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3부 : 사신의 영생 (반양장) - 완결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 단숨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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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엄마가 면사무소에서 운영하는 요가교실에 다니면서, 그런 식으로 진행되는 각종 교실 발표회 자료집을 가져다 놨다. 거기 실린 서예반 작품 중에 '구름은 바람없이 못 가고, 인생은 사랑없이 못 가네'라는 글귀가 있었다. 뭔가 아련하고 부끄러워서 마음 깊이 감춰두었었는데, 책을 읽는 내내 머릿 속에 맴돌았다. 

거대한 우주 대서사시를 읽으면서 나는 내내 저 글귀가 떠올랐다. 

아마도 류츠신도 알 거 같아서, 이 글의 원전은 아마도 시경이 아닐까 싶어서 검색도 했다. 시경은 못 찾고, 패티김의 인생은 작은 배,라는 노래를 찾았는데 역시 노래 전체도 삼체 3권을 연상시키는구나. 시대를 거슬러 살아 남은 노래가 다시 노래가 되고, 저기 거대한 우주 대 서사시가 되었나, 싶다. 시간의 강을 딛고 선 인간에 대한 묘사나, 우주로 나가는 이유, 그 모든 촘촘한 배경들이 노래 하나로 압축되었다고까지 느낀다. 


인생은 작은 배 - 김지평 작사/박춘석 작곡/패티김 노래

구름은 바람없이 못 가네/천년을 분다 하여도

인생은 사랑없이 못 가네/하루를 산다 하여도

지금 우리들이 타고가는/시간이라 하는 무정한 배

미움을 싣기에는 너무 좁아요/그리움만 실어요

구름은 바람따라 떠나도/별빛은 그 자리 있고

인생은 세월따라 떠나도/사랑은 그 자리 피네

지금 우리들이 타고 가는/시간이라 하는 무정한 배

미움을 싣기에는 너무 좁아요/그리움만 실어요

구름은 바람따라 떠나도/그 하늘 그냥 푸르고

인생은 세월따라 떠나도/그 마음 그대로 피네


끝없는 진보를 의심하면서, 과학의 발달이 인간을 더 나아지게 할까도 회의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속을 수 있을 만큼 치밀해서 재미있게 읽었다. 2권을 읽고 우주가 '암흑의 숲'인 게 싫다고 했지만( https://blog.aladin.co.kr/hahayo/9440691 ), 이건 역사 속에서 식민지를 겪었던 누구라도 가질 수 있는 버려서는 안 되는 태도라는 생각도 한다. 우주에 대한 이야기가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읽히고, 지금 인간의 세상에서 만나는 장면들과 겹친다. 전쟁난민들과 이민자, 1세계의 어떤 부에 대한 태도, 우주로 뻗는 태도를 경계한다. 시간의 강을 벗어나 서겠다는 마음이 나에게 없고, 그걸 선택할 수 없는 시대라는 게 다행이다. 

산다는 게 오히려 수동적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거대한 우주 속에 벌레라는 것을 알고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여성화된 인류에게 하는 지자의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잊지 말아야 하는 태도같아 옮겨놓는다. 

"생존 자체가 행운입니다. 과거에 지구에서 그랬듯이 지금 이 냉혹한 우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턴지 모르게 인류가 환상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생존을 아주 당연한 일로 여겼지요. 이것이 바로 당신들이 실패한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이 세계에 다시 진화의 깃발이 올라가고 여러분은 생존을 위해 싸울 것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은 모두 마지막에 남은 5000만 명에 속하길 바랍니다. 식량에 잡아먹히지 말고 여러분이 식량을 잡아먹으십시오."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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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제628호 : 2019.09.30 - 창간기념호 2
시사IN 편집국 지음 / 참언론(잡지)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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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시사인을 갈굴려고 보는 중인 거 같다. 

이번에 거슬렸던 칼럼은 학부모, 칼럼니스트의 글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334 )이다. 

대학을 나왔지만, 그게 필요한 일이었을까, 생각하는 나는 왜 굳이,라고 질문하게 된다. 

상식이 없는 나는, 대학이 꼭 나와야 하는 거라는 생각이 없다. 

