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고전들 - 플라톤 <향연>에서 보에티우스 <철학의 위안>까지 언젠가 당신이 읽었다고 생각하는
서정욱 지음 / 함께읽는책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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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제일 골치 아팠던 과목이 국민윤리였다. 사상이나 철학 파트가 왜 그리도 어려운지, 엉킨 실타래를 완전히 풀었다고 생각했는데 손을 놓는 순간 다시 엉켜버리는 것처럼 몇 번을 반복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속이 어찌나 후련하던지, 이제 다시는 철학의 ‘ㅊ’도 안봐야지 했다. 근데,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신입생 때 가입한 동아리에서 맞닥뜨리고 말았다. 선배들이 신입부원 모두에게 읽으라고 한 책이 바로 <소크라테스의 변명>이었다. 꼭 읽으라니 억지로 읽긴 하지만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듯, 말장난처럼 보이는 글이 도통 무슨 의민지 알 수 없어서 고역이었는데 20년이 흘러 중년이 된 지금, 스스로 철학을 찾게 될 줄이야...




<철학의 고전들>을 앞에 두고서 한참 씨름을 했다. 이번엔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적어도 중간에 포기하고 덮어버리진 말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펼쳐든 책의 머리말에서 ‘사랑하는 @@, ##에게’라는 글귀를 보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자가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철학이 어떤 학문인지, 무엇을 연구하는지 이해하기 쉽도록, 그것도 대화체로 풀어서 정리해놓은 글을 내가 읽는구나 라고 생각하니 무슨 이유에선지 안심이 됐다.




책은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론>으로 시작된다. 칠순의 소크라테스가 재판장에 섰다. 그의 죄목은 아테네의 젊은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나라가 믿는 신들을 믿지 않는다는 것. 500명의 재판관들 앞에서 그는 자신의 변호인이 되어 변론을 해야 한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약 세 시간 정도.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예전에 읽어서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실로 놀라웠다.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가려는 사람들 앞에서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다니. 소크라테스를 일컬어 위대한 철학자, 인류의 정신적 스승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후 책은 사랑과 아름다움에 관해 철학적으로 모색한 플라톤의 <향연>을 비롯해 <국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과 안티고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아리스토파네스의 <뤼시스트라테>,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이 수록되어 있는데 원전과 다른 구성방식을 취하면서도 핵심내용을 거스르지 않게 잘 소개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소포클래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과 안티고네>였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신탁을 듣고 그 운명에서 벗어나고자 길을 떠났지만 끝내 자신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었던 오이디푸스왕, 오이디푸스왕과 이오카스테의 둘째 딸인 이스메네의 이야기를 통해 듣는 그들 남매에게 벌어진 사건은 실로 잔혹했다. 고대에 쓰여진 작품이지만 오늘날에도 비극의 전형적인 모델로 인식되고 있는 <안티고네>와 <오이디푸스 왕>을 통해 우리 삶에 있어서 ‘운명’과 ‘비극’이 무언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대목이 눈에 띄었다. 228쪽에서 오이디푸스왕과 이오카스테의 아들인 에테오클레스 왕과 그의 형 폴리네이케스가 벌인 전투에서 두 형제가 모두 사망하자 에테오클레스는 호화롭고 거룩한 국장을 치렀지만 형인 폴리네이케스는 추방자의 신분으로 조국을 위협해 그의 시신은 땅에 묻히지도 못했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239쪽에 이런 대목이 있다. ‘큰 오빠의 시신은 테베에서 성대하게 장례를 치렀어. 하지만 작은 오빠의 시신은 들판에서 새와 들짐승의 먹이가 되고 있어’. 번역서가 아니니 번역상 실수는 아닐테고 편집과정의 오류인걸까? 아니면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걸까?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안티고네>와 <오이디푸스 왕>은 꼭 읽어봐야겠다.




