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타이어
이케이도 준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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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의 일이다. 직장을 통해 알게 된 분에게서 갑작스런 소식이 날아왔다. 저녁 찬거리를 사기 위해 집을 나섰던 부인이 갑자기 인도로 들이닥친 트럭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는 거였다.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그 사고가 있기 불과 얼마 전에도 그 가족을 만났는데... 남편과 아내, 중학생부터 막 돌이 지난 넷째 꼬맹이가 함께 하는 그야말로 요즘 보기 드문 다자녀에 화목한 가족의 전형이었는데, 그런 집에 이렇게 큰 불행이 찾아들다니. 다정한 엄마를 잃고 아이들은 어떻게 지낼까. 가족을 잃은 아픔을 극복하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려야할까. 그리고 분노가 치밀었다. 대체 운전을 어떻게 했길래 멀쩡한 사람을 죽이는 거냐고.




그날도 분명 여느 때와 다른 평범한 하루였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런데 어느 누군가에게는 그 날이 생애 마지막 날이 되고 말았다. 오랫동안 앓아온 지병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여느 날과 다름없이 길을 가다가 어디선가 갑자기 날아든 타이어에 맞아 쓰러지고 그걸로 끝. 가족들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억울함과 깊은 슬픔의 늪에 잠기고 만다.




그 날의 사고는 해당 차량이 소속된 아카마쓰 운송회사 사람들에게도 충격을 가하고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철두철미하게 정비와 점검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차량 제조사인 호프자동차에서 사고원인이 정비불량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아카마쓰 운송회사의 큰 고객인 업체로부터 거액의 배상금 요구와 거래를 끊겠다고 통보해오고 은행에서도 자금회전을 도와달라는 아카마쓰의 요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아 운영해오던 운송회사가 한 번의 사고로 도산의 위기에 처하자 아카마쓰는 의문을 품는다. 사고가 단순히 정비불량이 아니라 차량 자체의 구조적 결함이 아닐까?라고. 그러던 차에 아카마쓰 운송에서 일으킨 사고와 비슷한 사고가 다른 지방에서 있었는데 그 사고 역시 호프자동차였다는 걸 알게 된다. 한편 호프자동차의 사와다를 비롯한 일부 직원들은 사고차량을 단순한 ‘정비불량’이 아니며 회사에서는 이미 예전에 일어난 사고에 대해서 은밀히 리콜 은폐를 했다하려한다는 걸 알게 되는데...




첨엔 코믹판타지물인 줄 알았다. 그 오해의 바탕에는 <하늘을 나는 타이어>라는 제목이 한몫 했다. ‘하늘을 나는 양탄자’도 아니고 ‘하늘을 나는 빗자루’도 아닌 ‘타이어’라니! 상식적으로 봤을 때 절대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모방송국의 ‘아니, 이런 일이’에 나올만큼 엽기적이고 허무맹랑한 일일거라고.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내가 상식적으로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했던 일이 일본에서 실제로 일어났었다고 한다. 대형 트럭에서 타이어가 분리되는 사고로 인해 해당자동차에서는 대대적인 리콜이 이뤄졌다는 게 아닌가. ‘도요타 사태를 예견한 화제작’이란 띠지의 문구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재벌급 거대기업을 상대로 일개 운송회사가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손에 땀을 쥐고 지켜봤다. 600쪽이 넘는 두툼한 책은 무서운 속도로 뒤로뒤로 내달렸다. 자신들의 숨통을 바짝 죄어오는 상황 속에서 누구 하나 포기하지 않고 모두가 힘겹게 간신히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그동안 대기업이라면 무조건 신뢰하거나 일단 감탄사를 늘어놓곤 했는데 요즘의 국내 상황과 이 소설을 통해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기업이라는 명함 하나로 모든 것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좌지우지 하려는 검은 속내를 들여다본 느낌이랄까?




