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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 ㅣ 나비클럽 소설선
민지형 지음 / 나비클럽 / 2019년 5월
평점 :
나는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해왔다.(https://blog.aladin.co.kr/hahayo/7620022)
그런데, 이 책을 막 끝내고는 나는 이제 더 이상 페미니스트가 아닌 지도 모르겠다, 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미 '당신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그걸 선언하라는 말도 들어본 적 있으니-벌써 4년 전에-, 새삼스러운 건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이 책을 '페미니스트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읽는 내내, 작가가 남자일지 여자일지 계속 생각했다. 작가의 말까지 읽고는 여자인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나처럼 읽지 않았을까, 하고 서평을 검색했다. 알라딘에 하나 뿐인 서평은 '페미니즘 입문서'로도 볼 수 있다고 하고, 리디북스에 걸려있는 그 많은 서평도 대부분 공감,이 많다. 아, 여기 형상화된 페미니스트 여친에 공감한다는 거구나.
나는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는 페미니스트, 였다.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언제나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나의 어떤 행동에 '페미니스트라면서?'라고 말하는 게 싫었거든. 남초 회사에서 그저 칼퇴만 해도, 여자들은, 이라는 말을 듣는데, 게다가 '페미니스트'라면 또 무슨 말을 들을지 알 수 없었거든. 뼈를 갈아넣으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는 마법의 수사니까. '페미니스트 여자는 남자의 도움을 싫어하지', '페미니스트 여자는 직접 하려고 하지', '페미니스트 여자는 성에 개방적이지', 페미니스트 여자는 블라블라. 나는 나를 '무슨 주의자'로 규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말이 필요한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 사안에 의견으로만 존재하고, 그 의견 가운데 아 저 사람은 성향이 저러하구나,라고 유추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페미니스트라고 다 같은 의견을 가질 수 없다고도 생각하기 때문에, 언제나 그런 식의 규정은 쓸모없다고 생각했다. 민주주의,라는 걸 말하면서도 백사람이 모두 다 같지 않은 것처럼 페미니즘도 그러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내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혼자 생각하면서 누가 페미니스트 욕하면 발끈하고 파르르했던 거지. 그런 날들도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내가 페미니스트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모욕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많은 사람은 아니라면, '페미니스트'의 정의가 분명히 바뀌었고, 내가 받아들였던 그 정의(https://blog.aladin.co.kr/hahayo/7665372) 는 이미 아닌 건가, 싶어지기까지 했다.
머리가 짧고 바지를 입고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묘사하는 페미니스트 여친,의 말들은 추상 속에 있다. 나는 '나'로 형상화된 남자의 말들이 현실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집 밖은 워킹데드,라고 말한다. 그 단정에 나는 또 물러선다. 좀비물,자체가 양아치-아치,가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존재,라는 불교용어라고 하는데, 나는 그 말을 듣자 마자 양아치,가 서양아치,라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딱 지밖에 몰라, 수준이라는 의미. 모든 말들의 어원처럼 여러 다른 이설이 있지만 내가 생각한 어원(서양아치,의 준말)도 있었다-스럽다고 생각하는 지경이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연결하는 어쩌면 페미니즘도 '양아치'스러운 게 아닌가, 생각하는 지경이기는 하다.
사랑과 혐오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고, 내가 뒤죽박죽 엉망진창인 것처럼 상대도 그러하다는 걸 받아들이면 뭐 그렇게까지, 가 되는 건데, 자신과 다르다고 상대를 좀비라고, 세상을 워킹데드라고 묘사하는 것은 무엇에 도움이 될까, 싶다. 일말의 공통점이라도 찾아서 악착같이 살아가겠다는 각오(https://blog.aladin.co.kr/hahayo/10209495) 가 나에게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다 떠나서, 내가 그 페미니스트 여친이 담배를 피기 때문에 싫어하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