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려도 좋아, 달라도 좋아! - 선현경, 이우일, 그리고 딸 이은서의 유쾌한 한지붕 생활 고백
선현경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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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일과 선현경. 그들과의 첫 만남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느 누구에게나 가슴 설레는 허니문. 다른 사람은 모르는 둘 만의 추억으로 남기고픈 순간을 그들은 서슴없이 공개했다. 그것도 두 권짜리 책으로. 결혼 전에 모아둔 돈에  신접살림 차릴 돈까지 몽땅 털어 그들은 1년간의 긴 신혼여행을 떠났다. 유럽의 곳곳을 샅샅이 쏘다니고 이집트와 캐나다로 이어지는 그들의 특별한 여행은 무척 신선했다. 당시 뱃속에 둘째를 임신하고 있던 난 이 아이가 태어나서 좀 크면 그들처럼 온가족이 여행을 떠나야지 마음먹었다. 그들은 어떤 부모가 될까 궁금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고. 이우일과 선현경이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그것도 은서란 딸을 둔 부모가 되어서.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을 것 같던 이우일이 아빠라고? 순간 쿡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이내 몇 년 전 품었던 궁금증이 되살아났다. 그들은 어떤 부모일까. 아이를 어떻게 기를까. 이런 내게 답이라도 하듯 그들은 한 권의 책을 내민다. 자신들의 일상이 담긴 이야기를. 이렇게 기막힌 타이밍이 있나! 말썽쟁이 두 아이의 육아로 지친 내게 그들의 일상은 틀림없이 신선한 자극이 될 거야!!




천편일률적인 형식을 벗어나 획기적이고 독특한 신혼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그들의 일상은 역시나 달랐다. 텔레비전을 그저 DVD 관람용으로 남겨두고  그들은 TV 대신 책을 보고 함께 보드게임을 하며 수다를 떨었다. 딸이 원하지 않는 한 어떤 학원도 보내지 않았다. 공부도 강요하지 않았다. 아이의 시험점수도 마찬가지였다. 대신 아이에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그저 학교와 집을 오가는 일상, 그 속에서 아이는 학교가 집처럼 또 하나의 즐거운 장소가 됐다. 학교가기 싫으면 가지 말라는 엄마에게 ‘집에 있으면 심심하다며’ 학교로 가는 은서에게서 대견하면서도 순수한 아이의 모습이 느껴졌다.




그림과 만화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의 책이라 그런지 본문 곳곳에 만화가 삽입되어 있다. 간단한 몇 컷에 불과한 만화지만 그들의 일상과 생각을 엿보기엔 충분하다. 내가 주부여서 그런지 그림작가 선현경보다 주부 선현경을 만날 수 있는 대목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주부치매를 앓는 아줌마, 남편과 다투고 화해하는 아내, 딸과 친구 같은 엄마, 겨울방학이 됐다고 딸과 합의하에 교과서를 버리는 엉뚱함까지! 이렇게 다양한 선현경의 모습은 책을 읽는 즐거움이자 나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기도 했다.




초등학교란 곳은 아이들이 다니는 곳이지 엄마들이 다니는 곳이 아니다.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또 어떻게 놀아야 할지 혼자 터득한 아이는 지금도 혼자 공부하고, 혼자 잘 논다. 스스로 할 줄 아는 아이는 스스로 설 줄도 알고, 또 스스로 길을 찾으며, 스스로 잘 살게 되지 않을까? 앞으로 뭘 해야 할지를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 엄마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이라 믿는 나는 오늘도 아이를 혼자 내버려둔다. - 147쪽.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즐거움과 기쁨, 행복을 찾는 가족들. 목적지까지 조금 둘러가더라도 아이가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지켜봐주고 기다려주는 부모와 그 속에서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키워가는 딸. 그들을 만나 즐거웠다. 그들의 유쾌함을 닮고 싶다. 이우일과 선현경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또 하나의 의문을 가져본다. 은서에게 동생이 생긴다면 어떨까? 언니나 누나가 된 은서.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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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 진단서 - 요리책에는 절대로 나오지 않는 식품의 모든 것
조 슈워츠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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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12년차에 접어들었지만 갈수록 식탁 차리기가 어려워진다. 유전자 조작식품에 원산지가 의심스런 식재료들, 농약범벅 채소와 과일, 인공감미료와 착색제로 맛을 낸 가공식품. 나와 가족들의 몸에 건강을 해치는 유해한 성분이 차곡차곡 쌓여갈 걸 생각하면 아찔하지만 단 한 끼의 식사라도 이런 것들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모든 먹거리를 직접 기르고 재배하지 않는 한. 아니, 그것 역시 현재의 환경에선 불가능하다. 각종 매체에서 내놓는 정보를 보면 더욱 혼란스럽다. 먹으면 좋다고 했다가 아니다. 이러이러한 점이 유해하니 먹으면 안된다고 한다. 이것도 저것도 문제라니 대체 뭘 먹으란 말인가!




