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독서처방 - 매혹적인 독서가 마녀의 아주 특별한 冊 처방전
김이경 지음 / 서해문집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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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아이들 그림책 중에 제가 무척 좋아하는 캐릭터가 있는데요. 바로 ‘마녀 위니’랍니다. 메부리코에 뾰족한 턱, 검은 옷, 검은 모자, 검은 고양이. 이런 외모만 보면 마녀 위니는 정말 마녀로서의 모든 조건을 갖춘 ‘완벽한’ 마녀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녀 위니를 마녀임에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건 바로 그녀의 행동에서 묻어나오는 엉뚱함과 발랄함, 그리고 따스함이 아닐까 싶어요. 그녀가 벌이는 코믹하고 유쾌한 소동을 보면서 한바탕 웃고 나면 왠지 가슴에 꽉 막혀있던 응어리가 풀어지는 느낌이 들거든요.




<마녀의 독서처방>이라는 책을 보고 바로 마녀 위니를 떠올렸는데요. 한편으론 궁금했어요. 여자라면 누구나 우아하고 곱고 아름다운 공주나 왕비, 하다못해 언제나 순수한 소녀이길 원하는데 왜 굳이 마녀이길 자청했을까...저의 궁금증은 이내 풀렸습니다. 누군가의 위에서 군림하고 대접받기를 원하는 공주가 아니라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 남의 눈을 빌리지 않고 자신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판단하고 마음이 끌리는 대로 살겠다는 다짐때문이라는 겁니다. 정말 근사한 생각 아닌가요? 저, 완전 반했습니다.




책은 ‘설렘’, ‘사랑’, ‘치유’, ‘희망’, ‘위로’, ‘이별’이라는 주제어에 따라 여섯 개의 파트로 나뉘어 있는데요. 매 주제어마다 다시 여러 상황으로 나누어놓고 있습니다. 예를들어 ‘설렘’ 파트에서 ‘처음처럼’, ‘가슴 뛰는 인생을 살고 싶다면’과 같은 상황을 제시하고 그에 맞춰서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지 소개하고 있는데요. 그것이 말싸움에서 이기는 법이나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 일상의 사소한 일에서부터 우아한 숙취 해소제나 열대야에 잠을 설칠 때, 값싸고 몸에 좋은 다이어트 비법처럼 ‘아니, 이런 것도?’란 의문이 들만큼 의외의 상황들과 슬픔이 목까지 차오르거나 뜻밖의 봉변을 당하거나 사랑을 잃었을 때처럼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하나하나 말을 건네고 들어주고 상처를 쓰다듬고 위로의 말, 치유의 책을 건네줍니다. 그것도 단순히 ‘이런 상황에서는 이러이러한 책을 읽으세요’라는 식으로 상황과 책을 연결 짓는 것이 아니에요.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상과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변화가 어떠했는지 일러주고 있어서 평소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답니다.




상징적으로 학문적인 언어가 아니라 일상적인 언어, 쉽고 편안한 문장으로 되어 있어서 책은 쉽게 읽힙니다. 하지만 그냥 설렁설렁 읽고 넘어가면 이 책을 읽는 의미를 찾을 수 없습니다. 감기나 몸살, 체했을 때 말간 죽을 먹으면서도 꼭꼭 씹어서 먹는 것처럼 이 책도 꼭꼭 씹는 느낌으로 읽어야 할 것 같아요. 각자가 처한 상황, 치유해야할 마음의 상처가 무엇인지 차례를 보고 골라서 읽으면 더 좋겠지요.




