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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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엔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정원을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그림의 윤곽이 사람의 형체란 걸 알 수 있었다. 측면 15도로 향한 얼굴의 형체. 어딘가 낯이 익었다. 보자마자 누군지 단박에 알만큼 친숙한 인물은 아니고 곰곰이 생각하니 그제야 떠오르는 얼굴. 바로 폴 오스터였다.


 

폴 오스터의 소설 <바움가트너>는 정원사란 의미의 ‘바움가트너’란 성을 가진 노교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0년 전 불의의 사고로 아내를 잃은 은퇴를 앞둔 노교수. 이것만으로도 주인공인 노교수 바움가트너의 일상이 어떨지 떠올랐다. 오랫동안 함께 삶을 꾸려왔기에 서로의 존재는 마치 공기처럼 사소한 일상의 곳곳에 자연스레 녹아든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어느 한쪽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면? 배우자의 사망은 우리가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가장 극심한 스트레스라고 한다. 배우자를 잃은 슬픔이 스트레스 수준을 넘어 염증이나 심하게는 심장 질환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될까. 어떤 일이 일어날까.

 

10년이란 세월은 쓰나미 같던 슬픔을 어느 정도는 잠재울 수 있겠지만 완전히 치유하진 못한다. 언제, 어떤 사소한 사건을 계기로 무의식 깊숙하게 가라앉은 상실은 순식간에 수면 위로 떠오르고 말 것이다. 바움가트너에게도 그랬다. 일상의 루틴이 아주 사소한 일로 어긋나는 것이 시작이었다. 아차 하다가 냄비를 태우고 손에 화상을 입는다. 가사도우미(플로렌스 부인)의 딸 로지타에게서 플로렌스 씨가 일하다가 손가락이 잘려나가는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흥분한 로지타를 간신히 안심시키지만 실은 그도 이미 심리적으로 동요가 된 상태. 어두운 지하실 층계를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뎌 그만 바닥으로 구르고 만다.


 

저게 시작이었다. 그는 혼잣말을 한다. 오늘의 첫 사고, 그로 인해 다른 모든 사고가 생겨나는 바람에 끝없는 사고로 얼룩진 하루가 되어 버렸지만..-31쪽


 

오래전 중고가게에서 고작 10센트 주고 구입한 냄비를 시커멓게 태운 일은 바움가트너에게 잊고 있던 아내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아내를 처음 만난 그 날을. 거기다 10년 만에 들어간 아내의 서재에서 그는 그녀의 발표하지 않은 글을 발견하게 된다. 또 팔이나 다리가 절단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팔다리에서 환지통이라는 통증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된다. 환지통에 호기심이 생긴 바움가트너는 관련 서적을 찾아 읽기 시작한다. 마치 그에게 환지통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산다는 건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고통을 두려워하며 사는 것은 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68쪽

 


2024년 4월 폴 오스터는 세상을 떠났다. <바움가트너>는 폴 오스터의 1주기에 맞춰 출간된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삶과 죽음, 기억과 정체성, 상실과 고통을 심오한 철학처럼 풀어놓았는다. <빵 굽는 타자기>, <폐허의 도시>, <달의 궁전>, <뉴욕 3부작> 등 그의 작품 대부분을 갖고 있으면서도 지금껏 만나지 못한 작가 폴 오스터. 그와의 첫 만남이 마지막 작품이라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바움가트너가 상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억을 따라 과거로 향하듯 나도 그렇게 해볼까. 그의 작품을 거꾸로 읽어보자. 의미있는 책읽기가 되지 않을까.


 

고개를 들고 눈을 가늘게 뜬 채 허공을 보는데 새 한 마리가 머리 위를 지나간다. 저렇게 하얀 구름이라니. (중략) 지구에는 불이 붙었고, 세상은 타오르고 있는데, 그래도 지금 당장은 이와 같은 날이 있으니 즐길 수 있을 때 이런 날을 즐기는 게 낫다. 이게 그가 보게 될 마지막 좋은 날일지 누가 알겠는가.- 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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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5-11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때 폴 오스터 정말 좋아해서 그의 책을 다 찾아서 읽은 적도 있네요. 그리고 달의 궁전 이후 좀 시들해졌는데 마지막 작품이라고 해서 이 책은 읽어야겠다하고 있어요. 몽당연필님 리뷰 보니까 역시 읽어야겠네요.
 