철학과 담을 쌓고 있던 내게 철학의 고전들을 찾아 읽겠다는 생각을 갖게 하다니...그 자체만으로도 <철학의 고전들>. 정말 대단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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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노니는 집 - 제9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30
이영서 지음, 김동성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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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책들 중에서 유독 마음이 끌리는 책이 있다. <책과 노니는 집>이 바로 그런 책이다. ‘책’이라면 껌뻑 넘어가는 내게 ‘책과 노니는 집’이란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했고 포근하고 은은한 표지는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옛 선비들의 서가처럼 보이는 곳에 서 있는 소년. 무척 소중한 보물인양 가슴에 책을 안고 정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소년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이상하게도 눈을 땔 수가 없었다. 소년의 깊은 눈매에 깃든 이야기가 궁금했다.




책의 주인공은 ‘장’이라는 소년이다. 소년의 아버지는 한자나 언문으로 된 책을 베껴 쓰는 필사쟁이였는데 나라에서 금지한 천주학 책을 필사했다하여 관아에 끌려가 모진 매를 맞고 장독을 앓다가 결국 목숨을 잃고 만다. 그 후 장이는 소년의 아버지가 일했던 약계책방에서 주인인 최 서쾌의 심부름으로 필사한 책을 주문한 이에게 배달하거나 새로 들어온 책을 정리하며 지내는데 최 서캐는 그런 장이를 안쓰럽고 대견해하지만 여간해선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다. 오히려 장이에게 책을 대하는 마음과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일러주고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한다며 엄하게 대한다. 천성이 밝고 씩씩한 장이는 최 서캐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면서 틈틈이 아버지처럼 최고의 필사쟁이가 되는 꿈을 키워나간다.




그러던 어느날 장이는 [동국통감]이란 책을 전하기 위해 홍 교리 댁에 간다. 당시 한양에서 알아주는 수재로 젊은 나이에 홍문관의 요직에까지 오른 홍 교리는 장이를 따뜻하게 대해준다. 장이는 그런 홍 교리에게서 작은 책방을 염원하다 끝내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자신이 홍 교리에게 전한 책의 내용이 표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천주학 책이라는 걸 알고 불안함에 떨게 되는데...




천주교를 탄압했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책은 주인공 소년인 문장이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딛고 필사쟁이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장이를 비롯한 최 서캐, 홍 교리, 낙심이 등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당시 백성들의 삶은 어떠했으며 사회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이 책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의 빼놓을 수 매력은 바로 그림이다. 김동성님의 그림은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차분하고 드라마틱하게 이어지는 이야기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단순한 삽화에 그치지 않고 선 하나하나, 옅은 채색에 이르기까지 소박하고도 단아한 한국의 멋을 제대로 살렸다. 특히 휘영청 보름달이 뜬 밤에 도리원에서의 ‘이야기 연회’를 담은 그림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나도 그 틈에 끼어앉아 달밤의 정취와 전기수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진다.




심부름꾼 소년 장이에서 마음을 글로 새기는 ‘필사쟁이 문장’으로 거듭나는 장이의 이야기는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괜시리 꼭 껴안고 싶어지는 사랑스러운 책이다. 가슴 가득 퍼지는 포근함을 느껴보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한다. <책과 노니는 집>의 문을 두드려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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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동무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
배유안 지음 / 생각과느낌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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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년? 아니, 그보다 좀 어려보이는 두 소년이 나무막대를 휘두르고 있는데 한 명의 차림새가 범상치 않다. 다른 소년에 비해 상당히 높은 신분인 듯한데, 누굴까.




세종대왕의 한글창제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초정리 편지>의 저자 배유안의 신작이 출간됐다는 소식에 얼른 책을 구입했다. 제목이 어떤 의민지, 어떤 내용의 책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책을 손에 잡자마자 읽어간 서두에서야 알게 됐다. ‘창경궁 동무’란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훗날 정조가 되는 이산과 그의 곁에서 동무가 되어준 정후겸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후겸아, 기어이 가겠느냐?” 깊은 근심에 찬 어미의 낮은 음성으로 책은 시작된다. 1776년 3월 10일, 새로운 왕의 즉위식이 열리는 경사로운 날이건만 이들 모자(母子)는 대체 무얼 걱정하는 걸까. 일개 신하인 그가 곤룡포와 면류관을 쓰고 옥좌에 오른 왕의 모습을 존경과 감탄의 눈길이 아니라 가슴을 옥죄는 근심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뭘까.




