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살려 써야 할 우리말 사전
고정욱 지음 / 자유로운상상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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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와 함께 유입된 서양문화에 물들어 있는 지금의 시대. 햄버거에 물린 입맛이 쌀밥을 찾듯 우리말(고유어/토박이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방송사와 출판사 등의 우리말 살려 쓰기 운동에 힘입어 우리 겨레의 얼을 일깨우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진 것이다. 이젯말에 익숙해진 대부분의 반응은 ‘우리말은 어렵다’는 것. 그도 그럴 것이 남의 나랏말은 아등바등 기를 쓰고 교육하면서 우리말 교육에는 소홀한 것이 우리 언어교육의 현주소가 아닌가 말이다. 우리말을 주제로 만들어진 방송 프로그램을 보면, 한창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은 차치하고 정규교육과정을 마친 성인들의 우리말 실력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이 앞서는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우리말 공부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그것은 나 자신의 본바탕을 아는 일이기 때문이다.

 

말은 사용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사용함으로써 만들어지기도 한다. 유행어니 외계어니 하는 것들이 올바른 언어생활을 오염시키고, 아울러 문화의 틀로 굳혀지고 있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문화현상이 자리잡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새로운 문화라는 것이 옛것과의 단절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말에는 한겨레의 역사와 얼이 나이테처럼 새겨져 있다. 말밑을 살펴보면 지난 시대의 문화와 관습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언어와 문화, 언어와 국민성은 뿌리 깊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활용되지 못하고 잊혀져가는 우리말이 얼마나 많은가. 애석한 일이다. 고정욱 씨는 십여 년간 문학공부를 한 문학박사다. 그는 문학작품들 속에서 생소한 낱말을 접할 때마다 사전을 찾아가며 정리해 왔고, 그것을 엮어 펴낸 것이 『다시 살려 써야 할 우리말 사전』이다. 이 책은 참 자상하다. 생소한 우리말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고자 하는 엮은이의 배려가 돋보인다. 우선 공통의 개념을 가지는 것들끼리 묶어놓은 구성이 그렇다. (예: 사람과 관계되는 말 - 나쁜 사람/일거리, 직업과 관계되는 사람/어리석은 사람/질병을 가진 사람/그 밖의 사람) 이러한 구성은 관심 가는 유형의 낱말들을 찾아보기에 용이하다. 그저 책의 흐름에 따라 읽어 나가거나 막연히 페이지를 들추지 않고 스스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활용과 이해의 목적에서 함께 싣고 있는 예문이다.  (새롱거리다/새롱대다 ①경솔하고 방정맞게 야불야불 계속해서 지껄이다. ②남녀가 점잖지 못한 말이나 행동으로 서로 희롱하다. 예) 영감, 영숙이 쟤가 남자만 보면 새롱거리니 바람나기 전에 시집이나 보내 버려야겠어요.) 쉽고 재미있는 예문은 낱말의 생소함을 상쇄시키고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간혹 익숙한 문학작품의 구절도 만날 수 있다.  ‘문학 작품 속의 우리말’(작가별 - 김주영/이문구/천승세/김원일/홍명희 - 로 정리해놓고 있다)과 ‘북한에서 쓰는 말 중 살려 쓸 우리말’, ‘순화 대상 일본어 및 일본식 어휘’를 소개해 놓은 부록은 이 책을 더욱 알차게 하고 있다. 

 

