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동안 먼지만 쌓여있던 오래된 책

"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를 읽는다.

이제 환경미화도 끝이 나고, 교실에 고요가 찾아드는 아침 시간

창밖에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도 들리고

밖에서 불어는 봄바람이 싱그럽기만 하다. ^^

이런 아침에 이 책이 딱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사시간에 조선후기 실학자 중에 한 명일 뿐이던 박제가의 삶이 내 가슴 속까지 촉촉히 젖어든다.

이 사람도 이렇게 답답해했구나. 세상을 향해서 그리도 손을 뻗고 싶었는데, 서자라는 이유 때문에 그 손이 닿을 곳이 없었다니... 서늘한 바람같은 사람이었구나. 안타까웠다. 그리고 왠지 자꾸 애정이 갔다.

 

 

  <오늘 마음에 남는 부분>

 

  얼버무려 말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세심하게 바라보고 관찰하여 구체적으로 말한다는 것이다. 무엇 하나라도 눈길을 끄는 것이 있으면 오래도록 관찰하고 연구하였기에 박제가는 결코 얼버무리는 법이 없었다. 그의 말은 단호하고 언제나 확신에 차 있었다.

  젊었을 때 박제가는 수레에 관심이 많았다. 조선에서도 널리 수레를 이용하여 백성들의 생활이 편리해져야 한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어떻게 그리 꼼꼼하고 세심할 수 있는지 놀라웠다. 조선에 맞는 수레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수레가 다닐 길을 어떻게 닦을 것인가, 수레바퀴의 모양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이고도 세세한 사항들이 모두 담겨 있었다. 마음을 기울여 백성들의 생활을 들여다보았기에 그 불편함이 몹시 안타까웠을 것이고, 백성들의 생활이 더욱 나아져야 한다는 마음이 절실했기에 수레 하나도 그처럼 세세하고 알기 쉽게 구체적으로 기록해 놓은 것이리라.

  그러나 그의 글을 읽으면 어쩐지 마음이 아파 왔다. 그가 나라와 백성의 살림살이를 걱정하여 쓴 글의 내용이 세밀하면, 세밀할수록,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나는 더욱 마음이 아팠다. 자신의 생각을 좀 더 쉽고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얼버무리지 않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기 위하여, 그는 얼마나 많은 밤을 책 더미 속에서 안타까워하며 괴로워했을까. 또 얼마나 많은 날들을 거리로 나아가 사람들의 생활을 들여다보았을까. 그러나 세상은 그의 세밀함을 좀처럼 알아 주지 않았다. 그의 간절한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다. 그 점이 나는 오래도록 안타깝기만 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망찬샘 2010-05-26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읽어야지~ 하면서 말이지요. 1학기 중에 꼭 읽어야겠어요.

수진샘 2010-06-20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행복한 아침독서"로부터 학급문고로 받아 놓은지 3~4년이 지나서야 다 읽었어요. 이 책을 읽으며 따뜻한 봄을 느끼고 아침 독서의 즐거움을 새록 새록 누렸어요. 꼭 읽어보세요. 늦게라도...
 
안녕, 싱싱 사계절 1318 문고 59
차오원쉬엔 지음, 전수정 옮김 / 사계절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안녕, 싱싱”을 다 읽고 났을 때의 첫 느낌은 차가운 얼음물을 마시고 난 뒤의 시리도록 차가운 청량감이었다. 아, 이토록 맑고 순수한 아이들의 감성을 이렇게 감동적으로 나타낼 수 있다니! 몇년만에 차오원쉬엔 작품을 다시 만난 감동은 처음부터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잔잔히 퍼져나가는 여운이 오래 남는 작품이었다. 예전에 “빨간 기와”를 다 읽은 다음, 서점에서 “까만 기와”를 보자마자 망설이지 않고 구입했을 때의 설렘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야풍차’에서 얼바옌즈는 가난으로 지쳐 살아가지만, 영혼만은 살아 꿈틀대는 씩씩한 소년이다. 얼바옌즈는 어른들도 올라가기 힘든 태풍 속에서 흔들리는 풍차 꼭대기까지 기어 올라가 풍차의 남은 돛을 내리려고 하다가 바람에 먼 곳으로 떨어지고 만다. 말라 죽어가는 새싹을 살리기 위해 물을 대주던 풍차를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려는 얼바옌즈의 순수한 의지. 소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정없이 땅에 내동댕이쳐질 때도 있겠지만 어려운 일을 피하지 않고 용기와 패기를 갖고 정면으로 부딪치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삶이 아니겠는가! 거칠지만 삶의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삶. 소년은 그렇게 크는 것이다.