이케이도 준. 저자의 작품은 이 소설이 처음이다. 하지만 <하늘을 나는 타이어>를 통해 그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졌다. <은행원 니시키 씨의 행방> 이 소설은 또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호기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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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동화집 1 안데르센 동화집 1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빌헬름 페데르센 외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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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그림형제, 라퐁텐, 샤를 페로...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해서 늘 손에 달고 있으면서도 누군지 몰랐습니다. 그들이 쓴 작품도 당연히 몰랐지요. 아니, 당시 제겐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어요. 안데르센이든 그림 형제든 혹은 누구의 작품인지 몰라도 인어공주와 엄지공주, 미운 오리 새끼, 눈의 여왕은 변함없이 제게 아름다운 환상과 재미있는 이야기의 세계를 전해줬거든요. 그러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본격적으로 동화공부를 하면서 알게 됐습니다. 안데르센을 비롯한 그림형제, 샤를 페로가 누구고 그들의 동화가 아동문학에 미친 영향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래서 <안데르센 동화집>을 만나는 마음이 남달랐습니다. 책의 서두에는 안데르센이 동화작가로 거듭나기까지의 삶에 관한 짤막한 글이 수록되어 있는데요. 이 부분에 관해서는 예전에 책을 통해 알게 됐는데요. 조금 놀라웠습니다.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감동을 안겨주는 아름다운 동화를 쓴 사람이기에 당연히 풍족한 집안,  다정한 가족들 틈에서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냈으리라 생각했는데 안데르센의 실제 삶은 그렇지 못했거든요. 오히려 지독하게 가난한 집안에서 미운 아기 오리 새끼처럼 곱지 않은 외모와 엉뚱한 행동을 일삼아 주위 사람들에게서 놀림을 받기도 했다지 뭐예요. 그랬던 그가 자신의 환경을 극복하고 꾸준히 노력한 끝에 마침내 ‘동화의 임금’이라는 칭호를 받기에 이른 겁니다. 그야말로 미운 아기 오리 새끼가 아름답고 우아한 한 마리의 백조가 된 거지요. 그런 그의 작품을  정식으로, 일부지만 모아모아서, 그것도 완역본으로 만나기는 이번이 처음이니 무척 기대가 됐습니다.




책은 잘 알려진 [엄지 아가씨] [인어공주] [황제의 새 옷] [들판의 백조]를 비롯해 모두 16개의 동화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제일 먼저 만난 [부시통]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어요. 마치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마법의 힘이 있는 부시통으로 인해 병사는 아름다운 공주님을 만나고 결혼도 한다는 이야기인데요. 그동안 알지 못했던 안데르센의 새로운 동화여서 그런지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가하면 [완두콩 위에서 잔 공주]처럼 이미 알고 있던 동화지만 ‘어, 이게 안데르센 거였어?’했던 경우도 있었답니다.




하지만 축약본이 아니라 완역본이기에 예전에 우리가 알고 있던 동화와는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 들어요. 단어나 문장의 표현이 다소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이를테면 [인어공주]에서 마녀가 인어공주에게 인간의 다리를 주는 조건으로 목소리를 가져갈 때 ‘혀를 싹둑 잘랐’다고 하거나 [작은 클라우스와 큰 클라우스]에서 가난한 작은 클라우스가 심술궂은 큰 클라우스를 꾀를 내어 속여서 큰 강물 속에 밀어 넣는다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초등 고학년 이상의 아이라면 이 부분에 대한 걱정은 조금 덜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보면 아이들은 이런 대목에서 오히려 후련함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련한 느낌을 주는 컬러 삽화로 신비로운 분위기가 한층 업그레이드 된 <안데르센 동화집>. 아름답고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를 꿈꾸는 아이와 동심을 되찾고 싶은 성인 모두에게 즐거운 시간을 선사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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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대중문화를 엿보다 - 젊은 인문학자의 발칙한 고전 읽기
오세정.조현우 지음 / 이숲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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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문/이과를 선택해야 할 때, 전 망설이지 않고 이과를 택했습니다. 어렵고 고리타분한 고전보다 차라리 물리 과목을 공부하는 게 더 수월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만약 그때 고전을 택했다면, 그래서 문과를 갔더라면 어땠을까 요즘 들어 간혹 생각해보곤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꼭 읽어봐야 할 것이 바로 고전인 것 같거든요. 그래서 기회가 닿는 대로 고전을 읽어보긴 하지만 완전히 이해하기엔 제가 아직 부족한 게 많다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우리 고전을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고심하다가 한 권의 책을 만났습니다. 바로 <고전, 대중문화를 엿보다>입니다.




표지를 가만 보니 참 재밌습니다. 나이 지긋한 양반이 옆으로 비스듬히 앉아서 갖가지 행태의 젊은이들 모습을 바라보는데요. 그 모양이 꼭 지하철에서 노인이 서로에게 몰입하는 젊은 연인들을 보며 쯧쯧, 혀를 차는 것 같습니다. 아, 그러고보니 부제가 ‘젊은 인문학자의 발칙한 고전 읽기’네요. ‘발칙한’이라...어찌보면 식상한 표현 같지만 그래도 왠지 솔깃해집니다. 왜, 무엇을 발칙하다고 했을지...




