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의 사춘기 - 사랑, 일, 결혼, 자신까지 외면하고픈 30대의 마음 심리학
한기연 지음 / 팜파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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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중학교 때였을 것이다. 질풍노도(疾風怒導)라고 하는 말을 알게 된 것은. 그것이 뜻하는 내용과 그 말의 어감이 묘하게 어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 말을 발음할 때마다 보이지 않는 거센 바람과 물결이 느껴졌다. 그 말은 나를 어디 먼 데로 순식간에 데려다 줄 것 같았다. 생소한 말이었음에도 나는 그 말을 노래하듯 흘리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굉장히 매력적인 그 말을 발음하면서 나는 사춘기 시절을 지나온 것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는 '사춘기'를 지나오면서 크고 작은 시련과 불행이 있었지만 시간은 나를 붙들지 않았다. 이십대의 어느 날 문득 뒤를 돌아보다 나는 알았다. 그 '바람의 시절'은 지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사춘기(思春期)라는 말에 담긴 내용이 나는 참 마음에 든다. 사춘기의 '사' 자가 '생각 사'라는 것을 알고 나는 또 이 말에 매력을 느꼈다. '꿈을 생각하는 시기'라는 사춘기. 몸과 마음이 일각일각 성장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꿈까지 생각해야 하는 시기가 사춘기인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사추기(思秋期)라는 말이 생겼다. '인생의 두 번째 사춘기'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주로 중장년층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이 겪는 허무감이나 우울감에 빗대고 있다. 그렇지만 반드시 중장년층에만 인생의 두 번째 사춘기가 찾아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에게는 몇 번의 크고 작은 전환기가 오게 마련이고 그 때가 언제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심리 상담 일을 하고 있는 저자는『 서른다섯의 사춘기 』에서 '인생의 두 번째 사춘기'를 어떻게 하면 건강하고 지혜롭게 보낼 것인가 이야기하고 있다. 제목에 드러나듯이 삼십대 내담자들의 심리상담 내용을 소개하면서 그 문제 안에 작용하는 심리적 동기와 원인들을 알기 쉽게 풀어내고 있다. 인생에서 삼십대는 중요한 선택과 변화가 많은 시기이다. 취직과 결혼, 부모의 병환과 죽음, 주변사람들의 결혼과 죽음. 취직을 하게 되면 새로운 집단에 적응해 나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평생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야 할 결혼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그것이 원만하지 못하면 우리는 어디에서 그 뿌리를 찾아야 할까. 상대방을 탓하거나 자신을 탓하는 일을 잠시 멈추고 자기 내면에 흐르는 시간의 길을 되짚어보아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모르는 방식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매여 있고 사로잡혀 있다는 말 아닐까? 과거에 사로잡혀 있다면 인생을 앞으로 나아가게 할 길이 없으니 벗어나야 한다.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어떻게 내가 여기까지 왔는가? 나는 왜 이런 성격을 가졌을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것들을 이해하게 된다는 말이다. 현재 반복되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그 원인을 알아보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력을 파고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왜?'라는 질문에 만족스러운 대답을 해야 한다.(267 ~ 268쪽)

 


    우리를 격분시키고 울부짖게 만드는 것은 바로 눈앞에 있는 대상이 아니라 고여 있는 상처들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 아닌데 어처구니없이 분노를 터뜨리거나 별일 아닌데도 마음을 움켜쥐고 눈물을 짜낸 적이 있다면 귀기울여봐야 할 일이다.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인식 과정에 작용하는 좌뇌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남자에 비해 우뇌가 발달한 여성들은 직관적이고 감정적라고 한다. 같은 일에도 남성과 여성이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른 것도 이 때문이라고. 이 책에서는 삼십대 여성이 겪는 사추기, 즉 인생의 두 번째 전환기를 다루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이십대이거나 삼십대를 훌쩍 넘어선 나이더라도 혹은 남성이라도 이 책에서 많은 도움을 받으리라 생각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아직 이십대, 곧 삼십대의 문턱을 오를 나이이다. 사람은 각자의 인생에서 자기만의 전환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시기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첫걸음을 떼기가 그토록 힘겨운 이유는 관성 때문이다. 관성의 법칙이 말하는 바는 정지해 있는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는 성향이 있고, 움직이고 있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한 가지 변화를 일으키려고 노력하는 초기의 나는 정지 중인 물체이다. 뭔가 다르게 하려는 당신의 시도에 대해 관성은 지금껏 해왔던 그대로 계속하라고 밀어붙일 것이다.(250쪽)

