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리어스 - 인간의 네 번째 본능, 호기심의 모든 것
이언 레슬리 지음, 김승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대여섯 살쯤이었나. 똥을 먹어본 적 있다. 이웃집 아기의 똥이었다. 기저귀에 막 싸질러 놓은 똥은 잘 익은 호박색이었다. 무슨 맛이 날까. 단순한 호기심으로 기저귀에 손을 뻗은 것이었다. 혀끝에 살짝 대 본 그것은, 그냥 똥 맛이었다. (궁금하면 직접 맛보시라,요. 헤헤) 물뱀 새끼를 구경하다 얕은 도랑에 빠진 적도 있다. 사람이 죽으면 별이 떨어진다는 사촌오빠의 말을 듣고 목이 빠져라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기도 했다. 아빠한테서 들은 말인데, 사탕나무를 키운다고 땅에 사탕을 심은 적도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나는 좀 돌아이였던 거다. ​돌아이의 호기심은 끝이 없었다. 밤하늘을 쳐다보던 아이는 학교 도서관에서 우주의 신비, 같은 제목이 붙은 과학도서들을 빌려 읽었다. 광활한 세계가 거기 있었다. 하나의 세계는 또 다른 세계로 향하는 문이 되어주었다. 똥 맛을 보던 아이는 이제 책 맛을 알게 된 것이다. 세계는 거대한 책이었다.
​   당신이 지루한 곳에 산다고 해도(우리 '모두' 지루한 곳에 살고 있다), 그 장소를 보는 방식을 선택할 수는 있다. 날마다 똑같은 것들을 계속해서 보면서 그것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 왜 그렇게 존재하는지, 어떻게 더 나아질지 등에 대해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무언가를 배울 수도 있다. (본문 중에서)
    내 어린 시절은 구멍난 신발 밑창 같았다. 뾰족한 자갈이 들어간 신발을 신고 걷는 심정이었달까. 신을 벗고 털어내면 어디서 또 다른 자갈이 굴러들어와 발바닥을 찔러대는 식이었다. 결핍이 결핍을 낳고 슬픔이 슬픔을 낳았던 거다. 저 누추한 구멍 바깥으로 줄줄 새나가버리고 싶던 때가 많았다. 나를 구원한 것은 호기심이었다. 천성적으로 이상한 궁금증이 많았던 나는 내 슬픔마저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의연함이 생겼다. 밤하늘 같은 캄캄한 세계에서 별을 따듯이 내 슬픔을 캐고 또 캤다. 덕분에 나는 뱀과 밤과 별, 똥 모두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가치를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우주는 날로  광활해져갔다.
    ​원숭이와 인간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인간의 DNA와 원숭이의 DNA는 거의 비슷하다. 몇몇 원숭이들은 인간처럼 도구도 사용하고 자신들만의 의사소통도 가능하다. 하지만 두 종의 결정적인 차이는 인간과 달리 원숭이들은 '왜'라고 질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본문 중에서)
    호기심의 모든 것을 파헤치는 이 책에서는 성욕, 식욕, 주거욕 다음으로 호기심을 인간의 네 번째 본능으로 꼽는다. 인간과 다른 동물의 결정적인 차이를 만드는 것이 바로 이 네 번째 본능, 호기심이라고 주장한다. 현재의 문명 사회를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이 호기심이라는 것이다. 한데, 호기심이라고 다 같은 호기심은 아니다. 책에 의하면 호기심에도 급이 있다.
     내가 열여섯 살이 되면 지금의 어른들은 다 죽고 없나요? 내 눈이 파리로 변하면 어떻게 돼요? 시간이 뭐예요? 아빠는 전에 원숭이였어요? 왜 나는 내 그림자에서 도망갈 수 없어요? 내가 엄마 조금하고 아빠 조금으로 만들어졌다면, 나의 나머지 조금은 어디에서 온 거예요? 나도 예수님처럼 십자가에서 죽게 되나요? ​(본문 중에서)
    어린 아이들은 하찮은 것에도 감탄하고 질문을 던진다. 모든 것이 새롭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이라면 무엇이든 흥미를 보이는 성질을 책에서는 '다양성 호기심'이라고 부른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는 다양성 호기심을 설명해주는 좋은 예가 된다. 사람들은 실시간으로 뉴스를 접하면서 다양성 호기심을 충족시킨다. 다양성 호기심은 들판에 풀어놓은 염소떼와 같다. 염소들은 제멋대로 돌아다니면서 이 풀 저 풀을 뜯어먹는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풀을 발견한다. 혀에 감기는 맛이 그만이다. 염소는 멈춰 서서 그 풀을 오래오래 씹어 맛본다. 염소는 자연스럽게 그 풀에 대해 알게 된다. 이파리 모양과 색, 맛과 감촉, 풀냄새까지 점점 좋아진다. 염소는 이제 목표를 갖고 주의를 탐색하기 시작한다. 마음에 드는 풀이 주로 어디에 서식하는지, 다른 염소들은 어떤 풀을 좋아하는지, 이런 풀과 비슷한 풀은 없는지 궁금해진다. 이 풀 저 풀 맛보고 돌아다니던 염소는 이제 들판에 관심을 갖게 된다. 들판에 대한 염소의 관심을 책에서는 '지적 호기심'이라고 칭한다. 다양성 호기심에 일정한 방향성이 생길 때 지적 호기심이 싹튼다는 것이다.
 