일을 하는데, 대학졸업장이 필요한가? 사람들은 대학을 왜 가지? 나는 왜 갔지? 질문이 많은 나는 왜 '뺑뺑이로 대학가자'고 하는지 이해를 못한다. 뺑뺑이는 뭐지????

서열을 매기고 순위를 정하는 것이 '어린 사람들의 오락'이라고 생각한다. 나이먹을 수록 그런 것들이 참 하찮다고 생각하는 중이라서, 뺑뺑이로 대학을 가면, 그 때는 어린 사람들은 또 어떤 서열과 순위를 생각해낼 지 궁금하기는 하다. 선발하던 고등학교가 뺑뺑이로 바뀌는 시점을 기준으로 전 후를 가르는 말이 있다고도 하고, 지금 대학가는 수시와 정시, 캠퍼스를 차별하는 말들을 개발했다고도 하던데. 

이제 뺑뺑이가 들어오면, 어차피 인생사 운이니까, 운의 대격돌을 보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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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영리한 아이가 위험하다
에일린 케네디 무어 외 지음, 박미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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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도 안 한 친구가 권했던가, 옛날 단정한 소년이 응시하는 파란 표지의 이북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생각나서 봤는데, 이북 표지가 바뀌어 있다. 어떤 시스템인 거지. 궁금하네. 

처음 읽었을 때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다시 읽으면서 왜 좋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모든 육아서가 가지는 함정, 서양이라고 해도 아이를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어서 학습을 도와주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들이 한가득이라서 그랬나보다. 아니면, 나에게도 없는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아이에게 어떻게 하라는 그 조언들이 내 자신에 대해 반문하게 만들어서 껄끄러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사춘기 전에 필요하다는 그 모든 태도들,이 나에게 있는지 계속 반문하게 만든다. 결국 나에게 없다는 걸 깨닫고, 나에게 없는 걸 어찌 가르쳐야 하나, 싶었던 거다. 

부모의 열망에 부응하기 위한 저자의 어떤 태도,을 보아넘기기로 하고 다시 읽으니 저자가 하고 싶은 말들이 조금 더 와 닿았다. 많은 육아서가 그러하듯이, 부모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추천의 말처럼 부모의 일은 '기다리는 일'이고,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일'이다. 

아이의 성취-대개는 학업적인-에 불만을 참을 수 없을 때라면, 동창회라도 나가 보라는 조언은 귀엽다. '보세요, 부모님, 학교에서 성적이 별로였던 당신의 친구가 저기 활짝 웃는 얼굴로 멋지게 나이들었잖아요. 지금 시험문제 몇 개 틀렸다고 그렇게 아이를 쥐잡듯 잡을 일이 아니예요.' 읽고 있는 독자에게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는 말들을 전하기 위해 애쓰는 저자의 마음이 그러면서 독자의 바보같은 바람을 자신의 책이 들어줄 것처럼 묘사하는 태도가 책 속에 가득하다. 

아이가 자신의 흥미를 따라 걸어갈 수 있도록, 부모는 조금 멀찍이 서서 보아줄 수 있다. 말이 아니라, 부모가 보여주는 행동과 태도로 원하는 바를 설명할 수 있다. 그 가운데, 아이는 자신의 삶을 살아낼 수 있다. 해야만 하는 일을 좀 더 우호적인 태도로 감당하는 부모의 모습이 필요하다는 말은, 숙제를 대하는 아이와, 청소와 빨래와 식사준비를 대하는 내가 얼마나 가까운지 깨닫게 한다. 살아가는 중에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하게 될 일,들을 아이가 어떻게 대하길 바라는지, 나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는 있는지 모르겠다. 