“과인은 사도 세자의 아들입니다.” 흐읍,...나는 숨을 멈췄다. 무릎이 꺾였다. 사도 세자의 아들! 왕이 된 후 처음으로 내리는 말이 사도 세자의 아들이라니... 아아, 그의 한이 이렇게 깊었던가? - 17쪽.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왕의 위엄 앞에 그는 눈을 감고야 만다. 손발이 떨리고 오금이 저려오는 걸 느끼며 그 옛날, 왕과 함께 즐겁게 지내던 때를 떠올린다.




정후겸. 그의 집은 양반가문이지만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갈 정도로 가세가 기울었다.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들었지만 배움에 대한 열망이 무척 컸던 그를 위해 부모는 아들을 화완 옹주의 집으로 데려간다. 왕의 사돈댁에 머물면서 원했던 공부를 맘껏 할 수 있게 된 그는 얼마 후 화완 옹주의 양자가 되어 궁으로 들어간다. 자신의 인생을 바꿔줄 커다란 변화가 연이어 일어난다고 여긴 그는 궁에서의 생활에 자신감과 행복을 느낀다. 




그런 어느 날 그는 여덟 살의 세손 이산을 만나 나무 막대기를 휘두르고 뛰어놀면서 금세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된다. 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세손의 운명을 지닌 아이, 훗날 왕의 자리에 앉을 세손을 시기하고 질투심을 느낀다.  더불어 자신이 어부의 아들에서 옹주의 양자가 되었던 것처럼 큰 파도가 다가와 모든 걸 바꿔놓기를, 자신의 운명이 또 한 번 크게 바뀌기를 바라는...은밀한 열망을 가슴에 품게 된다.




옹주가 혼잣소리로 한 말, 나는 그 놀라운 말에 조심스런 흥분을 느꼈다. 세자가 왕이 안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절대적인 일도 바뀔 수가 있다……. 그 말은 나에게 두려운 희망을 주었다. 내가 옹주의 집에 처음 들어가서 느꼈던, 뭔가 크게 달라질 것 같은 그 희망을 또 느낀 것이었다. 운명은 언제든지 바뀔 수도 있다는 말이다. - 100쪽.




정후겸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책은 때로 내용의 전개에 있어 억지스런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 드리운 상대적 어둠과 번민, 고뇌, 열망, 철저히 세손의 반대편에 설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또 백성보다 오직 자신들만의 안위를 위해 당파를 짓고 분쟁을 일으켜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의 목숨을 빼앗게 하다니, 그 광경을 피눈물을 토하며 지켜봤을 세손의 원통함과 아픔에 가슴이 아렸다.




나는 행운을 불행으로 바꿔 살아온 어리석은 자였다. 나는 졌다. 그에게도, 내 인생에도 졌다.

‘오늘 왕이 되신 전하, 우리가 창경궁에서 막대기 부딪히며 놀던 동무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나는 눈물이 흐르도록 그대로 두었다.- 194쪽.




<초정리 편지>에서도 느꼈듯이 저자의 글맛은 무척 특별하다. 등장인물의 마음이 옮아가는 자리에 따라 담담하면서도 애절하게 풀어쓴 문장과 세밀한 표현은 어디 하나 거슬리거나 막힘없이 부드럽고 자연스럽다. 조선 중기, 영조 즉위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사도세자의 죽음, 이산 정조의 즉위에 이르는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 속에 잘 녹여낸 <창경궁 동무>. 아이와 함께 하고 싶은 책을 또 한 권 찾았다. 실로 큰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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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그림책은 내 친구 2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장미란 옮김 / 논장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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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둡고 좁은 터널 안으로 주춤거리며 들어가는 아이. 얼굴표정이 보이지 않는데도 바짝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왜 터널로 들어가는 거지? 의문이 들면서 동시에 터널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호기심이 일어난다.