   ​ 어떤 주제에 대해 무언가를 알게 되면 그 주제에 대해 내가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간극을 좁히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다. 지적 호기심은 지식의 빈틈, 지식의 간극에서 나온다. (본문 중에서)
 
​   염소가 마음에 드는 풀을 발견했을 때, 지적 호기심이 싹트기 시작한다. 그러나 염소가 그 풀을 오래오래 씹고 뜯고 맛보지 않았다면, 지적 호기심이 발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염소는 풀을 씹으면서 풀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풀에 대한 정보가 쌓이자 염소는 이제 들판을 탐색할 필요를 느낀 것이다. 책에서 염소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재미 있는 예를 들어본 것뿐이다. 예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지적 호기심을 싹틔우는 것은 무지에 대한 자각이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책에 의하면, 배경지식은 지적 호기심을 이끌어주는 중요한 양분이 된다. 호기심이 지식을 이끄는 것만큼이나 지식도 호기심을 이끌어준다는 것이다. 풀에 대한 정보가 염소의 들판 탐색을 한결 수월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   지식을 많이 쌓지 못한 아이는 재료가 없는 조각가나 마찬가지다. 그 아이에게 창의성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직 이론상으로만 그럴 뿐이고 그 창의성을 실현할 수가 없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창의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초 지식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 주장을 바탕으로 진보주의적 교육관과 주입식 교육관의 실재적 문제들을 깊이 있게 파고든다. ​다양한 이론과 주장이 등장하지만 핵심은 변함이 없다. 그림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빛과 어둠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림자가 궁금한 아이는 인터넷 검색창에 <그림자가 무엇인가요>라고 칠 것이다. 길게 쓸 것도 없다. <그림자>만 쳐도 삽시에 엄청난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정보의 간극이 손쉽게 메워지는 것이다. 책에서는 인터넷 사용의 해악을 우려한다. 물론 잘만 이용하면 인터넷은 풍부한 지식의 바다가 된다. 그런데 바다에 발만 담궈 보고 마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그저 하나의 답을 얻는 것으로 만족해 버리는 것이다. 세계는 수수께끼보다는 미스터리에 가깝다. 미스터리는 단조로운 삶에 긴장과 활력을 부여한다. ​좋은 호기심은 미스터리에 뿌리를 내린다. 삶이 심심하다는 당신에게 책에서 내놓는 답은 간단하다. 미스터리를 발견하라. 지금보다 삶이 풍족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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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8-12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재미있는 리뷰군요.

kmrmrmr 2015-05-11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잘 보고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