정선 목민심서 (다산의 지혜 에디션) ㅣ 다산의 지혜 에디션
정약용 지음, 다산연구회 편역 / 창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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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명석한 두뇌에 많이 배워 높은 자리에까지 오른 양반들이 하는 행동이 왜 이 모양인가.' 의문을 넘어 자괴감이 든다. 흔히 말하는 IQ, 누구보다 똑똑한 머리에 최고의 대학을 나와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들에게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자신들은 누구보다 월등하다는 우월감. '엘리트'로서의 권위는 인정받아 마땅하다는 자신감. 더 나아가 우월한 자신들이 권력을 휘두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오만함.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우리는 언제부터 단추를 잘못 꿰고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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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 대표실학자로 손꼽히는 정약용의 <정선 목민심서>. 지방의 수령이 백성을 올바르게 다스리기 위해 반드시 해야할 지침들을 수록해 놓았다. 학창시절 역사수업시간에 계속 강조했던 대목이라 '정약용'와 '목민심서'를 짝짓는 건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그 속에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알지 못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는 봐야 한다. 그때와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상인데 18세기, 200년 전 저술된 책을 구태여 읽을 필요가 있을까 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잘못된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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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면 죽고, 기쁜 일이 있으면 슬픈 일도 있는, 끊임없이 욕망에 사로잡히는 인간의 삶의 방식이 18세기와 지금이 다르지 않듯이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었다. 바로 백성을 대하는 태도였다. 


​

벼슬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두려워할 외(畏)’ 한 글자이다. 

의(義)를 두려워하고 법을 두려워하고 상관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두려워하여 마음에 언제나 두려움을 간직하면, 혹시라도 방자하게 되지 않을 것이니, 이로써 허물을 적게 할 수 있다. <정선 목민심서> 52~53쪽


​


십여 년 전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었다. 신유사옥으로 귀양살이에 올랐던 정약용이 두 아들과 가족,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가 수록된 책이었다. 고독하고 외로운 유배생활을 하면서도 줄곧 두 아들이 훌륭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는데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망한 집안의 자손이니 행실을 바르게 하라는 것에서부터 삐딱하게 행동하지(눈알도 함부로 굴리지) 말 것이며 밤낮으로 독서에 매진하라는 등 마치 곁에서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시시콜콜하게 짚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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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목민심서>는 한마디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의 지방수령 버전이라고 할까? 수령이 부임지로 떠나는 그 순간부터 도착해서 임기를 마치고 돌아갈 때까지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과 과업에 대해 짚고 있다. 첫 부임지로 가는 행장을 꾸릴 때 의복과 안장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청렴함을 유지해야 하는지, 백성에게 대하는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수령으로서 임금의 명령인 법을 행할 때는 어떠해야 하는지 등 아주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 일일이, 시시콜콜하게 전하고 있다. 


​


​"정약용 이 양반, 은근 잔소리꾼이네?" 


유배지에서 지내는 양반이 수령에게 이래라 저래라 너무 하는 거 아닌가 싶다가도 그의 심정을 생각하니 이해가 됐다. 인간을 본디 선하다고 여겼던 정약용, 그는 '백성은 하늘의 적자이고 임금의 백성이고 나라의 근간'으로 여겼다. 해서 자신이 수령으로서 '목민(牧民)', 백성을 위하고 보살피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지만 갇힌 몸이라 행동에 제약이 따르니 '심서(心書)'라고 책제목을 붙인 걸 떠올랐다. 그에겐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마을 수령들이 마치 자신의 아들처럼 여겨졌던 건 아닐까. 그의 간절한 바람이 생각하니 가슴 한켠이 저릿했다. 


