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두뇌 읽기 - 태아부터 세 살까지 아기가 들려주는 뇌 성장의 비밀
군터 몰 지음, 김시형 옮김 / 교양인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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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 주변에 새로 태어나는 아기들이 생겨나면서 생명의 신비와 귀중함을 새삼 깨닫고 있다. 아기는 사랑의 결정체이다. 아기의 탄생은 가정의 사랑과 행복을 더욱 굳혀준다. 이 귀한 생명체는 그러나 너무 연약하여 우리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주변 사람들이 아기 낳아 키우는 걸 지켜보며 ‘부모 되기의 어려움’을 느낀다. 처음으로 새로운 생명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겪는 난감한 상황들을 잘 대처해 나가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아기를 잘 알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아기 두뇌 읽기』는 아기가 수정된 직후부터 세 살까지의 두뇌 성장 과정을 싣고 있다. 아기의 두뇌가 생성, 발달하는 태아기에서 세 살까지가 결정적 순간이라고 한다. 태교의 중요성, 육아의 중요성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왜 중요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아기 성장 과정에 대해 표면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보다 세부적인 현상들까지 잘 설명해 놓고 있다. 생물학적 설명과 그림을 통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두뇌의 성장 과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실질적인 육아에서 부닥치는 상황들을 소개하고 그에 적절한 대응책까지를 제시하고 있다. 뇌 관련 전문용어들이 생소한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자상한 해설이 달려 있어 읽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아기 두뇌를 읽어주는 일인칭 화자는 아기 자신이다. 아기와 직접적으로 대화를 하고 있는 듯한 편안한 느낌이 참 좋다. 뇌 관련 전문용어들이 빈번하게 등장하여 다소 딱딱해지기 쉬운 글투를 상쇄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촉각의 발달은 내가 지적, 정서적으로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라는 데 아주 중요한 조건이기 때문에, 반드시 어른들이 날 많이 도와줘야 해요. 다양하고 풍부한 감각 경험을 통해 감각이 발달하고 또 그 과정에서 인지 능력이 발달할 수 있거든요. 지금 나는 입에 넣거나 손으로 만져서 느끼는 촉각을 통해서 세상을 경험해요. 그러니까 엄마 아빠, 부디 내가 손으로 만질 만한 장난감들을 되도록 많이 다양하게 갖다 주세요! 그리고 위험하지 않은 거라면 입에 넣어도 일단 가만히 내버려두세요. 지금은 내가 갖고 노는 물건이 뭔지 확인하고 정보를 얻어낼 가장 좋은 수단이 바로 입이거든요. (p.99)



이토록 상세한 생물학적 지식이 굳이 필요할까.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보다 세부적인 생물학적 지식을 통해 우리들은 아기의 감정과 행동을 예측하고 이해하며 그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기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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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 창조와 욕망의 역사
토머스 휴즈 지음, 김정미 옮김 / 플래닛미디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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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 생소한 용어는 아니지만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우선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과학 이론을 실제로 적용하여 자연의 사물을 인간 생활에 유용하도록 가공하는 수단’. 이 책의 서문에서는 테크놀로지에 담긴 다양하고 복잡한 맥락을 얘기하며 그 나름의 정의를 내리고 있다. “인간의 독창성 및 발명 능력과 관련된 창조적 과정”. 테크놀로지는 각종 도구와 기계, 지식으로 세상을 재창조하고 ‘인간이 지은 세계’를 통제하는 것이라는 것.


19세기 미국에 건너온 이주자들은 테크놀로지를 종교적인 맥락 안에서 이해했다. 인간의 창조적 능력, 테크놀로지의 기원을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의 자립에서 찾았던 것이다. 그들에게 거친 황무지를 인공적으로 개척하는 것은 실용적인 목적만이 아니었다. ‘신의 선물’인 ‘테크놀로지’를 통해 ‘신세계’를 ‘낙원’으로 변모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었고, 그들 스스로를 신의 능력을 부여받은 창조자라 여겼다. 테크놀로지를 통한 인공세계의 구축을 ‘제2의 창조’라 부르기도 했다.


인간이 지은human-built 세계. 테크놀로지가 구현된 것이 바로 ‘인공의 세계’이다. 인간은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인공의 건축물들을 세우고, 생산 기계들과, 거대 시스템, 특히 정보를 다루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나아가 테크놀로지는 ‘생활의 안락함’뿐 아니라 사물의 기능을 결정하고 미적 가치를 규정하는 요소가 되었다. 오늘날 테크놀로지는 문화의 동력으로서도 작용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테크놀로지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물질적 풍요와 편리한 생활을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테크놀로지가 야기한 부정적 결과도 무시할 수 없다.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기계 기술은 자연을 지배하고 있으며 도덕과 문화의 중심은 흔들리고 있다. 또한 “자연적 성장을 방해하고 생명을 앗아가며 환경을 지배하고 파괴하는 도구”로서의 테크놀로지에 대한 두려움과 우려가 표면에 떠오르고 있다. “인간은 기계를 사용하여 자연을 약탈하고 강간하는 것을 의기양양해하는 창조적인 맹수”가 아니었나 돌아볼 때이다.


