 잘 읽혀지지 않는 글들.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사람들의 글이 이 지경이라는게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반면, 황현산 선생의 글들은 읽기에는 평이하고 문체는 정직하며 문장은 유려합니다. 자신의 생각들을 바르고 고운 우리말로, 정직하지만 담백하게 담아냈습니다. 너무 술술 읽혀서 아까울 정도입니다.

   "낮에 잃은 것을, 밤이여, 돌려다오" 220쪽

   괴테가 쓴 『파우스트』에 나오는 유명한 한 구절입니다.

   여기서 낮이 이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상상력의 시간이다. 낮이 사회적 자아의 세계라면 밤은 창조적 자아의 시간이다. 220쪽

   밤은 상상력의 시간이고, 창조적 자아의 시간입니다. 낮은 분주해서 상상을 하거나 창조적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습니다. 주어진 시간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빠듯한게 낮이라면, 밤에는 그런 것들을 만회할 수 있는 시간이 있습니다. 밤은 낮동안 우리가 행했던 일들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좋은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밤은 선생입니다.

   밤입니다. 이제 선생을 맞이할 시간입니다. 선생이 쓴 글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천년 전에도, 수수만년 전에도, 사람들이 어두운 밤마다 꾸고 있었을 이 꿈을 아직도 우리가 안타깝게 꾸고 있다.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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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와 거품의 역사 - 돈이 지배한 광기와 욕망의 드라마
안재성 지음 / 을유문화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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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폐와 은행은 국가가 보장하는 대국민 사기다!
   우리는 왜 한낱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지폐를 이토록 맹신할까요? 우리는 왜 돈을 은행에 맡길 때보다 빌릴 때 더 많은 이자를 줘야 할까요?


   괴테의 『파우스트』에는 국가 재정이 거덜 나 고민하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에게 '악마의 꾀'를 불어넣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등장합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황제에게 '종이 한 장은 1천 크로네'에 해당한다는 포고령을 내리라고 말합니다. 황제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제안을 "터무니없는 사기극"이라며 거절하지만,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게 되자 그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말그대로 '악마의 유혹'이었을 뿐입니다. 막대한 양의 지폐가 발행되자마자 거덜났던 국가 재정도 회복되고 경기도 살아나는 것 같았지만, 이내 지폐의 가치가 떨어져 부동산을 비롯한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맹신하는 지폐에는 금화나 은화와는 달리, 가치 통화로서의 기능만 있을 뿐 지폐 자체에는 가치가 없습니다. 그래서 쪼개거나 부수거나 녹여도, 혹은 국가가 망해도 가치는 그대로인 금화나 은화와는 달리, 지폐는 훼손되거나 국가가 망하면 그냥 쓰레기 조각이 되어버립니다. 그걸 알면서도 우리는 이 종이 쪼가리를 맹신합니다. 왜냐하면 정부가 한낱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지폐를, 나라가 망하고 나면 10원짜리 구리값보다 못한 지폐를 '돈'이라 칭하며 믿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히 돈이라고 여기면서 생활하는 1만원 짜리나 5만 원짜리 지폐, 이를 '돈'이라 칭하는 것 자체가 사기란 지적이다. 14쪽

   어쩌면 과거의 인류가 지폐를 잘 모르는 게 아니라 현대인들이 지폐의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정부에 의해 "이 종이쪽지는 돈이다"고 세뇌 당한 채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16쪽

   지폐는 '가짜 돈'이며, 이를 '진짜 돈'이라고 우기는 신용통화 시스템은 그 자체가 일종의 거대한 사기극이라 할 수 있다. 지폐는 돈에 꼭 필요한 상품 통화로서의 기능이 결여돼 있기에 매우 위험하고 불안정하다. 그럼에도 인류가 이 방향으로 온 것은 그것 외에 다른 선택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금과 은의 양은 한정돼 있으며, 또한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특정 국가에 너무 쏠려있다. 193쪽

  
정부는 시민들을 속여 그들의 손에 실질 가치가 액면가보다 훨씬 떨어지는 지폐를 쥐어 준 뒤 대신 액면가만큼의 금은을 약탈해 갔다. 무기가 아닌, 법과 지혜를 악용해 벌이는 세련된 약탈이었다. 196쪽


은행은 왜 우리가 '예금'한 돈으로 이자놀이를 할까?

