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번지는 곳 프라하, 체코 In the Blue 7
백승선 지음 / 쉼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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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우, 야! 이렇게 야한 책 첨 봤어. 도저히 못 읽겠더라. 니가 볼래?”

대학 신입생때, 같은 과 동기이자 가장 절친한 친구가 내게 책을 한 권 내밀었다. 자신은 책의 내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그때 받은 책이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심하다’는 친구의 말에 호기심이 동해서 읽기 시작했지만 막상 내가 느낀 것은 그 어떤 행위보다 무겁고, 끝없는 어둠과 가슴이 저미는 아픔과 슬픔, 안타까움이었다. 체코가 어떤 역사와 아픔을 가진 나라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만나게 된 곳. 그곳이 바로 프라하였다.


이후, 이십여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체코와 프라하는 스무 살에 만났던 그때의 느낌이 지금도 강하게 남아 있다. 왠지 모르게 차갑고 어둡게 가라앉은 분위기, 사람들의 모습, 일상에서조차 아픔이 느껴질 것 같은 생각... 그래서일까. <그리움이 번지는 곳. 프라하, 체코>를 읽으려고 책을 향해 뻗은 손이 순간 주춤했다. 지금까지 소박하면서도 장엄한 아름다움, 꿈길을 거니는 듯 아련한 그리움의 이야기를 전해준 번짐 시리즈가 프라하를, 체코를 어떻게 보여줄지...


너무나 궁금해서 서둘러 책장을 펼쳤다. 그곳에서 만난 건 잔잔한 강물 위에 마치  떠 있는 듯 아련히 보이는 붉은 지붕의 건물들.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이 넘쳐나는 낮과 여러 조명으로 화려하다 못해 황홀함을 드러낸 밤의 모습이 책장 가득 펼쳐졌다. 이런 곳이었나. 프라하가... 밀란 쿤데라의 작품과 그것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어둡고 창백한 기운이 아직도 선하게 떠오르는데 책에서 만나는 풍경은 무척이나 따스했다. 이 도시를 카프카가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떠나지 못했다는데, 그 말이 어쩐지 이해가 됐다. 한없이 거닐고 싶어지는 이 거리와 골목길과 광장에 발을 들여놓으면 나도 아마 그럴 테니까. 좌우의 모습이 서로 다른 종탑을 고개를 한껏 젖히고 바라보면서 서로 다른 점을 찾아내려고 할테고 매시 정각마다 열리는 시계쇼를 몇 번이고 계속 볼테고. 존 레논의 벽 앞을 서성이며 그의 'Imagines'을 흥얼거리겠지. 거기다 보헤미안의 땅 체스키 크롬로프와 올로모우츠의 동화처럼 아기자기하면서 자유롭고 그리운 분위기에 한 번 젖어들면 난 아마 프라하를, 체코를, 절대 떠나지 못할 테니까...


그리움이 가득한 도시의 이곳저곳을 누비다가 문득 낯익은 이름을 만났다. 얼마 전 미국의 세계적인 건축가인 프랭크 게리가 우리의 종묘를 다시 보기 위해 재차 방문했다는 기사를 봤는데. 그의 작품, 건축물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곡선의 리듬과 독특함이 살아있는 건물을 보면서 건축은, 건물은 그저 무수히 많은 자재들로 만들어놓은 경직되고 틀에 박힌 무언가가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우리의 종묘에 소중함과 의미를 다시 한 번 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얼마전에 읽었던 <은닉>의 저자 배명훈은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찍어온 체코의 알록달록 동화 같은 여행사진에 속지 말라고. 체코의 겨울은 그 사진들을 냉동 창고 안에 들어가서 보는 것만큼 춥다고. 하지만 어떠랴. 한겨울이 되어도 눈구경 하기 힘든 따뜻한 남도의 땅에 사는 난 그래도 가보고 싶다. 여기저기 볼거리로 가득한 거리와 결코 메마르지 않는 이야기들이 샘솟는 이 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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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 - 위대한 문학작품에 영감을 준 숨은 뒷이야기
실리어 블루 존슨 지음, 신선해 옮김 / 지식채널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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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살, 12살? 그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 책읽기에 대폭발이 일어난 때가. 스물 몇 권으로 된 명작동화전집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운 전 언니의 책과 거실 책장에 고이 모셔진 고전명작으로 스멀스멀 영역을 넓히고 있었습니다. 두툼한 책 한 권을 품에 안고 한 자리에서 못 박힌 듯 앉아서 읽곤 했는데요. 책 속에 빨려 들어갈듯 몰입해서 한 권의 책을 다 읽고 덮을 때면 단순히 재미있다, 재미없다를 넘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속에 나오는 사람이, 장소가, 이야기가 진짜는 아닐까? 가짜라면 이 사람은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썼지? 중년이 된 지금도 저의 생각, 의문은 여전히 똑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이야기, 이런 발상을 할 수가 있지?