​


상사의 명령이 공법에 어긋나고 민생에 해를 끼치는 것이면 굽히지 말고 꿋꿋이 자신을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 109쪽


백성이 곤궁하면 자식을 낳아도 잘 거두지 못하니, 깨우치고 타일러서 우리 자녀들을 보전케 해야 할 것이다. 141쪽


노동력을 부담지우는 것은 신중히 하되 되도록 줄여야 한다. 백성들에게 이로운 일이 아니면 해서는 안 된다. 229쪽



<정선 목민심서>를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만인에게 공평하다는 법이 유독 한 사람만의 이득과 권력을 이롭게 할 때, 백성보다 권문세가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것에 급급할 때, 정약용 그는 뭐라고 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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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속이지 않는 공부 - 공자부터 정약용까지, 위대한 스승들의 공부법
박희병 엮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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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다'는 불혹의 나이에 난 여느 때보다 혼란스런 날을 보냈다. 사소한 일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갈팡질팡 갈짓자로 헤매곤 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이렇게 살아도 되는걸까? 의문이 들었지만 어디에서도 속시원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무작정 책을 파고 들기 시작한 게 그 무렵부터였다. 이전의 나라면 눈여겨보지 않았을 인문서적을 집어 들었다. 읽고읽고 또 읽어도 도무지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책읽기가 이어졌다. 소설이라면 진작에 덮어버렸을텐데 이상하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고집이 발동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지나고보니 그때 책을 덮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이름만 알고 있던 철학자들의 책은 하나같이 어렵고 난해해서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말았지만 그래도 나의 뇌 어딘가 흔적이라도 남지 않았을까? 막연한 기대감 같은 걸 품게 됐다. 



오래전 그때처럼 난 요즘 또다시 혼란을 겪고 있다. 도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됐지? 이렇게 살아도 되나? 혼돈의 도가니 속에 빠진 듯한 느낌이랄까. 혼돈을 헤쳐나갈 실마리를 찾는 절박한 심정으로 집어든 책이 바로 <자신을 속이지 않는 공부>다.



<자신을 속이지 않는 공부>는 국문학자이자 고전문학 강의로 알려진 박희병 교수의 책이다. 1997년 <선인들의 공부법>으로 처음 출간되었다가 2013년에 개정판, 그리고 얼마전 <자신을 속이지 않는 공부>이란 제목으로 재개정되었다. 첫 출간부터 이십여 년이 훨씬 넘었지만 그만큼 이 책을 찾는 이가 많다는 의미가 아닐까. 



'공자부터 정약용까지, 위대한 스승들의 공부법'이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공자에서부터 [대학]과 [중용], 송나라 성리학자 장자, 주자를 비롯해서 이황, 이이, 서경덕 등 우리 옛성현의 말씀이 원문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그동안 동양고전을 읽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한자에 무지해서 시도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 <자신을 속이지 않는 공부>는 그런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짧은 글 속에 녹아든 말씀은 시간을 두고 오래오래 곱씹을수록 울림이 더 크게 남았다. 



공부란 특별한 것이거나 억지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며,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해나가면서 그것을 통해 자신의 인격을 향상시키고, 세상을 밝히며, 인간과 우주의 도를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서문/10쪽



​책은 성현의 말씀 중에서 공부에 대한 글만 묶어놓았다. 공부의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의 삶과 공부는 어떤 관계인지, 풍요로운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짚어준다. 무엇보다 내용이 어렵지 않아서 책장이 다음으로 내달리는 걸 자제하는 게 오히려 더 어려웠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필사였다. 



​마음 같아선 책 전체를 필사하고 싶지만 꾸욱 눌렀다. 조금씩 읽고  소리내어 읽으면서 유독 마음이 가는 문장을 고르고 골라 손으로 써나갔다. 



​공부라는 것은 비유컨대 배를 저어갈 때 삿대를 잡고 힘을 잘 써야 하는 것과 같다. 공부가 끊어지려는 곳에 이르러서는 더욱 공부에 힘을 쏟아 뒤집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공부하는 것은 참으로 배를 저어 물을 거슬러올라 가는 것과 같다. - 주자/64~65쪽



​중년이 되어 다시 공부를 하니 이전에 몰랐던 재미를 느끼곤 한다. 난 왜 학창시절엔 이걸 몰랐을까 후회를 넘어 한탄하기도 했다. 공부하고 싶은 건 너무 많은데 앞으로 남은 생이 살아온 날보다 짧을 것이 분명하기에 그저 안타까울뿐...



