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자국 소설의 첫 만남 10
김애란 지음, 정수지 그림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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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허기를 감당한다는 것에 대하여!
   어머니는 이십여 년간 국수를 팔아 '나'를 포함한 가족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가게 이름은 '맛나당'이었는데, 누군가 제과저믈 하다 망한 것을 인수해 간판 조차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칼국수 가게는 시골서 여자가 소자본으로 쉽게 차릴 수 있는 일이었고, 어머니의 칼국수 맛은 훌륭해서 장사가 잘되는 편이었습니다. 그런 어머니 덕분에 '나'는 서울에 있는 사립대학교에 붙어 혼자 세를 얻어 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처음으로 혼자 살게 된 딸의 살림을 직접 챙겨주고 골라줍니다.
   반면, 아버지는 무능력하고 무기력합니다. 술을 마시고, 화투를 치고, 다른 여자를 만나고, 심지어 어머니가 사용하는 부엌칼을 들고 나와 죽겠다며 한밤중에 자살 소동까지 벌입니다.

   어머니의 칼끝에는 평생 누군가를 거둬 먹인 사람의 무심함이 서려 있다. 어머니는 내게 우는 여자도, 화장하는 여자도, 순종하는 여자도 아닌 칼을 쥔 여자였다. 건강하고 아름답지만 정장을 입고도 어묵을 우적우적 먹는, 그러면서도 자신이 음식을 우적우적 씹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촌부. 어머니는 칼 하나를 이십오 년 넘게 써 왔다. 얼추 내 나이와 비슷한 세월이다. 7~8쪽

   그렇게 강했던 어머니인데, 어느날 부엌에서 국수를 삶다 뇌졸증으로 쓰러집니다. '나'는 갑작스럽게 들려온 어머니의 부음 소식을 듣고 어머니의 삶을 되돌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나'의 구석구석에 어머니의 손길이 깃들지 않은 부분이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누군가의 순수한 허기, 순수한 식욕을 다른 누군가가 수십 년간 감당해 왔다는 사실이 이상하고 놀라웠던 까닭이다. 51쪽

   김애란 작가의 소설에는 아버지가 부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늘 강인한 어머니가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작가의 어머니 영향이 큰듯 합니다. 작가의 어머니도 국수 가게를 하며 작가를 키워냈습니다. 또한, 저마다 형식은 다르겠지만 우리의 어머니들도 이런 모습일 겁니다. 평생 가족의 허기와 식욕을 책임지고 달래주려고 분주하게 움직였던 어머니의 모습이 말입니다.

   어린 시절 저는 제 어머니가 오랫동안 꾸린 국수 가게에서 먹고, 자고, 자랐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 둘걸. 그땐 왜 제 주위의 많은 것들이 어느 날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걸 생각지 못했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곳을 이렇게 소설로나마 남겨 놓아 이따금 제가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거예요. 책이라는 통로를 만나, 나 말고 이제 다른 사람도 그 안에 초대할 수 있다는 게 기쁘고 놀랍습니다. 언제나 그리고 여전히요. 83쪽, 「작가의 말」 

   책과 멀어진 친구들이 다시 책과 친해져 조금 더 폭넓은 책의 세계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된 <소설의 첫 만남> 시리즈. 우선 제가 좋아하는 김애란 작가의 단편소설이 예쁜 그림 옷을 걸쳐 입고 나와서 반가웠고, 책 혹은 소설과 소원한 친구들이 읽기에 딱 좋은 소설이 선택되어 또 반가웠습니다.
   비록 어린 나이에 등단해 꽤 오랫동안 "최연소"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지만, 그녀의 문장들은 요즘 젊은 작가들이 쓰는 문장들과는 결이 다릅니다. 초심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고, 한국소설의 멋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정갈하게 다듬어진 문장. 이 작품을 읽고나면 분명 침이 고이는 그녀의 또다른 작품들을 읽고 싶어질 것입니다.
   참고로, 이 단편소설은 2007년에 그녀가 발표한 소설집 『침이 고인다』에 실려있는 작품들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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