 


   성공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실패만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안전지대란 안전한 곳이 아니라 어쩌면 삶의 감옥일 수도 있다'고 했는데, 나는 그 말이 나를 향한 것만 같아 가슴이 콕콕 아렸다. 어쩌면 나는 과거와 미래라는 유령 같은 시간에 갇혀 정작 현재를 살아내지 못하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했다. 죽은 시간들로 내 삶을 옭아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새해가 시작되었다. 새로움 앞에 환호하고 가슴 설레이는 것은 잠시이다. 그 새로운 길 위에 놓인 '나'는 낡고 먼지 낀 중고이기 때문이다. 이제 눈앞에 보이는 것들 너머의 것, 조용히 죽어있다가도 한순간 풀썩 일어나는 먼지 같은 '나'의 상처를 들여다보아야 할 때이다. 남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그 시간들까지 상처로 얼룩지면 안 될 일이다. 나는 조금씩 현재와 화합하는 법을 배워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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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가 내리던 저녁 - 중국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스져춘 외 지음, 이욱연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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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은 근대 중국작가들의 작품을 선별해 모은 소설집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작품은 중국 근대문학 이후부터에 1949년까지의 시기에 창작된 것이다. 즉 청조말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에 이르기까지 역동적이었던 중국의 근대사를 반영하고 있다. 책에 수록된 작품들은 전체적으로 암울하게 읽힌다. 혼란스러웠던 중국의 근대사가 작품 곳곳에 스며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무심코 길가를 쳐다보았다. 한 여자가 가게 카운터 앞에 앉아 있었다. 우울한 눈빛으로. 나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녀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내 아내처럼 보였다.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스져춘,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 229쪽) 


 

   표제작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은 이 책을 통해서 국내에는 첫 소개되는 작품이다. 스져춘의 대표작인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을 우선 먼저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상하이에 사는 평범한 회사원 '나'는 퇴근길에서 한 여자를 만난다. 빗속에서 만난 한 여자를 통해 '나'는 신선한 자극을 받는다. 빗속의 여자는 일상의 단조로움을 깨고 다른 세계의 환상과 설레임을 제공한다. 그것은 실제가 아니라 착각, 판타지에서 그친다. 비가 그쳐 우산을 접는 순간 우산이 쓸모를 다해 거추장스러워지듯이 그 여자와의 만남은 일시적이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장맛비가 내리던 저녁>은 빗속의 여자와 현실의 아내가 대립하는 형상을 보인다. 두 여인의 대립 이미지는 판타지와 단조로운 일상을 형상화하고 있다.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은 이 소설집의 제목으로 손색 없지만, 그 작품의 내용이 이 소설집 전체를 대표하기에 다소 무리가 있다는 생각. 축축하고 암울한 작품집 전반의 분위기가 장마 속 저녁의 이미지에 잘 반영되어 있지만, 비 내리는 퇴근길 한 중년남자의 판타지는 마음에 울림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에 수록된 작품들은 암울한 국세() 그려내고 있는 만큼 그 소재나 내용 면에서도 무겁고 참담한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전부 그런 것은 아니다. 루쉰의 <아큐정전>, 쳔충원의 <샤오샤오>, 마오뚠의 <린씨네 가게> 같은 작품은 비록 그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고는 해도 상당히 해학적이며 재미있다. 그 중에서도 <샤오샤오>는 여타의 작품보다 흥미롭게 읽힌다.

 


 그때 남편은 산아래로 가서 산딸기를 따가지고 왔고 바둑이는 노래를 여러 곡 불렀는데 마지막에는 샤오샤오를 위해 불렀다. 예쁜 아가씨 집 앞 비탈길 다른 사람은 적은데 사내들은 많네 쇠신 짚신이 다 닳은 것이 그대 아니면 누구 탓일까? 그러고는 샤오샤오에게 말했다. "나 너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어."

