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의 사춘기 - 사랑, 일, 결혼, 자신까지 외면하고픈 30대의 마음 심리학
한기연 지음 / 팜파스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내가 중학교 때였을 것이다. 질풍노도(疾風怒導)라고 하는 말을 알게 된 것은. 그것이 뜻하는 내용과 그 말의 어감이 묘하게 어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 말을 발음할 때마다 보이지 않는 거센 바람과 물결이 느껴졌다. 그 말은 나를 어디 먼 데로 순식간에 데려다 줄 것 같았다. 생소한 말이었음에도 나는 그 말을 노래하듯 흘리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굉장히 매력적인 그 말을 발음하면서 나는 사춘기 시절을 지나온 것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는 '사춘기'를 지나오면서 크고 작은 시련과 불행이 있었지만 시간은 나를 붙들지 않았다. 이십대의 어느 날 문득 뒤를 돌아보다 나는 알았다. 그 '바람의 시절'은 지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사춘기(思春期)라는 말에 담긴 내용이 나는 참 마음에 든다. 사춘기의 '사' 자가 '생각 사'라는 것을 알고 나는 또 이 말에 매력을 느꼈다. '꿈을 생각하는 시기'라는 사춘기. 몸과 마음이 일각일각 성장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꿈까지 생각해야 하는 시기가 사춘기인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사추기(思秋期)라는 말이 생겼다. '인생의 두 번째 사춘기'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주로 중장년층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이 겪는 허무감이나 우울감에 빗대고 있다. 그렇지만 반드시 중장년층에만 인생의 두 번째 사춘기가 찾아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에게는 몇 번의 크고 작은 전환기가 오게 마련이고 그 때가 언제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심리 상담 일을 하고 있는 저자는『 서른다섯의 사춘기 』에서 '인생의 두 번째 사춘기'를 어떻게 하면 건강하고 지혜롭게 보낼 것인가 이야기하고 있다. 제목에 드러나듯이 삼십대 내담자들의 심리상담 내용을 소개하면서 그 문제 안에 작용하는 심리적 동기와 원인들을 알기 쉽게 풀어내고 있다. 인생에서 삼십대는 중요한 선택과 변화가 많은 시기이다. 취직과 결혼, 부모의 병환과 죽음, 주변사람들의 결혼과 죽음. 취직을 하게 되면 새로운 집단에 적응해 나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평생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야 할 결혼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그것이 원만하지 못하면 우리는 어디에서 그 뿌리를 찾아야 할까. 상대방을 탓하거나 자신을 탓하는 일을 잠시 멈추고 자기 내면에 흐르는 시간의 길을 되짚어보아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모르는 방식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매여 있고 사로잡혀 있다는 말 아닐까? 과거에 사로잡혀 있다면 인생을 앞으로 나아가게 할 길이 없으니 벗어나야 한다.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어떻게 내가 여기까지 왔는가? 나는 왜 이런 성격을 가졌을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것들을 이해하게 된다는 말이다. 현재 반복되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그 원인을 알아보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력을 파고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왜?'라는 질문에 만족스러운 대답을 해야 한다.(267 ~ 268쪽)

 


    우리를 격분시키고 울부짖게 만드는 것은 바로 눈앞에 있는 대상이 아니라 고여 있는 상처들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 아닌데 어처구니없이 분노를 터뜨리거나 별일 아닌데도 마음을 움켜쥐고 눈물을 짜낸 적이 있다면 귀기울여봐야 할 일이다.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인식 과정에 작용하는 좌뇌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남자에 비해 우뇌가 발달한 여성들은 직관적이고 감정적라고 한다. 같은 일에도 남성과 여성이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른 것도 이 때문이라고. 이 책에서는 삼십대 여성이 겪는 사추기, 즉 인생의 두 번째 전환기를 다루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이십대이거나 삼십대를 훌쩍 넘어선 나이더라도 혹은 남성이라도 이 책에서 많은 도움을 받으리라 생각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아직 이십대, 곧 삼십대의 문턱을 오를 나이이다. 사람은 각자의 인생에서 자기만의 전환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시기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첫걸음을 떼기가 그토록 힘겨운 이유는 관성 때문이다. 관성의 법칙이 말하는 바는 정지해 있는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는 성향이 있고, 움직이고 있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한 가지 변화를 일으키려고 노력하는 초기의 나는 정지 중인 물체이다. 뭔가 다르게 하려는 당신의 시도에 대해 관성은 지금껏 해왔던 그대로 계속하라고 밀어붙일 것이다.(250쪽)

 


   성공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실패만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안전지대란 안전한 곳이 아니라 어쩌면 삶의 감옥일 수도 있다'고 했는데, 나는 그 말이 나를 향한 것만 같아 가슴이 콕콕 아렸다. 어쩌면 나는 과거와 미래라는 유령 같은 시간에 갇혀 정작 현재를 살아내지 못하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했다. 죽은 시간들로 내 삶을 옭아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새해가 시작되었다. 새로움 앞에 환호하고 가슴 설레이는 것은 잠시이다. 그 새로운 길 위에 놓인 '나'는 낡고 먼지 낀 중고이기 때문이다. 이제 눈앞에 보이는 것들 너머의 것, 조용히 죽어있다가도 한순간 풀썩 일어나는 먼지 같은 '나'의 상처를 들여다보아야 할 때이다. 남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그 시간들까지 상처로 얼룩지면 안 될 일이다. 나는 조금씩 현재와 화합하는 법을 배워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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