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이다. 

갑자기 딸애가, "그럼 우리 이제 음력생일 안 쇠나?"

"왜?"

"만 나이로 통일된다며?"

"언제는 안 그랬나. 그리고 언제 그렇게 말 잘 들었다고. 그냥 쇠, 쇠도 돼."

"그래? 그럼 나, 내일부터 한 살 먹을래."

나이가 두 살 깎여서 좋은 건 나이먹은 사람들 뿐이고, 열살 딸은 1월 1일이 지나도 열한살이 안 된다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 

되게 웃겼는데. 적어놓으니 그렇게 웃기지는 않네. 

 

나이,라는 게 부러 묻지 않으면 셈하지 않고 몇년생이라고 대답한 지 한참이라, 뭐 별 거라고, 그냥 사는 거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데, 만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떻겠습니까?

떡국 한 그릇 먹고, 나이도 하나 먹은 셈 치고. 해도 바뀌었으니, 건강하시라고 인사나 남깁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무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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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 2023-01-02 1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족님 새 해에도 건강하시고 행복을 누리세요~~^^

서니데이 2023-01-02 2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족님 새해복많이받으세요.^^
 

출근하는 차에서 아들이 친구 생일에 초대받았다고 말했다. 

"그래, 선물은 준비했어?"

"응, 주려고 오만원 찾았어."

우선, 한숨부터 쉬고, 

"야~ 안 돼, 너무 많아, 꼭 친구랑 같이 문구점 가서 뭐 사줘. 절대 그렇게 주면 안 돼."

결과적으로 부적절한 대응이었다. 

생각의 방향을 틀어줬어야 했다. 

내가 문제라고 생각한 것은 초6인 아이가 책정한 5만원이라는 금액이 너무 크고, 선물이 아니라 돈으로 주는 방식이었다. 그저 당부만, 너무 많아, 돈 말고 다른 걸 사 줘,라고 한 거다. 차라리, '야, 엄마 생일에는 얼마나 돈 쓸려고?'라고 물었으면 아이가 앗 뜨거,라면서 금액이나마 줄였을 텐데. 

아이는 결국 수긍하지 못했는지, 저녁에 친구 엄마한테 문자를 받았다. 

'아이가 용돈으로 준 거겠지만 너무 많아서 여쭤본다'는 문자였다. 

친구가 너무 큰 돈이라 거슬러줬단다. 참, 나. 그게 뭐냐. 

옛날 사람이라서? 없이 자란 사람이라서? 몸을 움직여야 돈을 벌 수 있는 노동자라서? 내가 가진 돈의 감각에 비추어 아이들의 돈에 대한 감각이 너무 달라서 많이 놀란다. 

부모가 주는 선물의 형태를 보고 아이가 배운 거라는데, 나도 참 그런 면에서 보여준 게 없다는 걸 깨닫는다. 선물,은 정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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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첫 공개수업 구경을 갔다. 

큰 아이 수업을 하나 들었는데 너무 졸려서, 다음 수업은 내가 재밌어보이는 수업을 찾아 들었다. 그래도 된다더라. 수업은 사회와 문화,뭐 이런 거였는데, 세계 여러 곳의 장례문화에 대해 알아보는 2학년 수업이었다. 그 수업을 듣고는 물었다. 

"야, 무슨 발표를 아이돌 노래하듯이 하더라. 돌아가면서."

"책임지지 않으려고 그러지, 자기가 조사한 거 자기가 발표하는 식으로."

"아." 

협동을 가르치려고 조별과제를 주는데, 서로를 미워하면서, 책임을 미루는 방식을 배우는 건가.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조사할 분야를 나눠맡는다. 나눠맡은 분야를 조사하고, 나눠맡은 분야를 발표한다. 듣는 입장에서는 뭐지, 싶은 발표들이다. 나눠맡은 분야를 정할 때 협의를 열심히 해야 발표할 때 연결성이 드러날 텐데, 그런 게 잘 안 보였다. 큰 주제, 말고는 이야기를 안 했나. 인터넷에 자료가 부족한 나라일 수도 있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같은 조인데 이야기를 안 했구나, 싶은 그런 발표들이 많았다. 같은 조에 같은 점수를 준다면, 민원이 들어올까. 

연결점 없는 각각의 발표를 듣다가, 딱 한 조가 무언가 자연스러운 발표를 하는 걸 들었는데, 너무 좋아보이더라. 

컴퓨터에서 자료를 찾는 일이 사람들과 얼굴대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쉽기는 하지. 그래도 말하는 게 더 재밌지 않나. 세상이 변하고, 사람들이 변하는 중인 건가. 그래도, 오래된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있고, 보통 오래된 사람들이 듣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되는데, 그리고 사람이란 다 거기서 거기라서 또래들도 들으면 좋은 게 뭔지 보일텐데, 싶었다. 들어보면 알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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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운동회가 있었다. 오랜 코로나 상황으로 막내가 입학하고 3학년이 되고서야 처음 하는 운동회다. 엄마도 구경을 오라,고는 했지만 도시락도 없고, 정말 구경이다. 운동장 뒤쪽에서 펜스에 기대서 하는 구경. 

운동장의 고무마감을 걷어내서, 운동장에는 뛰는 아이들로 모래바람이 일었다. 