책을 좋아해서인지 책에 관한 책,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 왠지 끌렸습니다. 하지만 막상 책을 읽고 나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부담스러웠어요. 책 속의 저자가 말하는 책들을 나는 아직도 안 읽고 뭐했나 싶어 조바심이 나곤 했거든요. 이 책은 달랐습니다. 저자가 알려주는 책을 안 읽었더라도 아무렴 어때...언제든 마음이 원할 때 읽으면 되지...지금 내게 꼭 필요한 것,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처방이란 게 바로 그런 거잖아요. 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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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트 - 인간의 행동 속에 숨겨진 법칙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 지음, 강병남.김명남 옮김 / 동아시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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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Numbers]란 미국드라마를 본 적이 있습니다. 수학천재인 동생이 FBI 수사관인 형을 도와서 사소한 절도범에서부터 크게는 테러범을 추적하는 등 수많은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의 드라마인데요. 처음 볼 땐 왠지 과장되고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아무리 수학이 논리적이고 다른 학문의 기초가 되는 학문이라 하더라도 미궁에 빠진 사건의 실마리를 풀고 범인을 추적하는데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근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국가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행동과 성향들을 수학천재인 동생이 분석과 추론, 예측의 단계를 거치는 수학적인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데요. 아무리 난해한 사건도 수학을 이용해서 도전적인 자세로 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난데없이 웬 드라마 얘기?’싶지만 이번에 <버스트>란 책을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올랐던 게 바로 그 드라마였습니다. 왜냐면 이 책 <버스트>의 부제이자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이 바로 드라마 속 수학천재가 역할이자 임무인 ‘인간의 행동 속에 숨겨진 법칙’이었거든요.