화학자이면서도 음식과 영양에 관한 책을 출간하기도 했던 저자 조 슈워츠는 일명 ‘카더라’ 통신에 의한 부작용, 혼란스런 정보로 인해 사람들이 예전의 좋지 않은 식단으로 돌아가는 걸 염려한다. 그래서 복잡한 인체의 다양한 분자적 구성과 보다 확실한 과학적 분석을 기초로 한 먹거리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책은 4부로 나뉘어 있다. 1부 [음식물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평소 우리가 자주 접하는 먹거리에 대해 얘기한다. 사과를 비롯해 토마토, 블루베리, 양배추, 콩, 브로콜리, 시금치, 우유, 초콜릿, 커리 등에 대해 우리가 잘못 알고 있던 지식을 짚어주는 동시에 미처 알지 못했거나 건강에 나쁘다고 알고 있던 식품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전해준다. 2부 [식품 조작의 득과 실]에서는 음식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질병이나 증상에 대해 알려준다. 짜게 먹는 습관과 고혈압, 설탕과 같은 당분과 아이들의 과다활동성, 인공감미료와 체중조절 문제, 아질산염이 함유된 가공식품과 위암발병율, 식용색소의 안정성, 비타민의 올바른 섭취방법에 대해 충고한다. 3부 [음식물에 스며든 오염물질]에서는 필요에 의해 탄생된 농약으로 인해 우리가 치르는 고통과 트랜스 지방과의 전쟁, 육류 속의 성장촉진제, 카페인과 다이옥신 등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하나하나 짚어준다. 마지막 4부 [잘못된 속설 바로잡기]에서 저자는 마치 기적의 음식처럼 알려졌던 구기자 주스, 두뇌건강과 노화를 방지한다는 DHEA의 효능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게 했고 다이어트를 위해 녹차를 마신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며 얘기한다.