여기 소설의 세계, 이야기에 매료된 이가 있습니다. <델러웨이 부인>에 서너 번에 걸쳐 완독한 그는 어느 날 ‘이 이야기의 첫 줄이 탄생하기 이전의 일을 조사’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알아내지요. 버지니아 울프가 우아한 사교계의 명사로 창조해 낸 인물이 현실에서도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이것을 계기로 그는 자신이 좋아하던 작품의 탄생배경, 작가들이 작품을 쓸 때 어떻게 영감을 받게 되었는지 관심을 갖게 되고 조사연구를 하게 되는데요. 그런 과정 끝에 탄생한 책이 <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입니다.


책은 작가들이 영감을 얻게 된 순간,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을 여섯 개로 분류하고 그에 해당되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요. 창조적인 작가의 작품, 영감을 다루고 있어서인지 각각의 챕터의 주제가 무척 낭만적입니다. ‘번쩍 스치는 황홀한 순간’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를 낳고’ ‘현실 속, 그와 그녀의 이야기’ ‘어둠 속 저편, 영감이 떠오르다’ ‘영감을 찾아 떠난 위대한 여정’ ‘내 삶의 현장이 곧 이야기다’... 주제만으로도 어떤 내용, 어떤 책, 어떤 작품일지 기대가 되는데요. 다른 책을 통해 작품의 탄생배경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정말 의외의, 놀라운, 새로운 사실도 많았습니다. 여행 중 까무룩 잠결에 빠져드는 순간 하나의 환영을 보고 그 환상 속의 여인과의 만남을 통해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가 탄생했다는 것을 비롯해서 대학교수로 지내던 톨킨은 학생들의 시험지를 검토하다가 문득 써내려간 ‘땅속 어느 굴에 호빗이 살고 있었다’는 문장을 시작으로 <호빗>을 집필하게 됐고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어느날 구불구불 이어지는 도로를 달리다가 문득 소설의 첫 문장이 찾아와 탄생한 작품이 바로 <백 년 동안의 고독>이라는 것, 이외에도 <오만과 편견> <어린 왕자> <톰소여의 모험> <제인 에어> <빨강머리 앤>...등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주는데요. 오랫동안 고전명작으로 알려진 작품은 책으로 출간되기까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전에 우연히 한 블로그를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관심있어 하고 흥미로워하는 방면의 다양한 자료들로 꾸려진 블로그였는데요. 거기서 이런 걸 봤습니다.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저자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짤막한 강연이었는데요. 강연의 주제는 ‘창의성의 양육’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것에 호기심과 무한한 열정을 갖고 있다는 그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에서는 창의성이 인간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먼 미지의 세계에서부터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을 찾아 도와주는 신성한 혼이라고 여겼다”고. 그러면서 이름난 작가들이 언제 어떻게 영감(신성한 혼의 도움)을 받아 작품을 완성하게 되었는지 얘기했는데요. 보다 새롭고 보다 깊이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한 작가들의 고뇌가 느껴지는 일화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을, 글을 쓰기란 역시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명작을 남긴 작가들에게 영감이 떠오르는 순간이나 상황은 저마다 달랐지만 큰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영감은 늘 예기치 않은 순간에 찾아오지만 그들은 그 떠오르는 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열망이 강했다는 거였는데요. 늘 글을 쓰고 싶다고, 평생에 한 번이라도 책을 내고 싶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그것을 글로 써내지 못하는 저의 모습이 한심할 정도로 답답하면서도 한편으론 작은 희망을 품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생각하고 모으고 다듬고, 그러다보면 한 권의 책이 탄생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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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 스캔들 2 - 명작은 왜 명작인가 명작 스캔들 2
장 피에르 윈터.알렉상드라 파브르 지음, 김희경 옮김 / 이숲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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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잘 그린다는 얘기도 곧잘 듣긴 했습니다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틈틈이 그림 공부를 할 만큼 애착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림에 있어서 무엇이 중요하고 어떤 것을 담겨야 하는지 어떻게 봐야 하는지도 잘 모릅니다. 그저 그림을 보는 제 기분과 감정에 좋게 다가오면 ‘야, 좋다!’고 느끼는 정도입니다. 해서 늘 궁금했습니다. 책에 고전이 있듯이 그림에도 명작이 있는데, 어떤 그림을 명작이라고 하는지 알고 싶었는데요. 얼마전에 출간된 <명작스캔들 2>가 좋은 실마리가 되었습니다.