<고전, 대중문화를 엿보다>는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오는 신화와 전설을 비롯해 우리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소설, 판소리들을 이야기하는데요. 주제에 따라 ‘나는 누구인가’ ‘오직 그 사람이기에’ ‘여자의 영원한 숙제, 남자’ ‘새로운 세상을 열다’ ‘영웅이 꿈꾸는 세상’ 이렇게 다섯 개의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구요. 각각의 주제에 해당하는 우리의 고전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단순히 고전의 내용을 알려주는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고전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들, 깊이 고민해봐야 할 것들을 짚어줍니다. 예를들어 [이생규장전], ‘왜 오직 그 사람만을 사랑하는가?’에서 저자는 [이생규장전]의 간단한 내용과 함께 한 남자와 여자가 사랑에 빠져 오직 서로만을 바라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려주면서 절친한 친구 사이 ‘지음’에 대해서 알려주는데요. 여기서 저자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예전에 제가 고리타분하고 어렵다고 생각했던 고전들이 알게 모르게 현대의 대중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몇 몇 영화를 통해 알아보는데요. [이생규장전]에서는 [원스]와 제가 무척 인상적으로 봤던 [트와일라잇]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런 형식으로 12개의 고전 작품을 소개하고 있어서 저자가 짚어주는 것들을 꼼꼼하게 되새기다보면 지금보다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을뿐더러 사고를 더욱 깊게 하는 좋은 훈련이 될 것 같습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 [홍길동전]을 읽을 즈음이었어요. 여러 책을 통해 [홍길동전]에 대해 익히 알고 있는 터라 가볍게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놀라운 일이 터졌지 뭐예요? 외교부 모 장관의 딸이 특채로 임용되었는데, 직원의 ‘임용 자격기준’을 변경하면서까지 변칙적으로 이뤄진 과정이 실로 놀랍더군요. 그것을 두고 ‘현대판 음서제도’란 비판이 일었는데요. 그걸 계기로 음서제도에 대해 다시 한번 알아볼 수 있었었지만 고, 저자가 말한 것처럼 고전이 현대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마음은 꺼림칙하네요.




요즘 들어 오래전에 읽었던 고전문학 작품을 다시 만나고 있는데요. 느낌이 정말 새롭습니다. 처음 읽었을 땐 이해하지 못했던 대목을 이제서야 고개 끄덕이게 되고 미처 느끼지 못했던 부분까지 새롭게 만나는 경험을 했습니다. 고전은 단순하게 보면 옛이야기에 그칠지 모르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저의 일상과 삶이 연결될 때 고전은 고전(古典),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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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한번은 동유럽을 만나라 일생에 한번은 시리즈
최도성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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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 바로 유럽입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자주 접했던 미국의 현란하고 화려한 아름다움도 물론 직접 눈으로 보고 싶지요. 하지만 유럽만은 못합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유럽에는 왠지 저의 시선을 끌고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있어요. 엄숙한 듯하면서도 귀를 기울이면 재잘거리고 속닥거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고 장난감처럼 아기자기한 건물이 가득한 거리에선 왠지 낭만적인 사랑이 무르익을 것 같거든요. 하지만 동유럽은 좀 다릅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스위스, 네덜란드...에 비해 좀 경직된 느낌이 들어요. 왜 그럴까요? <일생에 한번은 동유럽을 만나라>. 최근 들어 쏟아지듯 출간되는 수많은 여행서적 중에서 이 책은 단연 눈에 띄었습니다. 예전에 저자의 전작인 <일생에 한번은 스페인을 만나라>를 읽은 것도 이유겠지만 그보다 제목의 ‘동유럽’이란 단어가 절 사로잡았습니다. 그래서 읽게 됐어요. 어떤 나라가 동유럽에 속하는지도 모르는 제가.




책에는 여러 동유럽 국가 중에서 체코와 폴란드, 슬로바키아에 대한 여행이야기가 담겨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체코, 특히 프라하에 관한 내용이 가장 많습니다. 학창시절 읽었던 친구의 추천으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책을 통해 프라하를 처음 접했는데요. 당시 체코가 어떤 상황인지 몰랐던 저는 책에 몰입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뒤늦게 [프라하의 봄]이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야 어렴풋이 알 수 있었지요. 저자 역시 밀란 쿤데라의 작품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던가 봅니다. 밀란 쿤데라를 비롯해 밀로스 포만, 야나체프 등 프라하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세계에 닿기 위해 동유럽으로 향하게 됐다고 합니다.