   "우리 서로 필요할 때 돈을 빌려주자. 단, 네가 부담해야 하는 금리는 나보다 조금 높게 하자" (101쪽)

   만약에 지인이 이런 식으로 제안을 했다면 우리는 가차없이 '사기꾼' 혹은 '도둑놈'이라고 화를 냈을 것입니다. 은행은 '예금'이라는 명목으로 우리의 돈을 적은 이자를 주고 빌려가서 쓰고는, 우리에게 빌린 돈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줄 때는 더 큰 이자를 받고 빌려줍니다. 즉, 자기 돈도 아닌 돈을 가지고 이자놀이를 해서 돈을 버는 셈입니다. 이런 금리 차를 '예대마진'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은행의 핵심 수익원입니다. 정부는 '부분 지급 준비금 제도'라고 해서 은행이 고객의 예금 중 일부만 금고에 넣어둔 채 나머지는 대출이나 투자 등으로 돌리는 것을 합법적으로 허용해 주기까지 합니다. 어차피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심지어 '예금'된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빌려주기도 합니다. 실제로 은행 금고에 넣어둔 돈이 얼마되지 않음을 눈치챈 소비자들이 한꺼번에 은행으로 몰려가 예금을 인출하려고 하면 '뱅크런'이 발생합니다. 보통 지급 준비율은 7% 정도이기 때문에 그 많은 예금자들이 한꺼번에 인출하면 은행에는 지급할 돈이 당연히 없게 마련입니다.


프랑스 대혁명은 고귀한 가치 때문이 아니라 증세 때문에 일어난 것!
   우리 인간들은 '돈'이라고 지칭하는 수단이 없으면 아무런 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전쟁들도 결국 돈이 있어야 하고, 혁명을 뒷받침해 주는 것도 결국 돈입니다. 비록 제목은 『풍요와 거품의 역사』지만 그것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도 마찬가지였다. 자유, 평등, 박애 등 고귀한 말은 단지 겉포장으로 붙인 수사였을 뿐이다. 실제 원인은 '돈'이었다. 정확히는 '증세 논란'이, "세금을 늘려야 하나?"와 "늘린다면, 누가 부담해야 하나?"를 두고 벌어진 다툼이 혁명으로 연결된 것이다. 180쪽

   인류 역사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시대를 불문하고 언제나 돈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시민들이 자유, 박애, 평등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일어났다고 믿고 있는 프랑스대혁명 또한 주된 원인은 '돈'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크게 성직자로 구성된 제1계급, 귀족으로 구성된 제2계급, 시민으로 구성된 제3계급으로 계급이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이중 성직자와 귀족들은 세금을 내지 않는 면세 특권을 누렸고, 가난한 시민들은 세금을 낼 돈이 없었습니다. 결국 제3계급인 시민들 중에서도 부유한 시민들인 부르주아들이 세금을 감당해 내고 있었는데, 당시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았던 프랑스가 증세에 나선 것입니다.
   화가 난 부르주아들은 자유, 박애, 평등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직자나 귀족들도 내지 않는 세금을 더 내기 싫어서 가난한 시민들을 선동했습니다. 자신들의 혁명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아서 그 어느 왕보다 검소하게 생활할 수 밖에 없었던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치가 심해서 나라가 어렵다는 헛소문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어라고 했다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말도 부르주아들이 꾸며낸 것이라고 합니다.
   역대 왕들은 '지폐'를 발행해 사기를 칠 지언정, '증세'는 가급적이면 피하고자 했습니다. '증세'는 이처럼 반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루이 16세는 그토록 많은 왕들이 피하고자 했던 '증세' 정책을 선택한 죄로 왕의 자리에서 내쳐지고, 목까지 내쳐졌던 것입니다.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이 권력 획득을 위해 선동한 상퀼로트보다 오히려 루이 16세를 비롯한 상류층에게 더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188쪽

   프랑스대혁명 당시 앞에 서서 시민들을 이끌었던 부르주아들 또한 가난한 시민 계급보다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상류층에게 더 큰 동질감을 느꼈고, 자신들도 그런 특권을 누리고 싶어했습니다. 원래 인간의 본성이란 그런 것인가 봅니다.

