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여행자 - 손미나의 도쿄 에세이
손미나 지음 / 삼성출판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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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세상 밖으로 나갈 엄두는 나질 않아, 기나긴 설 연휴 동안 연달아 여행 에세이를 읽으며 근질근질한 발을 이불 속에 꽁꽁 붙들어 놓았었다. 요즘들어 내 책장에서 부쩍 늘어만 가는 여행 에세이들. 그것은 아마도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지 못하는 아쉬움과 그런 세상을 향한 동경 때문이리라.

태양의 여행자, 손미나. 미리 책에 대한 설명을 보지 않았더라면 당연히 이번에도 스페인 여행기라 생각했을 것이다. 흔히 스페인을 '태양의 도시'라 부르니까.
순서상으로는 그녀의 두번째 에세이지만 실제로는 그녀의 첫번째 여행기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기도 한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그만두고 스페인으로 떠날 결심한 그녀. 스페인으로 가기 전 얼마간의 시간이 남은 그녀는 가까운 도쿄로 향한다.
혼자 떠나는 도쿄 여행, 사람도 많고 범죄도 많은 곳이라 여자 혼자 여행하기에는 조금은 조심스러운 곳이기도 하지만 그녀는 씩씩하게 도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밤거리를 서성인다. 젊은 여자의 도쿄 여행이라 하면 '혹시 쇼핑여행 아냐?'라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때가 종종 있다. 하긴 달랑 구제 청바지 하나 사러 비싼 비행기값을 지불하며 그 곳까지 가는 사람도 있으니.
그러나 그녀의 여행은 달랐다. 그녀는 그곳에서 숨쉬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과 함께 새벽 시장을 가고 음식을 먹었다. 그곳의 전통 의상인 기모노를 입고, 리키샤를 타고, 게이샤를 만나며 문화를 체험하려고 했다.
아직도 일본인이라고 하면, 특히 도쿄 사람들은 내 머리 속에서 정감있게 떠올려지지가 않는다. 역사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탐독하는 문학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녀가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도쿄가 목적이 아닌 사람들이 보고 싶어서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그녀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지금 나는 그녀처럼 멋진 여행을 계획 중이다. 통장에 차곡차곡 쌓이는 잔고를 보며 하루 하루 떠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때까지는 아마도 이런 류의 책들을 읽으며 마음을 달랠 수 밖에. 나도 여행길에서는 그녀처럼 운이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일본 속담에 '이치고이치에'라는 것이 있어. '일생에 한 번뿐인 만남'이라는 뜻인데 모든 사람은 한 번의 만남으로 헤어질 수 있으니 아무리 사소한 인연이라도 나중에 후회 없도록 소중히 대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여. 바로 그런 거지. 두 사람이 아주 작은, 그냥 스쳐 지나갔을 수 있는 인연을 평생의 우정으로 만들어 놓은거야." (p.262)  
   
2008/02/18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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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는 누구? - 황금 코안경을 낀 시체를 둘러싼 기묘한 수수께끼 귀족 탐정 피터 윔지 3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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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릴적 일이지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모리스 르블랑의 『기암성』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때, 워낙 겁이 많았던지라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인물들에게 깜짝 놀라면서도 절대 놓지 않았던 책. 그날 이후 셜록 홈즈와 아르센 뤼팽, 그리고 포와로는 나의 멋진 친구들이 되어 주었다. 불과 얼마전까지도 나는 깜찍한 소년 탐정 코난과 잠자는 유명한 탐정에 빠져 있었다.

 

어느날 아침, 한 수리공의 욕조에서 코걸이 안경만 쓴채 발거벗은 한 구의 시체가 발견된다. 같은 시간, 중요한 약속을 앞둔 한 남자가 옷하나 걸치지 않고 감쪽같이 사라진다. 경찰에서는 사라진 사람과 발견된 시체가 동일인물이 아닐까라는 가정하에 수사를 시작한다.

피터 윔지 경, 공작 가문의 둘째 아들인 그는 장서 모으기와 탐정 놀이가 취미이다. 두 사건의 소식을 접한 그는 사건 현장으로 달려가지만 담당 형사는 엉뚱한 방향으로 사건을 이끌어 나간다.

 

『나니아 연대기』의 C.S. 루이스, 『반지의 제왕』의 J.R.R. 톨킨, 뮤지컬 <캣츠>의 원작자 T.S. 엘리엇 등과 친분을 쌓으며 탐정소설을 쓰기 시작한 도로시 L. 세이어즈. 그녀는 상황을 정황하게 기억하는 목격자나 우연히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되는 것은 탐정 소설에나 나올법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윔지 경 또한 그런 식으로 사건의 열쇠를 찾게 된다.