​뜻을 세움이 중요하다는 것은, 공부를 시작하고서도 행여 미치지 못할까 걱정하면서 늘 물러서지 말 것을 다짐해야 하기 때문이다. - 이이 /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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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의 세계사 - 문명의 거울에서 전 지구적 재앙까지, 2025 우수환경도서
로만 쾨스터 지음, 김지현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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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Planet)이냐, 플라스틱(Plastic)이냐

 


몇 년 전이었다. 잡지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거대한 빙산이 바다 위로 떠다니는 모습인 줄 알았는데 비닐봉지의 모서리 부분이었다. 간편함 때문에 자주 사용하는 비닐봉지가 바다에 떠다니는 모습을 거대한 빙하에 비유한 거였다. ​놀라운 건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가 한데 뭉쳐서 거대한 섬을 이루었는데 바다의 해류에 따라 움직이는 '플라스틱 아일랜드', 일명 '쓰레기섬'이 전 세계 해양에 다섯 개나 된다는 것. 그중 태평양에 위치한 쓰레기 섬의 면적이 한반도의 14배에 달한다니. 순간 누군가에게 머리를 세게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인간과 쓰레기는 가깝고도 오래된 관계’이며 ‘인간은 늘 쓰레기를 만든다’고 말하는 책을 만났다. 독일의 역사가이자 쓰레기 경제의 전문가로 알려진 로만 쾨스터의 <쓰레기 세계사>이다. 쓰레기의 역사에 대해 저자는 고대 인류인 네안데르탈인부터 쓰레기를 버려왔다고 한다. 그러다 19세기 들어서면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고 2차 세계대전을 지나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다가올 2050년엔 가정에서 배출하는 쓰레기가 34억 톤에 달할 거라고 예측한다. 34억 톤. 대체 얼마만큼일까.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쓰레기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세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어떤 상황에서 쓰레기가 쓰레기로 정의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 17쪽

 

저자는 인류의 역사를 근대 이전, 산업 시대, 대량 소비 시대로 나누어 각각의 시대마다 쓰레기를 어떻게 정의했는지,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과 정치적 조치를 이야기한다. 쓰레기의 역사는 인류가 정착생활을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배설물이나 음식 찌꺼기, 재 등을 생활하는 공간 밖으로 던졌고 그 쓰레기를 한곳에 모은 것이 바로 최초의 쓰레기장이었다.


 

산업 시대를 맞아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면서부터 쓰레기의 양은 급속도로 증가했다.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쓰레기를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청결하지 않은 환경은 각종 질병을 불러왔다. 특히 19세기 초 벵골에서 시작된 콜레라는 곧 다른 도시로, 유럽과 아시아까지 퍼져나갔고 쓰레기 처리 시스템과 도시 위생을 개선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리고 드디어 쓰레기통이 탄생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 대량소비 시대에 벌어진 상황은 실로 충격이었다.


 

베를린은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를 자처하며 동시에 마르세유를 세계에서 가장 더러운 도시로 격하했다. 뉴욕 시민들은 더러운 거리를 부끄럽게 여겨 문명화된 도시에서 이름을 빼고 싶어 한 반면, 파시즘은 말 그대로 이탈리아를 청소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쓰레기는 경제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로 여겨졌다. - 267~268쪽