점심도 먹고 나간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계주를 구경한다. 

청팀과 백팀으로 나뉜 점수판이 큼직하게 정면에 보인다. 맞춘 듯 50점 차에, 계주가 끝나고도 이긴 팀에 50점을 준다. 

6학년 아들은 청팀이고, 3학년 딸은 백팀이라 어디를 응원해야 좋을지 모르겠는 구경에, 계주가 끝난 운동장에 행사 사회자가 아이들을 불러서는 막춤을 추게 하고, 마구 점수를 준다. 아, 비슷한 점수의 원인을 알게 된다. 저렇게 했어. 

아들은 반에서 '거 MC 양반 점수 좀 똑바로 주시오!'라고 항의하다가, 씨알도 안 먹히니까 친구들이랑 욕을 한 아이 하나가 급식시간에 담임선생님한테 '네가 젠민이냐?'라는 말을 듣고는 울었다고, 걔가 우는 거 처음 봤다고 말했다. 

나도 억울하겠어. 계주 이긴 거보다, 단체 줄다리기 이긴 것보다, 사회자 눈에 띄게 막춤을 춘 점수가 더 높은 게 왜 억울하지 억울하지 않겠어? 라고 말한다. 

어린이집 운동회 기억도 났다. 코로나 이전에 큰 아이 운동회에서 아이들도 뛰고, 부모들도 뛰었는데, 그 때 사회자가 아이들이 승패에 분하지 않도록 한다면서 점수를 부모 점수만 넣었다. 나는 내가 아이라면 죽게 뛰었는데, 점수가 없는 게 더 분할 거 같다.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데, 왜 아이가 이긴 건 점수도 안 넣고, 엄마가 이긴 것, 아빠가 이긴 것만 점수에 넣지 싶어 읭~ 스러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기고 지는 것으로 아이가 울지 않게 하겠다,라고, 운동회를 레크레이션으로 만드는 사회자를 초청한다. 그게 좋은가? 만약 누구보다 잘 달리는 아이라면, 청팀과 백팀이 나뉘었는데, 운동회인데, 그게 억울하지 않은가? 운동회에서 운동 잘하는 친구가 주인공이 되는 게, 시험치고 공부 잘하는 아이가 주목받는 게, 장기자랑에서 춤 잘 추는 아이가 주목받는 게, 문제인가? 열패감을 아예 느끼지 않게 세상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하는 건가? 그게 가능한가?

이미 아이들은 프로듀스 101같은 프로에서 잔혹한 경쟁을 보고 아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좀 더 고리타분한 운동회를 고지식한 운동회가 나는 좀 더 좋다. 

레크레이션,은 잠깐이고, 뛰고 달리는 게 좀 더 중요한 그런 운동회, 사회자가 어색해도, 점수가 계주에 백점정도 걸리고, 춤은 아무리 잘 춰도 응원점수로, 한 종목 이기는 것에도 못 미치는 정도로, 나는 그 정도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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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근처 작은 언덕배기(동산) 정자에 소풍을 갔다. 컵라면을 하나씩 사고, 아침에 먹다 남은 김밥도 들고, 작은 책으로 책도 한 권 넣었다. 취사가 금지되어 있는 정자니까, 라면서 컵라면 물은 전기포트에 팔팔 끓여서 보온병에 담았다. 남편은 물과 전기포트를 들고 가서, 화장실에서 끓이자고 했지만, 나는 언덕을 들고 오르는 게 귀찮을 거 같아서 보온병을 주장했다. 내가 챙긴 물은 컵라면 두 개에 부었더니 없었다. 영 면이 안 서서 안절부절하고 있으려니, 남편이 집에 다시 가서 물을 더 끓여 왔다. 남편 라면과 내 라면의 물을 기다리면서, 바람이 선선하 가을의 정자에서 장자를 읽었다. 소리내어 읽는 장자를 뚱하게 듣던 아들이 특수 상대성이론에 대해 질문하면서 내 입을 막았다. 그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붕새와 말매미에 대해 말해 줄 수도 있을 뻔 했네, 참. 

다 먹고 잘 놀고 내려와서야 취사,가 무언지 찾아볼 생각을 했다. 

끼니로 먹을 음식 따위를 마련하는 것을 이름
[다음 국어사전]

취사가 끼니를 준비하는 일,이라는 검색결과를 보고는 에? 그러면 컵라면을 먹어도 안 되는 건가?  

끼니로 안 먹고, 간식으로 먹었으면 되었을 텐데, 끼니였는데 문제일까?

취사,는 불을 쓴다는 의미가 있는 거 아닌가?

아이들 앞에서, 취사금지 정자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먹은, 마음이 불편한, 영 찜찜한 설명 앞에 다시 한자를 찾는다. 

취 炊 불땔 취, 사 事 일 사,를 쓴다. 

그래, 역시 불을 쓰지 않으면 되는 거였어,로 자기 합리화를 한다. 

나는 그 한자가 불땔 취,인 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이걸 알았던 걸까. 신기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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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 2022-09-26 1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요일, 가족이 함께 뒷동산에 올라 컵라면을 나누는 모습을 그려보니 흐뭇한 미소가 지어집니다. 거기에 장자는 참 잘 어울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