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세트] 옷소매 붉은 끝동 (총5권/완결)
강미강 지음 / 도서출판 청어람 / 2017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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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면서 원작을 구해 읽었다. 드라마는 8화까지 재미나게 보다가, 9-10화는 망이라고 생각하고, 지금은 아, 너무 오글거려서 가족들이랑은 못 보겠어, 가 되었다. 젊은 정조도 좋고 두 사람의 사랑도 좋은데, 지지부진한 망설임에 이런 저런 거짓을 붙이는 것이 답답하다. 게다가, 드라마는 현대 젊은 여성이라는 주시청층에 소구하기 위해서인지, 역사성을 무시한다. 로맨스물에 소거되는 가족관계나 조건들이 사라지는 인상을 여기서도 받는다. 절대적인 권력의 열세인데도, 끊임없이 거절하는 젊은 여성의 모습을 보는 것은 뭐지,싶은 거다. 조선시대인데 마루방에서 세손이 자고-이게 나의 처음 불만 포인트였다, 한옥은 마루에서 사람을 재우지 않지 않을까?-, 늙은 왕이 신하들과 국정을 논하는 편전에 중전이 찾아가고, 궁의 비밀문 뒤로 궁녀들의 비밀결사가 왕의 살해를 모의한다. 이미 결혼한 젊은 왕세손의 사랑받지 못하는 중전은 극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나는 드라마의 이런 지나치게 현대적인 설정들이 거슬렸다. 그래서 책을 읽었다. 

책은,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따른다. 왕은 궁녀를 사랑했지만, 궁녀는 왕을 사랑했을까,라는 질문이 무색하게, 책 속에서는 왕이 과연 궁녀를 사랑했을까 싶게 왕이다. 나는 그게 싫지는 않았다. 왕위를 버리고 사랑과 떠나는 이산을 기대할 수는 없는 거니까. 

삶으로 나아가는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다. 드라마 속 궁녀가 로맨스 시청자의 기대와 달리 사랑하면서도 달려가지 않는 것은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려움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존재가 매력적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또 같이 한다. 그래서 아마도 드라마를 만들면서, 책과는 다르게 기이한 설정들-궁녀의 비밀결사같은-을 대사만이 아니라 그림으로까지 길게도 넣었던 건가, 싶었다. 로맨스의 독자나 시청자가 남자를 사랑하기보다 친구와의 우정을 택하는 여자에게 이입할까. 자신의 어머니처럼 아이를 낳다가 죽을까봐 깊이 사랑하면서도 온 힘을 다해 거절하는 여자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두렵지만 두렵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들을 잘 숨기기 위해 드라마 속 여자는 상대의 사랑을 지나치게 맹신하는 오만한 여자가 되어버렸다. 드라마 속 여자가 오만해지는 동안, 드라마 속 남자는 무능해지고-여자랑 칼싸움하는데, 칼이 부러졌어!!!- 나는 조금씩 멀어져서 본방을 보기보다 재방을 보고, 재방, 삼방을 하기보다 딱 한 번, 너무 어이없는 장면에는 채널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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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2-01-01 09: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별족님 지난 한 해 좋은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별족님 덕분에 여성주의에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있음을 실감하게 되었고, 문제 해결을 위해 극단의 해결이 아닌 조화로운 방안도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새해에도 잘 부탁드리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별족 2022-01-03 05:58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님, 새해에도 좋은 글 많이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