지난해 ‘소설보다 재미있는 명화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출간된 <명작 스캔들>을 통해 예술가들의 파란만장한 삶과 이름난 명화의 숨겨진 뒷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었는데요. 이번 <명작 스캔들 2>의 부제는 바로 ‘명작은 왜 명작인가’입니다.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떠나서 어떤 그림을 명작이라고 하는지 이야기하는데요. 프로이트 학파의 정신분석학자이자 라캉의 제자인 장 피에르 윈터와 미술사를 전공한 저널리스트인 알렉상드라 파브르 두 사람이 공동저자로 저술한 것이기에 그 과정이나 내용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두 저자는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이 그림을 왜 명작이라고 하는지. 나라가 다르고 시대가 변하는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명작’이라고 칭하는데엔 어떤 이유가 있는지. [밀로의 비너스]를 시작으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셍]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암굴의 성모],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아담의 창조]를 비롯해서 고야의 [1808년 5월 3일],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르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반], 앤디 워홀의 [켐벨 수프 통조림] 등 서른 편의 명작을 소개하고 그것들을 왜 ‘명작’이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하나하나 짚어줍니다.


이를테면 가장 먼저 소개된 [밀로의 비너스]. 일단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자면 이 작품은 결코 ‘명작’이라고 할 수가 없지요.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여신이라고 하기엔 신체의 굴곡이 밋밋한데다가 두 팔이 잘려 나가는 등 곳곳이 파손되어 있습니다. 마치 장인이 완성된 작품이 마음에 안 들어 스스로 부수어버린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인데요.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런 부족함, 부재가 사람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밀로의 비너스]를 숭배하고 명작이라고 칭하는 이유가 된다는군요. 그런가하면 [터번을 두른 소녀(진주귀걸이를 한 소녀)]의 요하네스 페이메이르(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은 일상 속에 깃든 소박함,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지요. 화가는 그저 우유를 따르는 여인을 그렸지만 그림을 감상하는 이들은 단순한 그림 속에 일상의 고단함과 풍요로움, 더 나아가 성적인 쾌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킨다고 하구요. 캔버스에 담배를 피울 때 쓰는 파이프를 그려놓고서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글을 적어 놓은 르네 마그리트. 그의 작품 앞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이게 파이프가 아니라니? 그럼 내가 보고 있는 게 뭐지? 그야말로 [이미지의 배반]인데요. ‘파이프’라는 이름과 구부러진 모양 속에 마그리트는 수많은 의미와 암시를 숨겨놓았다는 겁니다. 언뜻 봐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림을 볼 때 오로지 시각에 의존하기보다 그 이면의 것들을 되새겨보고 ‘사고’해볼 필요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아마추어 화가는 눈에 보이는 것을 보여주지만 명작의 작가는 그동안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았던 불가능한 것을 보여준다’고. 명작은 그저 잘 된 작품, 빼어난 작품이라고 해서 모두 명작이 아니었습니다. 작품을 탄생시킨 작가의 의도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심리와 욕망이 한데 어우러져 공감대가 형성되었을 때 비로소 명작의 이해와 감상이 시작된다는 거였습니다.