언어활동은 문화를 축적하는 동시에 문화를 형성한다. 그러므로 어떤 말을 사용하는가는 굉장히 중요하다. 그에 앞서 자신이 사용하는 말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있어야만 하겠다. 자신이 사용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허다한 것 같다. 말을 하면서도 정작 그 말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적절한 때에 사용하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말을 죽이는 행위가 아닐까. 언어는 소통의 도구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다리. 올바른 언어의 사용은 그러므로 내가 대하는 사람에 대한 기본적 예의이기도 할 것이다. 『다시 살려 써야 할 우리말 사전』은 소통을 목적하기보다는 우리 겨레의 얼을 마음에 새기자는 취지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 실린 우리말들을 실제 생활에 적용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다시 살려 써야 할 우리말’이 얼마나 많은가 알 수 있다. (노메이크업, 쌩얼 - 민낯/바리톤 - 위낮은청/리듬(을) 타다 - 반춤(을) 추다/과장誇張 - 흥감) 예시한 바와 같이 들온말과 한자어는 적절한 우리말로 순화해서 사용할 수 있다. 앞서 얘기한 대로 말은 자꾸 사용함으로써 만들어진다. 실제 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재미있고 좋은 우리말을 일상의 언어에 잘 적용해서 사용한다면, 언어생활이 윤택해짐은 물론 잊혀져가는 우리말의 보전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 우리말 살리기, 우리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민족적 긍지를 넘어 자애自愛의 길로 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을 함께 살아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말에 실린 얼에서 자긍심을 갖고 우리말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키워나갔으면 좋겠다. 죽어가는 우리말이 조금씩 되살아나기를 바란다. 『다시 살려 써야 할 우리말 사전』은 그 바탕을 이루는 데 보탬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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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대지
생 텍쥐페리 지음, 최복현 옮김 / 이른아침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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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난다는 것. 예나 지금이나 우리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아닐까. 저 하늘 높이 날아올라 이 세상을 바라본다면 아마도 땅에서 보는 것과는 다를 테니까. 요즘은 비행기 외에도 하늘을 날 수 있는 레포츠가 발달하여 마음만 먹으면 대수도 아니다. 그러나 옛날, 그러니까 생텍쥐페리가 살던 그 옛날에 하늘을 난다는 것은, 비행사라는 직업은 모험이었다. 예고도 없이 꺼지는 엔진장치 때문에 낯설고 위험한 장소에 불시착하는 것은 물론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것도 예삿일이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죽음을 무릅쓴 비행을 하였을까. ‘바람과 별들과 밤과 모래와 바다와 접촉하기 위해서’라고 생텍쥐페리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얘기한다. 자신이 사랑하였던 것은 위험이 아니라 생명이었다고. 『인간의 대지』는 생텍쥐페리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있는 소설로, 살아있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하늘을 날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것은 역설처럼 들릴 수도 있다. 살아있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다니.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그와 함께 아슬아슬한 비행을 떠나야 한다. 그리고 사막 한가운데에 불시착해야 한다. 사막 한가운데에 불시착한 ‘나’가 사흘 밤낮 갈증에 시달리며 죽음을 예감하던 때에 찾아낸 오렌지 한 알의 의미. “사람들은 오렌지가 무엇인지 모른다.” 이 오렌지 한 알에서 ‘나’는 형을 선고받은 사람의 담배 한 대와 럼주 한 잔을 이해하게 된다.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무어인들에게 납치된 노예 바르크가 비로소 자유를 얻었을 때, 그 자유는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그 자유는 자신과 세상을 연결해주는 어떤 힘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걸음을 부여잡는 인간관계의 무게, 눈물, 작별, 기쁨들이 그에게는 없었다.” 그때 바르크는 어린아이의 뺨을 어루만진다. 아이는 웃는다. 그 아이의 웃음은 세상과 그를 연결해준다. 연약하고 순수한 아이의 웃음은 이 세상에서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깨우쳐준 것이다. 바르크의 이야기는 진정한 자유의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지 못한다면 자유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 하늘을 날고자 하는 욕망은 대지와 멀어지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지와 가까워지려는 욕망이었다. 사람과 삶에 가까워지려는 욕망이었다. 바르크가 사람들, 삶과 가까워지기 위해 자신에게 남은 모든 것을 써버리면서도 아까워하지 않듯, 삶의 한가운데로 날아오르는 이들은 죽음을 무릅쓰는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것이다.

 

1938년 출간된 『인간의 대지』는 프랑스한림원에서 소설부문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하나의 스토리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에세이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나’의 회고를 통하여 비행사들의 모험적 삶과 죽음, 더 나아가 삶의 진정한 의의를 담고 있다. 불시착하여 죽음의 사막에 남겨진 ‘나’처럼, 생텍쥐페리는 1944년 비행을 마지막으로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

  “‘내가 우는 것은 나 때문이 아니라...’ 그래. 그렇다. 이것이야말로 견딜 수 없는 일이다. 나를 기다리는 눈들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화상을 입은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나는 갑자기 벌떡 일어서서 앞으로 곧장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저 너머에서 들려오는 울부짖음, 크나큰 절망의 불길들. 나는 그런 모습을 견딜 수가 없다. 침묵의 1초 1초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조금씩 죽이는 것이다. 내 안에서는 큰 분노가 부글거린다. 왜 이 사슬들은 제 시간에 가서 침몰하는 저 사람들을 구하지 못하게 나를 방해하는 걸까? 왜 우리의 불은 우리들의 부르짖음을 세계 끝까지 전해주지 못할까. 곧 갑니다! 곧 갈게요! 우리는 구조원들이다!”