토머스 휴즈는 이 책에서 테크놀로지의 광범위한 역사와 의의, 현재 테크놀로지가 우리 삶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다면적 관점에서 풀어나가고 있다. 제1장에서는 인간의 창조 욕망, 인간적 가치의 표현으로서의 테크놀로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다음 2장에서는 기계로서의 테크놀로지, 3장에서는 정보로서의 테크놀로지, 4장에서는 예술과 문화 전반에 표현된 테크놀로지의 의의를 짚어보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는 테크놀로지의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자연과 인공의 상호작용’으로써 구성되는 ‘생태환경 조성’과 가치관의 변화, 기술적 변화에 대한 실천가적 자세가 절실함을 역설하고 있다.

인간이 창조한 테크놀로지 세계. 테크놀로지가 야기한 모든 결과들에 대해 현명하게 대처해야겠다. 그러려면 우선적으로 테크놀로지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관심이 필요하다. 이 책이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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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관계 대산세계문학총서 68
쇼데를로 드 라클로 지음, 윤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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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프랑스는 합리적인 이성과 도덕이 지배하는 계몽주의 시대였다.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는 18세기 귀족사회의 이면에 숨겨진 사랑의 정념과 기만, 온갖 악덕과 허영에서 비롯한 파멸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위험한 관계』는 메르테유 부인의 복수심에서 시작된다. 옛 연인 제르쿠르와 열다섯 살의 처녀 세실의 혼담을 전해 들은 메르테유 부인은 연인이고 동지이며 경쟁자이기도 한 발몽 자작을 끌어 들여 치밀한 복수의 계획을 세운다. 세실은 수녀원 기숙학교를 다녔던 순진한 처녀다. 제르쿠르는 수녀원 기숙학교 교육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와 편견(메르테유 부인의 표현이다) 사로잡혀 있다. 메르테유 부인은 발몽 자작과 당스니 기사를 이용해 세실에게 사랑의 환상을 제공하고 성적 쾌락의 길을 열어주려고 한 것. 한편 발몽 자작은 파리를 떠나 있는 동안에 투르벨 부인을 알게 되고, 부인의 정절과 신앙심이 매우 높은 것을 알고 정복욕이 발동한다.

독자는 백일흔다섯 편의 편지를 통해 이들의 ‘위험한 관계’에 빠져든다. 메르테유 부인과 발몽 자작, 발몽 자작과 투르벨 부인, 세실과 당스니의 편지가 중심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연애사건 배후에 있는 주변 인물들의 편지를 통해 당시 사교계의 생활상과 도덕관념을 엿보는 것도 흥미롭다. 서간체 형식은 인물들의 복잡 미묘한 심리를 잘 투영하고 있으며, 독자는 가장 개인적인 인간 감정의 굴곡을 직접적으로 대면하게 된다.


단 한 번 위험한 관계를 맺은 것이 이렇게 큰 불행을 초래하는 걸까요? 그 누가 전율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했더라면 아무리 엄청난 불행이라도 모두 피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이런 생각은 언제나 일이 터진 후에 오는 법이죠. 그래서 가장 중요한 진리, 가장 널리 알려진 진리이면서도 결국 우리의 무분별한 풍속의 소용돌이 속에 묻혀버리고 아무 소용이 없게 되나 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우리의 이성은 불행을 경고해줄 능력이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불행을 위로해주지도 못한다는 걸 절실히 느낍니다.


사랑의 환상을 이용하여 인간 감정을 조종하고 거기에서 정복욕을 만족시키는 메르테유 부인과 발몽 자작의 모습을 단순한 악덕으로 치부하기엔 무언가 부족하다. 순수한 사랑을 부인하는 그들, 일찍이 사랑의 환멸을 맛본 두 사람에게 연애 감정이란 치명적일 만큼 위험한 것이 아니었을까. 피하고 싶은 두려운 것이 아니었을까. 모든 관계를 파멸로 이끈 그들은 표면적인 가해자일 뿐, 결국 사랑의 피해자라는 생각. 투르벨 부인을 향한 마음이 참된 사랑의 감정이라는 것을 깨닫고도 허영심 때문에 관계를 파멸로 몰아간 발몽 자작을 지켜보면서 인간 허영의 끝은 어디인가, 혀를 내두르게 된다.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는 남녀간의 사랑을 유발하고 지탱하는 환상의 허망함과 그에 따르는 환멸의 지옥을 경고하는 동시에 관계를 파멸로 이끄는 것은 인간의 나약함이라는 것, 나약한 인간의 사랑은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적 나약함을 극복할 때 비로소 사랑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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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병 - 나를 달뜨게 했던 그날의, 티베트 여행 에세이
박동식 글.사진 / 북하우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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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싸에 가보셨나요? 세상에 남은 마지막 낙원이래요.”


