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를 부르는 그림 Culture & Art 1
안현신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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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이를 낳고 몇 년간 중단상태지만 한때 십자수에 빠져 살았다. 책 아니면 바늘을 쥐고 살았는데, 책 읽는 속도가 느리듯 수놓는 속도도 무척 더뎠다. 그런데 귀엽고 예쁘고 멋지고 근사한 도안은 왜 그리도 많은지 하나하나 모은 도안이 두어 박스가 넘는다. 그중에서도 언젠가는 꼭 작품으로 만들어야지...했던 것이 바로 클림트의 [키스]였다. 그 어떤 것보다 황홀하고 매혹적인, 그러면서도 왠지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분위기가 물씬 묻어나는 그림을 십자수로 담아보려 했는데. 아직도 꿈만 꾸고 있다. 매혹의 키스를...




수많은 키스 장면을 모자이크해서 살짝 도드라지게 표현한 입술. 관능적이면서도 에로틱한 느낌을 자아내는 책 <키스를 부르는 그림>. Culture & Art Series의 첫 번째 책으로 ‘키스’를 소재로 한 유명화가와 조각가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책은 크게 ‘빛과 환희, 즐거운 입맞춤’, ‘어둠의 세계, 비극의 입맞춤’, ‘황홀의 순간, 관능의 입맞춤’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23개로 나누어진 키스의 모습들을 살펴보니 각각의 키스마다 담겨있는 감정들이 모두 조금씩 다르게 다가왔다. 더없이 아름다운 키스가 있는가하면 짙은 칠흑 같은 어둠이 물씬 배어나오는 키스가 있었다. 따스하고 포근함이 가득한 키스가 있는 반면 인간의 욕망과 불안, 배신이 느껴지는 키스도 볼 수 있었다.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수많은 감정, 기쁨과 슬픔, 사랑, 연민, 질투, 배신, 욕망의 표현을 모두 키스를 통해 전하고 있는 작품들이었는데, 이미 알고 있는 것도 많았지만 책에서 처음 만난 작품도 있었다.




마르크 샤갈의 키스를 담은 여러 그림 중에서 너무나 유명한 그림 [생일]. 사랑하는 연인간의 키스를 보며 사랑의 몽환적인 느낌을, 아이를 안고 입을 맞추는 엄마의 모습을 담은 메리 카시트의 그림에선 한없는 포근함과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반면 [유다의 키스]처음 충격적인 순간을 포착한 그림도 있었다. 입을 맞춤으로써 예수를 배신하게 된 유다, 입맞춤으로 인해 엄청난 혼란을 불러오지만 그럼에도 평온함을 유지한 예수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런가하면 베일 같은 것을 뒤집어쓴 채 키스 하는 르네 마르리트의 [키스]에서는 낯섦과 의문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클림트의 [키스]! 사랑의 절정, 최고로 황홀한 순간을 담은 그림이 불가능한 사랑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니...




무엇보다 가장 독특했던 작품은 역시,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키스]였다. 딱딱한 바윗덩어리에 불과했던 것에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어 사랑의 일체감을 단순하지만 확연하게 드러낸 작품을 보며 평화로움과 진정한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다.