‘열한 번째 붉은 천’에도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기 위해 외뿔 소를 몰며 죽을 힘을 다해 달렸던 곰보 할아버지의 간절한 소망이 나타나 있다. 외뿔 소를 사오던 날 길들여지지 않은 소가 날뛰는 바람에 시간을 허비하게 되고 그로 인해 물에 빠진 한 아이의 목숨을 잃고 만다. 바로 그날 곰보 할아버지는 소의 한쪽 뿔을 잘라 버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을 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진심도 알아주지 않은 채 세상과 점점 고립되어 살아갈 지라도, 죽어가는 아이를 반드시 살려놓고야 말겠다는 곰보 할아버지의 집념. 그로 인해 결국 자신은 죽게 되었지만 자신이 살려놓아야 할 어린 생명을 외면하지 않았던 그의 곧은 마음. 세상은 이로 인해 더욱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그는 알았을까?



‘안녕, 싱싱’에서의 싱싱도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야성 그대로의 순수함이 가득한 어린 아이이다. 여지청으로 싱싱의 집에 머물게 된 야 누나는 싱싱의 예술적 재능을 알아보고, 이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도와준다. 겁이 많고 나약하기만 한 야 누나가 날이 갈수록 야위어가자 싱싱은 달빛 호수에 가서 황금 잉어를 잡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오직 자신을 인정해주었던 야 누나를 위해서 얼어 죽는 한이 있어도 꼭 황금 잉어를 잡겠다는 일념 하나로 끝까지 버텨낸다. 새파랗게 얼어붙은 입술을 깨물며 꽁꽁 얼어서 곱은 손으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지만 싱싱은 황금 잉어를 결국 잡고야 만다. 야 누나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고 싱싱은 슬픈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야 누나와 함께한 아름답고 순수한 시절이 그의 가슴에 평생 남아 그의 삶을 빛나게 해줄 것이다. 하늘에서 항상 반짝이는 별을 뜻하는 ‘싱싱’ 처럼.



마지막 작품 ‘흰 사슴을 찾아서’에는 죽음의 문턱에서 추위와 배고픔, 무서움에 떨면서도 끝내 이겨낸 아이들의 처절한 사투가 그려져 있다. 새하얀 사슴을 찾아 나섰던 다예, 쉐야, 린와, 션션은 무너져 내린 눈 더미 때문에 오두막에 갇히고 만다. 네 아이들은 깜깜한 암흑 세계에 갇혀 다시는 살아 나갈 수 없을 거라는 절망에 쌓여 죽음을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네 아이들은 가장 삶과 동떨어진 이 암흑의 세계에서 자신들의 솔직한 마음을 마주하게 된다.

린와는 말린 고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참혹한 배고픔 속에서 혼자 몰래 먹어 버리고, 추위를 피하기 위해 담요를 혼자 덮고 있으며, 바닥으로 굴러 떨어진 페인트 통을 과일 통조림으로 알고 혼자 몰래 먹으려다 페인트인 것을 알고 뱉어내며 괴로워한다. 이런 린와의 이기적인 마음도 어쩌면 가장 솔직한 아이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진짜 배 통조림을 발견한 다예도 혼자 먹고 싶은 마음에 잠시 망설인다. 하지만 언젠가 마주쳤던 ‘맑고 순수하고 선량함이 가득 담긴 위의 눈동자’를 떠올리고는 지독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결국 모두 다 죽을 수 있는 최악의 순간, 다예는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배 통조림을 다 같이 나눠먹으며 함께 하는 소중함에 대해 깨닫게 된다. 이런 다예를 보며 린와는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만약 이 통조림이 자신에게 왔다면 혼자 먹으려고 했을 것이 아닌가?’ 린와는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진심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온 몸이 차갑게 얼어가던 션션이 자신의 아버지가 일부러 린와의 아버지를 죽인 것은 아니었다고 린와에게 사과를 청하고, 린와는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린와는 절대 용서할 수 없었던 션션의 아버지를 용서하게 된다.

죽음과 암흑을 상징하던 눈 속에 파묻힌 오두막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이 오해했던 이들의 마음을 풀어주는 용서와 화해의 공간이 되고,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공동체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희망과 밝음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삶의 희망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결국 자신들의 힘만으로 찬란한 태양이 비치는 눈더미 밖으로 빠져 나온다.



매번 아이들을 혼내고 가르치는 입장에서 아이들을 불완전한 존재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소설에서처럼 아이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울 때가 있고 아이들이 선생인 나보다 훨씬 낫다고 느낄 때가 많다. 시험 성적이 올랐는데도 집에 가서 말할 사람이 없다는 아이의 글을 읽으며, 어떤 행동을 해도 무조건 혼나는 학생과가 싫다며 며칠째 학교에 나오지 않는 우리 반 꼴찌를 생각하니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너희들도 성장의 고통을 겪으며 치열하게 살고 있거늘, 어른인 우리들은 힘들고 외로웠던 그 시절을 어느새 잊고서 너희들을 더욱 힘들게만 했구나.’

