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다정소감 - 다정이 남긴 작고 소중한 감정들
김혼비 지음 / (주)안온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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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의 게임,을 남편이 열심히 볼 때 옆에서 잠깐 보고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용엄마가 정벌한 종족의 무녀에게 '그럼 내가 고맙다고 할 줄 알았냐'고 조롱당하는 장면이다. 나는 자비를 베풀어 너를 살려줬는데, 왜 너는 나를 저주하느냐는 용엄마의 말에, 무녀는 내 일족을 말살했는데, 나를 살려줬다고 해서, 내가 당신을 고마워해야 하는가, 당신을 축복해야 하는가, 되묻는 장면이다. 생존을 걸고 싸울 때 헛된 동정심을 보이는 것은 위험하다. 지금 내가 그런 세상이 아닌 것이 다행이라고, 목숨 자체를 빼앗지는 않는 평화의 시대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고녀석 맛있겠다,를 읽고서도(https://blog.aladin.co.kr/hahayo/5025827) 나는, 생존을 위한 선택의 순간, 불가피하고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나는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 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도 썼다. 

알라딘에서 위선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https://blog.aladin.co.kr/hahayo/12584510내가 말하려던 건 뭐였을까, 생각했다. 나는 면전에서 나의 잘못을 말해 주는 사람이 친구라고 생각한다,고 썼다. 뒷담화를 하는 사람은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인터넷 공간처럼 물성이 없는 공간에서 위악만큼 위선도 좋아보이지는 않는다고도 썼다. 친구의 권유로 '예수와 함께 한 저녁식사'를 읽고 마더 테레사나 히틀러나 하나님의 기준으로는 종이 한 장도 차이가 안 나는 거라는 대목을 읽었다. 그렇겠네, 라고 생각하면서도 반발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마도 그래서, 사람들은 인터넷 세상에서 공감의 말들만 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이라서, 나는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지만, 몇몇 꼭지에서 공감하지 못했고, 그런 말들만 아마 남기고 싶다. 게다가 요 근래, 이런 자신을 드러내고 쓰는 책들의 어떤 포지션이 계속 거슬렸어서 그 연장선 상에서 보게 된다. 아마도 스스로 무해하거나, 꽤나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글들이다. 스스로가 드러나는 글을 쓰면서 지질하고 약해 빠졌고, 사랑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은 비참한 마음을 내비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글이라는 건, 말이라는 건 위험하다. 어떤 사람이 자기 안에서 나름 일관성을 가지고 살아가더라도 타인의 눈에 위선이나 위악으로 보이는 것은 그 사람의 말이나 글이 그 사람의 선택이나 행동과 충돌했기 때문인 거다. 말이나 글,과 행동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는 많은 노력은 바람직한 게 맞지만, 그런 면에서 나는 책 속의 그 에피소드-가식에 대하여- 자체에는 공감하지만, 그 다음, 그 다음 글들에 드러난 작가의 어떤 모습에서 다른 인상을 받는다. 

내 맘에 든 글은 '축구와 집주인', '나만을 믿을 수는 없어서'

내 맘에 안 든 꼭지는 '조상혐오를 멈춰주세요', 'D가 웃으면 나도 좋아' 다. 

착하고 좋아보이려고 쓴 글이겠지만, 제사 지내는 어떤 마음에 대해 이해하지 않고 있다. 

매일 새롭게 혐오표현이라고 낙인찍히는 말들의 오랜 역사성을 무시한다. 

김솔통,같은 글을 쓰고 싶다는 말은, 내 말은 가벼우니 반박하지 말라는 말처럼 보여서 또 그러네. 하고 싶은 말은 다 하지만 반론은 사절입니다, 같은 태도로 받아들이는 것은 책이라는 일방적인 소통에 더해지는 감상이겠지. 

