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중력 증후군 - 제1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윤고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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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달과 중력, 무중력 증후군에서 현실은 지독한 억압이고 억눌림이다.  탈출욕구가 내적인 활동(주체성)이 아니고, 뉴스(달 여러개...)에 기대고 있다. 외부자극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런 이야기, 식상하다.  글쓴이 약력을 본다.  1980년생, 젊은 작가의 예리한 펜대가 움직여 신랄한 글쓰기를 했다는데, 내 혀는 감각을 잃었나, 책장을 넘길수록 어디서 본 듯한 내용의 조합이 불편함을 가중시켰다.  나는 <무중력 증후군>을 읽는 내내 편하지 못했다.  책을 덮는 순간 나는 비로소 편해졌다.  자유로워졌다. 홀가분하다.  나는 중력이 더 익숙한가.  병이 낫기보다는 오히려 병으로 고생하는, 괴로워하는 날들이 더 나은가.  아닐 것이다.  이건 익숙한 낯섦에 대한 거부감이다.

    <무중력 증후군>은 한겨레 문학상을 받았다.  한겨레 신문의 취지가 무엇인지 잘 안다.  민족성과 해방, 자유. 그렇기 때문에 <무중력 중후군>이 어느 정도 한겨레 문학상의 기준에 적합하다는 것도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어디선가 보았던 듯한, 어느 사회비평서에서 만날천날 만나왔던 사회분석이 <무중력 증후군>에는 하나 새로울 것없이 아귀에 틀어맞춘 듯이 들어차 있다. 전형적인 소설 형식만을 사용하고 있다. 내용에서의 신선함은 덜하고, 대신 정형

2.

    외로움은 최고의 비아그라다. (9쪽)

   '비아그라' ?  외로움을 왜 비아그라로 표현했을까.  첫문장은 소설 작법대로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다. <무증력 증후군>이 가진 힘이다.

   그러나 나를 도시적 인간으로 증명할 만한 사실은 한 가지뿐이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소비하고 있다는 것, 심지어 대량생산되는 뉴스까지도. (9쪽)

   <무중력 증후군>은 정공법을 사용하고 있다. 

   내가 만난 <무중력 증후군>은 두 가지 이야기로 끌어나가고 있다.  성적인 요소, 그리고 '소비'적인 인간.  현대에 접어들어 성은 살고파는 상품으로 전락했다.  이는 제국주의 시대의 산물이다.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도 성은 역시 상품이다.  여전히 사회 일각에는 프리섹스가 성행하는 지금도 여전히 성적인 농담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금기시되어야 할 무엇이다.  악으로 통용되고 있다. 무엇 때문에 성적인 것 그 자체를 죄악으로 치부하는가. 기저까지 파고들 능력이, 진실로 내게 없다. 

   무중력 증후군에서 먼저 밝히는 '비아그라'의 특성이 무엇인지, 그 상징성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비아그라는 자연적인 성을 약품으로 장기화시키는 것이다. 쾌감의 극대화를 노려서 만든 상품이다. 그렇다면 왜 그러한 상품에 노예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공허감.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사회비평서, 문학 평론집에서도 그렇게 말해오고, 앞으로도 크게 다른 이야기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

   공허감,  기괴한 갈증이다.  우리 시대는 채워지는 않는 허기에 시달리고 있다. 그럴 때, 불가능한 만족감을 달래기 위해서는 자연을 거스르는 일이 가장 손쉽지 않을까.  인간의 진실성을 외면하고, 인위적인 대체품을 선택하는 일.  비아그라는 그러한 행위의 상징으로서 가장 적합하다.  안타깝게도 윤고은 씨의 작품은  그러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비아그라의 상징성은, 첫문장을 읽는 순간 드러나고 말았다.  다음 문장, 소설이 전개될수록, 예상을 뒤집지는 못했다.

3.

  새로운 뉴스가 등장해 나를 발기시켜주기를, 출근할 때마다 나는 소망했다. (10쪽)

   당신은 뉴스를 얼마나 신뢰하십니까? 이런 대답은 여론의 비밀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요, 라고 묻는 것과 동일한 선상에 놓여 있다. 진실은 어디에도 없다. 