 

셜록 홈즈나 포와로 형사는 한눈에 반해버렸다고나 할까. 그러나 윔지 경은 자꾸 딴지를 걸고 싶어진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너무나도 수다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윔지 경 스스로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수다스러운 사람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윔지 경에게는 콩깍지가 씌이지 않는가 보다. 윔지 경 뿐만이 아니라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적으로 수다스럽다. 사건의 실마리를 우연히 얻기 위해서는 수다스러움이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수다스러움은 싫은 걸 어떡해. 

 

"제가 요점만 간략하게 말하는 데는 별로 소질이 없지만요. 저희 형님께서는 제가 가문을 대표해서 나서는 걸 원치 않으실 겁니다. 제가 이야기를 할 때는 옆길로 새는 일이 너무 많아서 아무도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거라고 하시지요." (p113)

 

이 작품은 피터 윔지 경이 등장하는 그녀의 첫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수다스럽기는 하지만 그의 다음 활약도 만나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다음 시리즈에서는 지긋지긋한 오탈자는 만나지 않기를.

 

2008/02/18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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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 세종대왕 - 조선의 크리에이터
이상각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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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우리를 열광시켰던 인물 중에 단연 돋보였던 이는 바로 이산 정조대왕이다. 드라마는 물론이고,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서도 이상각의 『이산 정조대왕』은 사실을 토대로 했으면서도 쉽고 재미있는 해설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 드라마 <대왕 세종>의 방영과 함께 또 한권의 책이 나왔다. 정조대왕의 좋은 기억 때문에 내심 기대가 컸다.

 

어쩌면 평생 책이나 읽으며 학문에만 정진해야 했을지도 모르는 태종의 셋째 아들 충녕대군, 임금의 자리와는 거리가 멀었던 그지만 당연히 자신의 자리라고 방심하고 있던 양녕대군 덕분에 그 자리에 올라서게 된다. 사실 이 이야기는 그동안 많이도 들어왔던 것이다. 총명한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일부러 망나니 짓을 하고 돌아다녔다는 양녕대군의 모습은 많이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총명한 동생을 두었다고 해서 당연히 자신의 것인 왕위를 양보할 위인은 없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인 태종 이방원은 남의 것까지 빼앗아 오지 않았던가. 그런 아버지의 기질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양녕대군이 그런 멋진 형이었을리는 없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 책은 왕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쓰고 있다. 아버지 태종이 왕위에 오르는 과정부터 양녕대군이 세자에 책봉되어 쫓겨날 때까지, 그리고 왕이 된 세종이 한글 창제를 하는 과정까지 모두 왕실 중심이다. 또다른 업적이라 할 수 있는 과학기구의 발명은 뒷부분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상당히 적은 분량이다.

물론 이 책의 주인공은 세종대왕이지만 '조선의 크리에이터'라는 부분에서 재조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동안 다른 매체를 통해 이미 알고 있는 그의 가족사보다는 업적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야 했다. 그런 면에서 아쉬움이 크다.

 

세종대왕을 생각하면 몇 번이고 허리를 굽혀 절을 하고 싶을 정도로 감사하고픈 왕이다. 만약 훈민정음이 없었더라면 나처럼 암울할 사람들 많을 것이다. 학창시절 가장 싫어했던 과목이 바로 한문이었을 정도인데, 이렇게 쉽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한글이 없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다.

이렇게 훌륭한 글을 만들어 낸 세종, 그를 따르는 수많은 신하들과 백성들이 있었고 가족들이 있었지만 그는 고독한 왕이었다. 그가 만든 훈민정음은 중국의 눈치만 살피는 신하들에 의해 천대 받았고, 글 좀 읽는다는 선비들에게 소외 당했다. 오랫동안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하지 못했던 훈민정음이 이제 제자리를 찾아가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이유로 훼손 당하고 있다.

며칠전 국보 제1호인 숭례문이 방화로 소실되었다. 그동안 소방시설 하나 제대로 갖춰 놓지 못하고, 제대로 된 관리조차 받지 못한 숭례문이 사라지고 나서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보다 더한 뒷북이 또 있을까. 이제 뒷북치는 일은 그만 둬야 할 것이다. 습관이 되면 안된다.

한글, 어느날 홀연히 아름다운 모습을 감추는 일이 없도록 있을 때 바르게 사용하자.

 

2008/02/17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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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병 - 나를 달뜨게 했던 그날의, 티베트 여행 에세이
박동식 글.사진 / 북하우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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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쉬델레(안녕하세요)!