   인간의 본성은 매우 자본주의적이다. 사실 인간은 평등 따위는 바라지 않는다. 세상에 나보다 잘나고 부유한 자와의 평등을 외치는 사람은 많다. 그런데 나보다 못나고 가난한 자와의 평등을 원하는 인간이 있던가? 모든 인간은 평등이 아닌 격차를, 그것도 내가 위에 올라서는 격차를 원한다. 남보다 더 성공하고,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강력한 권력을 누리고 싶어 한다. 그 열망이야말로 인간에게 제일 강력한 동기를 부여한다. 249쪽

   이 세상의 부는 모든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살기에 충분하지만, 부자의 욕심을 채우기에는 부족하다. 47쪽

   자본에는 국격이 없고, 자본가들에게는 애국심도, 고결함도 없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이익뿐이다. 88쪽


금융 정책에 관심은 있지만 잘 모르는 당신에게!
   『풍요와 거품의 역사』는 지폐의 탄생에서부터 시작해 은행, 주식을 거쳐 비트코인까지 광범위한 부분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금융 시스템을 이해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예를들면, 예대마진이나 뱅크런, 부분 지급 준비금 제도, 서브 프라임, 비트코인까지 쉽게 이해할 수 없었던 경제나 금융 용어들도 역사 속에서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 연원을 알고나면 머리에 쏙쏙 들어옵니다.
   또한, 역사는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

   경제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의 우리도 증세와 복지의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나라가 파탄에 이르지 않고,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까지 받을 수 있는 정책을 잘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모든 인간들의 본성에는 자본주의적인 마음이 자리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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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1~4 세트 - 전4권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레프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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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쟁과 평화』란 무엇인가?
   러시아를 대표하는 대문호 톨스토이가 쓴 『전쟁과 평화』는 1805년부터 1820년까지 약 15년 동안 러시아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과 당시 러시아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소설입니다. 원래 그는 데카브리스트(1825년 12월 러시아에서 최초의 근대적 혁명을 꾀했던 혁명가들)에 대한 장편소설을 쓰려고 했으나, 데카브리스트의 혁명을 이해하려면 그것의 원인이 되었던 1812년의 일들을 먼저 알아야 했기 때문에 이 시절의 이야기를 먼저 썼는데, 워낙 이 시절의 이야기가 방대하다 보니 정작 쓰려고 했던 데카브리스트의 이야기는 쓸 수가 없었습니다. 『전쟁과 평화』를 구상하고 완성하는데까지만 무려 13년이 걸렸으니까요.

   『전쟁과 평화』에는 무려 559명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저마다 '전쟁'을 겪고 '평화'의 시기를 지나오면서 나름나름으로 성장합니다.
   나라를 위해 전쟁터로 향했지만 정작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은 막지 못했던
안드레이 공작은 모든 것이 부질없어 보입니다. 사람들이 그토록 위대하다고 찬양하는 나폴레옹을 봐도 "위대함의 부질없음,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부질없음, 살아 있는 자는 누구도 그 뜻을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죽음의 더한 부질없음"(1권, 563쪽)을 떠올립니다.
   갑자기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은
피예르는 불행합니다. 피예르가 떠밀리다시피 결혼한 아내 옐렌은 사교계에서 갈수록 빛이 나는데, 그녀가 빛날수록 피예르는 그저 무능하고 방탕한 남편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립니다. 심지어 그의 아내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니, 러시아에서는 종교적으로 금지된 이혼을 그에게 당당하게 요구하기도 합니다.
   어린시절에 사랑을 약속한 한 남자만 평생 사랑할 줄 알았던
나타샤는 열정이 너무 넘친 나머지 위험한 사랑을 이어갑니다. 어린시절에 사랑을 약속했던 남자 대신 아내가 죽은 이후 지독한 허무주의에 빠져있던 안드레이를 열정 가득한 사랑으로 채워줬던 나타샤, 하지만 그를 향한 그녀의 사랑도 일년을 버티지 못하고 끝이 납니다.
   그들은
각자 '전쟁'을 경험합니다. 나타샤의 배신으로 다시 전쟁터로 떠난 안드레이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돌아옵니다. 피예르 또한 안드레이와 마찬가지로 전쟁에 참여하지만, 프랑스군에게 포로로 잡혀 죽음에 가까운 공포를 체험합니다. 나타샤는 전쟁을 피해 가족들과 함께 떠나지만 안드레이와 어린 동생의 죽음과 마주하게 됩니다.
  
삶의 부질없음, 죽음의 공포, 참을 수 없는 열정 때문에 저마다 방황하던 주인공들은 이렇게 전쟁을 겪으면서 나름나름으로 성장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은 살아라, 한 시간 전에 죽었을 수도 있는 것처럼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으니. 인생이란 영원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한데, 대체 이런 것으로 괴로워할 가치가 있을까? 2권, 55쪽

왜 우리는 이 전쟁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 전쟁의 의미 같은 것은 이해하지 못했다!
   톨스토이는 1869년에 나온 잡지 『러시아의 기록』에서 『전쟁과 평화』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전쟁과 평화』란 무엇인가? 이것은 장편소설도 아니고, 서사시도 아니고, 역사적 연대기는 더더욱 아니다. 『전쟁과 평화』는 저자가 표현하기 원했고, 표현할 수 있었던 형식으로 표현된 것이다. 4권, 536쪽