책은 우리 인간의 행동이 얼마나 예측가능한지 하산이라는 사람의 일화를 통해 알려주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하산은 설치예술가라는 직업과 뉴욕 억양을 쓰는 엄연한 미국인이었지만 9.11 테러가 벌어진 이후였기에 FBI는 ‘하산’이란 이름과 짙은 피부색의 외모, 잦은 해외방문에 초점을 맞추고 그가 틀림없는 무슬림, 그것도 폭탄물을 소지한 테러리스트라고 짐작해버립니다. 터무니없는 오해 때문에 오랫동안 FBI로부터 심문을 받은 하산은 이후 자신의 모든 행적을 낱낱이 FBI에 보고하는가 하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만인에게 공개하기에 이릅니다. 또 고든 벨과 데브 로이도 하산처럼 자신의 모든 행동과 일상을 사진과 데이터로 저장해두는데요. 이들의 일상과 행동들이 기록된 데이터베이스가 물리학자에서부터 컴퓨터 과학자, 수학자, 심리학자 등 여러 전문가들에 의해서 연구 분석되었구요. 더 나아가 우리의 행동 대부분이 자연계에서처럼 어떤 법칙, 패턴이 있어서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거지요. 다만 어떤 법칙에도 예외가 존재하듯이 인간의 행동도 마찬가지인데요. 하산처럼 인간 행동의 규칙적인 패턴을 따르지 않는 경우를 책에선 ‘예욋값(아웃라이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책의 제목이기도 한 'Bursts'는 과연 무슨 의미일까요? 사전을 찾아보면 ‘터지다’, ‘파열하다’라고 되어 있는데요. 저자는 우리 인간의 행동을 분석할 때 중요도에 따라 큰 사건과 작은 사건으로 이뤄져있는데요. 어느 시점에 이르러 갑자기 어떤 사건들이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폭발성을 띄는데 이것이 우리 인간의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저희 친정엄마께서 간혹 이런 말씀을 하세요. “오늘은 하루종~일 쌍나팔이 분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요, 하루 종일 찾는 사람도 전화도 없어서 심심한 날이 있는가하면 또 어떤 날은 가족이나 친구들간에 중요한 모임이나 행사나 여러 개 겹쳐서 생기는 바람에 아침부터 정신없이 여기저기 찾아다녀야 할 때. 그래서 그 여러 가지 일 중에서 꼭 가야되는 곳은 가고, 다른 곳에는 못가는 일이 벌어지는 경우가 생기는데요. 저희 엄마가 ‘쌍나팔 분다’고 하는 이런 현상을 저자는 어느날 갑자기, 무작위로 일어나는 것이 아닐뿐더러 이것 역시 우리 인간의 행동에 나타나는 패턴이고 법칙이라는 겁니다. 또 바로 그럴 때 우리에게서 ‘우선순위 결정’이라는 행동이 나타난다고 하는데요. 저자는 책에서 그런 패턴들을 볼 수 있는 여러 경우를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증명해보이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소설인지, 과학서적인지 간혹 분간하기 어려웠는데요. 그건 이 책이 과학과 역사 두 가지 내용 모두를 담고 있어서일거란 생각이 듭니다. 16세기 당시 헝가리의 십자군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죄르지 세케이가 십자군을 이끌고 원정길에 나섰다가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역사적인 사건 앞에서 그가 어떻게 대응했으며 그로 인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 알려주는데요. 이는 현대가 아닌 16세기에 인간의 행동을 예측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려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라는 영화가 생각납니다. 우연히 만난 친구가 자신의 가방에 몰래 넣어둔 디스켓 때문에 사무실에서 해고당하고 모든 금융거래도 중지된 채 순식간에 국가 안보국으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되어버린 주인공(윌 스미스), 그가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국가안보국과 싸워나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였는데요. 그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했던 것은 ‘한 나라가 국민들을 대상으로 감청과 도청 행위를 하는 것이 법적으로 타당한가?’하는 거였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거리 곳곳에 설치된 cc-tv만 봐도 저것이 우리 시민을 위한 도구인지, 우리를 감시하고 언젠가 위협하기 위한 공포의 도구인지 헛갈리곤 했는데요.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도 사실 충격적이었습니다. 제가 무심결에 한 행동들,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을 읽고 답장을 쓰고, 여러 사이트를 검색하고, 온라인으로 주문할 때, 누군가와 전화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 등의 모든 일상적인 행동이 전부 데이터베이스로 저장, 분석의 과정을 거쳐 제가 어떤 행동의 패턴을 가지고 있으며 미래의 제가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니...실로 놀랍습니다. 동전의 뒷면처럼 과학의 이면을 본 것 같아 섬뜩하지만 그래도 볼 가치는 충분한 책이었어요. 저자의 다른 책 <링크>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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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번지는 곳 불가리아 In the Blue 3
백승선.변혜정 지음 / 쉼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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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만 나면 작은 가방을 둘러메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사람 많고 번잡한 곳을 꺼리는 사람도 있는데요. 저는...부끄럽게도 후자에 속합니다. 물론 마음만으로는 언제나 전자에 속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낯선 곳에서 느낄 수 있는 새롭고 신선한 충격은 그 자체만으로도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는 거 왜 모르겠습니까. 다만 용기가 없어서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 건데요. 이런 제게 불쑥불쑥 여행 가방을 꾸리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책이 있어요. 바로 가치창조의 번짐 시리즈랍니다.




첫 번째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 오렌지빛 지붕이 오밀조밀 머리를 맞대고 모여 있는 풍경을 수채화풍의 맑은 그림으로 된 책을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구요. <달콤함이 번지는 곳, 벨기에>는 작은 면적의 왕국에 중세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간직된 것과 달콤한 초콜릿, 어린 시절 즐거움을 안겨줬던 동화의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사랑이 번지는 곳, 불가리아>. ‘불가리아 = 요구르트’. 사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불가리아는 제게 이런 공식이 성립하는 나라였습니다. 우유를 소화시키지 못하는 저도 먹을 수 있는 유제품이 있다는 거. 왠지 기분 좋은 일이었거든요. 그런데 불가리아는 ‘요구르트’만이 아니었어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여성 노동자가 많은 여성의 나라이고 온 도시에 장미의 향긋함이 그득한 장미의 나라였으며 어딜 가더라도 거리 곳곳에 노인들이 자리한 노인의 나라, 이름마저 낯선 키릴 문자의 나라였습니다.