고전이란 ‘누구나 꼭 읽어야 될 책이라고들 말하지만 실은 아무도 읽고 싶어하지 않는 책’이라고 마크 트웨인은 말했습니다. 첨엔 이 말을 ‘그렇지! 고전은 어려워서 사람들이 잘 안 읽어’라고 받아들였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무도 읽고 싶어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읽어야 하는 게 바로 고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는데요. 명작도 그렇지 않을까요. 난해하고 혐오스러워서 쳐다보기조차 싫은 그림도 시간이 흐르고 일상의 무게를 느끼는 나이가 되고 보니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더군요. 이전의 나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터부시한 것들이 더 이상 거부감이 들지 않는 생각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는데요. 명작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계기를 가질 수 있다는 것. 이전에 미처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접근법,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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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기억, 지도 - KBS 특집 다큐멘터리 지도에 새겨진 2,000년 문명의 기억을 따라가다
KBS <문명의 기억, 지도> 제작팀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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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 부끄럽지만 난 길치에 방향치다. 이전에 갔던 곳이라고 해서 쉽게 찾아가는 일은 지극히 드물다. 지인들은 나의 이런 치명적인 결함을 잘 알고 있기에 내가 낯선 장소에 가야 할 일이 생기면 약도와 함께 ‘지하철 몇 번 출구로 나와서 어느 방향으로 몇 블록을 지나서 어떤 건물(1층에 무엇이 있는지까지)’이라고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설명해준다. 상세한 안내 덕분에, 운이 좋아서 단 한 번에 찾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적지 주위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한참동안 방황한 적도 숱하게 많다. 기다리다 지쳐서 어떨 때는 지인이 나를 데리러 나오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른다.


<문명의 기억, 지도>라는 책을 보았을 때 의문이 들었다. 사실 지도라면 어떤 지역이나 나라를 모습이나 여러 사항들을 평면적인 그림으로 나타낸, 단순한 기호이자 표시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상의 것, 인류의 ‘문명’을 담아냈다니.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쉽게 상상이 되질 않았다. ‘지도에 새겨진 2,000년 문명의 기억을 따라가다’라는 부제가 달린 <문명의 기억, 지도>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던 것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 책은 크게 ‘달의 산’ ‘프롤레마이오스’ ‘프레스터 존’ ‘지도전쟁’ 네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고대부터 중세, 근세, 근현대를 대표하는 지도를 통해 당시 세계의 모습과 상황, 주변국과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살펴보고 있다.


본문에서 가장 먼저 소개되고 있는 것은 바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지도라서 시험에 꼭 나올 거라고 외우는데 이름이 난해하다며 투덜댔던 적이 있는데 이렇게 다시 보게 되다니. 그것도 아프리카 남단의 탐험이 이뤄지기 이전에 아프리카 대륙을 그려 넣었다니 놀라웠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 주목해야할 것은 지도의 정확함이다. 나일 강이 두 개의 물줄기로 흐른다는 것에서부터 그 발원지로 알려진 ‘달의 산’을 지도에 그려 넣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산꼭대기가 만년설로 덮여있어 달처럼 하얗게 빛난다고 붙여진 이름 ‘달의 산’을 동양의 작은 나라 조선이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그것을 밝히기 위해 조선이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그리기 위해 중국으로부터 지도를 입수했던 경로와 그 주변 국가의 당시 상황을 짚어보는데 몽골을 비롯해서 아랍, 지중해로 추적해간 끝에 ‘달의 산’이란 이름이 2,000년 전 고대 그리스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밝혀내기에 이른다. 놀라움을 넘어서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현대인의 시각으로 봤을 때 지도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축적, 나라의 크기나 배치, 비율이 전혀 맞지 않아서 왠지 엉성하게 보였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탄생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상상 그 이상. 인류의 문명이 어떻게 탄생하고 다른 나라로 전파되어 가는지 느껴볼 수 있었다.


이외에도 서양지도로는 최초로 중국이 그려진 [프롤레마이오스 세계지도]를 비롯해서 12장의 양피지에 로마의 길을 그려넣은 [포이팅거 지도], [카탈루냐 지도], [이드리시 지도], [대명혼일도] 등을 소개하면서 한 장의 지도로 인해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그것이 인류의 역사와 문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하나하나 전해준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현대에 있어서의 지도의 의미, 한 장의 지도가 갖는 힘이 어느 정도이며 지도를 연구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네덜란드와 일본, 아메리카 원주민의 구술지도를 통해 강조하고 있다. 지도는 그것 자체로 바로 하나의 권력이자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무기라는 것을. 그리고 말한다. 지도는 박제된 과거의 그림이 아니라고. ‘그 속에는 ‘인류의 오랜 상상력과 호기심, 한 시대의 가치관과 철학, 종교와 문화, 그리고 그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살아서 꿈틀대고 있다.(17쪽)’고.