 

 

어느 마을에 오빠와 여동생이 있었는데 둘은 비슷한 데가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게 딴판이었다. 동생이 책을 읽거나 공상하기를 좋아하는 반면 오빠는 친구들과 바깥에서 뛰어노는 걸 좋아했다. 모든 점이 서로 다른 남매는 툭하면 티격태격 다퉜는데 어느 날 보다 못한 엄마가 버럭 화를 낸다. “둘이 같이 나가서 사이좋게 놀다 와! 점심때까지 들어오지 마”

 

 

 
엄마의 호통에 일단 집에서 나오긴 했지만 어디서 어떻게 놀아야할지 알 수 없어서 찾아간 곳이 고작 쓰레기장. 무섭고 싫다는 동생을 겁쟁이라며 놀리던 오빠는 우연히 터널을 발견하고 들어가지 말라고 만류하는 동생을 뿌리치고 터널 속으로 들어간다.


 


 
동생은 터널 밖에서 한참을 기다렸지만 오빠는 나오지 않자 무섭고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어떻게 하지? 그러다 오빠를 찾아 터널 속으로 들어간다.


 

 
터널 속은 컴컴하고, 축축하고, 미끈거리고, 으스스했어요.


 

 

 

간신히 터널을 빠져나오자 거기엔 넓은 숲이 펼쳐져 있었다. 커다란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숲이 왠지 동화 속에서 만났던 마녀와 거인, 늑대 같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동생은 겁에 질려 뛰기 시작한다.


빨리빨리, 빨리빨리....


 

  

한참 달리다 숲이 사라지고 빈터가 나타났는데 그곳에 오빠가 돌처럼 굳어져 있는 게 아닌가. 자신이 너무 늦게 왔다며 생각한 동생은 슬퍼서 돌로 변한 오빠를 와락 끌어안고 눈물을 흘린다.




그러자 차갑고 딱딱하던 돌의 색깔이 조금씩 바뀌고 부드럽고 따스한 기운이 감돌더니 조금씩 오빠로 바뀌었다. 오빠는 말한다.




“로즈! 네가 와 줄 줄 알았어.”

오빠와 동생은 다시 깊은 숲을 지나고 작은 숲을 거쳐, 터널을 지나 밖으로 나왔어요. 둘이서 함께.


 

 

둘이 집에 돌아오니 마침 점심을 차리고 있던 엄마가 웃으며 반겨준다. 어서 오너라. 별일 없었니? 엄마의 물음에 둘은 살며시 웃는다. 엄마도 모르는 둘만의 비밀을 공유한 이의 웃음이다. 또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동생에 비해 오빠는 뒷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분명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도 예전보다 정이 담뿍 담겨있을 것 같다.




앤서니 브라운의 책에는 언제나 유머와 볼거리가 가득하다. 사소한 주변사물의 모습에도 의미를 담기 때문에 상징적인 메시지가 가득하다. 때문에 앞뒤의 속면지도 꼼꼼하게 봐야 그림책의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경우도 동생을 상징하는 그림책과 오빠의 성격을 나타내는 축구공이 어디에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 꼭 한번 찾아보시라. 거기에 앤서니 브라운이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가 모두 들어있다.




또 하나 짚어볼 것은 앤서니 브라운의 책에서 ‘터널’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거다.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기보다 자신의 색깔만을 고집해온 두 아이가 터널을 통과한 후 서로 화해하고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는 겉으로 보기엔 그저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책을 읽는 아이들에게 터널은 상상과 판타지가 펼쳐지는 마법의 세계로 향하는 장치이자 길이 아니었을까. <사자와 마녀의 옷장>에서 옷장 속에 이어진 길이 나니아라는 판타지 세계로 이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판타지 세계를 경험한 아이들은 그전과 조금씩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소극적이고 외골수적인 아이가 밝고 활달하게 변하는가 하면 자기만 알고 고집 센 아이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부드러운 마음을 갖게 되는 걸 알 수 있었다.




한 권의 그림책에서 결코 쉽지 않은 물음을 갖게 됐다. 시간을 두고 곰곰이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는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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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이 사는 나라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6
모리스 샌닥 지음, 강무홍 옮김 / 시공주니어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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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해” “안돼!!” “하지 마!” “제발 말 좀 들어라” “엄마 좀 살려줘”




혹시 누군가 나의 일상을 몰래카메라로 찍는다면...그 속엔 어떤 모습들이 담겨있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러나 굳이 심각하게 생각해볼 것도 없다. 매일 똑같이 벌어지는 일들이 다시 눈 앞에 펼쳐질 테니까.