죽음의 예감 속에서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들의 기다림과 절망. 그 침몰의 시간을 걱정한다. 살아서 돌아가야 할 유일한 이유. 그것은 사람이고, 사랑이고, 삶이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 들릴 것도 같다. 저 먼먼 사막 어디쯤에선가 여전히 세상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는 생텍쥐페리의 발자국 소리를. 그의 부르짖음을. 곧 갑니다! 곧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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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기 - 2004 공쿠르 단편문학상 수상작
올리비에 아당 지음, 함유선 옮김 / 샘터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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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유폐幽閉의 계절이다. 소리 없이 내리는 눈들은 세상을 뒤덮고, 출렁이던 강물의 흐름도 멎는다. 그렇다고 그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존재형태는 다른 계절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눈에 가려지고 얼음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은폐와 망각의 시간. 유폐의 시간이다. 이러한 존재형태는 죽음과 맞닿아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꿈틀거리며 살아있는 것들 -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엇인가 흐느끼고 흔들리고 흩어지고 균열하고 부패한다. 형체도 없고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

『겨울나기』는 겨울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겨울을 ‘살고 있다’는 말은 겨울을 ‘지나고 있다’는 것과 같다. 삶은 ‘흐름’이기 때문이다. 이 삶의 진실은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안겨준다. 모든 것은 변화하며 흘러가리라는. 낮과 밤, 삶과 죽음, 이별과 만남, 상처와 치유. 『겨울나기』는 총 아홉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각기 개별적인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지만, 연작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계절적 배경(겨울)과 시간적 배경(밤), 기후적 배경(폭풍, 눈, 비)의 일치 때문만은 아니다. 삶의 가장자리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주인공들도 닮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상실’이다. 외적 상실과 내적 상실. 직장을 잃거나, 연인을 잃거나, 부모를 잃거나, 아이를 잃거나, 개를 잃거나. 감정의 동결, 소통의 단절. 침묵. 이들은 ‘내면의 공허’를 토로한다. 

“속이 텅 빈 것 같아요. 항상 그 생각만 해요. 내면의 공허. 만일 나의 내면을 탐사할 수 있다면, 머리와 가슴을 열고 그 안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거기엔 아무것도 없을 거예요. 아무것도. 바람처럼, 사람처럼, 모든 것이 얼어붙은 들판처럼.”    

 

그러나, 다만 공허하다고 느끼는 것일 뿐, 실제로는 내면의 포화상태에 직면해 있다. ‘죽어가는 여자의 냄새’와 같은 기억들과 ‘개미 한 마리가 뺨을 지나 얼굴 위를 돌아다니는’ 듯한 불안, ‘물렁물렁하고 미끌미끌하고 쓴맛이 나는’ 고독. 이것들을 떠안고 사느라 이들은 피곤하다. 죽어가는 것들 속에서 이들은 죽음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죽거나 죽이고 싶은 욕망. 그 비정상적인 욕망을 은폐하고 통제하느라 그들은 더욱 불안하고 고독하다.


“유골 단지를 끼고 산다는 것이, 벽장 구석에 아버지의 유골을 넣어 두고 산다는 것이 정상적인 삶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나는 언제나 죽고 싶은 마음이 들고, 설명하기 힘든 극도의 허약함에 빠진다.”  

 

“나는 아이의 목을 조르고 베개로 머리를 눌러 버리고 싶었다.” 

 

시간적 배경과 기후적 배경은 이들의 불안, 고독과 조응하고 있다.

 

“차창 밖으로 불 꺼진 건물들이 연이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건물 벽의 갈라진 틈들이 보였다. 창문 뒤편에는 피곤에 지친 사람들이 텔레비전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을 것이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늙은 여인들은 커튼을 조금 열어둔 채, 잠 오는 차를 마시고 있을 것이다.”

“전나무 숲을 지나는 바람이 휘파람 소리를 냈다. 불어난 물이 포효하듯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산의 흙이 무너져 내리는 굉음이 방 안의 침묵을 삼켜 버렸다. 집 안에 있는 모든 것이 흔들렸고 굴뚝을 타고 벽난로 속으로 들어온 바람이 요동을 쳐서 마치 폭발이라도 할 것 같았다.”

            

불안과 고독 속에서 흔들리면서 이들은 ‘죽어가고 있다’.