   나는 내 감정을 정확히 모른다.  현대에서 상담이 창대해지리라는 예상은 아무래도 적중할 것 같다.  감정을 중심으로, 당신은 지금 무엇을 느낍니까?  정말 그것을 원합니까?  그러한 생각이 어떤 도움이 되는지요. 

   심리학은 인간 본연으로 파고들기를 시작했고, 지금 세상은 열광중이다.  단순히 긍정의 심리학에 그치지 않고, 속에서 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작업.  자, 한 번 속으로 물어보자.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직면하게 되는 나는 참으로 공허하다.  나는 내 속을 모른다. 모르겠다. 지나친 자기방어인가.  내가 진정 원하는것은 무엇인가? 이 낯선 질문에 식은땀이 흐른다.

   반대로(역으로) 오늘 아침 뉴스에서는 무슨 무슨 일을 내게 전달해주었는지, 그리고 그 일은 내게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즉 외부자극에 오감을 곤두세우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일상이 지겹다, 매일 챗바퀴 돌리듯 똑같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참자아가 없는 탓, 혹은 외부자극에 순응하여 생활하는 데 익숙해진 탓. 어느 것에도 정답은 없을 것이다.

4.

   한겨레 문학상, 작품을 몇 편 읽었다.  몇 편만 읽었을 뿐이다.  그런데 윤고은 씨의 작품에서 나는 신예의 참신성보다는 무난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그리고 그의 작품을 선택한 한겨레의 기준에 적잖게 실망을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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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놀 지는 마을
유모토 카즈미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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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놀고 집에 가야지.”

“조금만 더”

“저기 하늘 한번 봐봐. 깜깜해지고 있지? 어두워지면 집에 가는 거야.”

(하늘을 올려다보며) “해님도 집에 가는 거야?”

“응. 해님도 집에 간대.”


 

    다섯 살 난 조카와 놀이터에서 나누었던 대화다. 저녁놀 지는 하늘 아래서 나누었던 짤막한 대화는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해님도 집에 가는’ 시간. 저물어가는 하늘, 곱게 물들어가는 하늘의 뒷모습은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감싸는 포근한 손길 같다. 나에게 저녁놀은 평화의 색, 평화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깜깜해지고 있는 하늘 아래,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우리를 감싸줄 가족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인가. 그러나 때로 우리는 지는 해를 따라 집으로부터 멀리멀리 달아나고 싶은 자기를 발견하기도 한다.

 

 

    ‘나’는 이혼한 엄마와 산다. 엄마는 “뺀질이” 같은 아버지를 피해 서쪽으로 서쪽으로 이사를 거듭한다. 그러던 어느 날 후줄근한 노인이 나타난다. 짱구영감이라 불리는 그 노인은 ‘나’의 외할아버지, 엄마의 아버지이다. 짱구영감이 나타나고부터 엄마는 한밤중이면 손톱을 깎는다. 한밤중에 손톱을 깎으면 부모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다면서. 그러면서도 짱구영감이 좋아하는 바지락 된장국을 끓이고, 벽에 기대 잠들어 있는 짱구영감을 향해 애처로운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나’의 시선을 좇아 비춰지는 엄마의 이중성, 짱구영감을 향한 애증은 지난날 가족을 지키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에서 기인하고 있다. 시대적, 개인적 상황 속에서 가족을 책임지지 못한 채 이리저리 떠돌며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던 짱구영감과 그의 빈자리를 고스란히 느끼며 살아온 엄마와의 팽팽한 대립 구도는 어느 저녁 짱구영감이 잡아온 피조개를 나눠먹으며 느슨해진다. 직장상사와의 불륜으로 생긴 아이를 지운 엄마를 위해 짱구영감은 서너 시간 거리의 개펄로 나가 피조개를 잔뜩 잡아온다. 머리를 맞대고 둘러앉아 피조개를 먹는 짱구영감과 엄마, 그리고 ‘나’의 모습에는 가족, 그 참을 수 없는 존재가 주는 상처와 위안 그 애틋한 이중성이 잘 그려져 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삶의 힘이 되지만, 때때로 우리를 참을 수 없게 만드는 가족이라는 이름. 그 존재의 이중성을 담담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는 소설 『저녁놀 지는 마을』에서 저녁놀은 인생의 황혼기, 곧 죽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짱구영감과 엄마의 죽음, 그리고 엄마가 짱구영감을 향한 것처럼 애증을 느꼈던 아버지의 죽음이 ‘나’의 회상 속에서 이어진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향하는 태양의 필연적 몰락처럼 그 아래 살아가는 우리들의 죽음 또한 예견된 것이다. 이 유한한 시간, 쇠락하는 시간 속에서 우리를 붙들어줄 것은 무엇일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리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이 아닐까. 해 저무는 하늘 아래 양 어깨에 피조개를 걸머진 짱구영감의 무게, 한밤중에 손톱을 깎으며 사랑과 미움 사이를 오가는 엄마의 무게. 그 무게가 우리를 살아있게 해주는 것 아닐까.

