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자연을 바라보는 인디언의 지혜
베어 하트 지음, 형선호 옮김 / 황금가지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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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렸을 때, 엄마는 내게 뜨거운 물을 그대로 버리면 안 된다, 고 말했습니다. 지렁이가 죽게 된다고. 그러나, 지금 바짝 키에 맞게 올라온 씽크대에 개숫물이 어디로 가는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부엌의 구조에서는 엄마에게도 잊히는 교훈인 모양입니다. 감을 딸 때는 까치밥을 남기고, 짚신은 디뎌도 개미가 죽지 않았다고 말하는 걸 듣고 있으면, 이 책 속의 인디언의 지혜도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병을 만드는 것은 바이러스와 세균과 불결함 만이 아니라, 타인의 저주와 자신의 죄책감도 있는 거라고 말하는 것도 또 마찬가지입니다.

저자는 정규교육을 받으며, 인디언 주술사 교육을 받았습니다.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태도를 배우고, 합당한 자격있는 주술사가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가 배우는 과정을 묘사할 때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개미굴 위에 누워 자신 위로 지나가는 개미를 쓸어낼 수 없었다고 말하는 인디언을 볼 때, 불빛 아래 작은 날벌레를 쳐서 떨어뜨리는 나의 성급함을 반성합니다. '지나가는 개미가 내게 끼치는 해악은 없다'고 '간지러울 뿐'이라고 말하는 것에 부끄러웠습니다. 자신을 위해 주술을 쓰는 순간 주술사가 아니라고, 사냥하는 목적은 먹고 나누기 위한 것이라서 사냥꾼은 첫 사냥물을 자신이 먹어선 안 된다는 인디언의 교훈들이 가슴에 닿았습니다.

그런 태도들 여전했다면, 자연이 지금처럼 이렇게 되었을까, 사람들이 지금처럼 이러할까, 묻습니다. 천천히 되돌리려는 움직임들이 빌딩숲의 시계추같은 사람들을 어느 순간 기쁘고 행복한, 자연과 함께하는 사람들로 되돌릴 수 있을 거라고 순진하게 기대합니다.
바쁘게 시계를 보는 대신 어느 날에는 바람부는 들판에 앉아 눈동자만을 움직이며, 날벌레와 새와 나무와 풀을 관찰할 거라고 결심합니다. 작은 날벌레가 나를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렇게 가만히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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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방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14
강석경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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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한 단 한 구절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으면, 그 책을 '맘에 들지 않았다'라고 말할 수 없다. 만약 그런 상황에서 강경한 거부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잊히지 않는 한 마디에 매혹당한 자신에 대한 거부이거나, 들켜버린 자신에 대한 거부이다.

내가 매혹당한 것은, '사루비아꽃이 너무 붉어서'라고 자신의 행동에 이유를 대는 대목이었다. 설명할 수 없이 그저 너무 잊히지 않아서 '내가 그런 사람이었나', 하였다. '열가지 이유를 대, 그래도 여전하다면' 이라는 인내의 조언들을 듣다가, 단 하나 '사루비아 꽃이 너무 붉어서'라는 이유를 다는 주인공에 놀랐다. 그 이유에 갑자기 공감이 가서, 나도 또 그런 식으로 이유를 달고 싶어져서 놀라고 또 당황하였다.

간절히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지, 지금 내게 그런 견고한 것이 있는지 묻는다. 그런 대답이나 행동이 너무나 진지한 시대를 무심히 지나치려다 입은 자상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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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세기 이후 오퍼스 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정한 옮김 / 이후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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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전에 '에코페미니즘'을 읽었다. 그 모든 것에 감성적으로 동의하면서 궁금한 것은 '자연과 공존하던 인디언들의 현재'를 지금 '에코페미니즘'을 실천하기로 한 현대인의 미래로 만들지 않을 방법은 무엇인가, 였다. 어떻게 폭력에 대항할 것인가. 모두가 공유하지 않는다면, 평화 속에 난무하는 총구는 어떻게 치울 것인가, 평화를 추구하는 생태주의자는 무엇으로 권력을 획득할 것인가.

뭐 '권력이 총구에서 나온다'라는 말을 모택동이 했다는 걸 모르는 채로도 한나 아렌트의 '폭력은 권력을 만들 수 없다'는 선언은 그 자체로 위안이 된다. 완전한 답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서구인의 입으로 듣는 이 세기에 대한 반성은, 권력과 결부시키지 않고 폭력을 그 자체로 드러내고자 한 것은 다르게 사고하게 한다. 조금은 편리하게 목적이 다른 폭력이라면 용인하려 한 내게 '폭력은 폭력일 뿐'이라고, '폭력은 권력을 만들 수 없다'는 꾸지람은 분명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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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는 괴로워 1
스즈키 유미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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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깔대고 큰 소리로 웃다가, 끝날 즈음, 웃고 있는 나나 '미녀는 괴로워'라고 엄살떠는 칸나나 미워 죽을 지경이 되었다. 얼굴값 한다,라고들 하는 미녀에 대한 편견 여전하고, 그래 성격조차 나쁘면 네가 어디서 남자를 구하냐,는 추녀에 대한 험담이 난무하다. 그래서, 역시 최고의 여자는 원래 예쁜 천연미녀보다는 예상밖의 2세라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뚱녀였다가 수억들여 '이룬' '인공의' 미녀다, 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눈물나, 여자인 나는. 웃지 않았다고, 읽는 내내 삐딱하였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말미에 정말 슬퍼졌다고 고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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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뱀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옥희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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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놓인 하얀 장정의 작은 책을 몇 번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였다. 결국은 집에까지 동행하게 된 이 작은 책에서 나는 요시모토 바나나를 처음 만났고, 그녀의 다른 책을 읽고 싶어졌다. 같은 주파수대에서 울리는 감수성에 피할 수 없는 느낌이긴 한데, 그게 크고 심각한 건 아니다. 가벼운 듯 진지하다고, 앞뒤가 어색하게 밖에 설명할 수 없다니 애석하다.

눈물을 철철 흐르게 하는 심각함없이, 어찌보면 '큰' 일들이 아무일도 아닌 것처럼 지나가고 있다. 치유력을 깨우게 되는 불행이 있고, 냉담함처럼 보이지만 따뜻한 포용이 있다. 사실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다고 그토록 죽을 듯이 아프냐고 질문받은 것처럼 지금껏 내가 갇힌 고민들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지금까지와는 다른 질문을 하게 만든다.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무국적의 세대, 그런 그녀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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