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극장에서 생긴 일 - 세계환상문학 걸작선
알베르토 맹그웰 엮음, 윤춘미 옮김 / 문학세계사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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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 이야기들, 무서워서 책을 놓고는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속기로 결심하는 순간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아직 머릿속을 딱딱하게 만들기 전, 어린아이였거나 사춘기 소녀였을 때, 어두운 밤이거나 비라도 내리는 어두운 낮에 친구들과 교실 구석에서 경쟁하듯이 들려주던 무서운 이야기, 놀라운 이야기와 닮았다. 한순간의 공포나, 짜릿한 흥분, 놀라움과 아쉬움, 기이한 낯섬과 낯익음, 피할 수 없는 운명과 짧게 대답할 수 없는 짧은 질문.

'소원을 들어주는 원숭이 발'이나 '악마의 병'은 익숙하고 또 교훈적이고,'저승사자를 만나러 떠나는 하인'은 낯익고 또 재치있고, '완전한 행복을 위한 희생양'의 이야기는 의미심장하고... 죽은 자가 걸어나와 복수하거나 은혜를 갚고, 인어의 사랑을 얻기위해 영혼을 떼어내거나, 마음없는 영혼이 사악해지거나, 조용한 일상이 갑작스레 떠밀려나오거나..

딱딱한 현실이 틈새가 없어서 혹은 현실이 고단할 때 혼자 앉은 낡은 극장처럼 그 많은 얘기들 풀어놓는다. 천천히 살금살금 읽을 일이다, 밤 말고 낮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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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 환상문학전집 34
마가렛 애트우드 지음 / 문학사상사 / 199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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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미래(?)소설이 무서운 것은, 결코 멀지 않음을 느끼게 하는 징후들이 지금 현재에 있어서 우리가 서있는 곳이 매우 위태롭기 때문이다. 환경호르몬으로 인간의 생식력이 약해지고, 약자에 대한 착취를 능력의 유무로 설명하려는 자본주의의 광포함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여성에 대한 착취를 '전통'으로 미화하려는 시도들을 마주할 때마다, 이 소설을 기억해낼 것이다.

여성의 모든 권리는 사라지고, 계급의 최상부에게만 허용되는 생식력있는 '시녀'의 존재. 너무 끔찍해서 소름이 돋는다. 밤, 스산함, 황폐한 계급사회, 지켜지지 않는 존엄으로 남아있는 소설속의 가상세계는 내가 결코 속하고 싶지 않은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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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 수녀의 나를 사로잡은 그림들
웬디 베케트 지음, 김현우 옮김 / 예담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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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읽는 건 잘 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보는 것, 듣는 것, 사실 자신없습니다. 웬디수녀님이 꼼꼼히 설명해 주지 않았다면, '포키온의 재가 있는 풍경'은 상당히 적막한 풍경화, 쯤으로 보고 넘겼을 겁니다. 그림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지, 깨닫습니다.

성경이나, 소설의 한 장면을 그린 그림들, 초상화. 꼼꼼히 바라본다면, 드러나는 커다란 이미지 말고도, 화가의 복잡한 심사, 배경으로 채워넣은 이미지, 그 장면 다음의 어마어마한 드라마까지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수녀님이 친절하게 안내해주시니 더욱 그렇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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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 무엇이 세계를 움직이는가
수잔 앨리스 왓킨스 지음 / 이두 /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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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감정과 맞물려 굉장히 역동적으로 남아있다. 숨가쁘고, 힘있는 이미지는 사건에 대한 기사체의 글과 조금은 어지러운 편집과 그림들에 빚지고 있다. 페미니즘의 역사를 아우르는 인물과 사건을 담겠다고 결심했을 때 숨이 차오르고 마음이 바쁜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여왕이 주관하는 경마대회에 말고삐를 잡아채던 투표권 쟁취 투쟁이나,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피임을 가르치던 마거릿 생거에 대해 난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호소하는 격문들, 투쟁의 이미지들, 운동의 역사에 박힌 운동가들의 삶, 지금의 여성지위가 이루어지는 그 지난한 투쟁의 역사를 알았다. 주장들, 논리들, 운동이 이루어지던 상황들, 가까워질 애정없다면 무심해졌을 것들에 애정을 가지게 하는 책이다. 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을 알게 한다, 그것도 숨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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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 -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
수잔 앨리스 왓킨스 외 지음, 안찬수 외 옮김 / 삼인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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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영화보다 끔찍한 일이 벌어진 다음이라 '더이상 미국의 패권주의는 소용이 없'고, '힘에 의한 평화의 함정이 드러났'음을 밝힌 기사들을 보면서 동의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기 달린 리플에 기분이 상했다. 두번이나 세계적인 전쟁을 치르고도 여전히 무엇 하나 배우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말이다. '힘만 있으면 되는 일'이라거나, '돈도 머리도 없어서 하는 헛소리'라고 하는 말이 그저 잠시 하는 위악이길 바란다. 모두가 동의하는 선한 가치란 아예 사라져 버린 게 아닐까, 의심하게 되는 순간에 '선한 가치'와 '이타심'으로 들끓었던 1968년을 기억하는 것은 힘이 된다. 그런 해가 있었음을 실험과 모험정신으로 가득 차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 했던 시기가 있었음을 추억 이상으로 기억해내려고 한다.

베트남이 미국을 이긴 순간 느꼈을 그 자랑스러움이란 것이, 더 이상 두려운 바 없는 희망이 시작되기를 바란다. 자신이 행하는 그 모든 부당함을 '힘과 권리'로 설명하던 미국의 오만이 그치기를 바란다. 이전에 자신이 행한 얼굴을 가린 테러를 자각하기를, 테러에 대응하는 테러를 이제는 중지하기를, 베트남과 같은 선택을 또다시 하지 않기를, 지금 미국의 기득권세력이 된 68세대가 그 때의 열정을 잊지 않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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