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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병 - 나를 달뜨게 했던 그날의, 티베트 여행 에세이
박동식 글.사진 / 북하우스 / 2007년 11월
평점 :
“라싸에 가보셨나요? 세상에 남은 마지막 낙원이래요.”
실체보다 존재감에서 위안을 받을 때가 있다. 티베트는 나에게 그런 장소다. 실제로 한 번도 가 본 적 없지만, 거기 티베트란 나라가 존재한다는 것으로 위안이 된다. 그렇다. 나에게 티베트는 실제적인 장소가 아니라 관념적인 장소다. 짙푸른 하늘색과 승려들의 붉은 법의, 바람에 나부끼는 오색의 룽다. 티베트는 나에게 ‘평화의 땅’이다.
실제적인 티베트는 평화롭지만은 않다. 중국의 침략으로 1951년 중국 자치구로 통합된 이래 끊임없는 투쟁을 하고 있다. 티베트 독립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강경한 대응 때문에 자국 내에서는 독립 운동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며, 수많은 유화정책으로 인해 독립에 대한 갈망도 약해졌지만, 티베트인들의 고요한 삶 이면에는 자유와 평화를 향한 몸부림이 숨어 있다. 마니차를 돌리며 ‘옴 마니 팟메 훔'을 읊는 사람들, 긴 순롓길에서 마주치는 오체투지 하는 사람들. 고요한 투쟁의 삶.
“가진 것 하나 없이 어쩌면 몇 년간 오체투지만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노파의 눈에 노래반주 기계는 신기한 요물단지처럼 보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요상한 그 물건이 얼마나 신기했기에, 늙은 몸이 부서지도록 땅바닥에 엎드려 신을 경배하던 열망은 어쩌고, 넋 놓고 가게 안을 바라보다니, 당신도 사람이구나 싶었다. 노파를 붙들고 당신도 사람이지요? 당신도 나약한 사람 맞지요? 신을 가진 당신도 사람 맞지요? 그렇게 소리쳐 묻고 싶었다. ”
세상에 낙원은 없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비슷비슷하다. 순례자들이 피워놓은 자욱한 향불 연기,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마니차 소리와 호객하는 장사꾼들의 외침. 이런 것들이 뒤엉켜 있는 곳이 티베트이다. 성스러운 도시 라싸에도 가난은 존재하며, 가난을 의식하는 사람들이 신산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언젠가 티베트 땅을 밟아보고 싶다. 그 땅은 내 마음속에 있는 티베트와 꼭 일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마음속 ‘평화의 땅’을 지키고 싶다. 그것이야말로 나를 실제적인 티베트로 이끌어줄 것이므로.
글과 사진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길 원한다는 박동식 씨. 그의 시선은 인간적이다. 그와 함께 여행하는 티베트는 신성한 땅도 아니고 낙원도 아니다. 사람 살아가는 곳이다. 섬세한 감성과 사색이 녹아 있는 문장과 사진에서 그의 열병의 흔적을 볼 수 있다. 구체적인 여행 정보를 원하는 사람들에겐 조금 아쉬울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