어제와 오늘, 약속 장소를 향하면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지도를 검색하는 거였다. 단순히 점과 선으로 이뤄졌던 지도는 점차 입체적으로 바뀌어 이제는 위성과 도시 곳곳에 설치된 CCTV를 통해 현장의 모습까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나처럼 지리에 약한 사람들에게 참 편리하겠다고 생각했던 지도. 이 시대의 지도를 미래의 인류는 과연 어떻게 기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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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오의 하늘 6 -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감동 다큐멘터리 만화 요시오의 하늘 6
air dive 지음, 이지현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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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는 어렸을 때 병치레가 잦았다. 10개월 무렵 폐렴과 홍역으로 병원에 연거푸 입원했다. 간신히 먹은 분유를 다 게워내고 내내 기침하고. 이 작은 몸이 펄펄 끓는 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열이 나고... 힘겨워 하는 아이의 곁에서 나 역시  잠 못 이루는 날이 이어졌다. 그러다 한밤중에 열이 40도를 막 넘어서는 순간 와락 겁이 났다. 이러다 아이가 잘못되는 건 아닐까? 하필 이럴 때 남편이 근무 중일게 뭐람? 어떻게 하지? 아이를 안고 응급실로 뛰어야 하나? 왜 내 일가친척 중에는 의사가 없는 걸까? 그렇다면 지금 어떻게 해야 좋을지 물어볼 수 있을텐데...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겁이 나는 건 오직 단 하나. 아이가 다치면 어쩌지? 큰 병이라도 생겨서 아프면 어쩌지? 그래서 책도 되도록 그런 이야기는 피해서 읽으려고 했다.


<요시오의 하늘>을 보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서점에 놓인 샘플북에서 잠깐 맛보기로 봤는데 내용이 예사롭지 않았다. 평범한 가족에 한 아기가 태어나는데 의사는 그 야이가 ‘뇌수종'이며 치명적인 장애가 남는다는 진단을 내린다. 소중한 아기에게 병이 생기다니? 결코 믿고 싶지 않은 일에 부모는 절망하는데 그때 그들이 한 명의 의사를 만나게 된다. 그가 바로 타카하시 요시오였다. 다음이 궁금했다. 어떻게 될까. 아이의 병은 낫게 될까? 알고 싶었다. 하지만 읽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다. 아픔에, 고통에 허덕이는 아이의 모습은 만화로라도 만나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사람의 일이란 게 모두 의도한데로 흘러가지는 않는 법. 언제 어느 순간에 변수가 생길지 모른다. 어쩌다 우연히 보게 된 만화는 가슴에 내내 의문으로 남았고. 내가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커져버렸다. 그렇게 난 <요시오의 하늘>을 보게 됐다. 1권에서 5권까지의 내용을 극히 일부만 아는 상태에서 6권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까 우려의 마음을 가지고.


책은 훗카이도의 시원한 바다가 보이는 병원에서 시작된다. 중증의 소아전문 병원으로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병원으로 한 간호사가 부임해온다. 낯선 병원이지만 매사에 열심히 노력하는 그녀의 눈을 통해 병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바라보게 된다. 간호사라는 직업이 사명감만으로 임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던 일에서 상처를 받기도 한다는 것을. 생명을 마주하고 생명을 구하기 위해 간호사가 되었지만 그 일에 혼란이 생길 즈음 그녀는 한 논문을 보게 된다. 바로 타카하시 요시오의 논문이었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의료진은 치료를 절대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타카하시의 논문은 그녀에게 숙제가 되고 그런 가운데 한 명의 아이의 생명이 꺼지고 병원에는 타카하시의 노래가 울려퍼진다. 생전에 아이가 즐겨 불렀던 노래가....


병원에 울려퍼졌던 노래가 ‘내 마음 속에도 울려퍼졌다’로 하나의 이야기가 마치고 책은 다카하시의 청소년시절을 이야기한다. 전학을 간 학교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기 이야기하고 개구쟁이 친구들과 지내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매사에 매를 들어 아이들을 체벌하는 선생님에게 모진 매를 맞으면서도 자신을 결코 나쁘거나 틀리지 않았다고 말하는 소년 타카하시. 정의감에 넘쳤던 소년은 어떤 일을 계기로 의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을까? 뒤에 이어질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다. 미처 보지 못했던 5권까지의 이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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