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그림을 모사하는 기쁨!

채색의 시간 - 빈센트 반 고흐 편
김충원 지음 / 진선아트북 / 2008년 2월

어릴적 학교 앞 문구점에서 산 색칠공부는 나에게 멋진 친구가 되어 주었다. 하얀 종이 위에 인쇄된 만화영화 속 친구들, 밋밋한 모습의 그 친구들은 내가 색연필을 갖다 대면 하나, 둘씩 색깔 옷을 입고 살아나기 시작한다. 어차피 대량으로 찍어내는 인쇄물이라 내가 직접 스케치한 그림처럼 희소성은 떨어졌지만,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색을 채워나가면 내 그림이 되는 것만 같았다.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내게 부담감 대신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었고, 마땅한 놀이거리가 없을 때는 심심풀이로 최고였던 색칠공부.

김충원의 『스케치 쉽게 하기』시리즈에 이어 나온 『채색의 시간』은 어릴적 그림을 그리며 놀았던 '색칠공부'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색칠공부'처럼 단순히 색을 채워 넣는 것이 아니라 색은 어떻게 배합하고 채워 넣는지, 어떤 기법으로 칠해야 하는지까지 알려주니 정말 채색 공부가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김충원 선생의 스케치 위에 채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빈센트 반 고흐의 스케치에 채색을 하는 것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내가 직접 그릴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기발한 아이디어인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겠지. 그림을 100% 직접 그리는 게 아니라 스케치 위에 채색만 하는 것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고흐의 그림이 기억에 오래남는 것은 그의 톡특한 채색 기법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렇게나마 그의 채색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기회가 아닌가. 고흐도 밀레의 작품집을 모사하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고 했다. 물론 내가 고흐처럼 화가를 꿈꾸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런 방법으로 좋아하는 화가와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자 영광스러운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항상 김충원의 시리즈는 다음에는 어떤 주제의 책이 나올까 기대를 하게 만든다. 이번에는 고흐, 다음에도 화가의 명화 채색하기였으면 좋겠다. 다음 타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이렇게 해서 그림에는 영 소질이 없었던 나도 명화를 하나씩 하나씩 모사해 보는 경험을 해보는군.

2008/03/15 by 뒷북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