그동안 우리가 식품에 대해 잘못 알고 있던 것들이 이렇게나 많았던가. 책을 읽는 내내 놀랐다. 몸에 안 좋은 성분이 있다는 말에 겁을 먹은 나머지 자세히 알아보려 하지도 않았으니...나의 어리석음에 부끄러울 뿐이다. 반면에 새롭게 알게 된 것도 많았다. 커리와 후추의 음식궁합이 좋아서 함께 먹어야 좋다는 거나 유기농 채소와 일반 채소가 영양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이 약 한 번 먹어봐! 아픈 거 다 나아! 아침마다 요강이 깨져!” “저~기 허리굽은 할머니, 이거 먹고 허리 펴졌어!” 시골장터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던 만병통치약 약장수를 기억한다. 현란한 말솜씨로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던 그에게 혹해서 약 한 병씩 손에 들고 귀가하던 사람들. 그들을 다시 만나지 못했으니 그 약이 얼마나 효험이 있는지 알 수 없다.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의사가 청진기를 들이대고 진찰하듯 저자는 각각의 식품을 요리조리 살펴보고 조사해본 후 진단을 내린다. 어떤 식품도 우리의 몸을 순식간에 좋아지게 만들지는 못한다고. 존재하지도 않는 만병통치약처럼 기적을 바라지는 말라고. 그리고 겁먹은 환자를 다독이듯 조용히 말을 건넨다. 뭐든 모자라거나 과하지 않게 적당히 먹는 게 중요하다고. 어떤 것에서도 정확한 답을 내놓지 않아 때론 답답하기도 하지만 그게 바로 해답일 듯하다. ‘ 먹어야 좋을까’가 아니라 ‘뭘 어떻게 먹어야 할까’ 고민해야할 때가 됐다. 평소 음식과 건강에 관해 고민했다면 이 책이 그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될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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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탐닉 - 북촌 10년 지킴이 옥선희가 깐깐하게 쓴 북촌 이야기
옥선희 지음 / 푸르메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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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나고 자란 내게 북촌은 바다건너 외국이나 다를 바 없는 낯선 곳이었다. 간혹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에서 배경으로 언뜻 보이는 한옥 마을을 보고 아, 서울에도 저런 곳이 있었구나 하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그러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의 전통가옥인 한옥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한옥을 생활하기 편리하게 부분적으로 개조한 사람들의 책을 읽고 여행을 가더라도 한옥체험을 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보곤 했다. 몇 달 전엔 ‘외국인 한옥지킴이’로 알려진 한 외국인이 북촌마을에 벌어지고 있는 개보수 공사에 반대하다가 부상을 입고 시력까지 잃었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북촌의 한옥마을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서울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일대의 북촌은 언제든 서울에 가면 꼭 둘러봐야할 곳으로 손꼽게 됐다. 하지만 오직 희망사항으로 그칠 뿐 북촌과 나의 사이는 조금도 가까워지지 않고 평행선을 이뤘다. 그러다 만나게 된 책이 바로 <북촌탐닉>이다. ‘북촌 10년 지킴이 옥선희가 깐깐하게 쓴 ‘북촌’ 이야기‘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영화 칼럼니스트로 알려진 저자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알려주는 북촌 소개서이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 번째 이야기 ‘북촌에 살다’는 북촌이 자리하고 있는 지리적 여건과 오늘날의 북촌이 형성된 배경, 과정 같은 기본적인 소개와 더불어 북촌에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상을 털어놓고 두 번째 ‘북촌을 거닐다’에서는 말 그대로 저자와 함께 창덕궁길, 계동길, 별궁길, 감고당길 등의 북촌의 길을 거닐면서 그 거리의 정취에 흠뻑 느껴볼 수 있다. 한옥으로 둘러싸인 좁은 길 곳곳에 자리한 아기자기한 갤러리와 공방,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유적지와 박물관, 모든 것이 다 아름다운 윤보선 가옥, 고택들, 좁은 계단을 오르내리면 만나게 되는 작은 가게들...을 둘러보는데 각각의 거리마다 간단한 약도를 수록해놓고 있어 북촌의 골목길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세 번째 ‘북촌 밖을 서성이다’에서 저자는 북촌의 주변은 어떠한지 소개하고 있는데 재래시장도 대형마트도 없는 북촌이지만 낙원시장이나 광장시장 같은 대규모의 시장이 인근에 있어서 생활하기에 불편함이 없다고 하고 구름재란 의미의 ‘운현궁’에서  굴곡진 우리의 역사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우리의 지난 과거와 현재가 함께 공존하고 있는 곳 북촌. 좁은 골목길에서 더욱 운치가 느껴지는 북촌의 한옥 마을이 몇 년 전부터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일명 ‘북촌 가꾸기 사업’이라고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탁상행정의 전형이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왔던 한옥마을을 새롭게 바꾸는 것이 진정으로 가꾸는 것일까. 고요함 속에 생동감이 넘쳤던 북촌이 점차 그 빛깔을 잃어버리는 건 아닌지 안타까울 뿐이다. 북촌이 제 모습을 잃어버리기 전에 얼른 가족들의 손을 잡고 북촌의 골목골목을 거닐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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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훈련소 - 간단하고 쉽게 글 잘 쓰는 전략
임정섭 지음 / 경향미디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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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느낌이나 생각을 블로그에 글로 기록을 남긴지 3년이 조금 넘었다. 초반에 썼던 글을 보면 정말 형편없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줄줄줄’ 써댔다. 남 보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그러다 조금씩 글의 구성을 생각하게 됐다. 내가 전하고 싶은 내용을 좀 더 쉽고 간략하게 쓰기 위해 고심했다. 갑자기 ‘글쓰기’가 어렵고 두렵게 느껴졌다. 대체 ‘글’이란 뭘까?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어떤 생각이나 일 따위의 내용을 글자로 나타낸 기록’이 ‘글’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글쓰기’는? ‘생각이나 사실 따위를 글로 써서 표현하는 일’이라고 나온다. 즉, 생각이나 사실을 ‘글자’로 나타내면 ‘글’이고 그때 글로 표현한 게 ‘글쓰기’라는 거다. 단순한 듯하면서도 참 어렵다. 글은 잘 쓰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걸까.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은 크지만 잘 쓰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훈련소가 있다. 바로 <글쓰기 훈련소>. 이곳에 입소하면 ‘간단하고 쉽게 글 잘 쓰는 전략’에 대해 교육받게 된다고 한다. 오! 귀가 솔깃해지는걸. 내가 바라는 것이 바로 그거야! 쉬우면서도 글을 잘 쓰는 방법. 근데 그게 정말 가능하다는 건가?




