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살인
윌리엄 베이어 지음, 김승욱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여름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누가 큐피드의 동생을 쏘았는가>라는 소설을 읽었다. 시신경의 이상으로 색깔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여자 사진작가가 자신의 절친한 친구였던 남창의 살인사건을 조사해 나가는 작품이었는데 등장인물에게 색명이라는 신체적인 제약이 있어선지 이야기가 진행되는 방식이 생소하면서도 독특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그 작품을 쓴 저자의 이력이었다. ‘데이비드 헌트’라는 저자의 이름이 다름아닌 필명이었던 것. 본명은 윌리엄 베이어. 익명으로 발표한 소설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는 점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래서 줄곧 그의 다음 작품을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만나게 된 작품이 미국 추리소설가 협회의 에드거 앨런 포 상을 수상했다는 <새의 살인>이었다. 이 작품에서 저자는 또다시 커다란 충격을 선사한다. 그것은 <새의 살인>이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살인이 인간에 의해 벌어지는 게 아니라 바로 ‘새’라는 점이다.




한 방송국의 여기자 팸은 상관으로부터 기자로서의 능력이 모자란다는 질타를 받고 실망한 나머지 뉴욕 거리를 헤매고 다닌다. 그러다 근처 아이스링크장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어디선가 나타난 거대한 새 한 마리가 스케이트를 타던 여자를 공격하고 살해하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된 것. 너무나 놀랍고 충격적인 장면에 비명소리조차 낼 수 없었던 그녀는 이내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갑작스런 사고로 혼란에 빠진 인파를 헤집으며 누군가를 찾는다. 우연히 사건 현장을 카메라에 담은 일본인을 찾은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아까 카메라로 찍은 것, 그게 필요하다고. 도심의 한복판에서 거대한 새가 사람을 공격해서 목을 물어뜯어 살해하는 충격적인 모습을 담은 영상을 단독 보도하는 특종으로 팸은 다시 기자로서의 능력을 인정받는다. 그녀는 더 이상 스포츠 전담 기자의 보조가 아니었다. 살인을 저지르는 새 사건의 뒷이야기, 피해자 가족을 비롯해 새 전문가를 인터뷰하며 사건의 이면에 숨은 비밀을 캐나가기 시작하고 매 사냥꾼은 그런 팸을 잡아서 매처럼 길들이겠다며 노리고 있는데...




‘누가, 무엇 때문에 살인을 하는가?’는 추리소설의 핵심공식은 이 작품에서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소설 초반 누군가가 길들인 매가 살인을 하는 대목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누가 왜, 무엇 때문에 매를 길들여서 살인하게 하는지, 그 이유와 배경을 팸과 매 사냥꾼, 형사가 추적해나가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점차 사건의 핵심에 가까이 다가가는 팸, 그녀가 마주하게 될 사건의 어둠과 그림자는 과연 무엇일까. 전작에 비해 다소 느슨한 감이 들었지만 자신의 욕망을 위해 새를 훈련시켜 살인을 일삼는 모습에서 인간이 지닌 잔인함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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