     (쳔충원, 샤오샤오, 135쪽) 


 

   어린 신랑에게 시집가는 열두 살 소녀 '샤오샤오'(주인물이 작품의 제목이다)는 남편보다 9살이 많다. 꼬마신랑이라 하면 우리 나라의 옛 풍습과도 유사한 면이 상당해서 친근하게 읽힌다. 여주인공 '샤오샤오'의 삶에 대한 태도가 주목할 만하다. 그는 현실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데, 그 모습이 익살맞게 표현되어 있어서 자칫 엄숙해지거나 근거없는 낭만으로 빠져들지가 않는다. 세계사의 주류에 휩쓸려 국제정세가 혼란스러웠지만, 샤오샤오의 거주지는 그것과는 전혀 무관한 듯 보인다. 그들 세계에 침입자처럼 등장하는 '여학생'이란 존재(근대화의 한 표상으로 등장한다)도 그들의 전통사회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 남편이 아닌 딴 사내의 아이를 낳은 샤오샤오가 후에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며느리를 얻는다는 내용으로 끝맺는 이 소설은  원형구조를 띠고 있다. 돌고 도는 반복적 순환. 소설의 구조적 측면에서 볼 때 원형구조는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테두리(여기서는 전통사회의 관례)를 더 강렬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샤오샤오의 순응적이며 동시에 긍정적인 삶의 자세, 익살맞은 문장 속에 살아있는 샤오샤오의 모습은 근대화 속 중국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의중이 엿보인다.

 

 

   <샤오샤오>와 더불어 주목할 작품은 먀오뚠의 작품 <린씨네 가게>. 상하이 사변은 역사적으로 거대한 참사였다. 일본의 외침과 부패한 정부관료들, 그 속에서 민중만이 피해를 본다. 일본의 잔악함이 참변으로 묘사된다면, 그 이면에 존재했던 중국 국민당 관료들의 무책임한 횡포 속에서 몰락하는 소시민의 참담한 현실을 그려내고 있다.

 

 

   수록된 작품들 중에는 국내에 처음으로 번역 소개된 것들이 있다. 번역서는 역시 번역자의 수완에 따라 작품의 생명이 좌우된다. 작품집을 읽는 내내 번역자의 각고의 노력이 투영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탁월한 단어 선정, 깔끔한 문장이 좋았다. 작품에 들어가기 전 작가와 작품에 대한 해설이 되어 있는 친절한 구성도 마음에 든다. 창비세계문학의 의의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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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더 사랑하는 법 - 우리를 특별하게 만드는 일상의 재발견
미란다 줄라이, 해럴 플레처 엮음, 김지은 옮김 / 앨리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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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인기가 지붕을 뚫고 하늘로 치솟고 있는 '지붕킥'의 등장인물 '해리'는 기막힌 인물이다. 해리의 세계에서 중심은 자기자신이다.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빵꾸똥꾸'를 연발하며 제멋대로 감정을 터뜨린다. 해리의 자기중심적인 언행을 보고 있자면 그 정도가 너무 지나쳐서 도무지 허용이 안 되는 것들도 있다.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내 앞에 정말 해리 같은 사람이 있다면 나는 참지 못할 것 같다. 내가 참든 못 참든 해리는 오늘도 '빵꾸똥꾸'를 외치며 '제멋대로'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 자기애(自己愛)라는 것이 무엇일까. 누구나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하고, 욕망을 충족함으로써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이토록 건강한 욕망은 바람직하고 정상적이다. 우리는 때로, 어쩌면 자주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좌절한다. 나의 행복이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거나 해가 될 경우 다른 길로 돌아가기도 한다. 해리의 경우는 어떤가. 해리는 자기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른 사람의 처지나 감정이 어떠하든 자기만 즐거우면 그만이다. 해리의 행동을 자기애가 아니라고 할 생각은 없다. 분명 해리는 자기 자신을 '끔찍히'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해리가 조금만 고개를 돌린다면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빈축에 직면할 것이다. 해리는 어떨지 모르지만 나라면 끔찍할 것 같다.

