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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 1
모옌 지음, 박명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나를 나가게 해줘! 나가게 해달란 말이야! 나를 나가지도 못하게 한다면 당신이 무슨 어머니란 말이야?” 사내 아기는 발버둥치던 동작을 멈추고서 물었다. “바깥세상은 어떤지 엄마가 들려줘.”
1970년 후반에서 1980년 후반까지 중국 대륙에는 개혁, 개방의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새로운 가치관의 도입, 신구세대의 대립, 관료 사회의 부패로 인해 중국은 커다란 진통을 겪고 있었다. 『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는 바로 그 혼돈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티엔탕’은 ‘천국(天國)’이라는 뜻을 가진 중국 지명이다. 티엔탕, 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러나 고단하고 궁핍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이 겨우 끼니를 이어가도록 해주는 것은 ‘마늘농사’다. 소, 당나귀와 더불어 땅을 파 먹고 사는 농민들의 유일한 희망이 바로 ‘마늘’이다. 그러나 일괄 수매를 약속했던 현 정부에서는 저장 창고가 찼다는 이유로 수매를 거부하고, 농민들의 발길 닿는 곳마다 세금을 부과했다. 그리하여 관료들의 배때기는 기름진 살이 오르는 반면, 농민들은 몸 곳곳을 기어다니는 이를 잡아먹을 지경에 이르는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화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에 분노한 티엔탕 마을 농민들의 봉기가 일어나는데, 이것이 바로 ‘마늘종 사건’이다.
좀 체념도 해봐. 사람 산다는 게 결코 쉽지가 않아. 나도 때때로 생각하지만 인간이 개하고 비교해서 어디가 나아?
감방에 갇힌 넷째 숙모의 말처럼, 사람 산다는 게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때때로 ‘개만도 못한’ 인생들을 마주친다. 혹은 스스로의 모습에서 ‘개만도 못한 인생’의 한 단면을 발견하기도 한다. ‘개만도 못한 인생’은 두 부류로 나뉠 수 있다. ‘개만도 못한 인간들의 악독한 인생’과 ‘개만도 못한 인간들이 형성한 악조건, 곧 지옥에서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낑낑거리는 인생’이 그것이다. 『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는 바로 그 ‘개같은 인생들’의 대립 양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부인, 선생님, 이 사람은 가련하고 불쌍하게도 곤궁에 빠졌으니 런민비를 조금만 주십시오!
“너 그럼 개 소리를 흉내낼 테야? 한 번 흉내낼 때마다 너에게 일 위안을 주겠어!”
“원하신다면 하지요. 큰 개 소리를 원하세요, 아니면 작은 개 소리를 원하세요?”
사내는 기침을 한 번 했다. 목소리를 깨끗하게 가다듬고 개 소리를 내기 시작했는데 그의 모방은 아주 처절했다. “왕왕 - 왕왕왕 - 왕왕왕왕왕왕왕왕왕왕, 왕, 왕, 왕왕, 왕왕왕왕왕왕왕왕! 이건 작은 개 소리이며 모두 합쳐서 스물여섯 번 짖었습니다. 왕! 왕! 왕왕! 왕왕왕! 왕왕왕왕왕왕왕왕왕왕왕! 왕왕왕! 왕왕! 왕! 이건 큰 개 소리인데, 모두 합쳐서 스물네 번 짖었습니다. 큰 개 소리에다 작은 개 소리를 더하면 모두 합쳐 오십 번 울었사오니 한 번에 일 위안이니까 전부 합치면 오십 위안입니다.”
관료들의 세금 강탈, 삼환친(* 三瑍親: 세 가정이 서로 혼인을 약조하고 상대방 규수를 맞바꾸는 식으로 맞아들이는 혼인제도) 등 바람직하지 못한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울고 웃고 분노하고 달아난다. 그들에게 티엔탕 마을은 더 이상 천국이 아니고 탐욕으로 물든 지옥이 되어간다. 그리고 이 지옥을 더욱 지옥스럽게(치욕스럽게) 만드는 사람들은 늘어만 간다. 참으로 개 같다.
“울지마, 귀여운 내 아내. 젊었을 때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은 사람이 있겠어? 난 지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단지 마늘종을 팔아 돈을 많이 벌면 네 부모님에게 갖다주고 너를 데리고 와서 편안하게 살고 싶어. 간부가 되면 뭐 하는데? 간부가 되려면 양심을 팔아야 해. 양심을 팔지 않으면 간부가 될 수 없어.”
