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베아 아트릭스 핸드 네일 로션 - 400ml
니베아
평점 :
단종


지속력은 그리 길지 않아 자주 발라줘야 하나 저렴해서 부담없이 바를 수는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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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트로지나 핸드 크림 - 56g
존슨앤드존슨
평점 :
단종


조금 끈적거림은 있지만 흡수력은 좋은 것 같아 저처럼 상당히 건조한 손에는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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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복과 나비
장 도미니크 보비, 양영란 / 동문선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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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엘르』지의 잘나가는 편집장으로 그 누구보다도 인생을 자유롭게 즐기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오후, 뇌졸증이라는 불청객이 갑작스레 찾아와 그를 쓰러뜨렸다. 3주 후, 다행히도 그는 의식을 회복하지만 그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왼쪽 눈꺼풀 뿐이다. 여전히 그의 머리와 가슴은 자유롭게 활개를 치고 있지만, 꼼짝도 하지 못하는 그의 몸 속에 갇혀 있다. 의식은 정상이지만 마치 환자가 내부로부터 감금당한 상태, 즉 '로크트 인 신드롬(locked-in syndrome)'이 그의 병명이다. 사람들의 이야기에 아무런 말도, 어떠한 행동도 취할 수가 없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차라리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더라면 덜 답답했을텐데. 그의 언어치료사는 이런 답답함을 해소해주기 위해 새로운 의사소통 방법을 고안해 낸다.

ESARINTULOMDPCFBVHGJQZYXKW
무질서해 보이는 이 알파벳 행렬은 프랑스어에서 사용되는 빈도에 따라 철자를 새롭게 배치한 것이다. 가장 자주 쓰이는 E가 제일 앞에 나오고, 가장 적게 쓰이는 W가 마지막이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언어치료사가 ESA...로 된 알파벳 행렬을 순서대로 읊조리면 그가 원하는 글자에서 눈꺼풀을 깜박이면 되는 것이다. 똑같은 과정을 계속 반복하다 보면 그가 원하는 단어 혹은 문장을 완성할 수 있다.
새로운 의사소통 방법을 익힌 그는 자신의 책을 내길 원했다. 여성 편집자 클로드 망디빌이 알파벳을 읊조리면 그가 왼쪽 눈꺼풀을 깜박였고, 그녀는 그 알파벳을 받아 적었다. 이런 방법으로 하루동안 쓸 수 있는 글의 분량은 고작 반쪽.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무려 15개월 동안 알파벳을 읊조리고, 눈꺼풀을 깜박여서 바로 이 책 『잠수복과 나비』를 만들어냈다.
이것은 실화다. 이 책의 저자 장 도미니크 보비는 자신의 일상을 이런 방법으로 써낸 것이다. 그는 병과 싸워야했지만 특유의 냉소와 유머를 잃지 않았고, 온 힘을 쏟아부어 그것을 표현했다. 만약 이것이 영화나 소설이었더라면 그 주인공은 벌떡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이것은 실화다. 그는 자신의 책이 나온지 1주일 만에 그동안 자신이 감금되어 있던 잠수복을 벗고 나비가 되어 자유로운 세상으로 날아갔다.

열쇠로 가득 찬 이 세상에 내 잠수복을 열어 줄 열쇠는 없는 것일까? 종점 없는 지하철 노선은 없을까? 나의 자유를 되찾아 줄 만큼 막강한 화폐는 없을까? 다른 곳에서 구해 보아야겠다. 나는 그곳으로 간다. (p. 174)
 
이 작품은 지난해 줄리앙 슈나벨 감독을 통해 《잠수종과 나비(The Diving Bell And The Butterfly)》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줄리앙 슈나벨 감독은 왼쪽 눈꺼풀 밖에 움직일 수 없었던 장 도미니크 보비의 답답함을 극대화하기 위해 보비의 시선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목조차 돌릴 수 없는 그가 왼쪽 눈으로만 보는 세상은 얼마나 좁고 답답할까. 우리는 잠시 보비의 시선으로 영화만 볼 뿐인데도 이렇게나 답답하고 불편함을 느끼는데, 보비는 그렇게 열 다섯 달을 살아내며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새삼 감독의 연출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8/05/29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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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의 악녀
페이 웰던 지음, 김석희 옮김 / 쿠오레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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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즘 TV 드라마를 보면 '불륜-복수-줌데렐라' 3종 세트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보통은 불륜을 저지른 남편에게 줌데렐라로 변신해 멋지게 복수하는 내용이다. 아침 드라마는 건전할수록 시청률이 침묵한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아침 드라마는 물론이고 온 가족이 함께 모여 TV를 시청하는 저녁 드라마에서도 이 3종 세트가 빛을 발하고 있다.
진부하다. 진부하다 못해, 진부한 소재라고 말하는 것조차 진부하다. 이 진부한 3종 세트는 TV 드라마뿐만이 아니라 페이 웰던의 『에덴의 악녀』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하고 있다. 1983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영국 BBC 방송의 드라마로, 메릴 스트립이 등장하는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고 발표된지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꾸준히 번역되고 있다. 왜 이토록 진부한 소재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는 것일까?