 


“추운 겨울, 한밤중에 눈을 뜨면 기분 좋은 소리가 들렸지. 그러면 말이 풀을 먹는군,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잠들곤 했어.”

짱구영감은 잠시 침묵하고 나서 말을 이었다.

“아주 편안하고 쾌적한 소리였지.” (pp.131~132)


 

    모두가 잠든 한밤중, 잠을 깨어 캄캄한 어둠 속에서 눈을 뜨는 순간과 같은 외롭고 두려운 시간에 우리를 다독여줄 존재, 가족. 내 곁에 있는 고마운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인가. 혹, 참을 수 없는 무게만 얹어주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해 본다. 이 순간에도 해는 서쪽으로 서쪽으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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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 시집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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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유월쯤엔 원주에 가자. 토지문학관에 가자. 박경리 선생님께 가자, 하던 친구의 간곡한 바람, 약속이 있었다. 그리고 지난 5월 5일 박경리 선생님의 타계 소식. 그 품에, 흙냄새 피어날 것 같은, 토지 같은 품에 안겨보고 싶었는데요, 선생님. 애석한 일이었다. 타계 소식에 이어 선생님의 유고시집이 출간되었다. 선생님께서 '참 홀가분하게' 버리고 간 작품과 생의 발자취.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에게는 선물 같은 시집이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산다는 것, 부분)


 

     '옛날의 그 집', "빈 창고같이 휭덩그레한 큰 집",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꾹새가 울었고/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그 집"으로 박경리 선생님은 우리를 데려간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거운 밤에는/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무섭기도 했지만/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그를, 박경리 선생님을 지탱해 주었던, '옛날의 그 집'. 이제는 "모진 세월 가고" 편안하다 하신다. 늙어서 편안하다 하신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하시며 하나씩 하나씩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회고의 목소리는 참으로 담담하다.

 

 

     "두 눈이 눈깔사탕같이 파아랗고/몸이 하얀 용이 나타난 꿈". 그것이 선생님의 태몽이었다 한다. 한참 호랑이 용 쓰는 초저녁에 태어났다 하여, 그 팔자 샐 것이 예감되었단다. 파란 눈, 하얀 몸. 용꿈으로 태어난 호랑이. 박경리 선생님은 고달팠을 인생길을 '여행'에 빗대고 있다. 기차 타고 비행기 타고 배 타고 떠나는 여행은 별로 하지 않았고, "은밀하게 내면으로 내면으로" 여행하셨다 한다. 그 내밀한 여행의 풍경에는 "누에꼬치 속으로 숨어들 듯/창작실 문 안으로 사라지는" "오묘한 생각 품은 듯 청결하고/젊은 매같이 고독해 보이는" '산골 창작실의 예술가들'이 있고, "회색 세루 치마와 저고리를 입은" 어머니의 모습이 있다. "몸매는 깡마르고 자그마했"고, "약간의 매부리코/그 코끝에 눈물방울이 달리곤 했던" 외할머니의 모습, "장날이 되면 소금으로 양치질하고/얼굴은 수건으로 빡빡 닦고/얹은머리를 한 뒤/열다섯 새 고운 베옷으로 갈아입고/작은 지게를 진 머슴새끼 앞세우며/출타하는 뒷모습이 훤칠했"던 친할머니의 모습이 있다. "첫개라는 어촌의 하룻밤/홍합과 아지매와 고양이"가 있다. 육이오전쟁, 박정희 군사정권 시대 등 한민족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 한()이 있다.