티엔탕 현 정부의 굳게 잠긴 문을 쳐부수면서 까오마는 외친다. “탐관오리를 타도하자! 관료주의를 타도하자!”. 이 외침이야말로 ‘천국에 대한 동경이며 희망’인 것이다. 그렇다면 ‘천국’은 대체 무엇인가?
천국 天國
[명사]
1 하느님이나 신불(神佛)이 있다는 이상(理想) 세계.
2 어떤 제약도 받지 아니하는 자유롭고 편안한 곳. 또는 그런 상황.
3 <기독교>이 세상에서 예수를 믿은 사람이 죽은 후에 갈 수 있다는, 영혼이 축복받는 나라. 하나님이 지배하는 나라라고 본다. ≒천당·하늘나라.
우선, ‘어떤 제약도 받지 아니하는 자유롭고 편안한 곳. 또는 그런 상황’으로서의 천국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민중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국가, 천국일 것이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 반드시 민주주의 국가에만 해당하는 이치는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어떤 국가정책이든 결국은 국민들이 잘 먹고 잘 살자는 취지가 아닌가. 그런데 ‘관료들의 천국’이 곧 ‘국민들의 천국’이 되지 못하는 현실은 우리를 분노하게 하고 좌절하게 만든다. ‘우리들의 천국’이 아니라 ‘그들만의 천국’ 앞에서 우리들이 불러야 할 노래는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 본다.
다음으로는 ‘하늘나라, 이상理想세계’로서의 천국을 생각해 보자.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늘나라를 꿈꾼다는 것은 곧 이 땅의 현실이 고단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없는 것을 꿈꾸는 자들의 절망과 희망. 그 사이에 『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가 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팡씨 일가의 쇠락 과정이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개혁의 물결에 요동하는 중국의 현실이 고스란히 엿보인다.
팡씨 부부에게는 탐욕스러운 두 아들과 딸 진쥐가 있다. 부모의 말을 거스르지 않고 순종적인 큰아들이 구시대에 속한다면 그에 대립하는 작은아들은 신시대의 가치관을 상징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딸 진쥐는 그 모든 것을 아우르고 감싸 안은 중국 대륙 그것이다.
“아들아, 이 엄마도 처음에는 너처럼 태어나서 세상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 세상이라는 것은 돼지고기나 개고기 같은 변변찮은 음식을 먹고 소나 말처럼 고된 일을 하며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며 견뎌야 한단다. 너의 외할아버지는 나를 집의 대들보에다 매달아놓고 소고삐로 후려갈겨댔단다. 아들아, 그런데도 세상에 나오고 싶은 거야?”
(...)
“엄마, 나는 그래도 나가서 세상을 보고 싶어. 한 개의 둥근 공 모양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
“아들아, 그건 태양이란다.”
“나는 태양을 보고 싶어!”
자궁 밖으로 나오기 위해 발버둥치는 태아와 진쥐의 대화를 통하여 모옌은 중국의 절망적인 현실을 한탄하면서도 ‘천국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태양을 보고 싶어했던 사람들’은 자궁 속과 같은 어둡고 갑갑한 현실 속에서 피를 뿌리며 죽어갔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것은 까오양. 사람들에 떠밀려 현 정부에 들어간 그가 화분을 던져 유리창을 깨뜨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모습을 통해, 관료주의는 반대하되 무정부주의로 관료주의에 대항해서는 안 된다는 모옌의 중립적 주제의식을 읽을 수 있다.
소설가는 항상 정치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자 하지만 소설 그 자체는 정치와 근접해 있다. 소설가는 항상 인간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고자 하지만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비극이다.
모옌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작품을 처음으로 만났다. 왜 이제야 만났을까. ‘소설가는 항상 인간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고자 하지만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모옌이 말하는 ‘소설가의 비극’. 그것은 바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운명’이 곧 ‘소설가 자신의 운명’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소설가 모옌이 언제까지나 비극 속에 머무르기를, ‘예술의 노정에서 각종 달콤한 유혹을 신중하게 받아들이면서 허다한 살기(殺機)를 몰래 감추고 이단의 길을 탐험’하기를 바란다.
중국 작가 모옌. 그가 보내준 『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는 지금 우리 땅의 현실과도 잇닿아 있다.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한 올해의 마지막 날, 나는 ‘우리들의 천국(어떤 제약도 받지 아니하는 자유롭고 편안한 곳. 또는 그런 상황.)’을 꿈꾼다. ‘천국(하늘나라)’을 꿈꾸지 않아도 되는 이 땅의 현실이 절실하다. 태양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