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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쟁이 유씨
박지은 지음 / 풀그림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자살 기도 이틀 만에 깨어난 ‘나’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잡지사의 기자다. 일명‘주기자’로 불린다. 죽음의 문턱에 놓여 있는‘나’를 깨운 것은 타고난 건강한 체력과 편집장의 끈질긴 전화벨 소리. 얼마 전 취재 요청을 했다가 단번에 거절당했던 염쟁이 유씨와의 인터뷰 약속이 잡혔다는 소식.“근데 몇 번이고 거절하시다가 왜 갑자기 마음을 바꾸셨어요?”“실은 오늘 하는 염이 내 마지막 염이거든.”이렇게 해서 ‘주기자’와 염쟁이 유씨와의 의미심장한 만남은 시작된다. 염쟁이 유씨는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지켜봤던 수많은 죽음의 사연들을 하나씩 꺼내놓는데...
소설은 액자식 구성으로 되어 있다. 외부 액자는‘나’와 염쟁이 유씨와의 대화(현재)로, 내부 액자는 염쟁이 유씨가 들려주는 죽은 자의 사연(과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제에 따라 스물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는 염쟁이 유씨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심리적 동요를 일으키는‘나’의 내면의 성찰 과정이 순환하고 있다.
외화(현재)/ 그렇다면 죽음의 뒷모습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가슴 아픈 순간은 언제일까? 유씨에게 물었다.“글쎄... 그 사람의 죽음을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때지.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장례를 봤지만, 죽는 모습이 다 다르듯 장례식장 분위기도 다 다르거든. 근데 자고로 잔칫집이든 상갓집이든 사람이 북적북적 해야지. 특히나 상갓집에 파리만 날리고 있으면 참 복 없어 보여. 그럴 때 가장 안타깝지 (...) 작년 말쯤엔가... 어디서 떨어졌는지 심하게 몸이 깨지고 망가진 시신을 염하게 됐지 (...)”/ 내화(과거)/“어린 나이에 참 힘든 일을 당했구나. 혼자서 빈소를 지키느라 힘들 텐데... 연락할 만한 가족이 아무도 없냐? 직장은? 아버지 하시던 일이...?” (...)“저희 아버진 배우예요.”/ 다시- 외화(현재)/“배우라면 TV에서 한번쯤 봤을 법한데 염을 할 때도 봤지만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지. 그래서 아버지가 어디에 출연했었느냐고 물었더니 출연작품들을 줄줄줄 대는데 유명한 작품들이 꽤 많은 거야 (...)” “아... 스턴트맨 같은 대역배우셨군요. 근데 그 분은 왜 죽게 된 거예요?”(...) 그 분도 분명 남다른 사명감을 가지고 배우의 길을 가셨을 텐데, 대역이란 이유로 살아서도 얼굴 한번 내비치지 못하고, 죽어서까지 그 이름이 무시당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서 간담이 서늘해지는 무시무시함이나 비현실의 요소가 섞여 있는 것은 아니다. 혹여 그런 이야기를 기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비디오 대여점에 가서 여고괴담이나 주온 시리즈를 빌려보라.『염쟁이 유씨』는 죽음을 소재로 하고는 있으나 결국 삶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죽음은 삶과의 대립 개념이 아니라 삶을 이루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우리는 물론 죽음이 삶의 한 과정에 놓여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삶과 분리해 놓고 생각하거나 죽음 자체를 외면해 버리는 것은 죽음에 관한 본능적 공포에서 기인한 것일 터이다.『염쟁이 유씨』에는 이러한 죽음의 공포를 잊어버릴 만큼 재미있고 포근하고 조금은 슬픈 삶의 목소리들이 능청스럽게 펼쳐지고 있다.
