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와 현실사이의 여성들 - 여성주의 문화 이론을 향해
수잔나 D. 월터스 지음, 김현미 외 옮김 / 또하나의문화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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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런 문화비평서가 그 텍스트로 삼은 것이 처음 듣는 것일 때, 난감함은 말로 못한다.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 이름만 주워섬긴 영화가 서너개쯤 되고, 장면이나 이미지 하나 연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 책이 묘사하는 영화들이 내게 그나마 가까운 것은 헐리웃의 영화들이기 때문이다. 헐리웃의 상업영화, 주말 밤의 스릴러, 흔해빠진 치정극, 로맨틱 코미디, 오래된 로맨스, 내가 그 영화들을 따라 흥분했었고, 분개했었고, 유쾌했었고, 가슴아팠기 때문에, 뒤늦게 알아차리는 '음모'라는 것에 흥분하는지도 모른다.

어느 틈에 들어왔는지 알 수 없던 편견이 돌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손에 땀을 쥐고 본다는 주말 밤의 스릴러에 형편없이 묘사되던 여자들이 한 몫 단단히 했음을. 내가 살아가는 동안 피할 수 없음을. 노력하여 매 순간 자각하지 않는다면, 결국 물들고 받아들이고 말 것임을. 알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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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과장 1
히로카네 겐시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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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나를 떠나지 않은 것은, '일본여자들 참 살기 어렵겠다', '그래, 그래서 내가 야망이 없는 남자를 원하지'..

등장하는 여자들은 술집의 마담이거나, 경리거나, 전업주부이거나, 능력을 인정받는 여직원이라도 커피를 나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내 나는 '팍팍하여라', '팍팍하여라'하였다. 놀랍도록 관대한 그녀들은 그들이 명예나 부를 성취하는 때, 한때나마 그들의 사랑을 가지는 것으로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남자들의 이름 뒤에 있는 것을 충분히 기꺼워한다. 물론 어른들의 얘기다. 그녀들은 스스로 선택하여 행동하고, 받아들이고 또 떠나보낸다. 그러나, 이렇게 놀랍도록 관대한 성품마저도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사회란 걸, 커피를 가져와야 하는 여직원-해외에서 유학한 재원으로 묘사되던-, 결혼과 함께 퇴사하던 여직원에 대한 묘사에서 알아 버린다.

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해야만 한다, 라고 묘사되는 시마의 행동을 보면서는 '왜 그럴까' 계속 묻는다. 아내와 아이를 위해서라는 초반의 명제가 사라지는 이혼 후에도 여전히 권모와 술수에 휘말려서는 원하지 않는 것을 '하고' 있다. '죽이지 않으면 죽어 버린다'고도, '그것이 최선이었다'고도 하는 그 모든 상황을 난 이해할 수가 없다. 결국은 '원했던' 게 아닐까,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성공하는 것까지. 그 안에서 살아남고 성공하기 위해서였으며, '원하지 않았다'는 건 단지 제스츄어 였던 거라고. 사랑이나, 아이나, 가정보다 중요했던 것은 조직이었던 걸. 회사인간이란 비유는 그래서 적절하다. '회사를 떠날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의 모든 행동은 이유가 없고, 그의 게임은 박진감을 잃는다. 그래, 난 야망없는 남자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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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슬픔 -상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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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삶의 모든 것이 갑자기 너무 차게 느껴질 때, 내 주위에 중요한 것이 하나도 남아있는 것 같지 않은 어느 날, 사랑 때문에 심연보다 깊은 슬픔에라도 빠질 수 있다면, 짧게 흐르는 눈물이 통곡이 될 수 있다면, 아직도 사랑은 그렇게 간절한 것이라는 믿음을 다시 한 번 가질 수 있다면, 하고 바라면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달한 간결한 결론은 내게 다시 그런 사랑을 맹목적으로 믿는 시기는 오지 않는다, 라는 것이었다.

슬픔이 깊어 죽음이 되는 사랑이라면, 차라리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내게 '은서'라는 울림이 약한 이름은 그래서 동정이나 이입대신 넘어야 하는 과거가 된다. 상처받아 아픈 것에 가슴 아프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상처를 딛고 더 강해지는 것이지 좌절하고 죽어버리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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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1 (무선) 해리 포터 시리즈
조앤 K. 롤링 지음, 김혜원 옮김 / 문학수첩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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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를 읽으면서, 처음 느낀 불편함이었다. 아즈카반의 죄수를 읽을 때, 해리의 아버지의 네 친구들에 대한 묘사를 읽을 때 너무 불편하여 안절부절하였다. 애니무스가 되는 네 명의 친구들이 어떤 성품이었고, 누가 배신했는지, '약하기 때문에 유혹에 쉽게 흔들렸다'란 대목에서는 속이 상했다. 뛰어나지 못한 것에 더하여, 믿음을 저버릴 가능성까지 더 큰 나약한 존재, 라는 묘사가 내 자신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단지, 노력할 뿐이라서 항상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는 약속들을 계속 품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읽도록 쓴 책이 아니다, 라는 작가의 말이 이것이 사회를 반영하고 있었다,고 연상시키고, 이전에 읽던 어느 대목-강한 자가 강하기 때문에 더 신뢰할 만하다,란 감성을 드러낸 대목-을 내가 그저 지나친 것이 아닐까, 하고 되돌이키게 하였다. 모험에 동참하며 함께 적을 바라보던 때가 아니라면, 언제라도 가능한 이런 불편함은 익숙한 것이기도 하다. 헐리웃 영화의 영웅이 모든 적들을 무찌른 다음 순간, 내가 묘사된 적에 더 가까운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 때도 이런 느낌이었다.

책속에 푹 파묻혀 함께 뛰지만은 않을 거라고 결심하였다. 해리, 아마도 난 널 응원하겠지만, 그 속의 모든 악인에 대한 묘사를 불편함 없이 수용할 수는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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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아이작 아시모프 외 지음, 박준형 옮김 / 나라사랑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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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은 간결해서 좋다. 간결하지 않다면, 그 속에 완결된 이야기가 들어있는 것은 구겨넣은 자루처럼 울퉁불퉁할 거다. 장르특집이 '추리'일 때, 그리고 그 중에 '단편집'이 있을 때, 난 그걸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간결한 단편, 그것도 추리소설이라면, 이 얼마나 매혹적일 것인가. 추리소설단편걸작선을 읽고 매혹되었던 기억이 스멀스멀 기어나와서는 피할 수가 없었고, 읽게 되어 기뻤다.

네명의 작가가 선보이는 짜릿한 반전이 있는 추리소설 단편들. 아시모프는 과학적 상상력에 재치가 있고, 크리스티아나 브랜드는 섬뜩하리만치 냉정하고, 포사이스는 상황설정에 관심있어 보이고, 제프리 아처는 일상 속에 어떤 집착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작가들의 개성이 드러나 더욱 즐겁고, 한 꺼번에 네명이라서 또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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