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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독재자
레네 아빌레스 파빌라 지음, 권미선 옮김 / 아침나라(둥지) / 2000년 10월
평점 :
길고 이국적인 인명과 지명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나는 내내 이것이 바다 건너 먼 나라의 일임을 잊었을 것이다. 겹쳐지는 독재의 과거때문에 나는 내내 불편했다. 우리 나라 역사 속에 80년의 기억을 어떤 문학이 재현하려 했을 때의 불편과 같은 종류다. 좀 더 오래 전의 일들에 대한 묘사에 진지하거나 경건하거나 만족하는 것과 달리, 그리 멀지 않은 일이면서 여전히 청산되지 않은 일, 미적지근한 상태로 남아있는 일에는 단호해지기 힘든 그런 심사 말이다. 독재에 대항하다, 어느 날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문학적인 어떤 것으로 감상하기에는 아직도 너무 불편하다.
할 수 있는 일은 없어보이고, 난 상황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많았다'라고 묘사하는 이상은 아니고. 소설 속의 상황들, 토막토막나 있지만, 커다란 그림 속의 하나하나인 그 상황들은 너무 슬프기만 한 그림이라서,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