“죽음이란 것이 으레 그렇듯, 나도 그렇게 죽어가고 있었다. 찰나와 같은 그 짧은 순간에 그 모든 것을 상상하면서 나는 차가 도로 밖으로 튕겨 나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 죽을 땐 이렇게 전생애가 눈앞에 펼쳐질 거야. 나는 속으로 속삭였다. 내 안에 숨어 있던 모든 것들을 다시 보게 될 거야.”


겨울을 지나는 이들의 죽음은 필연이다. 겨울을 죽지 않으면 봄을 살 수 없다. 혹독한 겨울을 견딜 수 있는 것은 바로 ‘봄의 희망’ 때문이 아닌가. 소설 곳곳에서 ‘빛(햇빛, 불빛)’은 이러한 ‘희망’을 암시하고 있다.


“나는 햇빛으로 탈색해 버린 듯 눈부신 거리를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탐조등 아래 놓여 있는 것 같았다.”   

세상을 덮은 하얀 눈을 바람이 쓸어가고 비가 녹이듯, 이 ‘빛’은 ‘숨어 있던 모든 것들을 다시 보게’ 해준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욕망하고 그곳을 향해 떠났던 사람들은 다시 돌아온다. 집으로. 죽음과 고독 속에 ‘숨어 있던’ 생의 욕망, 소통의 욕망 때문이다.

“제레미가 소리없이 방으로 들어왔다.(...)녀석은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양말을 신은 발로 바닥을 밀며 침대로 다가왔다. 나는 자는 척하고 있었다. 녀석이 침대로 들어와 내게 몸을 바짝 붙였다. 나는 그동안 내가 얼마나 이런 순간을 그리워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나는 잠꼬대를 하는 척 중얼거리며 몸을 돌렸다.”   

 

 

“나는 다른 방의 문에 귀를 대고 안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는다. 코 고는 소리, 숨소리, 기침 소리, 텔레비전 소리. 그렇게 여러 층을 돌아다니며 손으로 벽을 짚고 소리를 듣는다.”    


겨울을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빛’이 되어준다. ‘숨어 있던 모든 것들을 다시 보게’ 해주는 것이다. ‘여러 층을 돌아다니며 손으로 벽을 짚고’ 마음을 기울이면 우리는 들을 수 있다. 얼음 아래를 흐르는 생의 속삭임. 생이 흐르는 소리를. 이렇게, 삶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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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해부 - 뇌의 발견이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켰나
칼 지머 지음, 조성숙 옮김 / 해나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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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靈魂 soul, spirit

[명사]

1 죽은 사람의 넋. ≒영()·유혼(幽魂)·혼령·혼신(魂神).

2 육체에 깃들어 마음의 작용을 맡고 생명을 부여한다고 여겨지는 비물질적 실체. ≒음영령·형상령.

3<가톨릭>신령하여 불사불멸하는 정신. ≒영신(靈神).

4<불교>육체 밖에 따로 있다고 생각되는 정신적 실체. ≒영가(靈駕)·영각(靈覺).


붉은 심장 모양은 여전히 사람들 마음(또는 영혼)의 표징이다. 마음이 답답하거나 슬플 때에 사람들은 심장 부근의 가슴을 친다. 연인들은 심장과 심장이 맞닿을 수 있도록 껴안으며 사랑을 표현한다. Heart. 이 단어는 심장,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뜻한다. 이러한 관습과 언어 형식은 고대 과학의 유물에 불과하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심장이 인간 영혼의 중심지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들의 감정과 사고, 의지 등 인간 행동 전반의 핵심에는 뇌의 메커니즘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고대의 사람들은 ‘물컹한 살덩어리’에 불과한 ‘뇌’에 인간의  ‘고귀한 영혼’ 이 있다는 것은 영혼 자체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뇌의 존재를 하찮게 여겼다기보다는 영혼을 신과 동일시하는 영혼숭배의 정신이 크게 작용하였다. 수많은 철학자와 연금술사, 약제사, 신비주의자들은 우주에도 영혼이 있으며, 이 영혼은 자신들의 의지를 실행하기 위해 행성과 별을 통해 정기를 전달해준다고 믿었다.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심장이 열기와 지성의 중심이라고 생각했고, 그의 영혼 사상은 누대에 걸쳐 신봉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뿐 아니라 플라톤, 데카르트, 갈레노스 등 수많은 학자들이 인간 영혼에 대한 학설을 정립했다. 그 이론들은 지극히 종교적으로 치우친 것도 있고, 엉뚱함에 실소가 터지는 것도 있다. 그러나 그 이론들은 거듭된 연구와 실패 속에서 꾸준히 발전했고, 마침내 사람들의 관심은 심장에서 뇌로 옮겨졌다. 뇌를 중심으로 인간을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다.