공감의 댓글이 잔뜩 달린 타인의 SNS에 대한 반박글인 여행에 정답이 어딨어,라는 글처럼 나도, 공감이 잔뜩 달린 책에 조금은 다른 의견들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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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1-19 10: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식 없는 사람이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 의문입니다. 사람이란 내 자신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보기가 어려운 법이니까요 어떤 일을 직접 경험하거나 책으로 간접 경험한 후에야(것도 아주 마음을 오롯이 연 상태에서)비로소 나도 이런면이 남들보기엔 가식적이었겠구나 하고 조금씩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요.

별족 2022-01-19 11:28   좋아요 3 | URL
제 자신이 엉망진창,인 걸 저는 알고 있어서, 너무 강경한 태도에 자꾸 물러서게 되는 거 같아요. 참 이 글은 미미님 보라고 쓴 글인데요. https://blog.aladin.co.kr/hahayo/13265780

미미 2022-01-19 11:40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ㅋㅋ지난번에 읽었어요. 저를 향한 글 같더라구요ㅋ 그 글 보고 나서 생각이 많았는데 이거 쓰면서 저는 별족님생각했어요 https://blog.aladin.co.kr/759250108/13266814 여러지점에서 저랑 생각이 다르시지만 배울점도 많은것 같아요.

별족 2022-01-19 11:46   좋아요 3 | URL
저는 이반 일리치,의 젠더, 를 재미나게 읽었어요.https://blog.aladin.co.kr/hahayo/13206446 저는 남성과 여성은 다르고, 남성이 지배하는 영역(법과 사회)과 여성이 지배하는 영역(이야기와 문화)이 다르다고도 생각해요.

미미 2022-01-19 11:54   좋아요 3 | URL
이반 일리치의 <젠더>궁금하네요. 저도 예전에는 남성과 여성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했어요.각자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제2의성>을 읽어보니 그건 그렇게 ‘규정‘되어진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그 ‘구분‘이 많은 문제를 만들어내기도 했고요. 남성중에도 그 ‘구분‘에 부합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들이 상당 수 있고 여성 중에도 마찬가진데 이 규정은 그런것들을 설명해주지 못해요. 단순 이분법으로 자율성과 독창성은 희생당하고 여러 사회문제를 낳는다고 봐요.그걸 이해하고 바라보니 이전보다 명확하게 사회구조가 보이더라구요.물론 공부해야 할 것들이 아직 많이 있지만요. 별족님도 별족님이 믿고 계신대로 계속 공부하시고 저도 그러면서 같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별족 2022-01-19 13:11   좋아요 2 | URL
관심이 있으시다면, pc 기반으로 제 서재에서 서재태그 여성, 여성주의 관련 글들을 보셨으면 합니다.

미미 2022-01-19 13:18   좋아요 3 | URL
네~저 은근 별족님 글 찾아보고 있었어요. 계속 볼테니 별족님도 제 글 한번씩 보셨음해요.

별족 2022-01-19 17:17   좋아요 2 | URL
저도 잘 보고 있습니다.
 
[eBook] [세트] 옷소매 붉은 끝동 (총5권/완결)
강미강 지음 / 도서출판 청어람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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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면서 원작을 구해 읽었다. 드라마는 8화까지 재미나게 보다가, 9-10화는 망이라고 생각하고, 지금은 아, 너무 오글거려서 가족들이랑은 못 보겠어, 가 되었다. 젊은 정조도 좋고 두 사람의 사랑도 좋은데, 지지부진한 망설임에 이런 저런 거짓을 붙이는 것이 답답하다. 게다가, 드라마는 현대 젊은 여성이라는 주시청층에 소구하기 위해서인지, 역사성을 무시한다. 로맨스물에 소거되는 가족관계나 조건들이 사라지는 인상을 여기서도 받는다. 절대적인 권력의 열세인데도, 끊임없이 거절하는 젊은 여성의 모습을 보는 것은 뭐지,싶은 거다. 조선시대인데 마루방에서 세손이 자고-이게 나의 처음 불만 포인트였다, 한옥은 마루에서 사람을 재우지 않지 않을까?-, 늙은 왕이 신하들과 국정을 논하는 편전에 중전이 찾아가고, 궁의 비밀문 뒤로 궁녀들의 비밀결사가 왕의 살해를 모의한다. 이미 결혼한 젊은 왕세손의 사랑받지 못하는 중전은 극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나는 드라마의 이런 지나치게 현대적인 설정들이 거슬렸다. 그래서 책을 읽었다. 