책은 불가리아의 수도이자 고대 그리스어로 ‘지혜’를 뜻하는 소피아를 시작으로  발칸반도 최대의 수도원인 릴라 수도원, 슬라브 문화의 중심지이며 ‘불가리아의 아테네’로 불리는 벨리꼬 투르노보, 우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면서 거리 곳곳에 로마와 터키의 영향을 받은 건축물과 유적이 남아있는 곳 플로브디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답니다.




번짐시리즈의 책을 보는 저만의 방법이 있습니다. 처음엔 책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본문의 글귀는 애써 외면하고 오로지 사진에만 집중해서 봅니다. 그다음엔 사진과 글을 함께 보구요. 세 번째, 앞서 눈여겨봐뒀던 사진들을 또한번 꼼꼼하게 살펴보는데요. 처음엔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오래도록 눈길이 머물지만 가장 최후까지 남아 제게 큰 인상을 남기는 건 역시 그네들의 일상이 담긴 모습이었습니다.




한껏 짜증이 나서 성큼성큼 걸어가는 엄마 뒤로 울먹이며 종종 거리며 따라가는 어린 아이의 모습을 보며 생각합니다. 엄마가 왜 화가 났지? 아이의 뒤에 보이는 가판대의 풍선과 맥도@@ 간판을 보곤 지레 짐작해보는 거지요. 아하...아이가 아이스크림이나 햄버거를 사달라고 떼를 쓴 모양이네. 근데 엄마는 임신해서 컨디션이 안 좋은 거야. 딱해서 어쩌누...벼룩시장의 도서매장에 늘어놓은 책표지를 보면서 혹시나 제가 읽었던 책은 없나(설마 그럴리야 없겠지만)...코를 박고 뒤져보구요. 우리나라의 변두리 마을이나 산동네 마을을 연상케 하는 사진에선 왠지 친근함이 묻어나왔습니다.




하지만 가장 극적이고도 아름다운 장면은....바로 두 연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앞과 뒤, 옆에서 볼 때의 모습이 모두 다르다는 알렉산드르 네브스키 교회를 요모조모 감상할 때였어요. 그 유명하다는 교회를 뒤로 하고 입을 맞추는 연인의 모습. 그들의 옆에 세워진 두 대의 자동차, 운전석 문이 열린 걸 보고 제 식대로 해석해버립니다. 어떤 이유 때문에 이별을 선언했다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극적인 화해를 한 게 아닐까. 이 얼마나 낭만적인 모습인가....




바로 어제였어요.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누군가가 여름휴가로 서유럽을 다녀왔다는 얘길 했는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말이 저절로 나왔답니다. “아아.....지인~짜 부럽다”




