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에게 고함
함인희 지음 / 황금가지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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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명쾌하고 글은 쉽게 읽힌다. 그러나, 가정과 일이라는 절대절명의 난제 앞에서는 힘이 딸린다. '가장 자기 자신에 자신있을 때 결혼하라'나, '함께 있어 힘이 되는 사람을 고르라'나, '상황이 열악해도 할 수 있다'는 응원 이상이 못 된다. 삶에 착 달라붙은 인용글들은 너무 구구절절한데, 착취하는 회사의 구조와 '집안'의 구조는 또 얼마나 억압적인지, 육아를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에 의존해야 하는 현실은 또 얼마나 끔찍한지, 답답함이 받친다.

여전히 직장에서는 '여자대표선수'이고-정체성을 설명하는데, '여자'로 충분한-, 가사노동은 불가피하고, 육아문제가 닥칠 때 어찌할 줄 모르겠고, 개별적으로 돌파하기 너무 어렵다. 이 글들 읽고 공감하는 여자들 늘어나기를, 그 여자들 손잡고 바꿔가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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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아이 -하 영원의 아이
텐도 아라타 지음, 김난주 옮김 / 살림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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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우리는 '어른'이 될까? 어느 순간 우리는 '부모'가 되는 것일까? <영원의 아이>를 읽으면서, 그런 순간이 우리 앞에 저절로 오지 않을 것임을 깨닫는다. 아주 많이 노력해야 겨우 짧은 한 순간 정도 그런 자각을 할 수 있으려나. 어린 날의 상처 속에서 간신히 살아내는 아이들이 치닫는 현실은 너무 아파서, 눈돌릴 수 없게 써내려간 작가나 그런 상황에서도 억누를 수 없는 호기심으로 다음 장을 읽어내는 내 자신이 잔인하게 느껴졌다. '재미있어'라는 짧은 말로 누군가에게 권하게 될까, 조심한다.

그러나, 장르가 뒤섞인 흥미진진한 구조는 내용의 진지함을 훼손하지 못한다. 저절로 어른이 될 수도 없고, 부모는 더더욱 그러하다고,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라고 채찍질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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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독재자
레네 아빌레스 파빌라 지음, 권미선 옮김 / 아침나라(둥지)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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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이국적인 인명과 지명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나는 내내 이것이 바다 건너 먼 나라의 일임을 잊었을 것이다. 겹쳐지는 독재의 과거때문에 나는 내내 불편했다. 우리 나라 역사 속에 80년의 기억을 어떤 문학이 재현하려 했을 때의 불편과 같은 종류다. 좀 더 오래 전의 일들에 대한 묘사에 진지하거나 경건하거나 만족하는 것과 달리, 그리 멀지 않은 일이면서 여전히 청산되지 않은 일, 미적지근한 상태로 남아있는 일에는 단호해지기 힘든 그런 심사 말이다. 독재에 대항하다, 어느 날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문학적인 어떤 것으로 감상하기에는 아직도 너무 불편하다.

할 수 있는 일은 없어보이고, 난 상황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많았다'라고 묘사하는 이상은 아니고. 소설 속의 상황들, 토막토막나 있지만, 커다란 그림 속의 하나하나인 그 상황들은 너무 슬프기만 한 그림이라서,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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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광기를 잠재운 여성들 - 시사인물사전 14
이휘현.고훈우.최을영 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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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에는, '시사인물사전'이라는 낯선 형식에 내가 적응하고 있지 못한 탓도 크다. 원인이 거기에도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내가 아홉명의 페미니스트에 대한 기술들 중에서 유독 거의 동시대의 여성들에 대한 묘사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고정희씨나, 최보은씨나, 권인숙씨에 대한 묘사가 지나치게 작위적이거나, 감상적이거나, 낭만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다시 생각하면, 그런 인상이 된 데에는 '무엇을 했지'라는 질문에 간결해질 수 없는 글쓴이의 태도도 문제였다. 고정희에 대한 묘사에서 '사람들에게 작은 자리뿐이지만'이란 식의 토는 그녀가 어떤 자리였는지 궁금해 읽고 있는 나에게, '혹시 이 사람도 그녀의 자리에 자신이 없는 건가?'라고 생각하게 했다.

내내 '너무 길잖아'라는 느낌을 주는 글 때문에 혹시 이것이 글쓴이의 문제인가, 싶었지만, 같은 사람이 외국의 이미 오래 전에 죽은 인물을 기술한 것을 보고는 아니란 걸 알았다. 동시대의 인물을 기술할 만한 확신이 그들에게도 부족했던 게 아니었을까. 간결하기에는 무언가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하는 묘사라니 읽고 있는 나조차, 확신이 떨어지고 있었다. 차라리, 고정희시인의 시를 읽던지, 아줌마(최보은)의 글을 읽던지, 권인숙씨의 칼럼을 읽는 편이 더 나을 거란 생각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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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말걸기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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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을 알고 좋아하게 한 건, '새의 선물'이었다. 냉소적인 시선을 아이가 지녔을 때의 그 경쾌함을 잊지 못한다. 그런 경쾌함을 기대하고, 심지어 선물할 의도로 이 친절하고 소심한 제목의 책을 골랐다.

선물하기에는 지나치게 냉소적이었다. 아이가 그런 시선을 지녔을 때 생은 아직 미지의 것이라서, 여전히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었지만, 이미 살아낸 어른이 지닌 냉소는 너무 차다.

그런데도, 여전히 은희경의 시선이 좋은 것은 그걸 알고도 살아내는 것은, 환상 속에서 살아내는 것보다는 유리하거나 현명하거나 용감한 것일 거라는 동의 때문이다. 과거를 낭만적으로 회상하지 않는 독립적인 여자들이라서, 쉽게 상처받지 않을 모습이라서 여전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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