기쁨을 찾으려면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한다. 100퍼센트 완벽하게 긍정적인 경험은 거의 없다. 모든 게 완벽해야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확실히 불행하게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즐겁게 살려면 삶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냉담하게 트집만 잡고 남을 책망해서는 절대로 즐겁게 살 수 없다. - P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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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 명작동화 속에 숨어 있는 반전의 세계사
박신영 지음 / 바틀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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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었다. 그렇지만, 동양인 여성인 내가 서양인으로 동기화되어야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이야기 속에 드러나는 서양 중세와 근세 배경들을 설명하면서, 저자도 인식하고 있는 그 한계들을 매번 상기시킬 수 없어서 중간 중간 계속 버퍼링이 생긴다. 늑대에게 먹히는 빨간모자 이야기에서 달과 늑대인간, 마녀로 추방당한 노파에 대한 이야기는, 동양의 문화적 배경가운데 생소하기 때문에 들어야만 하는 이야기지만, 그걸 그대로 '문화'였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서구 편향되는 것이다. 토막토막 주워들은 이야기도 많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후닥닥 읽었다고는 못한다. 기독교라는 편협한 종교로 봉합된 전쟁의 역사,인 서구문명의 이야기들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이야기같아서 경계하는 마음도 생긴다. 양과 음의 위계적 우열이 없는 동양인들이 이해할 수 없던 서양 이야기 속의 서양사, 심정적 배경들이 드러난다. 

나는 이야기의 원형, 시대를 지나서, 지역을 가로질러서 살아남은 것들, 살아남은 이유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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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스플레인 -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한 올바른 젠더의식을 위해
이선옥 지음, 김용민.황현희 도움 / 필로소픽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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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그래도 호응이 좋았던 글(https://blog.aladin.co.kr/hahayo/10914180)에서 나는 '애초에 공부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댓을 받았다. 이미 나는 알라딘에서 팍 찍혔고, 이제 점점 페미니즘에서 멀어지는 중이라는 자각도 있고, 외로운 와중에-저기서는 페미니스트,라고 했다가 공격당하고, 여기서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공격당하고- 다들 아니라는데 내가 나를 정의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라고 이제 더 이상 정의에 연연하지 않을 마음까지 먹은 차에 읽은 책이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4920380)가 그저 다 옳은 말이라 반박할 수 없는 것처럼, 우먼스플레인,에서 말하는 것들도 어쩌면 새롭지 않다. 오래 걸려 합의된 근대의 가치들, 국가와 개인의 긴장관계에서 지켜져야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지금 여기에서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많은 것들이 그런 오래된 가치들을 훼손한다고 말한다. 반박할 수가 없다. 

선언적으로 이루어지는 여성주의의 언설들이 제도가 되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특정 성에 편향하도록 제도화하려는 시도가 된다. 예를 들어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언설은 캠페인으로 각성을 가져오지만, 제도로 들어오면서는 국가가 개인의 사적 생활에 개입하는 범위를 무한정 확장시키는 중이다. 그걸 누가 동의할 수 있을까. 페미니스트라는 그룹을 이미 대표하고 있는 극단적인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이 동의할 수 있는 공통의 가치들로 반박당한다. 약하기 때문에 권력을 원하고, 그 권력이 자신의 편이기를 주장하는 지금의 페미니스트들이 무섭다고 생각하는, 거부당한 페미니스트인 나도 동의할 수 있다. 


유튜브에는 계속 새로운 이야기들이 올라오는데, 나는 유튜브를 보는 사람이 아니고 책을 보는 사람이라서 책을 읽고 작가의 홈페이지(http://leesunok.com/)에 가서는 구독신청도 한다. 드문드문 찾아보는 유튜브 영상에서 작가는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고도 말한다. 작가는 분명히 이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페미니스트 연하는 젊은 여성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반박하고 싸우고 싶은 지금의 나도 '이제는 아니라'고 말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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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9-01 08: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남자라서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고 들은 적이 있고, 페미니즘 이론을 비판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면 ‘남자‘라서 공부가 부족하다고 들은 적도 있어요.

요즘 제가 교차성 페미니즘을 독서모임 멤버들(페미니스트)과 함께 공부하고 있는데요, 워마드로 보이는 트위터리안이 우리 멤버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했어요. 그 사람 말로는 우리 멤버들이 교차성 이론을 래디컬 페미니즘 계보에 끼워 넣으려는 시도를 한다네요. 그런 시도를 저도 그렇고, 멤버들은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말이죠. 그 사람이 우리 멤버를 단정적으로 판단하면서 래디컬 페미니즘 계보를 언급하는 발언 형식이 마치 맨스플레인을 보는 것 같았어요.

별족 2019-09-02 06:33   좋아요 2 | URL
페미니즘에는 정말 다양한 것들이 있는데, 지금 공론의 장에서 살아남은 것들이 묘하게 이상한 것들만 남은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