작년에 ‘인류세(人類世)’를 알게 되었다. 인류가 문명의 발전으로 인해 지구의 지질이나 생태계에 미친 영향, 즉 지구 환경의 극적인 변화를 강조하기 위해 제안된 지질시대의 구분인데 저자는 ‘쓰레기세’를 거론했다. 지난 세기 동안 인류는 유래 없는 풍요를 누렸지만 그만큼 지구는 망가지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반찬 하나, 찌개 하나를 끓이고 나서 싱크대에 버려진 음식 쓰레기, 포장지들을 보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오늘 난 이렇게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냈구나 싶어서. 어찌해야 할까. 이대로는 정말 안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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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사노 아키라 지음, 이영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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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일이다. 평소처럼 출근한 신랑이 낮에 전화를 했다. 다짜고짜 “지금 애 잘 있냐?”고 물었다.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 잘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알았다” 하고선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도대체 무슨 일 때문인지 알 수 없었는데 퇴근한 신랑이 이렇게 말했다. 낮에 점심 먹으러 직원들과 이동하는데 어디서 ‘우리 애 우는 소리가 들렸’다는 것이다. 깜짝 놀라서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이가 보이지 않아 급하게 전화했다고. ‘혹시 깜짝쇼한다고 니가 아이 데리고 회사 근처로 왔다가 길을 잃어버린 건 아닌가 놀랐다’고.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근데, 진짜 우리 애 우는 소리였거든?” 그땐 웃고 말았지만 나 역시 종종 신랑과 비슷한 경험을 하곤 했다. 길을 가다가 우는 아이를 만나면 마치 내 아이가 우는 것처럼 마음이 쓰였다. 왜 울까? 혹시 엄마를 잃어버렸나? 어디 아픈가? 어떨 땐 가던 길 멈추고 아이 옆에서 말을 건네고 있기를 여러 번.(다행히 매번 엄마가 금방 나타났다) 당시 나와 신랑은 ‘부모가 된다는 건 어쩌면 오지랖이 넓어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제목을 보고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부모’가 아닌 ‘아버지’? 대체 무슨 일이지? 아이가 남자의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의 표지는 궁금증을 더해줬다. 활짝 웃는 아이에 비해 남자는 신체의 일부만 드러나 있어서 표정을 알 수 없다. 도대체 이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해서 본 띠지에 ‘영화 <괴물>의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화제의 소설’이란 문장이 눈이 번쩍 뜨였다. 아, <괴물>, 정말 좋았는데. 그 감독 작품이라면!!


 

‘장난감 인형은 세 개뿐이었다. 아이들은 넷이나 있는데’로 시작한 소설은 출생으로 인해 얽혀버린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완벽한 남자라면 이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료타. 가정적인 아내 미도리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 게이타와 함께 평범하지만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던 어느날 걸려 온 한 통의 전화로 인해 그들의 행복은 위기를 맞는다. 전화 발신지는 아들이 태어난 산부인과. 불안한 예감을 가까스로 누르고 찾아간 병원에서 료타와 미도리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는다. 출산 당시 병원측 실수로 아이가 바뀌었다고. 게이타가 료타와 미도리의 진짜 아들이 아니라고.


 

게이타가 잠들자 두 사람은 침대 위에 앉아 아이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닮은 곳을 찾는다. 닮지 않은 곳을 찾는다. - 64쪽


 

영화 <괴물>에서 같은 사건을 주인공 미나토의 엄마와 미나토의 담임과 미나토의 시선으로 전개하면서 우리 안에 있는 괴물을 직면하게 해준 고레에다 감독이 풀어낸 또 하나의 가족 이야기.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가족은 어느 순간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데.... 문득 제목의 의미가 궁금해진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니. 대체 어떻게?



어릴 때 종종 이런 상상을 했다. 나의 진짜 엄마 아빠는 다른 곳에 있을 거라고. 사실 난 부잣집에서 태어났는데 어쩌다 실수로 여기서 살고 있는 거라고, 언젠가 진짜 엄마 아빠가 날 찾으러 올 거라고. 그땐 뒤도 안 돌아보고 갈거야. 두고 봐. 언니들 틈에서 억울하거나 서운한 일이 생길 때면 이렇게 공상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지금 부모가 가짜라고 할 수 없을만큼 내 얼굴이 엄마와 아빠를 빼다 박았는데도 말이다. 며칠 전 신랑에게 물었다. “자긴 언제 아버지가 됐다는 걸 느꼈어?” 무뚝뚝한 천상 경상도 남자인 신랑은 짧게 답을 했다. “애가 아플 때” 핏줄이 아니었다. 낳은 정이 아니라 키운 정을 말하는 걸까.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영화는 어떻게 풀어냈을까.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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