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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천사의 눈물을 보았다
박종인 외 지음 / 시공사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지옥 같은 현실, 치욕적인 삶. 그 생의 한가운데 천사들이 있다. 조선일보 Our Asia 취재팀이 만난 지구촌 곳곳의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는 묵직한 슬픔이 있다. 눈물이 있다.
부모 품에서 응석을 부릴 나이.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포근한 품 대신 차가운 현실이 있었다. 가난과 전쟁, 질병, 자연재해. 가난은 질병을, 질병은 가난을 불러온다. 전쟁과 자연재해도 마찬가지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은 이중, 삼중고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불편하고 고된 생활의 순환 고리를 끊기 어렵다.
루빠에게 세상은 돌이었다.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돌 깨는 일을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알고 자랐다. 태어날 때부터 봐온 모습이라고는 온통 돌 깨는 사람들뿐이었다. (...) “나는 돌 깨는 것밖에 몰라요. 글씨도 읽을 줄 몰라요. 내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렇게 사는 게 내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쇠망치를 든 아이의 원망 어린 눈빛을 생각한다. 태어날 때부터 돌 깨는 일을 하면서 자라난 아이. 아이에게 세상은 돌이었다. 깨뜨려야 할 돌. 깨뜨리고 깨뜨려도 항상 거기 버티고 있는 돌. 아이 앞의 현실은 그토록 차가웠다. 아이의 힘겨운 망치질에도 깨지지 않았다. 망치 끝에서 부서지는 건 아이의 꿈이었다.
눈물을 머금은 천사들. 아이들 모두가 현실의 견고한 돌을 깨고 있었다. 고 작고 여린 몸을 망치 삼아 차가운 현실에 부딪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는 상흔이 새겨지고 있었을까. 누구 한번 이 아이들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어루만져준 적 있었나. 열두 살 소녀 문니스와리는 날개가 절실했었나 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아무리 해도 날개를 구할 수 없었던가 보다. 죽음을 감행한 아이의 살아남은 모습을 차마 보고 있기 힘들었다. 아이 앞에는 다시 깨뜨려야 할 돌, 고된 현실이 있을 뿐.
집을 떠나 소년 차장이 되어야 했던 순버하둘, 에이즈 위험을 무릅쓰고 몸을 파는 소녀 몽, 고향을 찾기 위해 고향을 떠나고, 집을 찾아 집을 떠나온 아이들. 아이들이 진정 찾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먹을 것을 주면 대답해 주겠다는 아이들 앞에서 이런 질문은 사치스러운 것인지 모르겠다. 부끄럽다. 이 아이들에게는 당장 눈앞의 돌을 깨뜨리는 일이 시급하다.
쓰레기로 배를 채운 아이들은 미라 잎을 주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미라는 마약으로 분류된 식물 잎이다. 마티아스가 말했다. “미라 잎을 씹으면 하루 종일 잠도 오지 않고, 배도 고프지 않아요. 그러다 다음날 하루 종일 곯아떨어져 자게 되죠.” 아이들에겐 ‘자그마치 이틀’이라는 긴 시간을 힘들이지 않고 보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미라 잎을 씹는 것이다.
루빠에게 세상은 돌이었다. 세상은 돌이었다. 돌이었다. 자꾸 되뇌어진다. 현실의 절망감이 고스란히 담긴 문장 앞에서 충격을 받았나 보다. 아, 세상은 돌. 깨뜨려야 할 돌. 물론 돌 깨는 아이 루빠에게, 루빠와 같은 고된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지구촌 아이들에게 세상, 그 돌은 관념이 아니라 온몸으로 부딪쳐야 하는 현실이다. 날개 잃은 천사들. 이 책에서 나는 천사의 눈물을 보았다. 눈물만 보았다. 그래서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