책은,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따른다. 왕은 궁녀를 사랑했지만, 궁녀는 왕을 사랑했을까,라는 질문이 무색하게, 책 속에서는 왕이 과연 궁녀를 사랑했을까 싶게 왕이다. 나는 그게 싫지는 않았다. 왕위를 버리고 사랑과 떠나는 이산을 기대할 수는 없는 거니까. 

삶으로 나아가는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다. 드라마 속 궁녀가 로맨스 시청자의 기대와 달리 사랑하면서도 달려가지 않는 것은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려움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존재가 매력적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또 같이 한다. 그래서 아마도 드라마를 만들면서, 책과는 다르게 기이한 설정들-궁녀의 비밀결사같은-을 대사만이 아니라 그림으로까지 길게도 넣었던 건가, 싶었다. 로맨스의 독자나 시청자가 남자를 사랑하기보다 친구와의 우정을 택하는 여자에게 이입할까. 자신의 어머니처럼 아이를 낳다가 죽을까봐 깊이 사랑하면서도 온 힘을 다해 거절하는 여자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두렵지만 두렵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들을 잘 숨기기 위해 드라마 속 여자는 상대의 사랑을 지나치게 맹신하는 오만한 여자가 되어버렸다. 드라마 속 여자가 오만해지는 동안, 드라마 속 남자는 무능해지고-여자랑 칼싸움하는데, 칼이 부러졌어!!!- 나는 조금씩 멀어져서 본방을 보기보다 재방을 보고, 재방, 삼방을 하기보다 딱 한 번, 너무 어이없는 장면에는 채널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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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2-01-01 09: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별족님 지난 한 해 좋은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별족님 덕분에 여성주의에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있음을 실감하게 되었고, 문제 해결을 위해 극단의 해결이 아닌 조화로운 방안도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새해에도 잘 부탁드리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별족 2022-01-03 05:58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님, 새해에도 좋은 글 많이 남겨주세요!
 
젠더 이반 일리치 전집
이반 일리히 지음, 허택 옮김 / 사월의책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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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에 대해 쌓인 불만을 가지고, 두 권의 책을 골랐다. 한국철학자가 쓴 표류사회와 이반일리치가 쓴 젠더다. 표류사회를 먼저 읽었고, 젠더를 읽었다. 

재미있게 읽었다. 이반 일리치는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를 읽은 적이 있다. 이반 일리치의 첫 책도 가능할까 싶지만 뭔가 애닲은 마음이 되면서 읽었는데, 이번 책도 그랬다.  (https://blog.aladin.co.kr/hahayo/7237597

가정을 꾸리기 위해 분업을 택하고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다른 가치로 작동하는 작고 견고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사회에서 경쟁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가족 안에서 공조하는 남자와 여자가 되어 다시 사회에서 다르게 해석되는 엄마와 아빠로 세상을 이해해나간다. 이전과 똑같을 수 없는 엄마가 되어, 이전과 똑같은 공정을 원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짐을 지고 세상을 건너는 동지애를 느끼며 남편을 보고, 아이들에 대한 어떤 태도 가운데는 더 큰 공동체에 대한 기대를 가진다. 가정은 사회에 다른 가치관으로 작동하는 공간이라고, 남성과 여성이 사회를 보는 다른 시선을 알아차린다. 관계를 버거워하면서 고립되고자 하는 욕망들을 볼 때마다, 안쓰러운 마음이 되기도 한다. 가정이 사회로 확장되는 것이, 사회적 기준이 가정을 물들이는 것에 거부감을 가진다. 아이들이 속한 가장 작은 공동체인 가정에서 안주인으로서 권력을 행사하고 싶어한다. 아이들에게 가지는 나의 권력이 나의 수고 가운데 있는 거라는 걸 자각한다. 

