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한 다음에 인생을 즐기자
에바 헬러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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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성인 내 자신에게 얼마나 관대한가, 여성인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는 고전적 여성상에 대한 강박만큼 혹여 여성인 나를 드러내어 도움을 청해서는 안 된다는 현대적 수퍼우먼 페미니스트에 대한 강박때문에 내 자신을 고되게 하지는 않는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솔직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내 자신에게 하게 되는 질문이었다.

지빌레는 '지금까지, 수천년동안 남자가 여성을 부양했으니, 지금 네가 나를 부양하는 것은 사실 공평하다'는 식의 남자를 부양하다가, '넌 몸매를 좀 가꾸어야 해'라는 일방적인 결별을 당한다. '너는 해방된 여성이니, 내게 연연하지 말라'는 절친한 충고까지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네게 필요한 건 새로운 연인이야'라는 친구의 충고도 가볍게 들어넘기고, 자신에게 스무번도 더 물어 도달한 간결한 소원-그 남자의 새로운 관계의 파탄-을 실행에 옮긴다.

여성인 내가 자주 잊는 것은 내 자신에게 진정 원하는 게 무언지 묻는 것이다. 늘 어떤 이미지들에 갇혀서는 원하는 것들에 솔직하지 못하다. 지나친 소심함! 지빌레가 이런 나의 단점을 가뿐히 뛰어넘을 때 몹시 부러웠다. 그렇다고, 내가 그녀의 그런 결정들 충분히 동의한 건 아니다. 그런 남자 뭐가 좋다고 반, 그런다고 달라질게 뭔가 반...

그렇지만, 예상보다 굉장히 많이 달라진다!!!! 모든 해피엔딩은 관계의 회복만을 의미하지는 않으니까, 진면모를 알게 되고 사기꾼을 등쳐먹는 기쁨을 누리는 것도 아주 많이 행복한 엔딩이다.

여성에게도 천가지 만가지 표정이 있음에도, 얼마나 같은 얼굴 같은 표정을 바라는지 소름끼칠 때가 있다. 맞추기 너무 힘든 옷에 몸을 맞추는 것처럼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은 모순되고 불가능하다. 그건 고전적 여성상이건, 현대적 여성상-그 남자의 입에 붙은 '해방여성'-이건 마찬가지다. 둘 중 어느 것도 까다롭지만, 하나의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를 상쇄하거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늘 투정으로 비칠까 '나도 힘들어'란 말 하지 못했는데, 소설을 보니 위안이 된다. 내가 행복하다면, 내 마음이 평화롭다면, 나는 난데 뭐 그리 고달프게 한단 말인가! 다시 한 번 묻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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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크리스티안 노스럽 지음, 강현주 옮김 / 한문화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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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내 자신 건강하기를 바라고 행복하길 바라면서 늘 무엇에 그렇게 시달렸는지 왜 그렇게 많이 머리가 아팠는지 생각했습니다. 여성을 아프게 하는 여러가지 강박들 스스로 깨달으라고 채근하는 책입니다. 의사는 병을 고치는 사람이 아니고, 모든 것 자신을 잘 보살필 줄 안다면 알 거라고 말합니다.

이 책의 저자인 크리스티안 노스럽은 성공한 산부인과 의사입니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서, 자연치유력을 일깨우도록 종용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관찰하고, 억압하지 않는다면 치유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마음이나 정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건강할 수 없다고도 합니다. 몸의 신호들에 귀기울이라고요.

그녀는 책을 통해서 여성에게 작용하는 다양한 억압들-그건 좋은 어머니가 되라는 것일 수도 있고, 섹시한 파트너가 되라는 것일 수도 있고, 성공한 커리어우먼이 되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이 어떻게 몸에서 병이 되는지 말합니다. 자기 몸을 관찰하는 데 소홀하거나, 자신의 욕망에 반하여 이런 저런 결정들을 한 것이 몸의 어디를 고장나게 하는지 알려줍니다. 내 몸의 샤크라가 어떤 태도나 성향과 연결되고, 어떤 몸의 기관들에 연결되어 있는지 보여줍니다. 그것 때문에 이 책을 의학서적처럼 느끼지 못하지만, 곧 이것도 편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서양의학이 물리적으로만 접근하는 몸이라는 기계가 그녀에게는 영혼과 맞물려 작동하는 진짜 인간이 됩니다. 늘 불완전한 남성의 몸으로 읽히던 여성이 그 자체로 완전한 존재로 읽힙니다.

월경에 대한 설명에서 즐거운 상상이 있어서 전합니다. 고대의 어떤 신화는 모든 여성이 달의 주기에 맞추어 월경을 한다고 믿었답니다. 지구상 모든 대륙의 여성이 보름달이 뜨면 배란을 하고 달이 지고 나면 생리를 하는 상상은 절 아주 유쾌하게 만들었지요. 당신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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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신 - 또 다른 인생 이야기
양귀자 지음 / 살림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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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신', 좋은 말이다. 부엌을 지키는 신이 있어, 가족을 돌보고, 특히 가족을 살리는 그러니까 살림을 하는 주부를 돌본다 할 때, '음, 내 어머니도 신의 보살핌을 받았구나'하는 느낌에 안도했다. 그래서, 처음 양귀자님의 책제목을 보고 가슴이 설레었다. 그리고 참 오래 끈덕지게도 그래도 그건 소설일거라고 생각하였거나, '소설가가 쓰면 그래도 다르겠지'하고 기대하였다.