실체보다 존재감에서 위안을 받을 때가 있다. 티베트는 나에게 그런 장소다. 실제로 한 번도 가 본 적 없지만, 거기 티베트란 나라가 존재한다는 것으로 위안이 된다. 그렇다. 나에게 티베트는 실제적인 장소가 아니라 관념적인 장소다. 짙푸른 하늘색과 승려들의 붉은 법의, 바람에 나부끼는 오색의 룽다. 티베트는 나에게 ‘평화의 땅’이다.


실제적인 티베트는 평화롭지만은 않다. 중국의 침략으로 1951년 중국 자치구로 통합된 이래 끊임없는 투쟁을 하고 있다. 티베트 독립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강경한 대응 때문에 자국 내에서는 독립 운동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며, 수많은 유화정책으로 인해 독립에 대한 갈망도 약해졌지만, 티베트인들의 고요한 삶 이면에는 자유와 평화를 향한 몸부림이 숨어 있다. 마니차를 돌리며 ‘옴 마니 팟메 훔'을 읊는 사람들, 긴 순롓길에서 마주치는 오체투지 하는 사람들. 고요한 투쟁의 삶.


“가진 것 하나 없이 어쩌면 몇 년간 오체투지만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노파의 눈에 노래반주 기계는 신기한 요물단지처럼 보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요상한 그 물건이 얼마나 신기했기에, 늙은 몸이 부서지도록 땅바닥에 엎드려 신을 경배하던 열망은 어쩌고, 넋 놓고 가게 안을 바라보다니, 당신도 사람이구나 싶었다. 노파를 붙들고 당신도 사람이지요? 당신도 나약한 사람 맞지요? 신을 가진 당신도 사람 맞지요? 그렇게 소리쳐 묻고 싶었다. ”



세상에 낙원은 없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비슷비슷하다. 순례자들이 피워놓은 자욱한 향불 연기,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마니차 소리와 호객하는 장사꾼들의 외침. 이런 것들이 뒤엉켜 있는 곳이 티베트이다. 성스러운 도시 라싸에도 가난은 존재하며, 가난을 의식하는 사람들이 신산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언젠가 티베트 땅을 밟아보고 싶다. 그 땅은 내 마음속에 있는 티베트와 꼭 일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마음속 ‘평화의 땅’을 지키고 싶다. 그것이야말로 나를 실제적인 티베트로 이끌어줄 것이므로.

글과 사진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길 원한다는 박동식 씨. 그의 시선은 인간적이다. 그와 함께 여행하는 티베트는 신성한 땅도 아니고 낙원도 아니다. 사람 살아가는 곳이다. 섬세한 감성과 사색이 녹아 있는 문장과 사진에서 그의 열병의 흔적을 볼 수 있다. 구체적인 여행 정보를 원하는 사람들에겐 조금 아쉬울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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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 몸, 마음, 영혼을 위한 안내서
아잔 브라흐마 지음, 류시화 옮김 / 이레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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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의 저자 아잔 브라흐마는 태국의 영적 스승 아잔 차의 제자이다. 영국에서 이론물리학을 전공한 그는 우연히 읽은 불교서적을 통해 자기 안의 불심佛心을 깨닫고 수행승의 길을 걷게 된다. 쉽고 재미있는 법문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감화시키는 명상 스승으로 존경 받고 있다.


불교에서는 108개의 염주알을 돌리면서 108가지 번뇌를 다스린다. 힌두교와 불교에서 완전한 숫자로 여기는 3의 배수, 그것을 3으로 나눈 숫자 역시 3의 배수가 되는 108. 힌두교와 불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숫자다. 이 책에는 108가지 일화들이 담겨 있다.