첫 문장은 신의 도움까지 받아야할 정도로 어렵다며 말문을 연 저자는 멋진 표현을 쓰려는 생각이 글쓰기를 어렵게 한다고 지적한다. 글은 어디까지나 메시지를 보다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이므로 장식하고 꾸미는 건 그 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처음부터 느낌과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건 어려우니까 배경이나 줄거리를 먼저 쓰는 연습부터 하되 장문보다는 단문 쓰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다며 글쓰기 역시 다른 기술처럼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 다음으로 저자는 새로운 글쓰기의 방법으로 ‘포인트 라이팅’을 제시한다. 먼저 일상 속에서 쓸 만한 글감을 찾아냈다면 보이는 사물의 특징을 제대로 잡아낼 수 있어야 하는데 간혹 눈에 보이지 않는 과거의 경험을 소재로 할 때는 ‘특별한 무엇’을 잘 포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는 포인트(P,포인트 파악 -> O,아웃라인 -> I,배경정보 -> N,뉴스 -> T,생각.느낌.의견)의 순서에 따라 글을 쓰고, 마무리하는 것이 기본 틀이라고 한다.




책에는 저자가 제시한 포인트 라이팅을 바탕으로 해서 글쓰기 연습과 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여러 분야의 글을 다양한 형식으로 쓴 예시문을 수록해놓고 있어서 본문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글쓰기의 법칙’에서 좋은 글을 쓰는 데 있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법칙을 알려주고 있는데 그 대목을 보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생각없이 글을 썼는지, 얼마나 나쁜 글쓰기 습관을 갖고 있으며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러왔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글쓰기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었다. 좀 더 매끄러우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 기대를 갖고 읽었지만 매번 기대에 못 미치거나 천편일률적인 내용을 수록한 책이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은 여태 만났던 어떤 책보다 더 쉽게 다가온다. 생각과 느낌을 글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면 이 책 <글쓰기 훈련소>에 입소를 권한다. 글쓰기의 기초부터 확실하게 다질 수 있을 거라 자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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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앵카레가 묻고 페렐만이 답하다 - 푸앵카레상을 향한 100년의 도전과 기이한 천재 수학자 이야기
조지 G. 슈피로 지음, 전대호 옮김, 김인강 감수 / 도솔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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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소, 미국 보스턴의 MIT 공대. - 청소를 하던 청년이 복도 칠판에 적힌 문제를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분필을 들고 풀기 시작한다.

# 다음날 - 담당교수, 자신이 학생들에게 한 학기 동안 풀어보라고 제출한 문제를 해결한 학생이 누구인지 수소문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이에 교수는 또 다른 문제를 칠판에 적어놓는다. 그 후 칠판 앞으로 다가온 청년, 역시나 쉽게 문제를 풀어내는데, 그 광경을 지켜본 교수, 다급하게 청년을 부르지만 그는 달아나고 마는데...




영화 <굿 윌 헌팅>의 한 장면이다. 노벨상을 수상한 교수들도 어려워서 쩔쩔매는 문제를 쉽게 풀어내는 윌 헌팅. 그는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로 수학에 탁월한 재능을 가졌지만 불우한 가정환경과 마음의 상처를 안고 노동자로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러다 램보 교수를 만나 수학문제를 풀고 심리학 교수인 숀 맥과이어 교수를 만나 마을을 열게 된다.