내게 충고하는 이들의 말을 곰곰이 들어보니 그들이 내 강의에 왜 그렇게 불편해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 논지가 그들이 꿈꾸는 것들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었다. 페미니스트는 성 역할을 강요받지 않는 젠더 없는 경제를 꿈꾼다. 좌파 운동가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정치 경제의 주체가 되는 사회를 꿈꾼다. 미래주의자는 사람들이 마음만 먹으면 의사, 남자, 개신교도, 유전공학자 등으로 자신의 역할을 바꾸고, 무엇을 골라도 똑같이 대접받을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그러나 성의 관점으로 경제학을 들여다 본 결론은, 간단히 말해 이런 꿈들이 여지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꿈꾸는 욕망은 모두 하나의 재료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젠더 없는 경제‘이다. - P22

하지만 서비스 전문가들이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면 그들의 전문가적 진단에 숨어있는 인종주의를 들키지 않도록 믿음직한 수사법을 구사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조잡하기 짝이 없는 이 새로운 사회생물학에 대한 논쟁을, 인간의 ‘우열‘을 측정하는 일보다 인간에게 ‘필요‘를 심어주는 일에 있어 전문가적 풍모를 갖춘 내 동료들 곧 교사, 의료인, 산부인과 의사, 사회사업가에게 맡기려는 것이다. 이들은 나름 과학적이라고 하는 진단을 통해 타인을 자기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소비자로 전락시키는 법을 잘 아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런 자신감에 붙어있는 그들의 사욕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교묘한 등급 매기기 능력도 타격을 입을 것이고, 그들 역시 조잡한 사회생물학적 성차별주의와 다를 바 없다는 점도 공공연하게 알려질 것이다. - P77

여자의 임무 중에는 세리로부터 집을 지키는 일도 있었다. 여자 혼자 집에 있다고 우기면 세리는 집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아이가 명백한 잘못을 저지른 경우에도 여자는 아이의 편을 들었다. 필요하다면 손톱과 이빨을 세워서라도 적에게 맞서라는 것이 여자에게 요구되는 도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가 지켜야 할 도리는 정반대였다. 여자가 아이를 감싸더라도 남자는 아이의 잘못을 꾸짖고 때로는 가혹하게 벌을 주는 게 올바른 태도였다. - P115

젠더가 다스리는 곳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집단적으로 서로에게 의존하므로 서로 싸우고 빼앗고 물리치더라도 어느 선을 넘을 수 없다. 토박이 문화란 간혹 비정할 때도 있지만 양쪽 젠더 사이의 휴전이다. 남자들이 여자들의 몸을 망가뜨리는 문화에서도 규방에서는 남자의 감정에 극심한 고통을 가해 앙갚음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휴전과 달리 희소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남녀 간 전쟁이 끊이지 않고, 여자들은 늘 새로운 패배를 당한다. 물론 젠더가 다스리는 곳에서도 여성은 종속적일 수 있다. 그러나 경제가 통치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여성은 오로지 제2의 성일 수밖에 없다. 여자들은 젠더 없는 판돈을 건 이 도박에서 이기든 지든 영원히 불리한 위치에 선다. 이 도박판에서 양쪽 젠더는 발가벗은 채 중성을 하고 있지만, 결국 승리하는 자는 남자다. - P184