읽는 내내 불편했던 것은 성이나 나이에 대한 편견이 끊임없이 표면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요리사를 고를 때, 홀 써빙을 고를 때, 그 기준을 남자이거나 여자, 늙거나 젊다는 기준 말고는 없었던 것처럼 '체력이 충분하고 주방을 장악할 수 있는 요리사'가 아니라, '체력이 충분하고 주방을 장악할 수 있는 건강한 젊은 남자 요리사'라고 묘사할 때는 화가 났다.

읽는 내내 또 불편하였던 것은 이게 '식탁 광고'이상의 어떤 의미가 있지라고 내 자신에게 반문해야 했던 거다. 자신이 얼마나 최상 수준의 인테리어와 최고의 요리, 최고의 친절을 원하는지 그것이 얼마나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인지를 묘사하는데 그렇게 많이 할애하다니 화가 났다.

차라리, 소설이었다면, 우연히 들른 한 명의 손님에게 이끌린 풀린 실타래같은 소설이었다면, 이런 저런 이름들로 이 땅을 살아내는 부엌말고는 변변한 자신의 공간이 없는 정말로 부엌신의 가호가 필요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면 하고 계속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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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마야 막스 그림,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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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고 깊어서, 그래서 슬퍼지고 또 그러고도 참 따뜻해져서는 무슨 말이 적당할지 한참을 찾는다.

소설 속의 사람들은 내 곁에 없는 거라고 밀쳐내는 죽음이나, 악마적 광기, 배신들이 너무 가깝다는 걸 알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마찬가지로 알게 되는 참 강한 사람들이다. 강하게 뿌리치는 대신 넓게 안고, 받아들이고, 그래서 서로를 북돋아주는 관계들이 있다.

볕이 좋은 날, 소설 속의 그녀처럼 돌에 기대어 시간을 잊을 만큼 뭐든 한다면, 그들처럼 삶을 넓게 씩씩하게 안을 수 있을까 생각한다.

마음가는 대로 사랑하고, 그 사랑 떠났데도 받아들일 수 있고, 사랑하는 동안 믿고 의지하고... 너무 과하지도 너무 모자라지도 않게 자신을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도 말고...
게으르게...게으르게.. 삶을 살아내고 싶다. 슬픈 것도, 기쁜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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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창녀 - 20세기 지식인들은 무엇을 했나
카트린느 클레망 지음, 채계병 옮김 / 새물결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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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읽어낼 수는 없다.
프랑스 철학 입문서쯤으로 생각하는 건 분명 오해다..

그렇지만, 읽는 내내 즐거워져서 오래 오래 읽어도 좋았다.
철학 입문서 쯤으로 생각하고 한꺼번에 많이 알아버릴 거라고, 다른 누군가의 인용에 주눅들지 않을 거라고 읽게 시작했을 거다.그렇지만, 읽으면서 그런 마음 누그러지고 기뻤다. 철학이란 걸 밑줄치고 외워야 하는 조금은 따분하고 생활과 동떨어진 거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아우슈비츠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가 지식인이 된 것'이라고 말하는 데 기분이 좋아졌다.

세상사의 불합리,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 일종의 광기들-을 설명하려는 노력들이란 것 때문에 한없이 가까워진 기분이 되었다. 부모님세대에 아우슈비츠를 겪고, 다음(?) 세대들의 68년을 겪은 철학자가 평생을 알고 지낸 철학과 철학자들의 면면, 그들을 어떤 태도로 알고 사랑했는지 듣는 건 좋았다.

자신이 어떤 강박에 시달리는지, 또 다른 철학자가 어떤 강박에 시달렸는지, 누군가의 죽음이 왜 그렇게밖에 독해되지 않는지 하는 그런 심상들... 어떤 식으로 그들이 자신의 믿음에 고집스러웠는지 하는 것들.. 삶에서 그들은 자신의 철학을 어떻게 실천하려 했는지 하는 것들..

이성이라는 악마의 창녀에 속한 자기 자신에 대한 강박이 미세한 감정결들 때문에 떨리는 걸 보는 것도, 가끔 이성으로 선택할 수 없는 순간 '선택해야 했다'라고 말하는 걸 보는 것도 좋았다. 배움을 청한, 지적으로 열등한 나에게 '욕망이란 사람들이 갚고 싶은 것과 아직 소유하지 못한 것을 쑤셔넣는 말의 바랑이다'라고 말하는 철학선생님을 만나는 것도 좋았다.

좋았던 구절 찾아서는 보여주고 싶다고 뒤적이다가, 다시 읽을 때는 내 감정결대로 읽어낸 부분들 대신 인용할 만한, 지적 허식을 위해 차려 입을 만한 '철학'이란 것도 발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오래 걸려서 아직도 읽고 있지만, 난 별로 유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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