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 랭귀지 - 박자세, 자연의 탐구자들
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 지음 / 엑셈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헐...!

책에 관한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섭렵(?)했다고 자부(?)했는데. 이런 경우는 참 드뭅니다. <유니버설 랭귀지> 표지를 가득 메운, 암호 같은 문자들을 보고 순간 머리를 짚었습니다. 어이구야, 이건 또 뭔가...? 사실 제가 화학을 워낙 싫어해서 생물학의 전공과목인 생화학, 유기화학 수업을 자주 빼먹긴 했습니다. 그래도 기본이란 게 있는데. 생전 처음 보는, 낯선 기호 앞에선 비명이 저절로 나오더군요. 이건 아니야! 너무 하는 거 아냐? 좌절하고 포기하려는 찰라, 몇 개의 문자가 눈에 띄었습니다. ‘E=mc2’, ‘H2O’, ‘CO2’, 'ADP', 'ATP'... 정말, 어찌나 반가운지. 큰 맘 먹고 참석한 모임에 아는 사람 하나도 없어서 난감한 순간에 그다지 가깝지 않은 몇 다리 건넌 ‘지인’을 만난 기분이랄까요? 순전히 이 몇 개의 문자 덕분이었습니다. 제가 <유니버설 랭귀지>를 읽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우선 <유니버설 랭귀지>의 저자부터 얘기 해야겠습니다. ‘박자세’라는 이름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요. 박자세는 ‘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의 약칭으로 ‘인간의 의식을 포함한 137억년 우주의 진화 전체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습단체이자 자연과학 문화운동단체’라고 하는데요. 특히 ‘137억년 우주의 진화’와 ‘특별한 뇌과학’ 강의는 박자세 회원은 물론 온라인상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강의 녹취록과 강의에 참여한 회원들의 기록을 한데 모아서 펴낸 것이 이 <유니버설 랭귀지>입니다.

 

책은 모두 15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일반상대성 이론, 초기우주. 별의 일생, 생명의 에너지, 기억과 훈련, 자연과학으로 본 인문학 등 자연과학 분야에서 인간이기에 품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의문들을 하나씩 다루고 있는데요. 박자세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을 위해 첫 장에서 박자세의 원칙인 몸 훈련, 뇌 훈련, 목적 훈련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공부를 하는데 있어 암기는 반드시 필요하며 어떤 것을 암기해야 하는지 설명한 다음 공표합니다. 박자세가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

 

힘들지만 책 보는 습관을 바꾸세요. 논문은 과학자들이 헉헉대면서 한 발씩 딛고 올라간 산물입니다. 논문을 본다는 것은 그 분야의 연구원 수준이 되는 겁니다. 박자세의 최고 목표는 논문입니다. 일반인이 전문가의 수준으로 과학을 공부하는 것, 박자세의 목표입니다.ㅡ19쪽.

 

‘2장 일반상대성 이론’부터 본격적인 강의가 시작되는데요. 21세기를 앞두고 과학자들이 선정한 과학 분야의 위대한 발견 중에서 첫 번째가 진화론, 두 번째가 일반 상대성 이론, 세 번째가 특수 상대성 이론이라고 하면서 아인슈타인의 밝혀낸 것들에 대해 설명합니다. 시간과 공간의 변형에 있어서 ‘광속불변의 법칙’이 얼마나 중요한지, 중력과 가속도의 관계를 짚어줍니다. ‘5장 디랙 방정식’에서는 양자역학의 시작이라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이야기하는데요. 처음 보는 기호 ‘Ψ (파동함수)’를 비롯해서 이것도 미분인가? 싶을 정도로 낯선 미분 방정식에 학창시절 제일 싫어했던 행렬까지 총동원이 되더군요. 현대 물리학은 양자 물리학의 기초 위에 성립되었기 때문에 양자 물리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슈뢰딩거 방정식은 반드시 알아야 된다고 하는데 막상 만나보니 외계어로 이루어진 수식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겐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 이해되는 것보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박자세 회원들의 열정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매주 서울에서 열리는 강의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 대구, 광주는 물론이거니와 먼 유럽이나 베트남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기도 한다는군요. 뿐만 아니라 강의 듣기에 가장 좋은 명당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최소한 한 시간 전에 도착하고 칠판에 빼곡하게 채운 강의내용을 4가지 색 볼펜을 동원해서 적거나 그마저도 안 되면 강의 중간 잠깐의 쉬는 시간에 칠판 앞으로 달려가 카메라를 들이댄다고 하는군요. 수강자들 중 일부를 제외하고는 중학생부터 대학생, 주부나 일반 직장인, 상담전문가, 인문예술분야의 학자, 종교인 전직을 알 수 없는 80대의 노인들이라고 하는데요. 그런 사람들이 결코 쉽지 않은 자연과학과 뇌과학 공부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해외학습탐사를 가는 공항에서도 공부의 몰입하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하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한다. 왜 하는가? 무엇을 위해 하는가? 가끔 허공을 향해, 내면을 향해 던지곤 하는 질문이다. 진리를 보는 안목을 갖자는 생각을 늘 하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정면으로 돌파할 기회는 많지 않았지만 이제는 막혔던 답 하나를 담게 되었다.ㅡ386쪽.

 

생물학을 전공했지만 대학시절의 저는 공부보다 딴 데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에 자연과학에 대한 약간의 부채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자연과학 분야의 책을 꾸준히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요. <유니버설 랭귀지>는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0여 년에 걸친 박자세 회원들의 공력은 책 한 권으로 넘볼 수 없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강의 부분을 볼 때면 어려워, 난해해...를 연발했지만 이어지는 회원들의 에세이와 참여소감을 보면서 지금이라도 다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표지의 앞뒤를 가득 메운 외계어 같은 기호를 모두 알게 되는 날이 올까요?

 

매 강의마다 마지막 부분에 메모할 수 있는 백지와 해당 강의에 관련해서 참고도서를 소개해놓은 점은 정말 좋았습니다. 본문 사진에서 만난 박자세의 단체 티셔츠는 심플하고 독특해서 탐이 날 정도였는데요. 하지만 색인이 없어서 아쉬웠어요. 이후 개정판이 출간되거나 다른 책이 출간될 때 색인을 꼭 덧붙여지길 바라며 제 마음을 울린 대목을 소개합니다.

 

별을 좋아하는 사람은 마젤란 성운 하나만으로도 호주에 갈 만한 이유가 돼요. 10년 전 울룰루 바위 부근에서 야영하면서 처음으로 마젤란 성운을 새벽에 보았습니다. 아직도 그 놀라운 순간이 생생합니다.……바라보고 망연해지고 하면서 그 새벽이 하얗게 될 때까지 가슴에 내려앉은 은하가 심장박동으로 옮겨지고 그 새벽, 울룰루 바위 부근에서 본 마젤란 성운은 내 몸의 일부가 되어 버렸습니다. ㅡ241~2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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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비평 2014-07-28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각하 상당히 많은 분량의 리뷰입니다.

몽당연필 2014-07-28 20:19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런가? 원래는 더 적으려고 했는데 너무 긴 듯해서 중간에 편집했다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