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다리 풍경
이종근 지음 / 채륜서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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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한 마리가 통나무 위로 뛰어오릅니다. 아슬아슬 통나무 다리를 건너기만 하면 여우에게서 도망칠 수 있거든요. 근데 여우는 토끼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빨랐습니다. 여우 역시 통나무 다리 위로 올라서서 눈앞에 있는 토끼를 잡으려는 바로 그 순간, 통나무 다리가 흔들흔들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내내 세차게 내린 비로 다리가 망가져서 통나무 하나만 간신히 놓여있었는데요. 토끼나 여우는 그걸 알지 못했습니다. 여우는 눈 앞에 먹음직스런 먹잇감이 있지만 토끼는 뜀박질 한번이면 무사히 도망칠 수 있지만 옴짝달싹하지 못합니다. 균형이 아주 조금이라도 깨어지거나 흔들리면 아래로 위로, 양옆으로 사정없이 흔들리는 통나무 다리는 무너지고 토끼와 여우는 강으로 빠지게 되거든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인 토끼와 여우. 그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쳐 나갈까요?

 

 

<흔들흔들 다리에서>라는 그림책의 내용인데요. <한국의 다리 풍경>이라는 책을 보자마자 아이들의 그림책이 생각났습니다. ‘길이 끝나고 마음이 시작되는 곳’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저자가 국내의 곳곳에 놓여있는 다리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습니다.

 

 

다리는 강이나 계곡 같은 곳을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건너갈 때 놓는데요. 얕은 하천이나 개울을 건너기 위해 드문드문 돌을 놓은 징검다리가 있는가하면 나무나 벽돌, 혹은 바위를 이용해서 다리를 건설하기도 하지요. 당시의 시대적, 역사적, 지역적 상황에 따라서 다리는 여러 가지 형태를 띱니다. 역사나 문화적으로 이름난 다리를 책에는 ‘강원도, 경기도, 서울시’ ‘경상도’ ‘충청도’ ‘전라남도’ ‘전라북도’ 지역에 따라 나누어 소개되고 있는데요.

 

 

가장 먼저 제가 사는 곳이 속해 있는 지방의 다리부터 살펴봤습니다. 지명이 낯선 무섬에서는 외나무다리가 바깥, 다른 지역으로 통한 유일한 통로다고 하네요. ‘외나무다리로 꽃가마 타고 시집왔다가 죽으면 그 다리로 상여가 나간다’고 할만큼 고립된 곳이었다고 하는데요. 언뜻 사진으로 봤을 때 다리가 워낙 좁고 굽이져서 사람들이 오고갈 때 통행에 불편하지 않을까 했는데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일부구간에 비껴갈 수 있는 비껴다리가 있다고 합니다. 철새들의 서식지로 널리 알려진 주남은 거대한 늪지라는 지형적 특성 때문에 나무로 만든 다리나 징검다리는 여러모로 불편해서 커다란 돌로 다리를 놓았다고 합니다.

 

 

경기도 양평의 ‘황순원문학촌 소나무마을’에는 소설의 배경을 재현한 체험장이 있는데요. 어린 소년과 소녀의 아련한 첫사랑이 떠오르는 개울가의 징검다리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구요. 충북 진천군의 농다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로 하늘의 별자리를 응용해서 28개의 교각을 만들었고 멀리 떨어져 살면서 서로 그리워하는 견우와 직녀를 위해 까치와 까마귀가 다리를 놓아주었다는 오작교는 전북 남원에 있는데요. 이 오작교를 밟으면 부부금슬이 좋아진다는 얘기 때문에 연인들도 즐겨 찾는 명소라고 하는군요.

 

 

책 후반부에는 저자가 직접 전국으로 찾아다니며 찍은 다리 사진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옛 선조들의 철학적 사상과 이상이 고스란히 담긴 궁궐의 다리와 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홍교와 도마교, 일제 수탈의 상징이 된 군산의 부잔교, 한국전쟁의 상흔을 엿볼 수 있는 다리를 소개하고 있는데요. 부산의 영도대교가 몇 년 전 도개식으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다리가 하루에 한 번 올라가고 내려가는 광경을 아직 보질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사람의 보폭에 맞게 무심한듯 돌을 놓거나 혹은 통나무를 반으로 갈라 길게 연결하거나 혹은 바위나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서 놓거나. 다리는 그저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게 해주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다리든지간에 그곳을 지나간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 그리고 오랜 세월 시대를 넘어서 전해지는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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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6-06-27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도 다리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몽당연필님 오랜만의 리뷰 반가워요. 찜해둔 책인데 어서 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