지상 최대의 고원인 티베트 고원이 자리잡고 있어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티베트, 나름 역마살 좀 붙었다 싶은 나의 궁극의 목적지이기도 한 곳이다.

티베트는 복잡한 산악 지대 덕분에 수세기 동안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 정책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꽁꽁 싸여있을 것만 같았던 티베트가 결국 중국에게 문을 열고 그 나라의 자치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몇 년 전 온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중국의 동북공정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당시 내가 궁금했던 것은 티베트인들의 반응이었다. 그들만의 언어와 문화가 번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일개 자치구로 전락해 버린 그 나라 사람들의 반응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말을 타고 온 초원을 달리며 독립을 외쳐도 될까말까인데 말이다. 그때 난 그들의 무지함과 부족한 인식 탓이겠거니 생각해 버렸다. 그리고 이 책에서 그 답을 찾을 수가 있었다. 그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무지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도 독립에 대한 자각이 있었다.

긴 연휴 동안 그곳은 나를 달뜨게 만들었고, 비록 그곳이 아닐지언정 어디로든 떠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열병'과 함께 '두려움'이라는 것도 안겨 주었다.

그곳은 숙박이나 교통 시설이 완비되어 있는 여느 관광지와는 다르다. 비록 호텔이라고는 하지만 마음대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할 수 없는 곳이며, 밤마다 추위에 떨어야 한다. 게다가 차편도 여의치 않아서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하고 계획하지 않는다면 일정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어쩌면 바람이는 뜨거운 모래길을 하루종일 걸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렇다. 티베트는 여행자에게 로망이기도 하지만 고생을 바가지로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고생 바가지인 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티베트 여행의 달콤한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 찍고 글 쓰는 작가 박동식, 여행할 때 짐을 덜기 위해 감도가 50 밖에 되지 않는 필름 카메라를 사용한단다. 그래서일까. 그의 사진에서는 전문 사진작가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친근함이 느껴진다. 이번에는 그의 사진들을 보며 이 열병과 두려움을 잠재우려 한다. 언젠가는 궁극의 목적지인 티베트에서 "타쉬델레!"하며 외칠 날을 꿈꾸며.

 

2008/02/12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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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 1 - 짧은 제국의 황혼, 이문열의 史記 이야기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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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학이라 하면 『삼국지연의』, 『수호지』, 『서유기』, 『금병매』의 4대기서와 함께 『홍루몽』까지 얹어서 5대기서를 말하지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한 작품이 더 있다. 유방과 항우의 대결을 그린 중국의 역사소설 『초한지』, 어떤 이들은 유비와 조조보다는 유방과 항우의 대결이 더 흥미진진하다고 말한다.



『삼국지』로 스테디셀러 대열에 오른 이문열이 또 하나의 중국 역사소설인 『초한지』를 펴냈다. 그동안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이문열식 평역'의 재미를 이번 작품에서도 톡톡히 볼 수 있다.

이문열식 평역, 중국 역사와 초면인 사람에게는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친절한 방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개입이 잦아지고 평역자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면 간섭처럼 느껴져서 읽기 싫어질 때가 있다. 『초한지』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초반의 그 지루한 도입이 원전에서도 있었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지루함을 느끼게 만드는 도입부, 10권이라는 전체 분량을 생각했을 때는 미미한 분량이기는 하지만 1권의 도입부가 너무 지루하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이연걸이 '무명'으로 출연했던 영화 《영웅》을 떠올리게 하는 장량이 등장하면서부터 이야기는 재미를 더하기 시작한다. 요즘 말로 완전 꽃미남인 장량, 한나라의 유서 깊은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가족과 한나라의 원수를 갚기 위해 진시황을 죽이려고 한다. 스스로 시황제라 칭하며 천하를 얻으려고 했던 시황제도 이런 사람들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또 여불위 덕분에 왕위에 오른 이안과 한때 여불위의 애첩이었지만 이안의 눈에 들어 자신을 낳은 어머니 조희로 인해 신분의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 한편 『초한지』에서 라이벌로 그려지는 유방과 항우의 집안 내력이 1권에 등장하기도 한다.



예전부터 완결되지 않은 책은 보지 않았다. 재미있는 책을 기다려서 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슬슬 재미있어 지려는 찰나에 첫번째 이야기가 끝나 버렸다. 그것도 그 수많은 등장 인물 가운데서 내가 가장 관심이 가는 인물인 장량의 이야기에서 끝나 버렸다. 다행히 2권은 출간되어 있지만 5월이 돼야 완결편을 볼 수 있다는데, 그때까지 잘 기다릴 수 있을까. 사실 초반부가 조금 지루했지만, 『초한지』는 분명 기대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2008/02/10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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