<사랑이 번지는 곳, 불가리아>. 이 책을 읽는 데엔 아주 잠깐의 시간이면 됩니다. 책이 담고 있는 모습과 풍경에 시선을 빼앗기고 감탄사를 늘어놓는 시간도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만나고 가슴에 가득 번져오는 기운, 열기, 여행에 대한 충동은...아마 오랫동안 계속될 것 같습니다. 이 일을 어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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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 신의 존재에 관한 한 과학자의 견해 사이언스 클래식 16
칼 세이건 지음, 박중서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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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요근래 밤하늘을 보신 적 있으십니까?” “거기서 별을 몇 개나 보셨습니까?” 얼마전 도서관의 ‘재미있는 우주체험 이야기’라는 강좌를 들었는데요. 강좌를 마악 시작하자마자 선생님께서 이런 질문을 하시더군요. ‘별을 몇 개나 보셨’냐고. 밤하늘에 무수히 많은 별이 있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난데없이 웬 엉뚱한 질문?...하고 생각하던 참에 함께 강좌를 듣던 지인이 그러더군요. “몇 개 밖에 안 보이던데요.” 엉? 이게 무슨 소리야? 몇 명에게서 비슷한 대답을 들으신 선생님께선 그러시더군요. “그렇죠? 현란한 불빛이 가득한 도시의 하늘에선 별을 찾기가 정~말 힘듭니다. 하지만 아주 외딴 곳, 촛불 하나만큼의 불빛도 없는 곳에 가보세요. 거긴 다릅니다. 거긴...정말, 별이 쏟아집니다.” 그리고 이어진 강의시간 내내 선생님께선 우리 눈에 보이진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밤하늘에 가득한 별을 보여주셨습니다. 별의 탄생과 성장, 죽음 그리고 우리 은하수 너머에 펼쳐진 또 다른 은하수까지.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을 마악 손에 잡자마자 그때의 강의가 생각났어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의 모습이 담긴 표지 사진을 보며 이 많은 별들 속엔 어떤 세계가 펼쳐져 있을까 알고 싶었습니다. 하늘의 별과 ‘과학적 경험’과 ‘신의 존재’가 대체 어떤 상관관계를 갖고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신의 존재에 관한 한 과학자의 견해’라는 부제가 달린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은 25년 전인 1985년 글래스고 대학교에서 열린 칼 세이건의 기퍼드 강연을 정리한 책인데요. 인문학자이자 천문학자이며 천체물리학자인 칼 세이건은 아홉 번에 걸친 이 강연을 통해 과학과 종교, 그리고 신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견해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책은 ‘자연과 경이’,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저자는 종교라는 영어단어가 ‘함께 묶는다’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비롯되었으므로 ‘과학과 종교의 목표는 결국 동일하다’고 믿는다고 털어놓습니다. 다만 종교와 과학이 진리에 접근하는 방식과 무엇이 진리인지 주장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맑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이해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는데요. 여러 장의 우주 사진을 통해 광활하고 거대한 우주 공간 속에서 우리는 아주 보잘 것 없는 존재에 불과한데 이런 과정 어디에도 ‘특정한 신학적 결론이 도출되지 않’는다면서 세계의 여러 신화를 비롯해 서양 종교에서 신들이 지닌 문제점을 짚어줍니다. 그렇다고 저자가 신의 존재나 종교 자체를 부정하느냐, 그렇지도 않습니다. 우리 인간들에게 있어 종교가 어떤 부분을 차지하는지, 그로 인해 인간의 삶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대목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양종교에서 주장하는 신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주장이나 창조론이나 종교적인 기이한 현상이나 체험 등은 의문이 든다며 왜 그런지 여러 과학적인 증거들을 통해 제시합니다.




외계의 지적 생명체에 관해서도 저자는 지금까지 시도되었던 여러 탐구 사례와 현상을 예를 들면서 설명합니다. 외계로부터의 메시지를 비롯해 외계인의 생김새 등을 과학적인 측면으로 접근함과 동시에 종교에서 주장하는 것에 어떤 허점이 있는지 짚어줍니다. 깜짝 놀란 대목도 있어요.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우리의 은하의 사진이 실제 지구가 속한 은하가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의 은하를 관찰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을만큼 적당히 떨어진 거리에 카메라를 보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와 가장 흡사한 은하, 안드로메다자리 M31의 사진으로 대신한다는 거지요.




칼 세이건의 책은 이번의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이 처음입니다. 호기심에 그의 <코스모스>와 <창백한 푸른 점>을 구입했지만 아직 읽지 않았거든요. 해서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내가 얼마나,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저자의 강연은 녹취록이란 걸 실감할 수 없을 만큼 문장이나 내용 전달이 쉽고 리드미컬했지만 또, 책의 후반부에 각 강연마다 저자가 여러 참석자들과의 나눈 질문과 답변이 수록되어 있지만 그래도 왠지 조금 답답했습니다.




