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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푸어, 빈곤의 경계에서 말하다
데이비드 K. 쉬플러 지음, 나일등 옮김 / 후마니타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접시닦이, 기술자, 요리사, 농부, 경비원, 공사장 인부, 청소부, 식당종업원...의 사진이 줄지어 서 있다.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모습이 마치 도미노처럼 보인다. 직업이 명예가 있거나 고수익을 올리는 전문직이 아닌 그저 노동자라는 단 하나의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 제일 앞에 세워진 이의 사진을 톡 건드리면 어떻게 될까. 틀림없이 뒤로뒤로 주르륵 넘어지겠지. 그야말로 인간 도미노의 현장을 눈앞에 두고 궁금증이 일어난다. 이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뭘까.
<워킹 푸어, 빈곤의 경계에서 말하다>는 팔레스타인 분쟁에 관한 글을 써서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K. 쉬플러가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인 미국이 안고 있는 근로빈곤 계층에 관한 문제를 다룬 책이다.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에 상관없이 풀타임으로 일을 해도 빈곤을 벗어날 수 없는 개인이나 가족을 말하는 워킹 푸어, 근로빈곤층. 저자는 그들의 일상과 직업 활동을 조사하여 빈곤의 원인이 무엇인지 모색한다.
빈곤은 피가 흐르는 상처와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방어력을 약화시키고 저항력을 감소시키고 포식자들을 불러들인다. -43쪽.
책은 사회의 일원으로 일정한 직업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워킹 푸어들을 일일이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11개의 장에 나누어 수록하고 있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주머니에서 교묘한 수법으로 돈을 떼어가는 세금 대행업자와 원금보다 터무니없이 많은 수수료를 받아가는 악덕 고리대금업자들의 횡포를 시작으로 빈곤지역엔 단 한 곳의 지점도 설치하지 않는 은행들은 임대나 대출시에도 높은 이자율을 부과하는 등 미국사회는 빈곤층이 결코 피해갈 수 없는 덫을 사방에 설치해놓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저학력과 기술이 없는 이민노동자의 경우 일반근로자보다 턱없이 적은 임금을 받고 열심히 일하면서도 승진과 같은 건 기대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 이들이 식당에서 주차장에서 농장에서 일을 하는 덕분에 사회가 문제없이 유지되는데도 말이다. 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만큼 가난해서 개인파산을 하려해도 그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사람도 있었다.
워킹 푸어의 심각한 문제는 그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진다는데 있다.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에 걸리거나 부모로부터 성적학대를 받지만 어느 누구도 아이들을 덫에서 구해내지 못한다. 유소년기의 성적학대와 빈곤, 무관심으로 인해 아이들은 성장한 후에도 마약중독이나 폭력과 같은 악순환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가난하고 열악한 주거환경은 아이에게 천식 같은 질병을 유발시키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보호와 원조를 받으려 해도 이들을 노린 복지 사기 때문에 이것마저 어렵다는 것이다.
열악한 주택은 육체적인 질병을 일으키는 배양기와도 같다. - 391쪽.
경제 대국, 기회의 땅이라는 미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반드시 그늘도 존재하는 법.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자신의 노후를 위해 조금이라도 저축할 여력도 없는 그들은 국가의 복지정책에서도 제외된 채 괄호 밖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직장을 잃으면 그 순간부터 극빈자층으로 떨어진다.’ 남편의 말이다. 처음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는데 이제 알 것 같다. 책 속에서 만난 이들의 모습이 왠지 낯설지 않았던 건 단순한 느낌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