에덴 그로브에 사는 루스는 잘생긴 회계사 남편과 두 아이를 두었지만 그리 행복하지는 않다. 남편 보보가 자신과는 정반대의 외모를 가진 소설가 메리 피셔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메리 피셔는 바닷가 절벽에 있는 하얀 등대탑에 살고 있며 보보를 회계사로 들일만큼 돈이 많은 미인이다. 어느날 보보는 부부 싸움 끝에 루스에게 "당신은 악녀야"라는 말을 던지고 메리 피셔에게 간다. 그동안 루스는 자신이 남편을 잘 내조하는 현모양처라고 생각하며 남편이 아무리 뻔뻔한 짓을 해도 참고 있었지만, '악녀'라는 소리를 듣게되자 더이상 참을 수가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악녀니까. 악녀는 참을 필요도 없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빼앗으면 되니까. 루스는 남편과 메리 피셔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한다.
비록 그녀가 복수를 꿈꾸며 줌데렐라로 변신해 가는 모습은 진부하지만, 그녀가 변신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태도는 전혀 진부하지 않다. 그녀는 돈과 지위 등으로 자신들을 포장하고 있는 사람들의 위선을 발가 벗겨 놓고, 비웃음을 던져준다. 자신을 그렇게 만든 남편은 철저하게 몰락시키고, 그 원인이 된 메리 피셔는 자신의 모습으로, 자신은 철저하게 메리 피셔의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보다 더 비현실적인 이야기지만, 덕분에 읽는 이로 하여금 현실 속에서는 행할 수 없는 대리 만족감을 갖게 한다. 이것이 바로 『에덴의 악녀』가 끊임없이 변주될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2008/05/28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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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체
박범신 지음 / 푸른숲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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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연재되고 있는 『촐라체』를 만났다. 작가들이 연재소설을 쓸 때는 어느 정도의 텀(term)을 두고 쓰는지, 그 기간 동안에 얼마만큼의 글을 쓰는지, 이야기의 마디 마디가 궁금했다. 그러나 연재소설이 주는 매력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약점이 더 컸다. 다음 이야기를 손꼽아 기다려가며 읽을만큼 내 인내심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 만약에 어느 한 부분에서라도 이야기가 지루해질 기미가 보이면 쉽게 포기해 버릴거라는 것,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모니터를 통해서는 긴 글을 못 읽다는 것이다. (스크롤바를 내려야 볼 수 있는 길이의 글들은 무조건 패스해버리거나 일단 프린트를 해서 본다.) 어차피 연재가 끝나면 종이책으로 나올건데, 굳이 나의 약점들을 극복해가며 볼 필요가 있을까.

 

가을도 마찬가지지만, 화창한 봄은 내가 책을 읽기에 적당하지 않은 계절이다. 자꾸 밖으로 나가고 싶어지니까. 그렇게 읽지 않은 책들이 하나, 둘 쌓이기 시작했고 그 뜻을 알 수 없는 '촐라체'라는 제목에 대한 궁금증도 쌓이기 시작했다. 더이상 내 책상 위에도, 머리 속에도 쌓을 수가 없게 되었을 때 이 책을 집어 들었다.

그제서야 '촐라체'가 무엇인지 알았다. '촐라체'는 로체처럼 에베레스트 서남쪽에 있는 산이란다. 그런데 이걸 어쩌지. 예전부터 나는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고 위험한 산을 오르내리는 산악인들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촐라체'라는 제목의 궁금증은 풀렸으니, 이 책에 대한 흥미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복형제인 박상민과 하영교는 히말라야에서 우연히 만난 정우진에게 자신들의 베이스캠프를 지켜달라고 부탁한 뒤, 간단한 장비만 챙겨 촐라체로 향한다. 10년 전 자신의 눈 앞에서 추락하는 선배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로 처음 등반하는 상민과 죽어가는 아버지에게 빚 독촉을 하던 사람을 칼로 찌르고 도망온 영교. 그들에게는 지난 세월 동안 가슴 속에서 쌓이고 쌓인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말없이 산을 오른다.

시작이 순탄해서 그들은 예상대로 1박 2일만에 촐라체를 정복하고 내려올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교가 버너를 떨어뜨려서 배고픔과 싸워야 했고, 영교가 크레바스에 떨어져 발목을 다치게 되자 고통과 싸워야 했다. 때론 배고픔과 추위보다 더한 고독과 싸워야했고, 그 모든 것이 고통스러워 삶을 포기하고자 하는 나약함과 싸워야 했다. 그저 그들을 지켜보고만 있는 나까지 힘이 들 정도였다. 아무리 봐도 그들이 살아서 돌아갈 확률은 제로에 가까운데, 차라리 이쯤에서 덜 고통스럽게 그들을 놓아주는게 낫지 않을까. 이미 작가의 손을 떠난 일임을 알면서도 몇 번이나 그렇게 외쳤다.

그리고 비로소 깨달았다. 그들이 왜 그토록 산에 오르는지를. 극한의 고통과 절망 속에서 그들은 차라리 죽음을 택해 편해지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은 진심이 아니다. 죽음의 유혹이 커질수록 생에 대한 애착도 커지는 법. "정상이란 모든 길의 시작이자 그 귀결점"(p.54)이라는 라인홀트 메스너의 말처럼, 현실의 고난과 맞닥뜨린 그들은 산으로 도피하기 위함이 아닌 산으로부터 다시 시작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말이다.

 

"왜 산에 오르는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나 자신과 싸우며 언제나 새로운 '약'이 필요해서인가.

나는 산 없이는 못 산단 말인가." ─ 메스너 (p.102)

 

2008/05/25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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