며칠 전이었어요. 책의 후반부를 읽을 즈음, 이런 기사를 봤습니다. 미국 하버드대의 저명한 교수가 국내에서 강연을 하는데 그 강연 참가 신청에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미국에서조차 깜짝 놀랐다고. 그 기사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만약 저자인 칼 세이건이 아직도 생존해 있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그의 강연이 국내에서 이뤄진다면 어떨까. 그랬다면 전 아마 수많은 참가신청자 중에서 내가 뽑히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을 겁니다. 틀림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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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섬길여행 - 도보여행가 유혜준 기자가 배낭에 담아온 섬 여행기
유혜준 지음 / 미래의창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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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비해 여행서적을 접하는 횟수가 늘었습니다. 전 국민의 대부분이 휴가를 떠나는 계절이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국내든 국외든 이름난 여행지의 아름다운 풍경과 문화, 현지 사람들의 일상을 주로 전하던 여행서적에 요즘은 하나의 ‘테마’가 더해졌습니다. 제주도의 ‘올레길’을 걷는 여행서적이 있는가하면 전국의 이름난 나무를 찾아 떠나는 여행도 있구요. 요트를 타고 땅이 아닌 바다의 백두대간을 따라가는 여행까지...요즘 전 정말 괴롭습니다. 왜냐면 제가 여행가고 싶다고 해서 훌쩍 떠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거든요. 웬만하면 여행서적을 자제해야지 하는데도 자꾸만  눈이 가니 큰일입니다. <남도 섬길여행>도 그랬어요. ‘남도’란 말만으로도(불혹이 넘도록 가보질 못한 저는) 가슴이 두근대는데, 여기에 ‘섬길여행’이라...두 눈이 반짝, 귀가 솔깃해지네요.




<남도 섬길여행>은 도보여행가로 알려진 저자가 남도의 섬들을 둘러보면서 겪었던 인상 깊은 일, 사람들, 풍경에 관해 전하고 있습니다. 책은 소치 허련 선생이 낙향하여 기거했다던 운림산방이 있는 진도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무지한 탓에 소치 허련 선생에 대해 무엇 하나 알지 못했지만 사진을 통해 만난 운림산방은 무척 정갈하고 운치가 넘쳤습니다. 이곳을 둘러보며 저자는 어린 시절 외가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는데요. 고즈넉함이 가득한 운림산방, 저도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소록도도 인상적이었어요. 소록도는 그저 한센인들이 머무는 곳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그곳에 해수욕장이 있다니, 처음 알게 됐답니다. 바닷물이 드나들 때마다 차르르르 소리가 난다는 거제도의 몽돌해수욕장처럼 거금도 바닷가에는 공룡알이 있다고 하는데요. 재미난 건 몽돌해수욕장에선 작은 몽돌 하나라도 가져가지 못하게 했는데, 공룡알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아니, 이게 웬 떡. 해변 가득 널려있는 공룡알 중에서 이쁘고 빛깔 좋은 걸로 한 두 어개 가져와야겠다...싶겠지만 문제는 크기가 너무 크거니와 무게도 무거워서 도저히 가져올 수 없었다니...얼마나 아쉬웠을까요. 이뿐 아니라 [서편제]의 촬영지였던 청산도는 슬로시티로 지정되기도 했는데요. 제주의 올레길처럼 청산도에는 슬로길이 있다는데 어떤 길일지 너무 궁금하구요. 버스가 다닐 만큼 섬이 크지 않아서 버스가 없다는 거문도도 언젠가 꼭 한 번 가보고 싶어요. 그래서 저자가 걸었던 길, 바라봤던 풍경, 만났던 사람들을 직접 내 두 발로 걸으며 바라보고 감탄하고 만나고 싶습니다.




올해는 정말 여행운이 없나 봅니다. 큰아이의 여름방학동안 1박 2일의 짧은 여행을 두 번 계획했지만 한 번도 가질 못했어요. 그때마다 집안 어른이 편찮으시거나 아이가 아팠거든요. “아쉽지만 전 이번에 못가요. 저 대신 제 몫까지 즐겁게 놀고 오세요” 침울한 목소리로 이런 얘길 전하는 제게 지인이 그러더군요. 한 명이라도 빠지면 재미없는데...아쉽다고. 내년엔 더 좋은 데로 가자고. 그래서 제가 그랬죠. “내년엔 있죠....우리 좀 멀리 가요. 남도로. 나 꼭 가보고 싶어!” 내년엔....갈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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