“얼굴 한 번 안 보고 시집을 왔는데, 알고 보니 제 남편은 바람둥이에 호색한이었어요(...) 젊은 시절을 남편도 없이 홀시어머니 공양하랴 자식 키우랴... 저 혼자 뼈 빠지게 번 돈으로 간신히 먹고 살았죠 (...) 그렇게 집안 살림을 홀로 꾸려간 지 한 10년 쯤 됐을까, 오랜만에 남편이 집에 돌아왔는데 그래도 서방이라고 한순간에 반가운 맘이 들어 빨래하다 말고 달려 나갔죠. 그런데 남편 뒤로 한 젊은 여자가 빼꼼이 고개를 내미는 거예요.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말도 안 나와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죠.”“아 그걸 그냥 뒀어요? 몽둥이로 냅다 두 년놈을 후려치지 못하고...”“그런데 더 기가 막힌 건 남편은 며칠 후에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그 젊은 첩은 우리집에 그냥 눌러앉아버린 거예요(...) 그렇게 몇 년을 같이 살았죠. 미운 정 고운 정 들어가며 부부처럼 서로 의지하면서... 그 여자와 나 사이에 남편이 없어지니까 저도 그 여자를 대하는 마음이 좀 달라지대요. 생각해보면 그깟 남편 살아서도 없는 거나 매한가지였는데 왜 곁에 있는 사람한테 내가 모질게 대했나 싶기도 하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죽기 전에 엉킨 실타래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대요. 제가 생전 처음으로 자네가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큰맘을 먹고 있는데, 그 순간 그 여자가 먼저 꺼낸다는 말이 참...‘형님, 진심으루다 나는 여기 형님 곁에서 더 살고 싶은데... 지가 얼마 못산대유.’그러는 거예요.”
죽는다는 건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인연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염쟁이 유씨의 말에서 나는 죽음의 불멸성을 생각하였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도 있듯, 모든 생명체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다. 아무리 보잘것없어 뵈는 생명이라도 그 삶에는 그만의 깊은 의미가 숨어 있으며, 그렇기에 죽음에서 또한 의미를 남기는 것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한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죽은 자는 그 영원한 침묵으로 살아남은 우리들에게 수없이 많은 말을 지금 이 순간에도 하고 있다고.
“사랑을 남기고 간 죽음은 아름답다고 해야 하나 숭고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고 나면 남아 있는 사람들 가슴에 안겨주는 게 뭔 줄 알어?”“글쎄요. 아무래도 사람이 죽으면 남은 사람들에겐 슬픔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게 아닐까요?” “물론 당장은 슬프지. 그치만 슬픔은 본능이거든. 가슴속에 그리 오래 남아 있지는 않어. 왜냐하면 인간은 행복해지려는 본능도 함께 가지고 있거든. 그래서 이 가슴속에서 슬픈 일들은 빨리 잊어버리려는 노력을 스스로 하는 거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어도 시간이 지나면 눈물이 마르게 돼 있는겨.”“그럼 남아 있는 사람의 가슴속에 가장 오래 남는 게 뭔데요?”“슬픔보다 더 진하고 오래가는 게 바로 후회여. 인간이 동물보다 조금 나은 점이 있다면 반성할 줄을 안다는 거 아니겄어? 자기 잘못을 깨닫고 돌이키고 다신 안 그러겠다고 다짐하는 건 인간밖엔 할 줄 몰러. 물론 그러다가도 다시 잘못하고 또 후회하고 그러는 게 인간이지만 말이여.”
우리가 죽음과도 같은 고요 속에 있을 때에나 삶의 가혹함으로 하여 깊은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우리는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잘못과 어리석음을 깨우친다. 후회를 한다.“나는 절대로 후회 같은 건 안한다”고 어떤 사람들은 자신한다.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한낱 인간에 불과한 우리는 살아가면서 후회를 안 하고 살 수 없다. 어언 60년 가까이 염을 해오면서 후회와 미련에 눈물 짓는 수많은 사람들을 지켜봤던 염쟁이 유씨마저도 아들의 죽음 앞에서 회한의 눈물을 흘리지 않는가. 후회의 귀중함을 모르는 사람들은 말한다.“이제와 후회해서 뭐하냐”고. 물론 앞으로 후회하지 않기 위해 현재를 신중하고 지혜롭게 사는 것이 우선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후회한다고 해서 시간을 돌이켜 그 순간을 변화시킬 만한 능력이 인간에게 있다고 믿는 사람도 없다. 그렇지만 앞서 얘기한 것처럼 우리는 인간이기에 최선을 다했던 순간에 대해서까지도 후회를 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후회는 어리석음에서라기보다는 겸허한 마음자세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 지난날의 어리석음과 미숙함, 나쁜 마음과 과오를 뉘우치고 보다 나은 존재로 거듭나려는 바람. 우리는 후회를 통하여 새로이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염쟁이 유씨』는 다양한 죽음 혹은 삶의 이야기를 통하여 인간의 불완전성과 삶의 유한성에서 빚어지는 슬픔을 보여주는 동시에 불완전함과 유한한 삶의 조건일지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생은 귀중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그 귀중한 생에서 조금이나마 회한을 덜어낼 수 있으려면 매순간 깨어 있으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방향을 가늠해 보아야 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길을 잃고 있던‘주기자(나)’를 깨웠던 전화벨처럼, 죽음과도 같은 시간에서 깨어나 새로운 삶으로 건너오라고 손짓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