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근처 작은 언덕배기(동산) 정자에 소풍을 갔다. 컵라면을 하나씩 사고, 아침에 먹다 남은 김밥도 들고, 작은 책으로 책도 한 권 넣었다. 취사가 금지되어 있는 정자니까, 라면서 컵라면 물은 전기포트에 팔팔 끓여서 보온병에 담았다. 남편은 물과 전기포트를 들고 가서, 화장실에서 끓이자고 했지만, 나는 언덕을 들고 오르는 게 귀찮을 거 같아서 보온병을 주장했다. 내가 챙긴 물은 컵라면 두 개에 부었더니 없었다. 영 면이 안 서서 안절부절하고 있으려니, 남편이 집에 다시 가서 물을 더 끓여 왔다. 남편 라면과 내 라면의 물을 기다리면서, 바람이 선선하 가을의 정자에서 장자를 읽었다. 소리내어 읽는 장자를 뚱하게 듣던 아들이 특수 상대성이론에 대해 질문하면서 내 입을 막았다. 그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붕새와 말매미에 대해 말해 줄 수도 있을 뻔 했네, 참. 

다 먹고 잘 놀고 내려와서야 취사,가 무언지 찾아볼 생각을 했다. 

끼니로 먹을 음식 따위를 마련하는 것을 이름
[다음 국어사전]

취사가 끼니를 준비하는 일,이라는 검색결과를 보고는 에? 그러면 컵라면을 먹어도 안 되는 건가?  

끼니로 안 먹고, 간식으로 먹었으면 되었을 텐데, 끼니였는데 문제일까?

취사,는 불을 쓴다는 의미가 있는 거 아닌가?

아이들 앞에서, 취사금지 정자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먹은, 마음이 불편한, 영 찜찜한 설명 앞에 다시 한자를 찾는다. 

취 炊 불땔 취, 사 事 일 사,를 쓴다. 

그래, 역시 불을 쓰지 않으면 되는 거였어,로 자기 합리화를 한다. 

나는 그 한자가 불땔 취,인 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이걸 알았던 걸까. 신기하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호우 2022-09-26 1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요일, 가족이 함께 뒷동산에 올라 컵라면을 나누는 모습을 그려보니 흐뭇한 미소가 지어집니다. 거기에 장자는 참 잘 어울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