힘겨운 삶을 살고 있지만 결코 쉽게 포기하지도 않고, 삶을 힘차게 헤쳐나가는 이 소설 속의 소년들의 모습이 꽤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너무 오래 잊고 지냈던 그 시절, 잘 다듬어지지 않아 거칠고 어설프지만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그 순간을 잊지 않아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제서야 이 책을 읽게 되어 유감이지만,  

이 책을 통해 소개받은 색감 좋은 훌륭한 그림책을 아이들에게 읽혀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행이다. ^^ 

그림책들이 너무 예쁘다. ^^


14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숲은 누가 만들었나
윌리엄 제스퍼슨 지음, 윤소영 옮김, 척 에카르트 그림 / 다산기획 / 1994년 11월
7,500원 → 6,750원(10%할인) / 마일리지 37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17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0년 01월 13일에 저장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
정승각 글.그림 / 초방책방 / 1994년 3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내일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10년 01월 13일에 저장

까마귀의 소원
하이디 홀더 글.그림, 이명희 옮김 / 마루벌 / 1996년 2월
9,500원 → 8,550원(10%할인) / 마일리지 470원(5% 적립)
2010년 01월 13일에 저장
절판
요린데와 요링겔- 지크 외국그림책 21, 3~8세
그림형제 지음, 베르나데트 와츠 그림 / 보림 / 1996년 9월
7,000원 → 6,300원(10%할인) / 마일리지 350원(5% 적립)
2010년 01월 13일에 저장
절판



14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희망찬샘 2010-05-26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런 책들을 통해 좋은 책 소개 받고 많이 샀더랬어요. 아~ 새삼스럽네요. 책날개! 재미있게 읽은 책입니다.
 

 이번 방학엔 미친듯이 책만 읽고 싶다.  

 책따세 추천도서 주문 들어가기 직전~~~~


32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그림공부, 사람공부- 옛 그림에서 인생의 오랜 해답을 얻다
조정육 지음 / 앨리스 / 2009년 8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17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09년 12월 27일에 저장

그림 같은 신화- 그림에 깃든 신화의 꿈
황경신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3월
17,000원 → 16,150원(5%할인) / 마일리지 510원(3%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17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09년 12월 27일에 저장

조선 최고의 예술 판소리
정출헌 지음 / 미래엔아이세움 / 2009년 1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내일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09년 12월 27일에 저장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다
최세희.전성원.손동수 지음 / 낮은산 / 2009년 4월
9,500원 → 8,550원(10%할인) / 마일리지 47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16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09년 12월 27일에 저장



32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순오기 2009-12-27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따세 발표됐군요.
어여 사이트 들어가서 확인해야겠어요. 고마워요~~
백도씨와 2인조 가족은 갖고 있으니 다른 책들은 일부 구입해야겠죠.^^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2
정유정 지음 / 비룡소 / 200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늘 중학생 아이들과 좌충우돌 지내다 보면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과정은 늘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몸으로 깨닫게 된다. 이 소설에 나오는 15살 준호, 정아, 승주를 보면서 새삼 우리 아이들이 겪게 될 성장의 고통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나 또한 그 당시에는 절실하게 힘들고 혼란스러웠던 중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곤 했다. 그런데도 아이들에게는 흔들리지 말라고 너만 힘든 것이 아니라고 쉽게 말하고 있으니 삶은 이렇듯 잘 잊혀지나 보다. 절대 못 잊을 것 같은 그 기억들도 다 잊혀지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 동안 가정의 말 못할 사연들로 인해 학교 생활에 적응을 잘 못 하던 몇몇 안타까웠던 아이들이 떠오른 건 당연할 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뭔가 가르쳐주고 혼내는 입장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이 먼저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라곤 했다. 그러면서 항상 나만 상처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년 고입 원서 마감을 하루 앞두고 여학생 한 명을 안타깝게 유예시키면서 뭔가가 잘못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 오빠와 함께 셋이서 살아가며 모든 살림을 도맡아서 하던 그 아이는 버거운 삶의 짐을 어쩌지 못하고 집을 나가고 말았다. 몇 번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자리를 잘 잡지 못했다. 학기 초 독서 공책에 책을 읽고 난 느낌을 빼곡히 써 놓기도 하고, 청소 시간에도 모두들 대충 하고 가려고 하는 와중에도 구석구석 쌓여있는 먼지까지 말끔하게 쓸어주어서 항상 어른스러웠던 그 아이. 아이들과의 소소한 감정 싸움으로 힘들어하는 나에게는 그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던 그 아이가 어느 순간 학교에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행방 불명’이 되었다고 했다. 그 아이가 그렇게 힘들어하는 순간 나는 도대체 무엇을 했던 것일까? 집에라도 한 번 찾아가 보았을 것을. 어쩌다 학교에 나왔을 때 같이 떡볶이라도 먹으며 수다라도 왕창 떨어볼 것을. 뒤늦은 후회와 안타까움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아이의 사정은 들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졸업은 해야 하지 않겠냐며 적응을 잘 해 보라고 힘 빠지는 이야기만 했던 나의 모습이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행방 불명’을 듣고 나서도 출석부에 무단 결석 처리밖에 할 수 없는 내 모습이 비참하게 느껴졌고, 기어이 유예 처리를 하고 출석부 그 아이 이름에 빨간 줄을 그을 때는 비통한 느낌까지 들었다. 그 아이가 혹시 잘못 되었다면 도저히 얼굴을 들고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바쁜 생활 속에서도 가끔씩 그 아이 생각을 하곤 했다. 
 

