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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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왕자』, 『파리의 우울』 등 선생이 번역한 여러 권의 책들을 읽으면서 선생이 쓴 산문집도 조만간 읽어봐야겠다고 다짐만 한 것이 벌써 몇 해째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다가 선생의 부고 소식을 듣고는 더이상 미뤄둬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선생의 산문집을 집어 들었습니다.

   『밤이 선생이다』는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인 황현산 선생이 처음으로 엮어낸 산문집입니다. 1980년대부터 2013년까지 무려 삼십여 년에 걸쳐 쓴 글이지만, 그의 어조와 문체는 한결같이 단정하고 균형 잡힌 시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국어학자 이수열 선생은 꽤 오랫동안 저명인사들이 신문 지면에 발표한 글을 읽고 우리말의 어법에 어긋난다고 생각되는 구절이 있으면 빨간 펜으로 수정해 글을 쓴 사람에게 우편으로 보내주곤 했었습니다. 황현산 선생 또한 몇 장의 편지를 받았지만, 선생은 이수열 선생이 지향하는 '순결주의'에 전적으로 찬동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나로서는 뿌리가 없고 본디의 결에 거슬리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관용으로 굳어졌으면 그것을 새로운 뿌리로 삼아야 한다고 믿는 편이다. 어떤 표현법이 일어나 영어에서 연유한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언중에게 그 표현이 큰 무리 없이 이해된다면 이미 우리말 속에 그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들어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선생이 지향하는 순결주의가 말의 표현력을 적지않게 억압하고 있다는 생각도 접어두기 어렵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대명사 '그'를 여기서만이라도 써보지 않겠다고 작정하고 있지만 사실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선생의 충고를 일일이 따를 수가 없다.
   (……) 말에 관한 한 나는 현실주의자이지만, 선생의 순결주의 같은 든든한 의지처가 있어야 현실주의도 용을 쓴다. 선생의 깊은 지식과 열정은 우리말의 소금이다. 이 소금이 너무 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고쳐 생각한다. 소금이 짜지 않으면 그것을 어찌 소금이라 하겠는가. 247~248쪽

   선생은 이수열 선생의 '순결주의'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이수열 선생의 충고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저 또한 이 글에서만이라도 영어식 대명사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의 소설들을 읽다보면, 그들의 단어 선택이 거슬릴 때가 많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들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표현이겠지만, 굳이 신조어나 외국어까지 끌어다가 쓸 필요가 있었을지 의문일 때가 많습니다. 가끔은 어려운 한자어가 아닌 이런 단어들 때문에 사전을 들춰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글로 쓰여졌지만 불편하고 잘 읽혀지지 않는 글들.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사람들의 글이 이 지경이라는게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반면, 황현산 선생의 글들은 읽기에는 평이하고 문체는 정직하며 문장은 유려합니다. 자신의 생각들을 바르고 고운 우리말로, 정직하지만 담백하게 담아냈습니다. 너무 술술 읽혀서 아까울 정도입니다.

   "낮에 잃은 것을, 밤이여, 돌려다오" 220쪽

   괴테가 쓴 『파우스트』에 나오는 유명한 한 구절입니다.

   여기서 낮이 이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상상력의 시간이다. 낮이 사회적 자아의 세계라면 밤은 창조적 자아의 시간이다. 220쪽

   밤은 상상력의 시간이고, 창조적 자아의 시간입니다. 낮은 분주해서 상상을 하거나 창조적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습니다. 주어진 시간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빠듯한게 낮이라면, 밤에는 그런 것들을 만회할 수 있는 시간이 있습니다. 밤은 낮동안 우리가 행했던 일들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좋은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밤은 선생입니다.

   밤입니다. 이제 선생을 맞이할 시간입니다. 선생이 쓴 글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천년 전에도, 수수만년 전에도, 사람들이 어두운 밤마다 꾸고 있었을 이 꿈을 아직도 우리가 안타깝게 꾸고 있다.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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