철학, 과학, 종교적 격변기 속에서 인간 영혼에 대한 연구는 수많은 위험을 안고 있었다. 17세기 영국 역시 수많은 학설과 이념의 대립으로 대혼란을 맞고 있었다. 의회파와 왕당파의 대립에서 비롯한 청교도 혁명과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열병 등. 이 혼란의 한가운데에서 토머스 윌리스와 그의 동료들 - 윌리엄 하비, 로버트 보일, 훅 등 -은 인간 영혼의 해부를 시도하였다. 그리고 토머스 윌리스를 위시한 과학자들의 뇌 연구는 현대과학의 시초가 되었다. 토머스 윌리스. 현대과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빛나는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 이름은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바로 제자 로크의 사회적 명성에 가려져 그의 업적은 그늘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신경의 구조와 작용을 통해 이성과 정신의 작용을 이해하려던 윌리스에 반해, 로크는 정신작용의 결과인 관념을 중시하였다. 인간의 정신을 물질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어리석은 짓이라고 비웃으면서, 정신의 작용은 불가해한 것이고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토머스 윌리스가 뇌과학 발전에 끼친 지대한 영향을 인정하면서 그에 대한 연구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영혼의 해부』는 인체의 연구, 그중에서도 인간 영혼 연구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신경생리학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고 있다. 그 흐름에 토머스 윌리스의 연구과정과 성과, 그리고 그의 삶을 싣고 있다. 

 

『영혼의 해부』는 총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토머스 윌리스는 4장에서부터 등장하며, 5장에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다뤄진다. 그 이전의 장들에서는 앞서 언급했던 연금술에서부터 심장과 뇌를 두고 영혼의 거주지를 논쟁하는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의 이론을 소개하고 있는데, 수많은 학자들의 이름과 이론들의 방대함 때문인지 다소 지리멸렬하게 느껴진다. 끝없는 인내와 집중력이 필요하다. 5장부터 토머스 윌리스의 삶과 연구과정, 이론 등을 다루고 있지만, 토머스 윌리스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토머스 윌리스를 중심으로 두고 있기는 하지만, 그 곁가지라고 할 수 있는 그의 동료들, 그 시대의 학자들과 이론들이 1~4장의 형식과 마찬가지로 서술된다. 한 학자와 이론의 형성에는 그 이전의 학설과 동시대의 학설의 영향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므로 이러한 서술양식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끝없이 뻗어나가는 곁가지들이 독서의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 곁가지라는 것도 지엽적인 것이 아니라 토머스 윌리스와 현대의학의 형성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중요한 것이므로 가볍게 읽어 넘길 수가 없다. 그 중요성만큼이나 내용도 굉장히 난삽하다. 의학용어나 철학용어들이 예사롭게 등장하는데, 간단한 주석조차 달아놓지 않고 있다. 주석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400페이지가 넘어가는 방대한 분량을 읽는 동안 열 개 남짓. 아무래도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의 뇌는 혹사당했다. 그러나 이 책에 담긴 과학의 역사와 근대의학의 성과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준다. 바로 생명의 존엄성이다. 육체적, 정신적 생명의 존엄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자주 이 중요한 사실을 잊고 육체와 정신을 함부로 다룬다. 잊지 말아야 하겠다. 토머스 윌리스를 비롯한 지난 시대 수많은 학자들의 끊임없는 연구와 실패를. 지금 이 순간에도 생명을 유지하고 연장하기 위해 ‘머리를 감싸고’ 연구 중인 수많은 과학자들의 노고를.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해야지. 호흡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보고, 듣고, 느끼고, 사유하고, 판단할 수 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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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언젠가 - 개정판
츠지 히토나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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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사랑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기억은 있다. 이제와 사랑의 기억을 떠올리면, ‘그것이 실제 있었던 일이었을까’ 무척이나 몽롱한 기분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것은 흐르는 시간에 의한 침식의 탓도 있겠지만, 사랑이 품고 있는 비현실적인 성격, 환상의 탓이 아닐까 한다. ‘사랑의 콩깍지 씌여버렸어’ 유행가 가사도 있지 않은가. 사랑은 예측할 수도 없고, 마음대로 잡아둘 수도, 마음대로 털어낼 수도 없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시작되고 진행되며 끝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랑도 운명적이라고 생각한다. 

