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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분 2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2007년 3월 6일. 여느 날과 다르지 않는 하루였다. 시험공부를 하던 아이는 엄마와 아침을 먹느냐 안 먹느냐로 실랑이를 벌이고 한 형사는 범죄를 미리 막지 못하는 걸 안타까워했으며 마을의 어딘가에선 조산사의 도움을 받아 막 새로운 생명을 낳은 신참 부모도 있었다.
그러나 그 날은 달랐다. 마을 사람 모두가 서로 알 정도로 작은 마을이라 큰 사건도 없던 스털링에 총이 발사된 것이다. 장소는 다름 아닌 스털링 고등학교. 갑작스런 총격에 놀라 뛰쳐나오는 학생들로 인해 학교는 대혼란이 벌어지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은 체육관 라커룸에서 총을 쏜 아이를 체포한다. 피터 호턴. 17세의 소년이다.
조용하고 평화롭던 스털링 마을이 충격과 혼란의 도가니로 빠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피터의 총기난사로 10명의 아이가 목숨을 잃고 19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으며 정신적 피해를 입은 이는 무수히 많았다. 피터의 어릴적 단짝 친구였던 조지도 라커룸에서 부상을 입은 채 발견된다.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친구 맷의 주검 옆에서. 그러나 사건의 진행과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목격자인 조지는 충격으로 인해 사건과 관련한 기억을 잃고 만다.
2007년 3월 6일 오전 10시 16분을 전후한 19분간 학교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이 사건을 접한 사람이라면 모두가 이 점을 궁금해 할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사건이 벌어진 19분의 의문을 풀기보다 무엇이, 어떤 일들이 ‘19분의 사건’을 일어나게 했는지에 주목한다. 사건이 벌어진 당일의 긴박함과 충격적인 순간을 서술하기보다 사건의 당사자인 피터가 태어나기 전인 17년 전, (사건) 몇 시간 뒤, 12년 전, 다음날...의 식으로 사건이 일어나기 전과 후, 과거와 현재를 교차해가며 피터와 조지, 그들의 부모와 검사, 변호사를 비롯한 주요 등장인물들을 보여준다. 어느 누구보다 착하고 조용하며 여렸던 소년 피터에게 17년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때마다 피터의 마음은 어떠했는지, 어떤 일이 결정적으로 피터의 손에 총을 쥐어주고 방아쇠를 당기는 끔찍한 사건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는지 담담하면서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사람들은 얘기한다. 왕따를 당했다고 해서 모두가 자살을 하거나 손에 총을 들고 마구잡이로 쏘아대지 않는다고. 그러나 당사자들은 털어놓는다. 자신도 때론 그렇게 하고 싶을 정도였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아이의 부모가 어떻게 그 지경이 되도록 모를 수가 있느냐고. 대체 부모가 어떤 사람이길래 아이를 괴물로 키웠냐고. 그러나 그 부모는 마음속으로 외친다. 아이가 아무 이유도 없이 괴물이 자라진 않아요.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아이지만 자신은 최선을 다해 길렀어요. 무조건 사랑하고 보호하며 금지옥엽 길렀는데 어쩌란 말이에요...
전작인 <쌍둥이별>이 그랬듯 이 책 역시 책장은 무척 쉽게 넘어갔다. 1,2권 합해 700쪽을 훌쩍 넘기는 책이지만 몰입감은 두께를 실감할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나 자신이 두 아이의 엄마여서인지 그런지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내 몸과 두 눈은 분명 책을 읽고 있지만 가슴은 계속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혹시나 내 아이가 피터나 조지와 같은 상황에 처하는 건 아닐까, 혹시나 내가 아이들을 잘못 키우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들 때문에 책장이 줄어들수록 결말에 다가갈수록 가슴은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역기를 손에 쥐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 일을 어쩔 것인가.
<19분>은 분명 미국에서 실제 일어났던 총기난사 사건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그러나 책이 담고 있는 건 단순한 총기난사 사건이 아니었다. 현대 사회가 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 소통의 부재를 다루고 있었다. 나는 과연 가족들과 친구들과, 사회와 제대로 소통하고 있는 걸까. 2권의 표지에 두 사람이 서로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다만 등장인물이 많아 이야기의 흐름이 다소 산만하게 느껴졌던 점이나 마지막 부분, 저자가 충격적인 반전(?)이라며 내놓은 카드가 이미 소설의 초반에 예상 가능했다는 점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19분>이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소설이란 점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