“그만 해” “안돼!!” “하지 마!” “제발 말 좀 들어라” “엄마 좀 살려줘”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처음 만난게 큰아이가 두 돌 무렵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큰애는 둘째에 비해서 순한 아이였지만 당시로선 그걸 알 리가 없는 내 눈에 큰애는 사고뭉치 말썽쟁이에다 때론 괴물로도 변신했다. 책 속의 맥스처럼.




엄마가 소리쳤어. “이 괴물딱지 같은 녀석!”

맥스도 소리쳤지. “그럼, 내가 엄마를 잡아먹어 버릴 거야!”

그래서 엄마는 저녁밥도 안 주고 맥스를 방에 가둬 버렸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나는 아이에게 “니 할 일이나 해”라며 방으로 들여보낸다. 그런데 방에 들어간 아니는 내가 속이 뒤집어지거나 머리에서 연기가 폴폴 나거나 신경쓰지 않는다. 당연히 해야할 숙제나 과제보다 자신의 특기이자 취미인 상상의 날개를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한다.




바로 그날 밤에 맥스의 방에선 나무와 풀이 자라기 시작했지.

나무와 풀은 자꾸자꾸 자라났고,

나뭇가지가 천장까지 뻗쳤지. 이제 맥스의 방은 세상 전체가 되었어.




배를 타고 괴물나라에 도착한 맥스가 괴물 나라의 왕이 되어 괴물 소동을 벌이듯 아이도 괴물 나라에서 한바탕 신나게 놀기라도 하는지 방에선 쿵쾅쿵쾅 요란한 소리를 내곤 했다. 조금 잠잠하다 싶어서 방 앞에서 기웃거려보지만 아이는 금세 또다른 놀이에 빠져있곤 했다.




괴물나라 왕 맥스는 쓸쓸해졌지. 맥스는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어. 그때에 머나먼 세계 저 편에서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어. 마침내 맥스는 괴물 나라 왕을 그만두기로 했지.




그리고 잠시후 아직도 잔뜩 삐쳐있겠구나...하고 생각했던 아이는 너무나 멀쩡한 기분으로 내 앞에 나타난다. “엄마, 뭐 먹을거 없어? 배 고픈데....” 세상에, 난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는데 넌 먹을 것만 찾는단 말이냐. 니 잘못을 니가 정녕 모른단 말이냐. 이렇게 일장연설을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다. 일단 꾸욱 참고 간식거리를 챙겨주면 아이는 맛나게 먹고 또 휑하니 지 방으로 가거나 거실에서 책을 읽곤 한다. 그제서야 난 허탈해진다. 난 대체 뭣 땜에 화를 낸 거니?




그날 밤에 맥스는 제 방으로 돌아왔어.

저녁밥이 맥스를 기다리고 있었지.

저녁밥은 아직도 따뜻했어.




엄마를 잡아먹어버릴 거라던 맥스가 괴물나라에서 한바탕 놀고 나서 지겨워할 때 맥스를 다시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오게 한 것은 바로 맛있는 음식 냄새였다. 그렇다면 나한테 실컷 야단맞아서 심술이 난 아이를 세상으로, 스스로 제 방에서 걸어나오게 만든 건 무엇이었을까.




간혹 두 아이의 등쌀에 아이고 정말 못살겠어. 지겨워...하는 생각이 들때면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들쳐보곤 한다. 자신을 가두고 있는 틀에서 벗어나 시간을 넘어서서 자신만의 세계에서 신나게 열심히 놀이에 몰두하는 맥스를 보며 내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내 아이는 어떤 나라를 꿈꿀까...궁금해지기도 한다.




아이들의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을 보며 한가지 소원을 갖곤 한다. 내 아이들이 언제 어떤 고난과 시련을 겪더라도 가족의 사랑과 따스함이 잊지 않고 돌아올 수 있게 되기를...




<괴물들이 사는 나라>가 영화로도 제작 중이란 소식을 들었는데, 완성됐을까? 국내엔 언제 개봉하는 걸까. 기다려진다. 아이들과 함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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