 

 


     육신의 아픈 기억은

     쉽게 지워진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는

     덧나기 일쑤이다

     떠났다가도 돌아와서

     깊은 밤 나를 쳐다보곤 한다

     나를 쳐다볼 뿐만 아니라

     때론 슬프게 흐느끼고

     때론 분노로 떨게 하고

     절망을 안겨 주기도 한다

     육신의 아픔은 감각이지만

     마음의 상처는

     삶의 본질과 닿아 있기 때문일까

     그것을 한이라 하는가

 

 

     - , 전문

 

 


     선생님은 "벼개에 머리 얹고 곰곰이 생각하니/그것 다 바느질이 아니었던가" 하신다. 사무치는 한, 그것들 "개미 쳇바퀴 돌 듯/한 땀 한 땀 기워 나간 흔적들"이 바로 글줄로 남은 것 아닌가 하신다. 글쓰기는 자신의 '내면으로의 여행'이자 능동적 삶의 토대였다. 흙, 토지를 떠나지 않고 그 품에서 자신의 한, 타인의 한, 한민족의 한을 한 땀 한 땀 기워내셨던 박경리 선생. 그에게 있어 지상에서 숨쉬는 것만이 아니라 지상의 숨을 끊고 흙으로 돌아가는 것 역시 '생명'이었다. 이제 그는 흙으로, 토지로 돌아갔다. 그 스스로 흙이 되었다. 흙냄새 나는 어디에나 그의 숨결, 혼, 한이 살아 숨쉴 것이다. 그리고 여기 그의 "정처없던 여행기", 그 "여행의 기록"에도 그의 숨결은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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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통합논술 多지식 세계명작 3
루이스 캐롤 지음, 김정신 엮음 / 대교출판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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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원제: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서 겪은 모험’)》는 영국의 수학자이자 작가인 찰스 루트위지 도드슨(Charles Lutwidge Dodgson)이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이라는 필명으로 1865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앨리스는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하고 있다. 옥스퍼드 대학 학장이었던 친구의 딸 앨리스 리델이 바로 그 실제 인물이다. 여섯 살 난 앨리스에게 첫눈에 반한 루이스 캐럴은 동화가 담긴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훗날 그 편지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바탕이 된다.


   어느 나른한 오후, 책을 읽고 있는 언니 옆에 있던 앨리스 앞으로 말하는 흰 토끼가 지나간다. 앨리스는 말하는 토끼를 따라가다 구멍에 빠지는데, 여기서부터 '이상한 나라의 모험'이 시작된다. 이상한 나라에서 앨리스는 키가 줄었다 늘었다 하며 문을 통과하고, 말하는 동물들, 카드들과 이상한 토론, 경기를 펼치고 마지막에는 재판에까지 참석한다. 이상한 나라에서 수많은 모험을 겪는 동안 앨리스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를 헤아리기 시작한다. 일곱 살 꼬마 앨리스가 자기 안으로 떠나는 모험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


  '정말 이상한 날이야. 어제만 해도 보통 때와 다르지 않았는데. 혹시 내가 갑자기 이상해진 건 아닐까? 가만! 오늘 아침까지는 괜찮았는데...... 내가 정말 이상해졌다면 난 도대체 누구지?' (P. 27)


   말하는 흰토끼와 그리핀, 가짜거북, 모자장수와 3월의 토끼, 도마우스, 공작부인, 카드 여왕 등 이상한 등장인물들과 앨리스의 만남에는 수학적인 대칭과 수수께끼, 수많은 은유와 함축이 담겨 있다. 어린이들이 단숨에 이해하기엔 무리가 있을지 모른다. '대교베텔스만'에서 펴낸 '통합논술 多지식 세계명작' 《이상한 앨리스》는 어린이 - 모든 독자-를 위한 많은 배려를 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알기 어려운 단어에는 그 뜻을 쉽게 풀어놓았고, 이야기 사이사이 유익한 정보들, 간단한 상식들이 함께 곁들여 있어 생각할 시간을 마련해 준다.

