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 몸, 마음, 영혼을 위한 안내서
아잔 브라흐마 지음, 류시화 옮김 / 이레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의 저자 아잔 브라흐마는 태국의 영적 스승 아잔 차의 제자이다. 영국에서 이론물리학을 전공한 그는 우연히 읽은 불교서적을 통해 자기 안의 불심佛心을 깨닫고 수행승의 길을 걷게 된다. 쉽고 재미있는 법문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감화시키는 명상 스승으로 존경 받고 있다.


불교에서는 108개의 염주알을 돌리면서 108가지 번뇌를 다스린다. 힌두교와 불교에서 완전한 숫자로 여기는 3의 배수, 그것을 3으로 나눈 숫자 역시 3의 배수가 되는 108. 힌두교와 불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숫자다. 이 책에는 108가지 일화들이 담겨 있다.


이야기는 ‘벽돌 두 장’에서 출발한다. 브라흐마가 처음으로 절을 지었을 때의 일화이다. 차근차근 벽돌을 쌓아올려 마침내 벽이 완성되었을 때, 어긋나게 놓여진 벽돌 두 장을 발견했다. 이미 시멘트는 말라가고 있었기 때문에 벽돌을 다시 쌓을 수도 없었다. 브라흐마는 잘못 놓여진 벽돌 두 장이 너무 거슬려서 벽을 허물어뜨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사람들에게 절을 안내할 때에도 그 두 장의 벽돌이 놓여진 벽은 보이지 않도록 애를 썼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벽을 보게 된 방문객이 그 벽의 아름다움을 칭찬한다. “물론 내 눈에는 잘못 놓여진 두 장의 벽돌이 보입니다. 하지만 더없이 훌륭하게 쌓아올려진 998개의 벽돌들도 보입니다.” 우리는 자주 이 벽돌 두 장 때문에 분노하고 슬퍼한다. 누구에게나 잘못 놓여진 벽돌 두 장이 있다. 하지만 잘 쌓아올려진 벽돌들이 훨씬 많다. 어긋난 벽돌 두 장에 사로잡힌 ‘마음’에서 ‘술 취한 코끼리’ - 분노, 질투, 증오, 두려움, 절망, 슬픔 등 부정적 감정 - 는 탄생한다.


일곱 살짜리 아이들을 앞에 두고 교사가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이 무엇이지?” “우리 아빠요.” “코끼리요.” 아이다운 대답이 이어지는 중 한 아이가 말한다. “내 눈이 가장 커요. 내 눈은 저 애의 아빠도 볼 수 있고, 코끼리도 볼 수 있어요. 산도 볼 수 있고, 다른 많은 것들도 볼 수 있어요. 이 모든 것들이 내 눈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 내 눈이 세상에서 가장 큰 것임에 틀림없어요.” 아이가 말한 눈은 우리의 마음에도 있다. 마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이다. 우주 전체를 담고 있는 것이 마음. 이 책에서 ‘코끼리’는 ‘마음’의 비유이다.

단맛 나는 칠리를 먹을 수 있을까 하는 희망으로 매운 칠리를 먹어대는 남자가 있다. 보다 못한 누군가 그에게 물었다. “그 많은 칠리를 먹어도 단맛이 나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왜 계속해서 먹고 있는 거요?” 고통에 익숙해진 목소리로 남자가 대답한다. “지금까지 힘들게 참으며 먹어왔는데, 이제와서 포기할 수 없지 않소. 포기한다면 여기에 바친 내 시간들이 얼마나 아깝고 무의미하겠소. 이제 이것은 희망의 문제가 아니라 내 존재의 문제가 되었소.” 어리석은 욕망에 사로잡혀 고통을 연장하는 남자의 이야기는 우리 삶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불교에서는 욕망을 모든 고통의 씨앗으로 본다.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욕망에 ‘휘둘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고통스럽지만 욕망하는 것을 멈출 수도 없다. 매운 칠리를 먹어대는 남자처럼 이제 그것은 희망의 문제를 떠나 우리 존재의 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욕망으로 점철된 삶에서 우리는 자주 술 취한 코끼리와 마주친다. 두려움, 절망, 분노, 슬픔, 미움의 감정들.

붓다를 시기한 적들이 어느 날 그가 지나는 좁은 길에 술 취한 코끼리를 몰아넣었다. 술에 취해 광포해진 거대한 코끼리를 가만히 다독이며 붓다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네가 나에게 무슨 짓을 하든 내 마음의 문은 언제나 너를 향해 열려 있다.” 그러자 코끼리는 이내 온순해졌다. 술 취한 코끼리를 길들이는 방법은 단순하다. 그것에 맞서 저항하거나 통제하려 하지 말 것. 가만히 지켜보며 그것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면 된다.


생전에 가까이 지냈던 두 명의 수행자가 있었다. 죽은 후에 그들은 각기 아름다운 천상계와 한 무더기 똥 속에서 환생했다. 천상계에 환생한 수행자는 자신의 친구를 찾았다. 악취 나는 소똥더미에서 친구를 발견한 그는 천상계로 함께 가자고 말하지만, 벌레가 된 친구는 사랑하는 소똥더미에 파묻혀 있기를 원했다. ‘사랑하는 소똥더미’에 남겨진 벌레의 안타까운 이야기에서 이 책은 끝을 맺는다.

마음은 우리를 아름다운 천상계로 이끌기도 하고 소똥더미에 파묻히게도 한다. 어긋난 벽돌 두 장만을 볼 것인가, 나머지 998개의 훌륭한 벽돌들을 볼 것인가. 술 취한 코끼리에 휘둘릴 것인가, 그것을 길들일 것인가. 세상에서 읽을 가치가 있는 단 한 권의 책은 ‘마음’이라는 아잔 차의 말씀을 바탕으로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한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나가고 있는 책,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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