방콕으로 부임한 유타카는 미츠코와의 결혼을 몇 달 앞두고 토우코와 환락의 나날을 보낸다. 토우코는 전남편의 배신으로, 어마어마한 위자료를 받고 이혼한 여자다. 뜨거운 방콕의 열기 속에서 토우코는 유타카를 유혹한다. 죄책감과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유타카는 그녀의 유혹을 거부하지 못한다. 그렇게 넉 달간의 만남이 시작된다. 그 만남의 기간 동안 그들은 서로의 육체를 탐하는 일에 몰두한다. 그들이 만나고, 사랑을 나누는 장소는 방콕의 유명한 고급호텔, 오리엔탈이다. 오리엔탈 호텔은 백 년 이상의 유구한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이다. 아득한 시간을 품고 있는 곳. 영원의 시간이 흐르고 있는 곳. “이곳은 방콕이 아니야. 오리엔탈 호텔이라는 또 하나의 세계, 일본인 사회와도 동떨어진 별세계.” 그곳은 세상과 동떨어진 또 하나의 장소였다. 비현실적이고 비일상적인 가공의 세계. 바로 환상의 세계였다. ‘소리 없는 공간에 떠 있는 우주선’과 같은 그 환상의 세계에서 유타카는 불안을 느끼지만, 오히려 그 불안은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력으로 작용했다. 유타카는 토우코와 함께 끝도 없이 펼쳐진 아득한 우주공간으로 빠져 들어간다. 극도의 절망감에 사로잡힌 토우코의 유혹에서 비롯된 그들의 만남은 신비한 마법과도 같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사랑으로 발전한다. 유타카와 토우코는 마음에 싹트는 사랑의 감정에서 갈등을 느끼며 괴로워하지만, 그들만의 장소를 떠나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각자의 현실세계로 돌아간다. 그리고 25년의 시간이 흐르고 그들은 운명적인 재회를 하게 된다. 바로 오리엔탈 호텔에서. 시간을 돌고 돌아 그들은 다시 그곳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평생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말, ‘사랑한다’는 말을 서로에게 들려준다.

처음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 토우코의 육체적 도발과 유타카의 흔들림에 마음이 불편했던 것이 사실이다. 불륜이지, 이게 사랑이냐. 조금 더 읽었을 때에는 사랑을 잃고 마음을 다친 토우코의 극단적 슬픔의 표현에 공감이 갔다. 연약함은 언제나 죄의 씨앗을 품고 있기 마련이다.  소설가 전경린이 그랬듯이,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들은 착한 사람들이 아니라, 나쁜 사람들이 아닐까. 이것저것 헤아리고, 적당한 선을 지키고, 현실과 타협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은 끝내 별세계에 이를 수 없을 것이다. 유타카와 토우코가 서로의 육체를 탐하며 지낸 넉 달 간의 시간을 사랑이냐 아니냐 얘기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유타카와 토우코의 만남을 지켜보며 공감하지 못할 부분들이 더 많기는 했지만, 역시 사랑은 알 수 없는 것이므로, 그들만의 장소, 별세계에서의 일이므로, 어떤 사랑도 제삼자가 개입하여 저울질할 수는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들이 서로의 외로움과 상처를 보듬어주었다는 것. 길고 길었던 25년의 시간보다도 짧은 넉 달의 시간 속에서 이해하고, 위로했다는 것. 이해받고, 위로 받았다는 것으로 충분히 그들의 만남은 귀중하다. 25년의 시간이 지나 유타카가 찾은 방콕. 고층의 건물들이 새로 들어선 방콕 시내의 변화 속에서도 오리엔탈 호텔만은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변함이 없었다. 그곳은 세상의 시간이 미치지 않는 곳, 유타카와 토우코만의 별세계이기 때문이다. 유타카와 토우코가 평생 서로를 그리워했던 것은 아마도 그런 연유가 아니었을까. 

 
연애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기피하는 편인데, 츠지 히토나리의 '해협의 빛' 에 대한 추억 때문에 읽게 되었던 소설, 『안녕, 언젠가』는 나만의, 우리만의 별세계가 사라지고 난 빈자리를 뼈저리게 일깨워주었다. 오래전 내가 잃어버린, 사랑을 향한 순수한 열정, 무조건적인 신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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