 


     도도새

   도도새는 지금은 멸종되어 사라진, 날지 못하는 새를 가리킵니다. '도도'라는 단어의 뜻은 포르투갈어로 '바보'라고 해요. 큰 몸집에 비해 날개가 작아 날지도 못할 뿐 아니라 잘 걷지도 못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지요. 이 새는 1598년 인도양에 있는 모리셔스 섬에서 포르투갈 선원들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답니다. 선원들은 잘 걷지도 못해 도망가지 않는 도도새를 마구 잡아먹었다고 해요. 그리고 이 섬에 사람이 살면서 나무가 훼손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도도새도 서식지를 잃게 되었다고 해요. 결국 도도새는 1681년 모리셔스 섬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답니다. (p. 40)


   앨리스의 모험이 끝나서는 '논술 세상'이 열린다. 모두 다섯 단계로 나뉘어진 부록의 1단계는 '내용 이해하기'이다. 이야기 내용을 되새겨 보는 장(章)이다. 2단계는 '관련 지식 키우기'로 <역사적 사실 알고 논술하기>를 비롯해서 <과학적 사실 알고 논술하기>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3단계는 '창의력, 상상력 키우기'이다. 내가 만약 앨리스라면, 어떻게 이상한 나라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가. 앨리스의 모험이 꿈이 아니라면, 법정에서 앨리스의 결말은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4단계, '비판적, 논리적으로 생각하기'는 본문 내용을 바탕으로 옳고 그른점, 좋고 나쁜점, 고쳐야 할 점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장이다. 마지막 5단계는 '내 생각과 주장을 논술하기'로 3단계와 4단계를 다시 훈련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논술세상 모범 답안'이 있다. 글쎄, 굳이 '모범 답안'이 필요하진 않은 것 같지만, 어린이와 함께 이 책을 읽는 어른들이 참고해서 어린이들의 창의력과 상상력, 논리력에 힘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참으로 탄탄한 구성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이 여섯 살 꼬마 앨리스에게 애정을 느껴 쓰기 시작한 동화 편지. 그의 앨리스에 대한 사랑은 이상한 나라에서 깨어난, 꿈에서 깨어난 앨리스의 모험처럼 되어버렸지만, 그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우리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에 담긴 수많은 은유와 상징들은 읽는 이 한 사람 한 사람마다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설 것이다. 책 제목처럼 이상한 내용이 가득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대교베텔스만에서 펴낸 이 책은 어린이, 청소년, 그리고 성인에 이르기까지 이상한 나라를 여행하는 우리들에게 친절한 안내서 역할을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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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탄생 - 현상과 실재, 인식과 진리, 인간과 자연에 던지는 첫 질문과 첫 깨달음의 현장
콘스탄틴 J. 밤바카스 지음, 이재영 옮김 / 알마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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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을 덮고 떠오르는 물음표. 철학이란 무엇인가? "우주를 이해하려는 시도". 스티븐 와인버그의 말에 따르면 "우주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인간의 삶을 우스운 연극의 수준 위로 고양시켜 그의 삶에 비극의 우아함을 부여해주는 몇 안 되는 것들 중의 하나"라 한다. '우주를 이해하려는 시도'. 비교적 간결하게 정의되는 철학은 그러나,

 

 

     뭣도 모르고 철학책들을 읽어대던 때가 있었다. 까뮈의 시지프스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를 내멋대로 씹어삼켰던 기억. 당시의 책들을 펼쳐보면 밑줄이 많다. 밑줄 없는 문장보다 밑줄 그어진 문장이 더 많다. 그 시절의 나는 왜 그리 밑줄을 그어댔을까. 그건 알 수 없다. 지금 나에게 그 밑줄들은 수많은 암호, 의문부호로 다가올 뿐이다. 어쩌면 그때 나는, 지금 여기 있는 나를 위해 의문부호를 남기고 있었을까.

