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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블루 - 기억으로 그린 미술관 스케치
김영숙 지음 / 애플북스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낭만의 도시 파리, 언젠가 한번은 꼭 가고픈 내 여행 목록에서 우선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파리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Blue"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왜일까? 파란 하늘 아래서 높은 줄 모르고 서있는 에펠탑을 떠올리면 가슴이 먼저 설레여 오는데, 왜 우울하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걸까. 우울함은 잿빛 하늘 아래의 런던과 더 잘 어울리는 단어가 아닐까.
나만의 생각인 줄 알았는데,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한명 더 있다. 어찌나 반갑던지. 나는 모르는 이유를 그녀를 통해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책을 들었다.
"파리 블루"라는 제목만큼 반가운 것은 바로 그녀의 일상이다. 파리와는 절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름 '김영숙', 내게도 그런 촌스러운 이름이 있다. 같은 반에는 나와 똑같은 이름의 친구가 적어도 한명은 있었고, 교장선생님은 물론 남자였던 담임선생님까지 내 이름과 같았던 적도 있었다. 그나마 똑같은 이름의 친구가 있다는 것은 나 말고도 이렇게 촌스러운 이름을 가진 친구가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얄밉게도 꼭 이렇게 이야기하는 친구가 있다. 우리 고모랑 혹은 할머니랑 이름이 똑같다며 당사자는 전혀 반갑지 않은 사실을 강조하며 친근감을 조성하려 할 때는 정말 한 대 때려 주고 싶을 정도다.
그녀의 이름 뿐만이 아니라 그녀가 태어나서 자란 곳도 내게는 반가운 곳이다. 그녀가 초등학생 때 지나가는 외국인에게 영어로 설명했다던 달성공원은, 나 역시 초등학생일 때 지겹도록 소풍을 갔던 곳이다. 21번 버스를 타고 S고등학교에서 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 K여고를 다닌 그녀, 지금은 버스 노선이 바껴서 그녀가 타고 다녔던 버스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혼자서 이니셜 맞추기 게임을 하며 반가움을 맘껏 뽐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관심없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좋으면 그만이다. 파리에 가면 곳곳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을 만날 수 있다.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들로 넘치는 파리에서 정작 나에게는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보든, 내가 무엇을 찍든 그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항상 무언가에, 누군가에 구애받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자유로운 상황이 좋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 낯선 상황에서 오히려 외로움과 우울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멋진 파리에 나 혼자 밖에 없다는 사실, 당연히 우울(Blue)할 수 밖에.
"겉보기엔 상처 하나 보이지 않는 가슴의 병을 앓는 이들에게 밤은 내일 이어질 고통을 약속이라도 하듯 휴식을 방해하곤 한다." (p19)
"스스로 자신에게 선물하지 못하는 자는 타인에게도 선물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p20)
"시간이 바뀌는 곳에 서 있는 나, 셔터를 누른다. 사진을 찍는 그 순간 내가 목격했던 현장들은 과거형이 되어 버린다." (p25)
"나이가 많아지면 이런게 좋다. '왜요?'라고 묻지 않아도 그냥 아픔을 공감하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 (p114)
2008/03/22 by 뒷북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