   그렇습니다. 『전쟁과 평화』는 어느 한 장르로 국한시키기에는 너무나도 방대한 이야기와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그가 밝혔듯이, 이것은 서사시도 역사적 연대기도 아니지만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그의 역사관과 사상까지 엿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원인 ─ 수십억 가지 원인 ─ 은 사건을 유발하며 우연히 동시에 겹친 것이다. 따라서 사건의 특정한 원인이란 없으며,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 나폴레옹이나 알렉산드르(사건을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되던 사람들)의 의지가 실행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상황이 겹쳐야 하고 그중 하나라도 빠지면 사건은 일어날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3권 16쪽

   톨스토이는 나폴레옹이나 알렉산드르와 같은, 어느 한 사람만의 의지로는 전쟁이나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날 수 없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의지와 상황이 겹쳐야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한 사람의 의지로 이뤄진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훗날 그것을 기술하는 사람들이 특정한 한 사람에게 집중해서 역사를 기술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진행중인 어떤 사건의 결과에 관해서는 늘 수많은 예상이 나오고, 그것이 어떤 결과로 끝나든 '나는 그때 이미 그렇게 될 거라고 말했다'고 하는 사람은 언제나 있는 법인데, 그들은 무수한 예상 중에 정반대되는 일도 행해졌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3권 158쪽

   특히, 톨스토이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끝낸 뒤에 매우 긴 에필로그를 덧붙여, 훗날 사람들에게 『전쟁과 평화』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그는 이 에필로그를 통해 '자유(의지)'와 '권력'에 대해 피력합니다.
   그에 따르면, 우리 인간에게는 완전한 '자유의지'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오직 '자유의지'로 무언가를 행하려면 그 어떤 상황도 배제되어야 하는데, 우리에게서 '상황'은 어떤 경우에도 배제될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이 있을 때, 인간은 100% '자유의지'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는데, 역사적 사건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또, 권력이란 대중에 의해 선출된 통치자들에게 명시적 혹은 암묵적 동의에 의해 표명된 대중 의지의 총화(4권, 482쪽)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역사적 사건은 수많은 사람들의 의지로 일어나는 것이지만, 한 권력자가 수많은 사람들의 의지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에 그 한 사람의 의지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입니다.

   대중 의지의 총화가 역사적 인물에게로 옮겨진다는 이론은 (…) 어떤 사건이 일어나든, 누가 사건의 주모자든, 이 이론에 의하면 항상 어떤 인물이 사건의 주모자가 된 것은 의지의 총화가 그에게 옮겨진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4권, 490쪽

   역사적 사건의 원인은 무엇인가? ─ 권력이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 권력은 어느 인물에게 옮겨진 대중 의지의 총화다. 대중의 의지는 어떤 조건에서 한 인물에게로 옮겨지는가? ─ 그 인물에 의해 모두의 의지가 표현된다는 조건 아래서다. 고로 권력은 권력이다. 고로 권력은 우리가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말이다. 4권 491쪽

   하지만 권력자 혹은 역사적 인물들이 자신에게 옮겨진 대중의 의지를 항상 잘 수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톨스토이는 대중의 의지를 표출하고 있는 권력 혹은 권력자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는 역사적 사건의 주인공처럼 비춰지지 않지만, 우리 또한 그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 보는 기분을 직접 느껴보세요!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본다는 느낌을 이보다 더 확실하게 전달해주는 소설을 나는 알지 못한다. 소설가로서 톨스토이는 신이다." ─ 서평가 이현우

   "이 소설을 읽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열린 창문 너머로 현실 세계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 슈테판 츠바이크

   서평가 이현우와 슈테판 츠바이크는 『전쟁과 평화』를 이렇게 평했습니다. 삶과 죽음, 사랑, 전쟁, 종교, 권력, 자유의지 등 너무나도 방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전쟁과 평화』는 그 어떤 말로도 대신 전해줄 수 없는 작품입니다. 당신도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 보는 기분을 직접 느껴보길 바랍니다.


   우연이 상황을 만들고, 천재는 그것을 이용했다. 4권 372쪽

   이 모든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무엇이 사람들에게 집을 불태우고 자기와 같은 인간을 죽이게 했을까? 이 사건들의 원인들은 무엇일까? 어떠한 힘이 사람들에게 그 같은 행동을 하게 만들었을까?
4권 468쪽 

   이 전쟁의 의미 같은 것은 이해하지 못했다.
3권 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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