  그 와중에도 한 해가 시작되고 시끄럽고 정신없는 42명의 또 다른 아이들을 만나 그 아이 생각이 거의 잊혀질 무렵 우연히 모교를 찾아온 그 아이의 오빠를 만나게 되었다. 만나자마자 그 아이의 안부를 물어보았다.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며 잘 지내는 것 같다고 했다. 그 아이는 또 다른 공간에서 나름대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 아이 오빠의 손을 잡아주면서 꼭 안부 좀 전해달라고 했다. 내가 얼마나 걱정을 많이 했는지 아냐고 잘 지낸다니 너무 다행이라는 말을 덧붙였을 것이다. 그리고 성장의 아픔으로 인한 그 아이의 상처가 잘 아물기를 간절히 바랬다. 준호와 정아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준 것처럼.

    친구인 규환이의 부탁으로 중요한 사명을 띠고 여행을 시작하게 된 준호. 어린 시절 아련히 떠나버린 아버지를 아직 잊지도 못했는데 엄마는 재혼을 해서 신혼여행을 떠나버렸다. 아버지를 잊을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돌아올 거라는 믿음은 서서히 흐려지기만 한다. 1980년 광주의 어딘가에서 조용히 죽어갔을 지도 모르는 고등학교 선생님이자 시인인 준호의 아버지. 밤에 악몽에 시달려 무서워 아버지의 서재를 찾아가면 아름다운 시를 낭송해주던 따사로운 목소리. 내가 준호였어도 잊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아픔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정신질환자인 아버지로부터 매일 맞고 쫓기는 삶에 지친, 그리고 아버지의 학대를 아무런 저항없이 받아들이는 엄마로부터 버림받고 싶은 정아. 자식들을 위해서 그저 남편으로부터 맞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 정아는 이런 엄마를 떠나고 싶다. 이해하고도 남는다. 속옷 차림으로 미친 개 '루즈벨트'와 아버지로부터 쫓기다가 얼떨결에 여행에 동참하게 된 정아는 얼마나 그 처절한 현실로 다시 돌아가기 싫었을까? 그렇게라도 간절히 떠나고 싶었을 것이다. 

  버림 받은 준호와 버림 받고 싶은 정아는 엉뚱한 여행을 통해 서로의 아픔에 대해서 가슴 깊이 이해하게 된다. 남의 아픔이라고 해서 쉽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중요한 깨달음도 가슴에 새기면서. 준호, 정아, 승주는 그들만의 비밀을 공유하면서 세상을 견디며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 해도 그들의 마음 속에는 아직도 바다 속에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유유히 헤엄치는 ‘고래’가 있기 때문이다. 
 

    작년 우리 반 그 아이는 무엇 때문에 그토록 떠나야만 했을까? 무엇이 그리도 그 아이를 참을 수 없게 했을까? 또 그 아이의 ‘고래’는 무엇이었을까? 지금쯤, 자신의 삶을 지탱해줄 무언가를 찾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렇다면 나의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정신없고 시끄러워도 끝날 시간이 되면 나만 애타게 기다리는, 이제는 너무나 정이 들어버린 우리 반 42명의 아이들이 아닐까 싶다. 그 아이들이 있기에 내 삶이 빛나는 것 아닐까? 며칠 전 출장을 간 사이 청소를 엉망으로 해서 어떻게 혼낼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들고, 가끔은 내 마음을 너무 몰라줄 때도 많으며, 아프다고 조퇴를 하더니 곧장 집을 나가서 40여일 동안 애를 태우다 돌아온 아이도 있었지만 그들은 성장의 고통으로 흔들리고 있는 아직은 감싸줘야 할 영혼들 아닌가? 아직은 어설프기에 더욱 순수한 영혼들. 이들이 흔들릴 때 옆에서 위로가 되어주고 즐거울 때 함께 웃어주며 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들이 정신없고 엉뚱한 여행을 한 것처럼 천진난만하고 시끌벅적한 아이들과 유쾌한 동행을 계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