 

 

  

   누구나 자기만의 욕망이 있고, 어떻게 해야 자신이 행복해질지 알고 있다. 조금 더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자 노력해 나가는 것이 삶 아닐까.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일들은 무엇이 있을까. '행복'이라고 하면 무언가 대단해 보인다. 우리 일상에서 쉽게 이룩하기 어려운 것처럼 생각된다. 우리는 그래서 자꾸만 우리 몫의 행복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알들처럼 행복을 흘려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안 될 일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몫의 행복을 찾고 또 만들어내야 하는 것 아닐까. 옳은 말이다. 그런데 무엇부터 해야할지 어떻게 숨겨진 행복을 찾아나서야 할지 막연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 <나를 더 사랑하는 법>을 소개하려고 한다.

 

 

 

   '우리를 특별하게 만드는 일상의 재발견'이라는 부제가 마음에 든다. 낯선 사람과 손을 잡아본 적이 있나요?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는 일을 해본 적이 있나요?  자신의상처를 자세히 들여다 본 적이 있나요? 부제보다 더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이 질문들이었다. 대체 이런 것들이 '나를 사랑하는 법'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거야? 언뜻 생각하면 그럴 수 있다. 잠시 생각을 거두고 이 책을 펼쳐보자. 나를 사랑하는 법을 책에서 알려준다고? 대체 누가? 이 책을 만든 것은 우리와 함께 숨쉬고 있는 지구인들이다. 그러면 이들은 무슨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는 것일까. 아니다. 이들에게는 소소한 일상의 과제들이 있고, 그것을 실행했을 뿐이다. 과제라고 해서 미리 겁낼 것 없다. 이들이 스스로 만들고 실행한 과제들은 꽤 즐거워 보이니까 말이다. 과제 9: 누군가의 주끈깨나 점을 연결해 별자리 그리기, 과제 11: 상처를 사진으로 찍고 그것에 관해 이야기해보기, 과제 30: 낯선 사람들에게 손을 잡게 한 뒤 그 모습을 사진에 담기, 과제 38: 누군가 말다툼하는 모습을 연기해보기, 내가 해보고 싶은 과제들 몇 가지를 꼽아보았다. 과제 9는 정말로 재미있어 보여서 곧바로 해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상대방이 거부를 해서 못했다. 잘 때 몰래  별자리를 그려볼까 계획중이다.

 

 

 

   '나를 더 사랑하는 법' 과제 목록들은 감동적이다. 낯선 사람들끼리 손잡게 하고 사진 찍기, 친구가 갖고 싶어하는 물건 목록 만들어보기, 다른 사람 머리 땋아주기, 전쟁을 겪은 사람과 인터뷰해보기, 죽음을 앞둔 사람과 시간 보내기, 내가 뭘 하고 다니는 것 같은지 가족에게 물어보기 등등 내 주변을 돌아보고 그것들과 소통하자는 취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제목이 왜 '나를 사랑하는 법'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법'인지 알겠다.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혼자 살아갈 수는 없다. 우리 주변을 돌보고 사랑하는 일이 곧 나를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 해리는 자기 세계에 수많은 자기만 있다. 결코 좋아보이지도 부럽지도 않다. 자기 욕구를 충족시킨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나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양보할 때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나를  사랑하는 법'. 
 

 

 

   미란다 줄라이와 해럴 플레처는 '날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 예술가들'이다. 2002년 어느 날 'Leaming To Love You More'라는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그들이 웹사이트를 통해 제시한 과제에 대해 방문자들이 자신의 결과물들(사진, 글, 동영상 등)을 올리면서 '나를 더 사랑하는 법'은 보다 다양해졌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 <나를 더 사랑하는 법>이다. 이 책은 두 권으로 나뉜다. 한 권은 세계인들의 과제 수행 결과물, 또 한 권은 아나운서 김지은 씨가 엮은 한국편 '나를 더 사랑하는 법'이다. 똑같은 과제라도 그 결과물은 각기 개성을 뿜어내고 있어 즐겁다. 하나하나 과제 결과물에는 그 사람 고유의 감성이 흐르고 있다. 태양을 사진에 담는 과제만 하더라도 사진 속에는 다양한 풍경이 태양을 배경으로 펼쳐져 있다. 과제 27 태양을 사진에 담기. 나도 해보았다. 간만에 제대로 하늘을 보았다. 태양빛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 과제 27이 고맙다. 
 