이야기는 ‘벽돌 두 장’에서 출발한다. 브라흐마가 처음으로 절을 지었을 때의 일화이다. 차근차근 벽돌을 쌓아올려 마침내 벽이 완성되었을 때, 어긋나게 놓여진 벽돌 두 장을 발견했다. 이미 시멘트는 말라가고 있었기 때문에 벽돌을 다시 쌓을 수도 없었다. 브라흐마는 잘못 놓여진 벽돌 두 장이 너무 거슬려서 벽을 허물어뜨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사람들에게 절을 안내할 때에도 그 두 장의 벽돌이 놓여진 벽은 보이지 않도록 애를 썼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벽을 보게 된 방문객이 그 벽의 아름다움을 칭찬한다. “물론 내 눈에는 잘못 놓여진 두 장의 벽돌이 보입니다. 하지만 더없이 훌륭하게 쌓아올려진 998개의 벽돌들도 보입니다.” 우리는 자주 이 벽돌 두 장 때문에 분노하고 슬퍼한다. 누구에게나 잘못 놓여진 벽돌 두 장이 있다. 하지만 잘 쌓아올려진 벽돌들이 훨씬 많다. 어긋난 벽돌 두 장에 사로잡힌 ‘마음’에서 ‘술 취한 코끼리’ - 분노, 질투, 증오, 두려움, 절망, 슬픔 등 부정적 감정 - 는 탄생한다.


일곱 살짜리 아이들을 앞에 두고 교사가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이 무엇이지?” “우리 아빠요.” “코끼리요.” 아이다운 대답이 이어지는 중 한 아이가 말한다. “내 눈이 가장 커요. 내 눈은 저 애의 아빠도 볼 수 있고, 코끼리도 볼 수 있어요. 산도 볼 수 있고, 다른 많은 것들도 볼 수 있어요. 이 모든 것들이 내 눈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 내 눈이 세상에서 가장 큰 것임에 틀림없어요.” 아이가 말한 눈은 우리의 마음에도 있다. 마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이다. 우주 전체를 담고 있는 것이 마음. 이 책에서 ‘코끼리’는 ‘마음’의 비유이다.

단맛 나는 칠리를 먹을 수 있을까 하는 희망으로 매운 칠리를 먹어대는 남자가 있다. 보다 못한 누군가 그에게 물었다. “그 많은 칠리를 먹어도 단맛이 나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왜 계속해서 먹고 있는 거요?” 고통에 익숙해진 목소리로 남자가 대답한다. “지금까지 힘들게 참으며 먹어왔는데, 이제와서 포기할 수 없지 않소. 포기한다면 여기에 바친 내 시간들이 얼마나 아깝고 무의미하겠소. 이제 이것은 희망의 문제가 아니라 내 존재의 문제가 되었소.” 어리석은 욕망에 사로잡혀 고통을 연장하는 남자의 이야기는 우리 삶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불교에서는 욕망을 모든 고통의 씨앗으로 본다.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욕망에 ‘휘둘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고통스럽지만 욕망하는 것을 멈출 수도 없다. 매운 칠리를 먹어대는 남자처럼 이제 그것은 희망의 문제를 떠나 우리 존재의 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욕망으로 점철된 삶에서 우리는 자주 술 취한 코끼리와 마주친다. 두려움, 절망, 분노, 슬픔, 미움의 감정들.

붓다를 시기한 적들이 어느 날 그가 지나는 좁은 길에 술 취한 코끼리를 몰아넣었다. 술에 취해 광포해진 거대한 코끼리를 가만히 다독이며 붓다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네가 나에게 무슨 짓을 하든 내 마음의 문은 언제나 너를 향해 열려 있다.” 그러자 코끼리는 이내 온순해졌다. 술 취한 코끼리를 길들이는 방법은 단순하다. 그것에 맞서 저항하거나 통제하려 하지 말 것. 가만히 지켜보며 그것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면 된다.


생전에 가까이 지냈던 두 명의 수행자가 있었다. 죽은 후에 그들은 각기 아름다운 천상계와 한 무더기 똥 속에서 환생했다. 천상계에 환생한 수행자는 자신의 친구를 찾았다. 악취 나는 소똥더미에서 친구를 발견한 그는 천상계로 함께 가자고 말하지만, 벌레가 된 친구는 사랑하는 소똥더미에 파묻혀 있기를 원했다. ‘사랑하는 소똥더미’에 남겨진 벌레의 안타까운 이야기에서 이 책은 끝을 맺는다.

마음은 우리를 아름다운 천상계로 이끌기도 하고 소똥더미에 파묻히게도 한다. 어긋난 벽돌 두 장만을 볼 것인가, 나머지 998개의 훌륭한 벽돌들을 볼 것인가. 술 취한 코끼리에 휘둘릴 것인가, 그것을 길들일 것인가. 세상에서 읽을 가치가 있는 단 한 권의 책은 ‘마음’이라는 아잔 차의 말씀을 바탕으로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한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나가고 있는 책,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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