<푸앵카레가 묻고 페렐만이 답하다>란 책을 읽으면서 불현듯 이 영화가 생각났다. 영화 속 램보 교수가 바로 수학분야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을 수상자로 나왔다는 것과 그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한 괴팍한 천재 윌 헌팅은 한사코 자신을 감추려했다는 점. 그것이 백년의 난제, 푸앵카레의 추측을 풀어낸 공로를 인정하여 필즈상을 수상하게 됐지만 이를 거부하고 몸을 숨긴 페렐만을 떠올리게 했다. ‘푸앵카레 추측’이란 무엇이며 페렐만은 그 난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었을까. 조지 G. 슈피로는 이 점에 대해 풀어내고 있다.




페렐만의 필즈상 수상거부로 시작한 책은 앙리 푸앵카레에 대해 얘기한다. 푸앵카레는 어릴 때 몸이 약했고 말투도 다소 어눌했지만 뛰어난 아이였다고 한다. 수업시간엔 메모는 물론 기록도 제대로 하지 않았지만 집중력과 기억력이 뛰어나서 어떤 어려운 문제도 척척 풀어낼 정도였다고 한다. 푸앵카레는 그 후 광산대학에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수학문제에 몰두하게 되는데 오스카상을 받아 과학계의 총아로 떠오른 자신의 논문에 오류가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논문을 다시 쓰기 시작한 그는 결국 작은 원인이 엄청나게 큰 결과를 불러온다는 나비효과의 토대가 되는 카오스 이론의 기초를 발표한다. 그리고 이전의 실수를 발판삼아 더욱 깊은 의문을 품게 된다. “어떤 다양체의 기본군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그 다양체가 구면과 위상동형이 아닐 수 있을까?”(141쪽)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푸앵카레의 추측’이다.




‘푸엥카레 추측’. 암만해도 역시 어렵다. 초반에 언급된 대로 쉽게 설명하자면 둥근 공 위를 기어가는 개미가 있다고 하자. 그에게 공의 표면은 완전히 평평하게 느껴진다. 해서 그 표면이 둥근지, 평평한지 알려면 개미는 거기서 좀 떨어져서 바라봐야 하는데 이것이 파리에겐 가능할지 몰라도 개미에겐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체에서 떨어지지 않고도 3차원 물체의 표면이 둥글다는 걸 증명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지구 밖을 벗어나지 않고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느냐는 가설이므로 그 범위를 좀 더 넓게 확장하면 우주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우주가 둥근지 아닌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수학분야뿐 아니라 물리학과 천문학에도 큰 업적을 남긴 앙리 푸앵카레. 그가 1904년 발표한 논문에서 자신의 직감을 정리가 아닌 질문으로 제시한 것에 답을 찾아내고 증명하기 위해 이후 100년간 전 세계의 동료 수학자들이 매달리게 된다. 화이트헤드를 시작으로 크리스토스 파파키리아코풀로스, 엘비라 슈트라서라파포트, 제임스 매쿨...등 수많은 수학자들이 모두 푸앵카레병에 걸리는 것도 마다않고 세계 7대 수학난제 가운데 하나인 푸앵카레의 추측에 도전했지만 어느 누구도 완전하게 해결하지 못했다. 2006년 그레고리 페렐만에 의해 푸앵카레의 추측이 정리되기 전까지. 그러나 100만 달러의 상금이 걸린 난제를 해결한 그는 필즈상 수상까지 거절한 채 세상과 단절한 채 은둔해버렸다.




때론 책장 한 장에도 무게가 느껴질만큼 어려운 독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학창시절 수학을 어느 정도 했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나의 교만이요, 자만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위상수학이니 위상기하학, 3차원, 4차원, 클라인 병, 베티 수...처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툭툭 튀어나와 앞을 가로막을 때마다 생각했다. 판단착오였어. 수학이 이토록 어려운 학문일 줄이야. 수학을 전공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지...백년의 난제 푸앵카레의 추측을 풀기 위해 수많은 수학자들이 고심한 것처럼 나의 책읽기 역시 고난의 연속이었다.




페렐만에게도 그랬을까. 100년이란 세월의 묵직함. 문제 하나를 풀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친 수학자들의 삶, 생애를 그는 가벼이 여길 수 없었던 건 아니었을까. 40대 중반의 페렐만. 학자로서 아직 한창의 나이인 그가 은둔의 날을 접고 다시 수학자로 나타나길. 그에 의해 밝혀질 심오한 학문의 세계, 손꼽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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