 



 

 

   그토록 찾아헤매던 파랑새가 바로 자기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벨기에의 동화가 말해주듯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것들은 바로 우리 일상에 있었다. 곰곰 생각해 보지 않아도 우리는 수긍한다. 그렇지만 또 쉽게 잊어버린다. 무언가 그럴 듯한 것을 이룩해야 한다면서 자신을 혹사한다. 물론 그것도 자기애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우리가 꿈꾸는 '무언가 그럴 듯한 것' 때문에 우리가 일상에서 놓치는 소소한 행복들을 말이다. 아깝지 않은가.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행복들이 저기 모래알처럼 반짝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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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괴짜를 넘어서 - 실력은 있지만 실전은 부족한 직장인들에게
밥 실러트 지음, 이한이 옮김 / 오늘의책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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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이 씨가 옮기고, 원저자는 밥 실러트. <창조적 괴짜를 넘어서> 이 책 제목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전적으로 그가 해온 일을 기준으로 해서 판단해야 옳다. '창조적'이란 수식어구가 붙는 데에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이 책의 글쓴이, 밥 실러트는 크리에이티브그룹이라는 사치앤사치에서 회장직을 역임하고 있다. 제네럴푸드, 식품기업에서 시작한 밥 실러트는 탑코 어소시에이츠, 카이로저스의 최고관리자를 경험하고 사치앤사차의 회장에까지 이르렀다. <창조적 괴짜를 넘어서>는 그가 경험한, 즉 그의 노하우를 2~3쪽의 지면에 단편적으로 소개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구성이 어떠한 영향력을 발휘할지는, 우선 잠시 보류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최고관리자로 역할을 수행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우선은 책의 구성과 내용면에 대해서만 읽은이의 관점에서 개인적인 소견만을 일부 피력할 수 있을 뿐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지극히 단편적이다. 어쩌면 글쓴이는 많은 고민을 했을지도 모른다. 일화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창조적 괴짜를 넘어서>는 글쓴이가 직접 단행한, 회사 내에서 기존의 관리자가 감히 실천하지 않는 일들을 언급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어쩌면 그간 나는 너무나 많은 사회적 틀, 규범 안에서 길들여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권위를 버리고 하향형 관리자가 된다는 것은 또다른 논쟁거리를 만들게 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던 탓도 있을 것이다. 현실감각을 유지한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적절한 강압과 타협, 질책과 회유를 속도감 있게 운용하는 기술일 수도 있다. 한 개인이 조직 내의 규범을 벗어나 창의적으로 일 처리를 하고자 할 때 그 조직은 이전 체제를 고수하려 한다. 그럼에도 밥 실러트는 대화의 통로를 만들고 귀를 열어두는 데에 열심을 다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2~3쪽의 지면에 그러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탓에 그가 실제 사용한 방법이 어떤 것이었는지, 살육의 긴장이 도사리고 있는 현실계에서 그의 방법을 배우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은 굉장히 실망스러울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늘 읽을 만하면 토막나 읽는 이를 언짢게 만든다.

 

 