지금까지 나의 논의는, 젠더에 기초한 자급자족적 사회가 희소한 생산품에 의존하는 사회로 역사적 이행을 했다는 데 기초한 것이었다. 희소성 역시 젠더나 성처럼 역사적인 것이다. 희소성의 시대는 오로지 다음과 같은 가정 위에서만 출현할 수 있다. 인간이란 개별적으로 살아가는, 소유하는 존재이며, 물질적 생존의 측면에서 젠더 없는 존재라는 가정이 그것이다. 즉 인간이란 탐욕스런 경제적 중성이라는 가정이다.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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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이반 일리치 전집
이반 일리히 지음, 허택 옮김 / 사월의책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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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를 인지하고 조심스럽게 이어오던 자급자족 경제가, 한계없는 소비주의 경제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젠더 경계가 무너진 인간, 가치를 기꺼이 돈으로 거래할 인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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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사회 - 한국의 여성 인식사
이소정 지음 / 아이필드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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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린 책이고, 재미나게 읽었다. 

한국철학-인내천(人乃天)이나 홍익인간(弘益人間)-에 대한 설명은 동의하거나 공감하면서 읽었다. 음과 양은 우열의 문제가 아니고, 음이 양 위에 있어야 자연스럽게 순환하면서 가장 좋은 상태가 된다는 주역의 설명은 마음이 편해진다. 둥글게 순환하는 사회의 묘사, 여성과 남성의 우열없는 태도. 내가 살고 있는 이야기의 세상은 사람은 모두 그 안에 하늘을 품고 있다. 사람이 그대로 보살이 될 수 있는 누천년 불교의 나라였고, 기운이 모였다 흩어지는 마음이 중한 유교의 나라다.  

그렇지만, 세태에 대한 이야기는 물음표가 생기고, 고대사회부터 조선시대, 그리고 지금까지의 여성인권이 떨어지는 상황의 묘사는 그게 무슨 소용인가? 싶다. 지나간 과거가, 과거에 그랬던 게 지금 뭐?라는 식. 중국 역사에 '동이족'으로 묘사되는 것이 우리 민족,이라는 말이나, 고대사 상나라가 우리 민족의 나라라거나, 하는 말들은 의미가 있는 말인가, 생각했다. 

책 속에서 우리가 상나라의 후손이고, 공자도 그러하다는 대목에서는 좀 많이 놀랐다. 그게 뭐 중요해? 라는 태도에 더하여, 유사역사학에 대해 내가 배우는 초록불의 잡학다식(http://orumi.egloos.com/),이라는 사이트도 떠오르고, '한국인들이 공자도 자기 조상이라고 한다'고 분개하던 중국의 애국청년 생각도 났다. 

내가 느끼는 '우리'는 무엇일까? 민족인 걸까? 생각이 많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는 같은 말을 쓰고 여기 한반도에서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여기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 그럼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생각들의 뿌리는 무엇일까, 역시 대답하기 쉽지 않다. 아마도 그래서 저자는 상나라부터 시작한지도 모르겠다. 남편이 왕이고, 아내는 장수인 고대의 어떤 사회를 묘사하면서, 여성의 지위가 낮지 않았다고, 다시 고려와 신라와 조선을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주자의 교조적인 성리학이 들어와서 조선의 여성지위가 떨어졌다고, 일제의 수용적인 태도나 성적으로 개방적인 태도 가운데 여성지위가 떨어졌다고 묘사한다. 가끔 이게 일관성은 있는 건지 의심도 한다. 옛날에 그랬던 게 무슨 소용이냐, 싶고, 그래서 모든 악덕이 외부로부터 들어왔다고 하면 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여성이 우위에 섰던 고대 사회는 남성이 우위에 선 부계사회에게 결국 주도권을 빼앗겼고, 성적으로 결벽적이고 여성에게 억압적이던 조선 사회는 일제에 무너졌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이야기가 좀 더 좋은 이야기라고 해도, 수직으로 위계지워진 서양의 철학들이 둥글게 순환하는 동양의 세계를 무너뜨렸다면, 어떡해야 하는 걸까 생각이 많다. 동양의 세계가 과연 무너졌다고 할 수 있는가, 생각하고, 지금의 문명이 계속 나아갈 수 있을까 의심하지만, 나는 사람이 곧 하늘이고,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태도를 내가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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