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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기 - 2004 공쿠르 단편문학상 수상작
올리비에 아당 지음, 함유선 옮김 / 샘터사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겨울은 유폐幽閉의 계절이다. 소리 없이 내리는 눈들은 세상을 뒤덮고, 출렁이던 강물의 흐름도 멎는다. 그렇다고 그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존재형태는 다른 계절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눈에 가려지고 얼음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은폐와 망각의 시간. 유폐의 시간이다. 이러한 존재형태는 죽음과 맞닿아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꿈틀거리며 살아있는 것들 -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엇인가 흐느끼고 흔들리고 흩어지고 균열하고 부패한다. 형체도 없고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
『겨울나기』는 겨울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겨울을 ‘살고 있다’는 말은 겨울을 ‘지나고 있다’는 것과 같다. 삶은 ‘흐름’이기 때문이다. 이 삶의 진실은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안겨준다. 모든 것은 변화하며 흘러가리라는. 낮과 밤, 삶과 죽음, 이별과 만남, 상처와 치유. 『겨울나기』는 총 아홉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각기 개별적인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지만, 연작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계절적 배경(겨울)과 시간적 배경(밤), 기후적 배경(폭풍, 눈, 비)의 일치 때문만은 아니다. 삶의 가장자리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주인공들도 닮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상실’이다. 외적 상실과 내적 상실. 직장을 잃거나, 연인을 잃거나, 부모를 잃거나, 아이를 잃거나, 개를 잃거나. 감정의 동결, 소통의 단절. 침묵. 이들은 ‘내면의 공허’를 토로한다.
“속이 텅 빈 것 같아요. 항상 그 생각만 해요. 내면의 공허. 만일 나의 내면을 탐사할 수 있다면, 머리와 가슴을 열고 그 안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거기엔 아무것도 없을 거예요. 아무것도. 바람처럼, 사람처럼, 모든 것이 얼어붙은 들판처럼.”
그러나, 다만 공허하다고 느끼는 것일 뿐, 실제로는 내면의 포화상태에 직면해 있다. ‘죽어가는 여자의 냄새’와 같은 기억들과 ‘개미 한 마리가 뺨을 지나 얼굴 위를 돌아다니는’ 듯한 불안, ‘물렁물렁하고 미끌미끌하고 쓴맛이 나는’ 고독. 이것들을 떠안고 사느라 이들은 피곤하다. 죽어가는 것들 속에서 이들은 죽음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죽거나 죽이고 싶은 욕망. 그 비정상적인 욕망을 은폐하고 통제하느라 그들은 더욱 불안하고 고독하다.
“유골 단지를 끼고 산다는 것이, 벽장 구석에 아버지의 유골을 넣어 두고 산다는 것이 정상적인 삶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나는 언제나 죽고 싶은 마음이 들고, 설명하기 힘든 극도의 허약함에 빠진다.”
“나는 아이의 목을 조르고 베개로 머리를 눌러 버리고 싶었다.”
시간적 배경과 기후적 배경은 이들의 불안, 고독과 조응하고 있다.
“차창 밖으로 불 꺼진 건물들이 연이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건물 벽의 갈라진 틈들이 보였다. 창문 뒤편에는 피곤에 지친 사람들이 텔레비전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을 것이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늙은 여인들은 커튼을 조금 열어둔 채, 잠 오는 차를 마시고 있을 것이다.”
“전나무 숲을 지나는 바람이 휘파람 소리를 냈다. 불어난 물이 포효하듯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산의 흙이 무너져 내리는 굉음이 방 안의 침묵을 삼켜 버렸다. 집 안에 있는 모든 것이 흔들렸고 굴뚝을 타고 벽난로 속으로 들어온 바람이 요동을 쳐서 마치 폭발이라도 할 것 같았다.”
불안과 고독 속에서 흔들리면서 이들은 ‘죽어가고 있다’.
“죽음이란 것이 으레 그렇듯, 나도 그렇게 죽어가고 있었다. 찰나와 같은 그 짧은 순간에 그 모든 것을 상상하면서 나는 차가 도로 밖으로 튕겨 나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 죽을 땐 이렇게 전생애가 눈앞에 펼쳐질 거야. 나는 속으로 속삭였다. 내 안에 숨어 있던 모든 것들을 다시 보게 될 거야.”
겨울을 지나는 이들의 죽음은 필연이다. 겨울을 죽지 않으면 봄을 살 수 없다. 혹독한 겨울을 견딜 수 있는 것은 바로 ‘봄의 희망’ 때문이 아닌가. 소설 곳곳에서 ‘빛(햇빛, 불빛)’은 이러한 ‘희망’을 암시하고 있다.
“나는 햇빛으로 탈색해 버린 듯 눈부신 거리를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탐조등 아래 놓여 있는 것 같았다.”
세상을 덮은 하얀 눈을 바람이 쓸어가고 비가 녹이듯, 이 ‘빛’은 ‘숨어 있던 모든 것들을 다시 보게’ 해준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욕망하고 그곳을 향해 떠났던 사람들은 다시 돌아온다. 집으로. 죽음과 고독 속에 ‘숨어 있던’ 생의 욕망, 소통의 욕망 때문이다.
“제레미가 소리없이 방으로 들어왔다.(...)녀석은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양말을 신은 발로 바닥을 밀며 침대로 다가왔다. 나는 자는 척하고 있었다. 녀석이 침대로 들어와 내게 몸을 바짝 붙였다. 나는 그동안 내가 얼마나 이런 순간을 그리워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나는 잠꼬대를 하는 척 중얼거리며 몸을 돌렸다.”
“나는 다른 방의 문에 귀를 대고 안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는다. 코 고는 소리, 숨소리, 기침 소리, 텔레비전 소리. 그렇게 여러 층을 돌아다니며 손으로 벽을 짚고 소리를 듣는다.”
겨울을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빛’이 되어준다. ‘숨어 있던 모든 것들을 다시 보게’ 해주는 것이다. ‘여러 층을 돌아다니며 손으로 벽을 짚고’ 마음을 기울이면 우리는 들을 수 있다. 얼음 아래를 흐르는 생의 속삭임. 생이 흐르는 소리를. 이렇게, 삶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