 

 

     나는 무엇을 찾기 위해 두껍고 아리송한 철학책들을 뒤적였을까. 그리고 나 아닌 다른사람들은 또 무엇을 찾기 위해 철학책들을 읽나. 그보다 앞서 철학자들은 무엇을 찾기 위해...... 아니, 무엇에 답하기 위해 끝없는 의문부호들을 곱씹는 것일까. 닫혀 있는 문 앞에서 노크하는 자들. 끝없이 노크하면서 문 저편의 목소리에 혹은 정적에 귀 기울이는 자들이 철학자가 아닐까. 철학이란 것은 끝없는 의문부호들로 답하는 학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러면 철학은 시작도 끝도 없는 하나의 거대한 우주가 아닌가. 그 우주를 이해하려는 시도로서 나는 『철학의 탄생』을 집어들었던 것.

 

 

     철학에 깊은 뜻을 두지 않은 사람이라도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낙시만드로스, 크세노파네스, 아낙사고라스 따위 철학자들의 이름은 우리에게 생소하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이다. 이 책의 저자 콘스탄틴 J. 밤바카스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사상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역설한다. 형이상학, 윤리학, 심리학, 사회학뿐 아니라 물리, 화학, 우주론, 생물학 등 과학까지도 결합되어 있어서 통일적인 전체성을 띠고 있기 때문.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유럽 사상의 기초가 세워지고 발전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으리라, 서문을 통해 저자는 이 책을 쓴 뜻을 밝히고 있다.

 

 

     그리스의 자연, 사회, 종교 등 철학의 발상지 그리스 지역의 상황에서 이 책은 출발하고 있다. 그리스 사상의 근간이 되어준 그리스 지역의 상황을 살펴봄으로써 그리스 철학에 한 걸음 가까워질 수 있다. 다음 장(章)에서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에 대한 간단한 정리 - 그리스 철학의 역사, 철학자들의 핵심사상 등 -를 해두었다. 밀레토스의 탈레스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장(章)이 열린다. 각 장마다 철학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애와 사상 핵심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가장 흥미 있게 읽었던 장은 '아낙시메네스(기원전585~525년경)'를 다룬 장이었다. 최초의 기원, 최초의 원소 '공기'에서 출발하여 영혼, 신적인 것, 우주기원론, 기상학에까지 미치고 있다. 언젠가 읽었던 바슐라르의 사상도 되짚어 볼 수 있었다. 구성과 내용 모두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다. 그런데 어렵다. 많이 어렵다. 예사로 책장을 넘길 수 없다. "읽을수록 오리무중에 빠진다."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었던 친구의 말이다. "그게 철학이다." 농담 반 진담 반, 내가 받아쳤다. "그럼 철학이 무슨 소용?" 침묵. 끝없이 이어지는 의문부호.

 

 

     다시 돌아와, 철학이란 무엇인가? '우주를 이해하려는 시도'. 그렇다. '시도'이다. 우주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시도, 그것이다. 답하는 것이 아니라 물음을 던지는 일. 끝없이 물음을 던지는 일. 물음으로써 답하는 일. 그 존재 자체로 우리에게 끝없이 물음을 던져주는 것, 그것이 철학일 것이다.  언젠가 흐릿한 불빛 아래에서 밑줄을 그어대던 내가 여기 지금의 나를 위한 의문부호를 남겨두었던 것처럼, 『철학의 탄생』은 우리에게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의문부호를 던져주고 있다. "미래를 향한 열정을 지닌 사람만이 과거의 관념들에 내용과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는 폴 발레리의 말을 끝으로 나는 여기 서투른 의문부호를 찍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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