“코는 어떻게 해야 하죠? 늘 궁금했어요.....언제나 코가 훼방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처음으로 키스를 하던 마리아처럼 책을 읽으며 나 역시 궁금했다. 키스를 통해 얼마나 많은 것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저자가 조용히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수많은 작품에서 보여지는 키스가 그저 사랑을 드러내는 낭만적인 감정의 표현이 전부가 아니란 걸 느꼈다. 자신의 감정과 삶을 작품 속에 녹여낸 수많은 예술가들을 또 다른 시각으로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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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 - 스페인·라틴아메리카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후안 룰포 외 지음, 김현균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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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연말부터 국내의 몇몇 유명출판사에서 세계문학들을 내보이고 있다. 기존에 이미 출간된 작품이 새롭게 번역하거나, 새로운 판형과 표지로 출간되고 있는데 간혹 지금까지 출간된 적이 없는 새로운 작품이 있어서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그 중에 창비 세계문학이 있다. 대부분의 출판사에서 지금까지 많이 알려진 저자의 장편이 소개되는 것에 비해 창비 세계문학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일본...처럼 국가나 주요지역으로 묶어서 해당 나라 작가의 단편들을 모아놓았다는 점이 독특하다.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는 창비 세계문학의 [스페인/라틴아메리카편]이다. 지금까지 많은 책을 읽었지만 스페인/라틴아메리카 작가의 작품을 그다지 많이 접하지 못했기에 만나기 전부터 기대가 됐다. 책은 19명  작가들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목차를 보니 내가 알고 있는 작가는 <백 년 동안의 고독>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와 <운명의 딸>의 이사벨 아엔데 단 두 명에 불과했다. 그것도 작가의 이름만 알고 있을 뿐, 실제로 작품을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300쪽이 안 되는 책에 19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어서 각각의 단편은 길이가 그다지 길지 않다. 이그나시오 알데꼬아의 [영 산체스]이 50페이지에 가까운 가장 긴 단편이라면 아우구스또 몬떼로소의 [일식]처럼 단 두 페이지짜리 단편도 있었다. 그 중에 인상적인 작품을 꼽자면 목장주에게 갚아야 될 빚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암소 꼬르데라를 팔아야하는 처지에 놓은 목장 주인과 어릴적 엄마요 할머니 같던 아이들이 청년이 되어 전쟁터에 불려가는 이야기를 담은 [안녕 꼬르데라!], 곱게 잘 자란 소녀를 보며 지난 날 소녀가 태어나던 순간과 어릴적 모습을 떠올리며 감상에 젖는 삐오 바로하의 [마리 벨차], 공장 노동자인 주인공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판으로 복서의 길을 걷는 이그나시오 알데꼬아의 [영 산체스], 마치 테이프를 거꾸로 돌리듯 이야기의 서술방식이 과거로 과거로 이어지는 알레오 까르뻰띠에르의 [씨앗으로 돌아가는 여행]은 예전에 읽었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스페인버전(?)을 보는 듯했다. 의문을 품게 했던 제목이자 표제작인 후안 룰포의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는 35년 전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이에게 복수하려는 멕시코군 대령과 그에게 자비를 구하려는 암살범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스페인의 비극적인 상황을 엿볼 수 있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 많은데다 영미소설에 비해 자주 접하지 못한 나라의 작품, 그것도 전쟁이나 가난, 혁명, 독재정치처럼 비극적인 주제를 담고 있어서인지 각각의 단편들은 생각만큼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하루에 두 세 개 정도의 단편을 읽고 나서 틈틈이 책의 내용을 곱씹어야 하는 것들도 많았다. 하지만 각 단편마다 저자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내용에 대한 간략적인 설명과 ‘더 읽을거리’를 수록해놓고 있어서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현재 총 9권으로 구성된 창비 세계문학. <스페인/라틴아메리카편>외에 다른 나라편에는 어떤 작품이 수록되어 있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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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금강 지음 / 불광출판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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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기억은 참으로 희한하다. 엊그제 일을 까맣게 잊는 반면 오래전에 있었던 짧은 순간을 생생하게 떠올리기도 한다.




십 오륙년 전, 사찰에서 보낸 하루가 바로 그런 경우다. 계절은 여름에 들어서서 해는 길어졌지만 산중엔 이미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도로를 따라 암자를 찾아가는 길, 좌우로 펼쳐진 논에선 개구리들의 합창이 무르익어갔다. 개굴개굴개굴....귀가 멍할 정도로 크게 다가오던 소리에 익숙해질 즈음 어느새  사찰의 초입에 이르렀다. 약속시간보다 늦게 도착한 우리에게 주지 스님은 차 한 잔을 건네셨는데 그때의 입 안 가득 퍼지던 쌉싸래한 차 맛이란...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향기로웠다. 낯선 곳, 낯선 방에서 쉬이 잠들지 못하고 뜬눈으로 지세다 얼핏 선잠에 빠진 날 깨운 건 낮으면서도 청명한 목탁소리였다. 잠에 취한 모든 생물과 미물을 깨우는 도량석 목탁소리. 언제 잠들었냐는 듯 번뜩 정신이 차리고 문을 여는 순간, 내 입에선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깊은 산중의 암자, 이른 새벽, 도량을 감싸고 있는 안개, 바람결에 조용히 울려 퍼지는 목탁과 풍경소리, 엄숙하고도 장엄함이 감돌던 새벽 예불...마치 꿈속에서나 볼 것 같은 환상적인 분위기였다.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을 읽으며 난 오래전 작은 암자에서의 하루가 떠올랐다. 스님이 조용히 건네시던 맑은 차, 새벽안개가 내려앉은 사찰, 피부에 닿는 차가운 공기마저 신선하게 느껴지던 새벽 사찰의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 것 같았다.




