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속이지 않는 공부 - 공자부터 정약용까지, 위대한 스승들의 공부법
박희병 엮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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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다'는 불혹의 나이에 난 여느 때보다 혼란스런 날을 보냈다. 사소한 일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갈팡질팡 갈짓자로 헤매곤 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이렇게 살아도 되는걸까? 의문이 들었지만 어디에서도 속시원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무작정 책을 파고 들기 시작한 게 그 무렵부터였다. 이전의 나라면 눈여겨보지 않았을 인문서적을 집어 들었다. 읽고읽고 또 읽어도 도무지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책읽기가 이어졌다. 소설이라면 진작에 덮어버렸을텐데 이상하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고집이 발동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지나고보니 그때 책을 덮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이름만 알고 있던 철학자들의 책은 하나같이 어렵고 난해해서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말았지만 그래도 나의 뇌 어딘가 흔적이라도 남지 않았을까? 막연한 기대감 같은 걸 품게 됐다. 



오래전 그때처럼 난 요즘 또다시 혼란을 겪고 있다. 도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됐지? 이렇게 살아도 되나? 혼돈의 도가니 속에 빠진 듯한 느낌이랄까. 혼돈을 헤쳐나갈 실마리를 찾는 절박한 심정으로 집어든 책이 바로 <자신을 속이지 않는 공부>다.



<자신을 속이지 않는 공부>는 국문학자이자 고전문학 강의로 알려진 박희병 교수의 책이다. 1997년 <선인들의 공부법>으로 처음 출간되었다가 2013년에 개정판, 그리고 얼마전 <자신을 속이지 않는 공부>이란 제목으로 재개정되었다. 첫 출간부터 이십여 년이 훨씬 넘었지만 그만큼 이 책을 찾는 이가 많다는 의미가 아닐까. 



'공자부터 정약용까지, 위대한 스승들의 공부법'이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공자에서부터 [대학]과 [중용], 송나라 성리학자 장자, 주자를 비롯해서 이황, 이이, 서경덕 등 우리 옛성현의 말씀이 원문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그동안 동양고전을 읽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한자에 무지해서 시도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 <자신을 속이지 않는 공부>는 그런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짧은 글 속에 녹아든 말씀은 시간을 두고 오래오래 곱씹을수록 울림이 더 크게 남았다. 



공부란 특별한 것이거나 억지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며,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해나가면서 그것을 통해 자신의 인격을 향상시키고, 세상을 밝히며, 인간과 우주의 도를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서문/10쪽



​책은 성현의 말씀 중에서 공부에 대한 글만 묶어놓았다. 공부의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의 삶과 공부는 어떤 관계인지, 풍요로운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짚어준다. 무엇보다 내용이 어렵지 않아서 책장이 다음으로 내달리는 걸 자제하는 게 오히려 더 어려웠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필사였다. 



​마음 같아선 책 전체를 필사하고 싶지만 꾸욱 눌렀다. 조금씩 읽고  소리내어 읽으면서 유독 마음이 가는 문장을 고르고 골라 손으로 써나갔다. 



공부라는 것은 비유컨대 배를 저어갈 때 삿대를 잡고 힘을 잘 써야 하는 것과 같다. 공부가 끊어지려는 곳에 이르러서는 더욱 공부에 힘을 쏟아 뒤집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공부하는 것은 참으로 배를 저어 물을 거슬러올라 가는 것과 같다. - 주자/64~65쪽



​중년이 되어 다시 공부를 하니 이전에 몰랐던 재미를 느끼곤 한다. 난 왜 학창시절엔 이걸 몰랐을까 후회를 넘어 한탄하기도 했다. 공부하고 싶은 건 너무 많은데 앞으로 남은 생이 살아온 날보다 짧을 것이 분명하기에 그저 안타까울뿐...



뜻을 세움이 중요하다는 것은, 공부를 시작하고서도 행여 미치지 못할까 걱정하면서 늘 물러서지 말 것을 다짐해야 하기 때문이다. - 이이 /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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