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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세상을 건너는 법 - 메콩강 따라 2,850km 여자 혼자 떠난 자전거 여행
이민영 글.사진 / 이랑 / 2011년 4월
평점 :
무심코 들여다본 기사에서 가슴이 덜컹 내려앉을 때가 있습니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는데요. 마흔에 접어둔 아내가 가족들을 남겨놓고 홀로 해외여행을 떠났다는 남편의 글을 봤습니다. 아내의 여행에 가족들이 투표를 해서 반대표가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아내는 끝끝내 여행을 떠났다고 하는데요. 글은 분명 성토하는 분위기였지만 그 속에는 아내이자 엄마의 여행에 대한 가족의 응원과 사랑이 진하게 묻어나고 있었습니다. 순간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마흔을 넘어 사십대 중반에 접어들었는데도 난 뭐했지? 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제가 왜 그리도 못나 보이는지. 둘째가 아직 어려서...란 것도 핑계에 불과했습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용기 없음을 감추기 위한...
붉은 빛 황톳길 위에 자전거가 그려진 책 <자전거로 세상을 건너는 법>를 보고 처음엔 그저 자전거 여행기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무언가가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메콩강 따라 2,850km 여자 혼자 떠난 자전거 여행’이란 부제의 ‘여.자. 혼.자.’ 어, 진짜? 여자 혼자서 그것도 자전거 여행을? 갑자기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어요.
대학 시절부터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한 경험을 가진 저자는 세상을 지금보다 좀 더 느리게, 여유를 가지고 나만의 속도로 느끼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페인의 산티아고에서 도보여행을 했지만 아쉬움이 많았다고 해요. 그러다 마침 자전거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자연히 자전거 여행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는데요. 이 책은 바로 저자가 두 달 동안 메콩강에 인접한 국가 라오스와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을 자전거로 여행한 기록입니다.
자전거여행은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자전거가 다른 이동수단에 비해 속도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지만 숙달되지 않은 이에겐 고난의 연속이었어요. 유유히 흘러가는 메콩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느리게 느리게 달리면서 충만한 기운을 얻으려했지만 마음뿐. 첫 여행지인 치앙마이에 도착해서 자전거를 조립하는 데서부터 진땀이 흐르는 상황이 이어졌는데요. 여행 시작할 때 단단히 각오를 했어도 저라면 덜컥 겁이 나고 도망가고 말았을텐데 저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정 힘들땐 지나가는 차를 얻어타기도 했지만 무거운 짐을 싣고 언덕길도 헐떡거리며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만나게 되는 아름다운 풍경. 그 앞에 저자는 무거운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충만한 기운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2,850km.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었는데요. 서울과 부산을 기차로 왕복하는 거리가 800km 조금 넘는다고 하니까...정말 엄청나지요? 그 머나먼 길을 자전거로 달리면서 저자는 ‘짐승급 라이더’로 거듭났다는 대목에서 여행을 통해 우리 인간이 얼마나 단련될 수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여행지의 풍경보다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 일상을 담은 사진이 더 많아서 책을 읽으면서 저도 먼 곳의 낯선 이들을 만나는 것 같았어요. 손을 흔드는 그들에게 저도 “사바이디!” “사바이디, 메콩강!!”하고 인사를 건네고 싶은 기분이랄까요? 일상의 고단함은 잠깐 내려놓고 불쑥 혼자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네요. 큰일입니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