전라남도 해남의 땅끝마을, 달마산 중턱 쇠락해가던 사찰 미황사는 마치 깊은 잠에 빠진 천지만물이 도량석 목탁소리로 깨어나듯 금강스님의 원력으로 서서히 깨어나게 된다. 누구든 마음속에 부처가 있다는 석가의 가르침처럼 금강스님은 만나는 이마다 부처를 대하듯 정성을 다했다. 이어 템플스테이와 참선수행 프로그램 ‘참사람의 향기’, 어린이 대상의 한문학당, 산중음악회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깊은 산중에 머물러 있는 불교가 아니라 보다 많은 이들과 호흡하기를 염원하는데, 그 스님의 마음에 보답하듯 미황사는 이제 해마다 많은 이들이 찾는 사찰이 되었다.




시작하는 겨울, 일어나는 봄, 길 위의 여름, 깊어가는 가을로 이어지는 책을 매일밤 잠자리에 든 아이에게 조금씩 읽어줬다. 하루의 일과에 지친 마음을 내려놓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읽어가는 책을 귀로 들으며 아이는 잠투정도 잊고 곤히 잠들었다. 잠든 아이의 평온한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여기에도 부처가 깃들어있겠지. 내게 깃든 부처를 뵙기 위해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를 마음에 담아본다. 오래전 그 날의 청정한 새벽예불이 갑자기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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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리시 페이션트
마이클 온다치 지음, 박현주 옮김 / 그책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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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연애할 때, 사랑하는 두 연인의 애절하고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라는 광고에 영화를 보러갔다. 기대를 하고 갔지만 두 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아주 잠깐, 영화를 보다 깜빡 졸았다. 그리고 번뜩 눈이 떴을 때 눈앞엔 황금빛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황금빛 바다는 드넓은 사막이었고 그 위를 작은 경비행기가 날고 있었다. 그리고 바람에 흩날리는 하얀색의 기인 스카프. 갑작스런 상황에 이야기가 연결되진 않았지만 지금도  <잉글리시 페이션트>하면 그 장면이 떠오른다.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남자의 애절함과 함께.     

 


 

 

그리고 십년이 훨씬 지난 얼마전 예전에 봤던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의 원작소설이 출간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거기다 세계3대 문학상 중의 하나라는 부커상까지 수상했던 작품이라니. 일부에 불과하지만 필름(?)이 끊겼지만 영화보다 졸았다는 얘길 부끄러워서 차마 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었기에 주저없이 책을 집어들었다. 대체 어디야? 문제의 부분이 어느 대목인거지? 책장을 펼치자마자 눈에 불을 켜고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원작소설은 영화와 달랐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영화가 원작소설과 닮았으면서도 달랐다.




영화는 심한 화상으로 죽어가는 영국인 환자인 알마시와 그를 보살피던 캐나다인 간호사 해나, 전직 도둑이면서 연합군 스파이로 활동한 카라바지오, 영국 부대에서 폭탄처리 전담이었단 인도인 공병 킵을 주요 등장인물로 해서 알마시와 그의 연인이었던 캐서린의 로맨스에 초점을 맞추고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하지만 소설은 영화에 비해 초점을 좀 더 확대한다. 2차 대전이 거의 끝날 무렵의 이탈리아 북부, 폭격으로 인해 반쯤 초토화된 빌라 산 지롤라모를 배경으로 알마시와 해나, 카라바지오, 킵 모두의 이야기를 다룬다. 알마시, 해나, 카라바지오, 킵은 국적이나 직업이 서로 달랐지만 큰 공통점을 안고 있었다. 저마다 뭔가를 잃었다는 것. 사랑을 잃고 가족을 잃고 몸의 일부를 잃고 전쟁을 겪으면서 모두 황폐해진 마음을 쓸어안고 그로 인한 상처로 고통 받고 있었다. 저자는 그런 이들을 모두 한 자리에 모아놓는다. 그들이 머문 곳 주변엔 온통 철수하던 독일군의 지뢰를 설치해두고서.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는 처음엔 서로가 경계하며 가까이 다가서려 하지 않는다. 그러다 서서히 과거를 딛고 일어서려고 하는데 영화에서 다뤄졌던 내용은 바로 알마시가 해나와 카라바지오, 킵에게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다.




영화를 먼저 접해 그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소설은 생각처럼 쉽게 읽혀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줄곧 이름도 없이 ‘그’와 ‘그녀’이던 소설이 45쪽 카라바지오가 해나를 찾아오면서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게다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이 한 사람으로 고정되지 않고 알마시와 해나, 카라바지오, 킵이 왔다갔다 해서 혼란스러웠다. 때문에 중반까지는 읽었다가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되짚어오기도 했지만 네 사람의 서술로 접하게 되는 각자의 전쟁과 고뇌, 사랑, 삶의 이야기는 내게 많은 의문을 던졌다.




