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관계 대산세계문학총서 68
쇼데를로 드 라클로 지음, 윤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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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프랑스는 합리적인 이성과 도덕이 지배하는 계몽주의 시대였다.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는 18세기 귀족사회의 이면에 숨겨진 사랑의 정념과 기만, 온갖 악덕과 허영에서 비롯한 파멸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위험한 관계』는 메르테유 부인의 복수심에서 시작된다. 옛 연인 제르쿠르와 열다섯 살의 처녀 세실의 혼담을 전해 들은 메르테유 부인은 연인이고 동지이며 경쟁자이기도 한 발몽 자작을 끌어 들여 치밀한 복수의 계획을 세운다. 세실은 수녀원 기숙학교를 다녔던 순진한 처녀다. 제르쿠르는 수녀원 기숙학교 교육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와 편견(메르테유 부인의 표현이다) 사로잡혀 있다. 메르테유 부인은 발몽 자작과 당스니 기사를 이용해 세실에게 사랑의 환상을 제공하고 성적 쾌락의 길을 열어주려고 한 것. 한편 발몽 자작은 파리를 떠나 있는 동안에 투르벨 부인을 알게 되고, 부인의 정절과 신앙심이 매우 높은 것을 알고 정복욕이 발동한다.

독자는 백일흔다섯 편의 편지를 통해 이들의 ‘위험한 관계’에 빠져든다. 메르테유 부인과 발몽 자작, 발몽 자작과 투르벨 부인, 세실과 당스니의 편지가 중심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연애사건 배후에 있는 주변 인물들의 편지를 통해 당시 사교계의 생활상과 도덕관념을 엿보는 것도 흥미롭다. 서간체 형식은 인물들의 복잡 미묘한 심리를 잘 투영하고 있으며, 독자는 가장 개인적인 인간 감정의 굴곡을 직접적으로 대면하게 된다.


단 한 번 위험한 관계를 맺은 것이 이렇게 큰 불행을 초래하는 걸까요? 그 누가 전율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했더라면 아무리 엄청난 불행이라도 모두 피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이런 생각은 언제나 일이 터진 후에 오는 법이죠. 그래서 가장 중요한 진리, 가장 널리 알려진 진리이면서도 결국 우리의 무분별한 풍속의 소용돌이 속에 묻혀버리고 아무 소용이 없게 되나 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우리의 이성은 불행을 경고해줄 능력이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불행을 위로해주지도 못한다는 걸 절실히 느낍니다.


사랑의 환상을 이용하여 인간 감정을 조종하고 거기에서 정복욕을 만족시키는 메르테유 부인과 발몽 자작의 모습을 단순한 악덕으로 치부하기엔 무언가 부족하다. 순수한 사랑을 부인하는 그들, 일찍이 사랑의 환멸을 맛본 두 사람에게 연애 감정이란 치명적일 만큼 위험한 것이 아니었을까. 피하고 싶은 두려운 것이 아니었을까. 모든 관계를 파멸로 이끈 그들은 표면적인 가해자일 뿐, 결국 사랑의 피해자라는 생각. 투르벨 부인을 향한 마음이 참된 사랑의 감정이라는 것을 깨닫고도 허영심 때문에 관계를 파멸로 몰아간 발몽 자작을 지켜보면서 인간 허영의 끝은 어디인가, 혀를 내두르게 된다.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는 남녀간의 사랑을 유발하고 지탱하는 환상의 허망함과 그에 따르는 환멸의 지옥을 경고하는 동시에 관계를 파멸로 이끄는 것은 인간의 나약함이라는 것, 나약한 인간의 사랑은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적 나약함을 극복할 때 비로소 사랑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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