백만 불짜리 야경이라는 프라하의 카를교에서 저자는 연인들이 다리를 건널 때 주문을 외우면 일 년 뒤 다시 프라하에 오게 된다는 것과 다섯 개의 별을 목에 두르고 있는 얀 네포무크가 카를 다리의 수호신이 된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또 프라하의 모든 건축양식을 담고 있어 건축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성 비트 성당에서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에 담긴 의미를, ‘프라하하면 카프카’로 통하지만 카프카는 위대한 체코인 순위에서 55위에 머무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려주는데요. 하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역시나 ‘프라하의 봄’이었습니다. 과거 우리가 자유와 민주화를 위해 일어섰던 것처럼 체코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소련군 탱크 위에 올라 체코 국기를 흔드는 장면을 찍은 사진을 보며 문득 우리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 오래전 영화를 통해 알게 된 것을 책 속의 편지를 통해 만나니 베토벤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지는 듯 했답니다.




책은 여느 여행서적과 달랐어요. 어딜 가면 무엇을 볼 수 있고, 어떤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그 흔한 여행정보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400쪽 가까이 되는 책을 빼곡이 메우고 있는 것은 오로지 ‘드넓고 깊은 동유럽의 예술 기행’이라는 부제에서 짐작해볼 수 있듯 동유럽의 문화와 예술, 그곳에 전하는 전설과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체코어로 문지방을 뜻하는 ‘프라하’. 어릴적 어른들에게서 문지방 밟지 마라는 얘기를 숱하게 들었지만 이 문지방만은 꼭 밟아보고 싶습니다. 일생에 꼭 한 번은!. 요즘 한창 로봇에 몰입한 큰아들도 이 여행에는 두 팔 벌려 환호할 거예요. 틀림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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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살인
윌리엄 베이어 지음, 김승욱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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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누가 큐피드의 동생을 쏘았는가>라는 소설을 읽었다. 시신경의 이상으로 색깔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여자 사진작가가 자신의 절친한 친구였던 남창의 살인사건을 조사해 나가는 작품이었는데 등장인물에게 색명이라는 신체적인 제약이 있어선지 이야기가 진행되는 방식이 생소하면서도 독특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그 작품을 쓴 저자의 이력이었다. ‘데이비드 헌트’라는 저자의 이름이 다름아닌 필명이었던 것. 본명은 윌리엄 베이어. 익명으로 발표한 소설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는 점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래서 줄곧 그의 다음 작품을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만나게 된 작품이 미국 추리소설가 협회의 에드거 앨런 포 상을 수상했다는 <새의 살인>이었다. 이 작품에서 저자는 또다시 커다란 충격을 선사한다. 그것은 <새의 살인>이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살인이 인간에 의해 벌어지는 게 아니라 바로 ‘새’라는 점이다.




한 방송국의 여기자 팸은 상관으로부터 기자로서의 능력이 모자란다는 질타를 받고 실망한 나머지 뉴욕 거리를 헤매고 다닌다. 그러다 근처 아이스링크장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어디선가 나타난 거대한 새 한 마리가 스케이트를 타던 여자를 공격하고 살해하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된 것. 너무나 놀랍고 충격적인 장면에 비명소리조차 낼 수 없었던 그녀는 이내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갑작스런 사고로 혼란에 빠진 인파를 헤집으며 누군가를 찾는다. 우연히 사건 현장을 카메라에 담은 일본인을 찾은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아까 카메라로 찍은 것, 그게 필요하다고. 도심의 한복판에서 거대한 새가 사람을 공격해서 목을 물어뜯어 살해하는 충격적인 모습을 담은 영상을 단독 보도하는 특종으로 팸은 다시 기자로서의 능력을 인정받는다. 그녀는 더 이상 스포츠 전담 기자의 보조가 아니었다. 살인을 저지르는 새 사건의 뒷이야기, 피해자 가족을 비롯해 새 전문가를 인터뷰하며 사건의 이면에 숨은 비밀을 캐나가기 시작하고 매 사냥꾼은 그런 팸을 잡아서 매처럼 길들이겠다며 노리고 있는데...




‘누가, 무엇 때문에 살인을 하는가?’는 추리소설의 핵심공식은 이 작품에서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소설 초반 누군가가 길들인 매가 살인을 하는 대목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누가 왜, 무엇 때문에 매를 길들여서 살인하게 하는지, 그 이유와 배경을 팸과 매 사냥꾼, 형사가 추적해나가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점차 사건의 핵심에 가까이 다가가는 팸, 그녀가 마주하게 될 사건의 어둠과 그림자는 과연 무엇일까. 전작에 비해 다소 느슨한 감이 들었지만 자신의 욕망을 위해 새를 훈련시켜 살인을 일삼는 모습에서 인간이 지닌 잔인함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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