이 책을 다 읽어갈 즈음, 남편이 표지를 보더니 예전에 봤던 그 영화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대뜸 “음, 이 영화 좋았지.”라며 ‘집에 있는 DVD로 다시 봐야겠다’는 말을 했다. 헛, 집에 이 영화의 DVD가 있었던가? 그걸 왜 난 깜빡 잊은 걸까. <잉글리시 페이션트> 영화는 영화대로, 책은 책대로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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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분 2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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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6일. 여느 날과 다르지 않는 하루였다. 시험공부를 하던 아이는  엄마와 아침을 먹느냐 안 먹느냐로 실랑이를 벌이고 한 형사는 범죄를 미리 막지 못하는 걸 안타까워했으며 마을의 어딘가에선 조산사의 도움을 받아 막 새로운 생명을 낳은 신참 부모도 있었다.




그러나 그 날은 달랐다. 마을 사람 모두가 서로 알 정도로 작은 마을이라 큰 사건도 없던 스털링에 총이 발사된 것이다. 장소는 다름 아닌 스털링 고등학교. 갑작스런 총격에 놀라 뛰쳐나오는 학생들로 인해 학교는 대혼란이 벌어지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은 체육관 라커룸에서 총을 쏜 아이를 체포한다. 피터 호턴. 17세의 소년이다.




조용하고 평화롭던 스털링 마을이 충격과 혼란의 도가니로 빠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피터의 총기난사로 10명의 아이가 목숨을 잃고 19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으며 정신적 피해를 입은 이는 무수히 많았다. 피터의 어릴적 단짝 친구였던 조지도 라커룸에서 부상을 입은 채 발견된다.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친구 맷의 주검 옆에서. 그러나 사건의 진행과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목격자인 조지는 충격으로 인해 사건과 관련한 기억을 잃고 만다.




2007년 3월 6일 오전 10시 16분을 전후한 19분간 학교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이 사건을 접한 사람이라면 모두가 이 점을 궁금해 할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사건이 벌어진 19분의 의문을 풀기보다 무엇이, 어떤 일들이 ‘19분의 사건’을 일어나게 했는지에 주목한다. 사건이 벌어진 당일의  긴박함과 충격적인 순간을 서술하기보다 사건의 당사자인 피터가 태어나기 전인 17년 전, (사건) 몇 시간 뒤, 12년 전, 다음날...의 식으로 사건이 일어나기 전과 후, 과거와 현재를 교차해가며 피터와 조지, 그들의 부모와 검사, 변호사를 비롯한 주요 등장인물들을 보여준다. 어느 누구보다 착하고 조용하며 여렸던 소년 피터에게 17년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때마다 피터의 마음은 어떠했는지, 어떤 일이 결정적으로 피터의 손에 총을 쥐어주고 방아쇠를 당기는 끔찍한 사건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는지 담담하면서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사람들은 얘기한다. 왕따를 당했다고 해서 모두가 자살을 하거나 손에 총을 들고 마구잡이로 쏘아대지 않는다고. 그러나 당사자들은 털어놓는다. 자신도 때론 그렇게 하고 싶을 정도였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아이의 부모가 어떻게  그 지경이 되도록 모를 수가 있느냐고. 대체 부모가 어떤 사람이길래 아이를  괴물로 키웠냐고. 그러나 그 부모는 마음속으로 외친다. 아이가 아무 이유도 없이 괴물이 자라진 않아요.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아이지만 자신은 최선을 다해 길렀어요. 무조건 사랑하고 보호하며 금지옥엽 길렀는데 어쩌란 말이에요...




전작인 <쌍둥이별>이 그랬듯 이 책 역시 책장은 무척 쉽게 넘어갔다. 1,2권 합해 700쪽을 훌쩍 넘기는 책이지만 몰입감은 두께를 실감할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나 자신이 두 아이의 엄마여서인지 그런지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내 몸과 두 눈은 분명 책을 읽고 있지만 가슴은 계속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혹시나 내 아이가 피터나 조지와 같은 상황에 처하는 건 아닐까, 혹시나 내가 아이들을 잘못 키우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들 때문에 책장이 줄어들수록 결말에 다가갈수록 가슴은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역기를 손에 쥐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 일을 어쩔 것인가.




<19분>은 분명 미국에서 실제 일어났던 총기난사 사건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그러나 책이 담고 있는 건 단순한 총기난사 사건이 아니었다. 현대 사회가 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 소통의 부재를 다루고 있었다. 나는 과연 가족들과 친구들과, 사회와 제대로 소통하고 있는 걸까. 2권의 표지에 두 사람이 서로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다만 등장인물이 많아 이야기의 흐름이 다소 산만하게 느껴졌던 점이나 마지막 부분, 저자가 충격적인 반전(?)이라며 내놓은 카드가 이미 소설의 초반에 예상 가능했다는 점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19분>이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소설이란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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