   책의 구성적인 면에서 읽는이로서 나는 부정적이지만, 글쓴이 밥 실러트에 대해서는 우호적임을 밝힌다. 그는 평사원의 이야기에 개방적인 모습을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처럼 '읽힌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에게서는 그러한 인물이야말로 굉장한 역할모델이다. 누구나 꿈꾸는, 그러나 늘 위험 변수가 내재되어 있는 개방성은 함부로 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밥 실러트는 그러한 일을 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어떤 방법으로, 또 어떤 시련이 있었는지에 대한 섬세한 설명이 없는 이 책이 안타깝다. 그러한 갈증은 어쩌면 섣부른 것일지도 모른다. 이미 벌써 그 부분까지 밥 실러트는 감안하고 이 책을 집필하지 않았을까. 그는 창조적 괴짜를 넘어선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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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움직이는 100가지 법칙 - 하인리히에서 깨진 유리창까지
이영직 지음 / 스마트비즈니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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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피그말리온은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 이상적인 여성상을 조각하고 그 조각상을 사랑하게 된다. 너무 사랑하게 된 나머지 조각상이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열망을 품게 된다. 그리고 아프로디테 여신 축제일에 자신의 소망을 이뤄달라 간청한다. 그의 간절함이 여신에게 닿아 자신이 만든 조각상을 아내로 맞게 된다는 피그말리온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리라는 희망적인 암시가 담겨 있어서 그렇다. 지난 해에 '시크릿'이라는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그 책은 마치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발견한 양 호들갑을 떨어댔지만, 결국 '피그말리온 효과'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얘기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험한 생각을 입 밖에 내면 사람들은 잠시나마 불안에 사로잡힌다. 말이 씨가 된다는 옛말이 세뇌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노랫말에도 피그말리온의 이야기가 주는 암시가 작용하고 있다.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 가기를. 피그말리온은 신화 속 인물일 뿐이지만 사람들은 그 신화에서 희망을 발견했다. 피그말리온의 이야기처럼 간절히 바라면 이뤄지는 경우를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한다.

 

  

    피그말리온 효과와 비슷한 것으로 플라세보, 우리말로 속임약 효과라는 것이 있다. 병에 아무 효과가 없는 약을 치료제라고 속이고 투약했을  때 환자가 그 약을 진짜 치료제라고 믿고 복용하면 실제로 치료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조각상 앞에서 실현 불가능한 꿈을 열망했던 피그말리온의 이야기나 가짜 약에 대한 믿음에서 오는 플라세보 효과 모두 긍정적 자기암시의 힘을 보여준다 하겠다. 어쩌면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우리 의지나 상황이 아니라 '희망'이 아닐까.

 

 

 

   피그말리온 효과, 플라세보 효과처럼 우리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법칙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법칙'하면 딱딱한 규범이나 수학, 철학적인 것들이 떠오르기 마련인데, 일상생활에서 흔히 겪으면서 간과했던 것들이라서 또 한 번 놀랐다. 지은이 이영직 씨의 이야기  방식은 재미있다. 단순한 법칙들만 열거하는 것이 아니라 흥미를 유발하는 이야기들과 함께 풀어나가고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었음 직한 일들에 법칙을 적용시키면서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도도새의 법칙이 인상적이었다. 루이스 캐럴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도도새는 인도양의 작은 섬 모리셔스에 서식하는 새였다고 한다. 그곳은 자연환경이 뛰어나고 먹이가 사방에 널려 있으며 천적마저 없었다. 따라서 애써 날아오를 필요가 없었다. 포르투갈 선원들이 이 섬을 찾았을 때 새들은 날 줄 몰랐다고 한다. 그래서 붙여준 이름이 '도도'였다. 바보, 멍청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후 사람들과 동물들이 섬에 유입되면서 바보새 도도(들)은  멸종의 길을 갔다. 외부의 적이나 경쟁이 없으면 갑작스러운 시련이 닥칠 때 대응할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도도 이야기는 시사하고 있다. 선의의 경쟁자나 또렷한 목표가 없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발전이 더디다는 것. 공감이 간다. 도도새 이야기를 읽고 나는 나 자신 또 하나의 '도도'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반성의 기회를 가졌다.

 

 

 

   이 책 <세상을 움직이는 100가지 법칙>은 이론서가 아니라 실용서다. 단순히 상식을 늘리는 것을 넘어 우리 실제 생활에 적용시킬 수 있겠다. 또한 우리 주변 사람들과 나 자신, 우리 세상을 움직이는 법칙들을 일상에서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100가지 법칙들을 알고 나니 든든한 기분이 되었다. 이제 이것들을 얼마나 잘 이용하는가 하는 문제만 남았다.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는 에디슨 말의 본뜻이 99%의 노력을 해도 1%의 영감이 없으면 소용 없다,였다는 것을 알아버려서 조금 기가 막히고 힘이 빠지지만 그 말을 상쇄해줄 더 많은 법칙들이 있으니 괜찮다. 새해에는 긍정적 자기 암시의 힘을 밀고 나가야겠다. 그리고 무언가 목표를 세우고 선의의 경쟁자도 마음속에 들여야겠다. 도도새 처지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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